소설리스트

2화 (3/21)

2.

탈출을 이뤄 내지 못하고 며칠이 흘렀다. 하릴없이 갇혀 지내는 동안 해림은 이곳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귀동냥으로 주워들으며 익혔다. 이형은 노덕구와 달리 해림이 제법 마음에 들었는지 옆에 딱 달라붙어 이것저것 챙겨 줬다. 대부분의 정보도 이형의 입에서 나왔다.

“여기요? 떡집이죠, 뭐. 지명받으면 손님 옆에서 아양 떨고, 술도 팔고, 잘 꼬셔 가지고 떡도 치고. 예약 들어오면 준비했다가 가서 떡 치고. 아, 잘하면 손님이 팁을 따로 주는데 그거 잘 모아 둬요. 나중에 용돈으로 쓸 수 있을 거야.”

이형은 상황이야 어찌 되었든 퍽 발랄했다. 지나가듯 사연을 말하지 않았더라면 본인이 원해서 들어왔다고 해도 믿었을 터였다.

이형을 볼 때마다 해림은 나진이 키웠던 나이 든 레트리버가 떠올랐다. 보드라운 금색 털에 해림만 보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 가며 헥헥거리며 웃던 그 개가. 노환으로 눈앞이 안 보이고 귀도 먹었으면서, 해림이 만져 주면 아직도 어린 양 웃으며 힘겹게 꼬리를 흔들고는 했다. 말갛던 그 눈이 이형의 반짝거리는 눈동자와 똑 닮았다.

“필요한 물품은 다 주던데.”

“하, 정하 형……”

서로 나이를 밝히고서는 이형은 형, 형 하며 퍽 살갑게 굴었다. 강아지처럼 꼬리 흔들며 달라붙던 이형이 지금은 해림이 영 한심해 뵈는지 어깨에 팔을 턱 걸치고서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손님이 뭘 보고 선택하겠어요. 이렇게 상복같이 시커멓게 입기만 해서 어디 지명받겠어? 향수도 뿌리고 시계도 좀 차고. 최대한 예쁘게 꾸며야지.”

“인터넷도 안 되고 외출도 금지인데 무슨 수로?”

“아직 형은 한 달 안 됐으니까. 한 달 지나면 하루 정도는 외출하게 해 줘요. 아니면 휴게소에 잡지 있는데 거기서 상품명하고 번호 적어서 실장님한테 알려 줘요. 수수료는 떼어 가는데 배송은 빨라.”

노덕구가 어슬렁거리며 복도에 등장했다. 이형이 해림의 옆구리를 툭 치며 이번에는 인사 잘하라고 조언을 해 줬다. 남들처럼 곰살맞게 굴 성격은 못 되어 다들 90도로 숙이고 인사하는 와중에, 해림은 이번에도 고개만 꾸벅 숙였다.

다른 이들처럼 굽실거리려다가도, 속에서 억울함이 울컥 치밀며 허리에 심이 박힌 듯 굽혀지질 않는 것이다. 저도 미처 몰랐던 고집이 깊숙한 곳에 숨어 있다가 부당함을 못 참고 불현듯 튀어나왔는지도 모른다.

당연한 수순으로 선택받지 못했다. 선택을 받는 게 좋은 건지, 아니면 이대로 복도에서 시간을 죽이는 게 나은지조차 점점 헷갈렸다. 탈출하면 죄다 물거품으로 사라질 터인데, 탈출할 길이 안 보이니 하루가 무섭게 빚이 불어난다. 불안하고 초조했다.

새벽 네 시를 알리는 괘종이 울리면 어김없이 복도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바람에 휩쓸린 낙엽처럼 우수수 밀려 나갔다. 대기실에 있던 인원들은 요령이 좋아서 매번 손님에게 뽑히곤 했다. 홀로 남은 해림이 답답한 속을 흡연으로 달래려다가, 저번처럼 사장을 마주치면 안 그래도 안 좋은 기분이 바닥에 곤두박질칠까 봐 다른 쪽으로 발을 틀었다.

운동 기구가 늘어선 방도 새벽의 흡연실이 그랬듯 조용했다. 솔거 노비들은 네 시를 기점으로 다들 퇴근했고, 간택 받은 이들은 몸을 팔러 갔거나 자러 갔지 고단한 몸을 이끌고 운동하러 올 사람은 없었다. 하여 해림이 여유롭게 기구를 둘러보다가 트레드밀 위로 올라갔다.

전면이 유리라 그 너머로 캄캄한 숲이 보였다. 건물 빛을 받는 앞부분 외에 전부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크기를 가늠하기 어려운 숲 너머로 도시의 불빛이 희미하게 밝았다.

운이 좋게 나간다 한들 차도 절도 없이 두 발로 이 숲을 벗어날 수 있을까. 어디로 향하든 막다른 골목만 마주하는 기분에 한숨이 무겁게 흘러나왔다.

우울하게 넋 놓고 있다고 현실이 달라지랴. 이럴 때는 생각이 가라앉도록 정신없이 몸을 몰아붙이는 게 낫다. 예전에 회사 일로 골머리를 썩을 때 입에서 단내가 날 때까지 주변 공원을 달리고는 했었다.

간택을 기다린답시고 정장을 입고 온 터라 운동하기엔 옷이 불편했다. 해림이 구두나 넥타이 등을 한쪽 구석에 놓았다. 전원 버튼을 누르고 천천히 다리를 움직였다. 느린 걸음으로 시작했다가 어느새 바닥 밟은 소리가 턱턱 빨라졌다.

뛰는 데 집중하느라 문이 열린 것도 몰랐다. 옆 레일에 누가 올라오고 나서야 해림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정지 버튼을 눌렀다.

“누가 이 야밤에 미친년처럼 뛰나 했더니.”

또 이 인간이었다. 해림이 헐떡거리는 숨을 가다듬으며 손잡이에 걸어 놓은 수건으로 땀을 닦았다. 속도를 높여 뛰었더니 목덜미에도 땀이 축축하게 배어 나왔다.

흡연실에서 겪었던 상황과 같았다. 불편한 사람과 굳이 단둘이 밀폐된 공간에 있고 싶지 않았다. 해림이 레일에서 내려오려고 하자 주신도가 귀신같이 버튼을 눌렀다. 레일이 다시금 굴러갔다.

“저는 운동 끝났습니다. 그럼.”

“일도 안 하면서 체력이 그렇게 약해서야 쓰나. 더 뛰어.”

해림이 정지를 눌러도 주신도가 장난치듯이 녹색 버튼을 누르며 속도를 올렸다. 해림이 속도에 맞춰 보폭 넓게 걷다가 이내 가만히 몸을 맡겼다. 레일이 뒤로 밀리며 해림이 바닥으로 툭 내려왔다.

“어쭈, 도련님이 말을 안 듣네.”

“피곤해서요.”

“오늘 손님 받았어? 여기 와서 한 거라고는 먹고 자고 논 거밖에 없으면서 피곤하기는. 그렇게 체력 약해 보이진 않는데 왜 그렇게 골골거려. 올라와. 30분만 더 뛰고 가.”

몸보다 정신이 피곤했다. 사장만 아니었다면 대충 둘러대고 바로 빠져나갔으리라. 한데 그간 주신도가 보여 준 행동에 가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이대로 등을 보이면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고 괴롭힐지도 몰랐다.

같이 뛸 줄 알았더니만, 주신도는 손잡이에 두 팔꿈치를 대고서 해림이 하는 양을 지켜봤다. 부담스러워 일부러 고개를 더 꼿꼿하게 들고서 레일 위를 걸었다. 주신도가 고개를 갸웃하듯 기울이고 해림을 보며 속도를 높였다.

속도가 5분마다 올라가다가 종래에는 숨이 턱에 차도록 높아졌다. 지기 싫어서 이를 악물고 뛰었다. 전속력으로 뛰는 것도 아니라 버티라면 버틸 수가 있겠으나, 자칫하면 미끄러져 볼썽사납게 넘어질까 봐 해림이 패배를 선언하며 정지 버튼을 내려쳤다. 공원에서 뛰었을 때처럼 숨이 턱에 닿았다.

“왜, 헉, 왜 이러십니까.”

“도련님 체력 키워 주려고.”

“사, 장님은, 안 하시고. 후…….”

“나는 이렇게 운동 안 해도 체력이 좋거든. 겨우 이거 뛰고 울고. 우리 도련님 약하네. 처음 봤을 때는 건강해 보였는데 은근히 약골인가 봐. 큰일이야. 보약 한 첩 지어 줄까.”

“괜찮, 후, 습니다.”

그리고서 빚으로 달아 놓으려고. 해림이 깔끔하게 거절하고서 레일을 내려왔다. 주신도가 다시 뛰라고 머리채를 잡고 흔들어도 못 뛸 듯이 허벅지와 종아리가 욱신거렸다.

말 많은 주신도가 웬일인지 주둥이를 닫고 가만히 해림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물줄기처럼 긴 땀방울이 머리카락을 헤집고 나와 목뒤로 흐르다가 셔츠 깃 안으로 흘러 들어가는 장면을, 땀이 솟아나 번들번들한 목덜미를, 열기를 내뿜듯이 연분홍빛이 도는 살갗을 응시했다.

주신도가 후우, 하고 증기처럼 한숨을 뿜으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도련님, 하고 부르는 소리에 해림이 고개를 돌렸다. 도련님이라는 이상한 호칭에 어느새 익숙해졌다는 반증이었다. 고개를 돌려놓고 해림도 느리게 깨달았다.

“내일모레면 일주일째야. 무전취식은 안 되는 거 알지. 이틀 안으로 어떻게든 손님 물어서 돈 벌어. 지금 하는 것처럼 야하게 헐떡이면 좀 잘 물릴걸. 그놈의 미친, 엄마가 섬 그늘에 나갔다는 타령하지 말고.”

제 할 말만 쏘고서 주신도가 먼저 나갔다. 혼자 남은 해림이 하, 하고 기가 막히다는 듯이 헛웃음을 지었다. 새벽에 사람 죽으라고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이 굴려 놓고는 당부한다는 말이 손님 물라는 덕담이자 악담이다. 실장 말대로 사장이 미친놈이긴 한가 보라고, 해림이 땀을 마저 닦고 구석에 개켜 둔 옷을 주워 들었다.

* * *

일해야 하는 밤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해림이 시간에 맞춰 준비를 하고 전화가 울리기 전에 대기실로 내려왔다. 이형이 소파에 누워 게임기를 두드리다가 해림을 보고 반색하며 일어났다.

“형, 같이 내려가자고 전화할까 했는데.”

내선은 연결 가능해 방 번호만 알면 서로 전화할 수 있다고 실장이 말한 바 있었다. 한 번도 연락해 본 적은 없었다.

“정하 형, 오늘은 꼭 뽑혀야 하는데. 아, 채홍이 그 새끼가 아주 밴댕이 소갈딱지라 한 번 삐지면 꼭 그렇게 치사하게 복수를 해요. 그리고 형도 형이야. 채홍이한테 몇 푼이라도 좀 찔러 주고 그래요. 사람이 요령이 없어.”

“현금이 없어.”

“빌려줄까요? 나 어제 좀 받았어.”

지원이 대뜸 권했다. 해림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빚 타령은 주신도가 하는 걸로 차고 넘쳤다. 다른 사람에게까지 손 뻗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정말 사장에게 끌려가면 어쩌려고…….”

이형이 진심으로 걱정하는 것처럼 미간을 좁히며 해림을 바라봤다. 이런 곳에서 제 앞가림도 힘들 텐데 절 걱정하는 이형이 귀여워 해림이 픽 웃었다. 칭찬하듯 이형의 머리카락을 부스스 흩트리자 이형이 귓불을 붉게 물들였다가 팩 소리 나게 고개를 돌렸다.

“형, 빈말이 아니라 형 정말 열심히 해야 해요. 한 달 안에 목표 금액 못 채우면 형도 끌려가요.”

“자꾸 어디로 끌려간다 그래.”

이형의 눈동자에 짐짓 심각한 빛이 어렸다. 지원을 짧게 부르자 지원이 어깨를 으쓱하며 바짓단을 걷었다. 복사뼈에서 무릎까지 테이프를 붙였다 뗀 듯이 네모난 흉터가 있었다. 화상을 입은 것처럼 거기만 색이 불긋하고 우둘투둘했다.

“저, 처음 온 2주일간 반항했거든요. 그랬더니 피부 뜯어 갔어요. 간 뜯어 가려고 했는데 눈물 콧물 다 짜면서 앞으로 개같이 일하겠다고 싹싹 빌어 가지고. 원래는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차라리 죽이라고 달려들려고 했는데……. 목숨 앞에서는 사람이 구차해지더라고요.”

거짓말이 아닐까. 혹시 다른 일로 흉터가 생겼는데, 저를 겁주려고. 해림이 의심을 담아 이형을 쳐다봤다. 이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형은 운이 좋은 편이에요.”

구석 매트에서 달팽이처럼 웅크려 자던 시훈이 입을 열었다.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 벽에 등을 기댔다.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서는 허리가 서서히 굽어지더니 도로 매트에 누웠다.

“여기 있는 새끼들은 다 운이 좋지. 저번에 가드한테 들었는데 어떤 놈은요, 빚을 졌는데 장기 파느니 차라리 후장 팔겠다고 사장 바짓자락 잡고 늘어졌었대. 그런데 사장이 그놈 얼굴이 돼지가 씹다 만 껌만도 못하다고 섬으로 돌렸다가, 거기서도 팽당하고 결국 장기 털렸대요.”

도시에 흔히 떠도는 괴담으로 취급하고 싶건만, 둘이나 비슷한 말을 한 데다 주신도가 얼핏얼핏 드러내는 광기를 떠올리자 괴담보다 현실이라는데 무게가 실렸다.

“형도 그 운 다하기 전에 빨리 적응해요. 나한테도 형이 딴생각하는 거 보이는데 사장이 그걸 모를까.”

“……너희들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어?”

왜,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에 다들 아무렇지 않게 적응하고 살지. 깊은 사연은 모르나 잡혀 온 경로는 비슷할 터였다. 이 중에 누가 사장에게 쪼르르 달려가 나불거릴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일단 뒤로 미뤄 두고 해림이 질문을 던졌다. 목적어를 생략해도 알아들은 듯이 모두가 찰나에 입을 다물었다. 누가 먼저 입을 열지 눈치를 보듯 기묘한 침묵이 흘렀다.

“……도전한 애들이야 있었죠. 지금 세상에 없어서 그렇지.”

이형이 고요를 깨며 애매하게 웃었다. 불현듯 태훈이라는, 여기서 도망친 사람이 떠올랐다. 미리 명복을 빌겠다던 이들의 말도.

“형, 사장이 형을 인간처럼 대해 준다고 해서 마음 놓지 말아요. 사장은 우리 사람 취급 안 해요. 때 되면 내다 파는 가축으로 보지.”

“여기서는 사장이 곧 법이고 신이에요. 이 둘레가 왜 숲인데요. 말 안 듣는 놈 처 묻을라고 이런 데다 가게 세운 거지. 저 뒷산에서 삽질 세 번 하면 해골 발견될걸요.”

“케이 새끼 해골이나 발견됐으면 좋겠네.”

거울을 보며 머리를 만지던 지원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꽤 우스운 농담이었는지 이형과 시환이 낄낄대며 웃었다. 케이라는 새로운 인물이 누군지 몰라 해림이 가만히 있자 아, 하며 이형이 설명했다.

“있어요. 좆같은 호모 새끼. 형이 운이 정말 좋은 게 그 새끼가 형 오기 전에 손님들한테 뼈 부러지게 얻어터져서 병원에 실려 갔거든요. 걔 있었으면 형도 텃세 받았을걸.”

“그 미친놈은 빚도 다 갚았다면서 왜 여기 붙어 있고 지랄이야. 사장하고 쌍으로 미친놈이야.”

“몰랐냐. 걔 사장한테 미쳤잖아. 뭐 눈엔 뭐만 보인다더니, 미친놈이 미친놈한테 반해서는.”

미지의 인물인 케이보다, 그가 손님에게 두들겨 맞았다는 사실이 더욱 강렬하게 기억에 남았다. 오늘은 손님을 꼭 받으라던 사장의 당부도 연이어 뇌리를 스쳐 갔다. 방이나 다른 곳에 있을 때는 현실과 떨어져 붕 떠 있다가 대기실에 오거나 복도에 줄 서 있으면 다시금 현실이 어떤지 와닿았다.

자잘한 대화가 오가는 도중에 딩동, 하고 알림이 떴다. 이형이 기지개를 쭉 켜며 일어났다. 해림도 일행과 같이 방을 나섰다. 오늘은 꼭 손님을 잡으라던 사장의 당부가 귓속에서 메아리쳤다.

* * *

노덕구가 깐깐하게 눈빛을 빛내며 복도에 죽 늘어선 남자들을 살폈다. 해림은 정면만 쳐다봤다. 마음이 복잡했다. 뽑혀서 장기 뽑히는 상황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반, 사실로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에 휩쓸리는 게 어리석은 건 아닐까 고심이 반이었다. 심란한 기색을 미처 못 숨기고 한숨을 쉬자 노덕구가 눈을 부라리며 해림을 노려봤다.

“이 건방진 새끼.”

당장 정강이라도 걷어찰 것처럼 성큼성큼 다가온 노덕구가 해림을 위아래로 훑었다. 해림이 시선을 피하지 않자 주먹을 홱 들었다가 부들부들 떨며 팔을 내렸다. 사장도 아니고 일개 관리자가 상품에 감히 흠집을 내랴. 해림도 그 정도는 쉽게 눈치챘다.

“너, 들어가.”

사장님만 아니었으면, 하고 구시렁대며 노덕구가 해림을 스쳐 지나갔다. 얼떨떨한 심정에 바로 움직이지 않고 잠시 넋 놓고 있자 이형이 옆구리를 툭 치며 해림을 깨웠다.

“형, 뭐 해요. 얼른 쫓아가요.”

복도에서만 대기한지라 무슨 방에 어떻게 찾아가야 하는지 몰랐다. 해림이 부랴부랴 노덕구를 쫓아갔다.

대기하던 복도를 지나 코너를 돌자 천이 하늘하늘 늘어져 있는 새 복도가 나타났다. 처음 손님을 만났을 때도 이런 방이었던가. 그때는 정신이 하나도 없어 어느 길을 어떻게 갔는지도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미로 같은 복도를 헤매다 숫자가 붙은 문 앞에 멈췄다. 노덕구가 조끼를 잡아당겨 주름 없이 빳빳하게 펴고는 조심스레 문을 두드렸다. 들어와, 하는 허락이 떨어지고서야 노덕구가 문을 열었다.

이번에도 여자였다. 혹여 남자면 어쩌나 암암리에 불안했는지 해림의 입에서 소리 죽인 한숨이 터져 나왔다.

“주 사장이 말한 신입이 얘야? 골 때리는 애가 들어왔다던데.”

“맞습니다, 회장님.”

“주 사장 나한테 혼나야겠네. 신입 교육이나 시키고. 어쨌든 놀아 줄 테니까 서비스 단단히 주라고 주 사장한테 전해.”

“예, 회장님.”

노덕구가 무슨 일로 저를 방에 보내 줬나 했더니, 뒤에서 주신도가 입김을 분 모양이었다. 노덕구가 굽실거리며 코가 땅에 닿아라 인사를 하고 방을 나섰다. 손님이 다리를 반대로 꼬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자기, 뭐 해?”

손님이 턱을 까닥했다. 담배에 불을 붙이라는 신호였다. 주신도와 흡연실에서 부딪쳤던 일이 아니었더라면 못 알아챌 뻔했다. 테이블에 있는 라이터를 들고서 담배 끄트머리에 불을 붙였다.

“한 손 말고 두 손으로 해야지. 기본도 모르면 어떡하니.”

손님이 타박을 주며 연기를 깊게 빨아들였다. 이렇게 접대하는 자리는 가 본 적도, 접대부로 참여한 적도 없어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를 몰랐다. 처음 만난 사람과 스스럼없이 대화를 주도할 만큼 변죽이 좋지도 않고, 누군가를 웃길 만큼 말재주가 훌륭하지도 않았다. 접대와는 거리가 멀다 못해 광년 거리만큼 떨어져 있는 사람이었다.

술과 음식이 나올 때까지도 호구 조사만 일어났다. 이름은, 나이는, 애인은 등등. 손님이 묻고 정하가 대답했다. 면접도 아니고 분위기가 침울하기 그지없었다.

“주 사장이 어디서 이런 물건을 가져왔을꼬. 얼굴도 예쁘고 몸도 예쁜데 재미가 없네. 자지는 커?”

이 바닥이 성희롱을 성희롱으로 취급하지 않는다는 건 알지만 이렇게 직접적인 질문은 부담스러웠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어물거리자, 손님이 대담하게 해림의 바지춤으로 손을 뻗었다. 해림이 움찔하며 물러나자 손님이 손아귀를 좁히며 아랫도리를 꽉 움켜쥐었다. 윽, 하고 해림이 상체를 굽히며 테이블을 잡았다.

“말하는 재미가 없으면 가지고 노는 재미라도 있어야지. 만져만 봐서는 모르겠다. 까 봐.”

“그건, 손님.”

“부끄러워?”

손님이 가까이 다가왔다. 다가온 만큼 해림이 물러났다. 손님이 빙긋이 웃고는 손바닥으로 해림의 가슴을 밀었다. 어, 하는 사이에 소파에 등이 닿았다.

해림의 위로 올라탄 손님이 셔츠 단추를 풀었다. 이대로 놔둬야 하나, 아니면 말려야 하나. 해림이 고민하는 사이에 셔츠 단추는 다 풀어져서 맨 가슴이 옷깃 밖으로 드러났다.

까맣게 칠한 손톱이 한쪽 젖꼭지를 꾹 눌렀다. 해림이 헉, 숨을 토해 내며 손님의 손목을 잡았다.

“젖꼭지가 분홍색이네. 확실히 몸은 예뻐. 근데 돈 안 벌 거야? 앙탈은 한 번만 봐줄게. 두 번은 없어.”

해림의 손아귀에서 스르륵 힘이 빠졌다. 여자 손님이면 복 받은 거라고, 이형이 얼마 전에 떠들었다. 눈 딱 감고 오늘 한 푼이라도 버는 게 과연 맞는 일일까. 갈등은 끝이 없었다.

가슴을 훑은 손이 아래로 내려가 지퍼를 내렸다. 더는 두고 볼 수 없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손님이 이런 반응은 신선하다며 해림의 뺨을 툭 치고 속옷을 끌어 내렸다.

“자지도 분홍색이고. 털도 없네. 정리했어?”

“아뇨.”

이차 성징이 지나고 목울대가 튀어나왔는데도 우습게 아랫도리와 겨드랑이에는 털이 나지 않았다. 알고 보니 부친 쪽 유전이었다.

손님의 손이 자연스레 기둥을 쥐었다. 나진과 헤어진 이래로 대부분 소변보는 용도로만 사용한 곳이었다. 오랜만에 쏟아진 자극에 벌떡 일어설 만도 하건만, 풀 죽은 놈은 고개도 까닥이지도, 통통하게 익지도 않았다. 흐물흐물한 살덩이가 축 처져 가지고는 갈대처럼 맥없이 흔들렸다.

워낙 긴장한 탓일까, 아니면 피로가 쌓여 그런 걸까. 해림이 이 상황을 어떻게든 극복해 보겠다고 쥐고 흔드는 손길에 집중해 봤으나 오싹하기는커녕 팔을 잡고 흔들듯이 아무런 느낌도 오지 않았다. 잠깐 미간이 찌푸려지는 감각이 오더라도 왔던가 의심이 들 만큼 빠르게 사라졌다.

“어머.”

급기야 매끄러운 손길이 오히려 아랫도리를 뽑아낼 듯이 아프기만 했다. 벗어나고 싶은 심정만 밀물처럼 차올랐다. 참고 참다가 도저히 못 참을 지경이 되어 해림이 상체를 일으키며 손님을 밀었다. 가는 어깨가 해림의 손에 손쉽게 뒤로 물러났다.

“죄송합니다.”

“세상에. 고자야?”

이런 적은 해림도 처음이었다. 나진과 함께 있을 때는 문제가 없었건만, 혼자 해결할 때도 기능상 이상은 없었건만 이해가 안 가는 일이었다. 눈앞의 손님이 끔찍한 것도 아니었다. 깊게 드러난 가슴골도, 부드럽고 긴 손가락들도 손님을 넘어 매력적이었으나 도무지 밤을 보낼 기분이 들지 않았다.

정신적인 문제가 아닐까. 해림이 고개를 푹 숙였다. 수치가 한계를 넘어섰다. 손님이 숨넘어갈 듯이 깔깔대 해림의 귓바퀴가 곧 터져 나갈 듯이 벌겋게 익었다.

“와, 주 사장도 속 터지겠다. 자기 신입이라며. 빚 안고 온 걸 텐데 이래서야 어떻게 돈을 버니. 사모님 잡기는 글렀네. ……그래도 뭐, 여기 다른 변태들 많이 온다니까, 잘해 봐.”

손님이 해림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며 위로했다. 전혀 위안 삼을 수 없는 말이었다.

손님이 제 역할은 여기까지라며 매정하게 테이블에 붙은 버튼을 눌렀다. 곧 노덕구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얘 내보내고 이형이 데려와. 이거 고장 났어.”

노덕구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비열하게 히죽거렸다. 쫓겨난 마당에 앉아 있어서 무엇하랴. 해림이 예의상 손님에게 인사하고 노덕구를 따라 방을 나갔다.

* * *

당연한 수순처럼 사장실에 끌려갔다. 안 그래도 마음이 싱숭생숭한데 눈앞에서 담배를 뻑뻑 피워대는 주신도를 보니 기분이 하강 곡선을 그리다가 땅을 파고 들어갔다. 회사에서 일이 잘못된 거면 밤을 새워 수습이라도 하지, 신체 일부가 고장 나서 몸을 팔지 못한 건 대체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구석에 놓인 공기 청정기가 뻘건 불을 번쩍이며 요란하게 돌아가도 사장실을 물들인 매캐한 연기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책상에 놓인 재떨이에는 꽁초가 가득 쌓였다. 주신도가 문가에서 못 박힌 듯 서 있는 해림을 보다가, 마지막 연기를 입 밖으로 푸우우 뿜어내고 담배 대가리를 재떨이에 짓눌렀다.

“가지가지 한다, 진짜.”

“…….”

할 말이 없다. 꼭 사고치고 상사에게 불려온 신입처럼 해림이 고개를 숙였다. 넘실대는 수치심이 해림의 뺨과 목덜미를 불긋하게 익혔다.

“도련님, 전에 여자 친구도 있었잖아? 그 나이 처먹고 플라토닉 한 연애를 했다는 미친 소리는 하지 말고. 와, 도련님이 무슨 구십 먹은 노인네도 아니고 자지가 안 서면 어떡해. 내가 누님한테 아쉬운 소리 해 가면서 예쁘게 봐 달라고 신경 써서 넣어 줬더니. 돌겠네.”

악문 잇새로 마지막 문장이 새어 나왔다. 주신도가 담뱃갑에서 담배를 빼려다가 책상 위에 턱 소리 나게 내려놨다. 그리고서 아직도 문고리를 잡고, 당장에라도 도망칠 것처럼 문에 바짝 붙어 있는 해림을 향해 손짓했다.

“이리 와.”

바로 튀어오라는 소리에도 해림이 주춤거리다가, 주신도가 눈을 희번덕 뜬 다음에야 목줄 걸려 끌려가는 소처럼 다가갔다. 주신도가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해림을 올려다봤다.

“뭐 해. 벗어.”

“예?”

해림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알아들었으나 차라리 알아듣지 못한 게 나았을 명령이었다. 주신도의 눈썹 사이에 짜증이 자글자글 녹았다. 입술 새로 짐승같이 이를 드러내며 주신도가 불쑥 손을 뻗었다. 두 손으로 해림의 바지춤을 단단히 쥐고 “이거 말이야, 씨발.” 하며 욕을 했다.

“사장 된 입장으로 다시 살펴야 할 거 아니야. 큰돈 주고 가져왔는데 고장이 났으면 고쳐서라도 사용해야지. 도련님, A/S 센터 안 가 봤어? 물건이 고장이 났으면, 왜 고장이 났는지, 어디가 문제인지 제일 먼저 살펴보잖아. 도련님이 불알이 문제인지 불감증인지 내가 봐야 할 거 아니야.”

“너무 긴장해서 그랬습니다. 일시적인 실수예요. 사장님이 굳이 확인 안 하셔도 될 문제니 이 손 좀.”

해림이 주신도의 팔목을 붙들고 통사정했다. 몸을 뒤로 빼느라 바지춤이 늘어져 안에 입은 속옷이 드러났다. 주신도의 입가에 오묘한 미소가 떴다.

“이게 일시적인 문제인지 아닌지는 내가 결정할 사안이지. 도련님을 다른 손님한테 보냈는데 똑같은 문제가 또 일어나 봐. 가게 평판이 얼마나 떨어지겠어? 사장으로서 두고 볼 수 없는 일이지.”

“아뇨, 정말 괜찮습니다. 별문제 없어요. 다음에는 이런 일 없도록 잘…….”

“어떻게 잘할 건데. 죽은 자지를 어떻게 살려 낼 건지 말해 봐.”

엄연히 아침마다 건강하게 기립하는 아랫도리를 죽은 개불 취급하며 주신도가 한쪽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비릿한 냄새가 풀풀 풍기는 미소였다. 잘 어울리는 건 둘째 문제로, 해림이 손등에 힘줄을 곤두세우며 주신도의 손아귀에서 제 바지춤을 빼내려고 아등바등거렸다.

“그건, 그.”

“곱게 자란 도련님이 처음부터 사회의 쓴맛을 보면 충격 먹을까 봐 일부러 누님 붙여 준 거잖아. 이렇게 호의 봐준 놈이 없었는데 엿을 먹이니 내가 화가 나, 안 나. 빨리 말해.”

손님 앞에서 빌빌거리는 늙은이처럼 약이라도 먹어서 세우겠다는 거짓말이라도 임시방편으로 뱉어야 하나. 원하는 바는 주신도의 얼굴에 냅다 주먹을 갈기고 이 건물을 빠져나가는 거지만 그건 시도조차 어려웠다.

“말 못 하면 행동으로 보여 줘야지. 뭐 해, 도련님. 옷 몇 벌 안 될 텐데 찢겨서야 쓰나. 아니면 그 나이에 부끄럼 타?”

적어도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공중목욕탕이 아닌 이상 옷을 갖춰 입은 남 앞에서 바지춤을 까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안 하려는 제 행동이 정상이고 남의 바지춤을 까려고 덤벼드는 주신도가 비정상이었다.

“안 하면 안 됩니까. 싫습니다.”

주신도가 여전히 해림의 바지춤을 잡은 채 올려다봤다. 여유로운 미소를 띠던 입매가 일자로 굳게 다물어지고, 붉은 기 도는 눈동자는 눈꺼풀에 반쯤 가려졌다.

“…….”

짧은 침묵이 흘렀다. 그 틈을 타 해림이 바지춤을 사수하려고 주신도의 손목을 비틀어 쥐었다. 손아귀에 힘을 준 순간, 주신도의 손목에도 손목뼈와 힘줄이 불끈 불거졌다.

“존나 말 안 들어.”

벨트가 순식간에 풀어졌다. 주신도의 손등에 핏줄이 돋자 바지춤에 붙었던 단추가 맥없이 튕겨져 나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속옷과 바지를 한꺼번에 잡고 주신도가 자비 없이 아래로 휙 내렸다. 해림이 기겁해서 셔츠 자락을 잡고 아래로 끌어 내렸다. 얼굴이 시뻘겋게 익었다. 벗은 건 아까와 같은데 수치심의 정도가 달랐다.

“애들 다 불러서 구경시키기 전에 가만히 있어.”

낮은 목소리에 진심이 실렸다. 해림이 질색하며 고개를 옆으로 틀었다. 눈앞의 미친놈이라면 정말 구경꾼들을 줄줄이 불러 해림이 곤란해하는 모습을 구경하며 킬킬거릴지도 몰랐다. 수많은 사람 앞에서 망신을 당하느니 주신도 한 명을 감당해 내는 게 낫다.

해림이 눈을 질끈 감았다. 셔츠는 마지막 보루처럼 잡고 있었다. 주신도가 철썩 소리 나도록 해림의 손등을 후려쳤다.

“손 치워.”

얼얼한 감이 돌더니 해림의 흰 손등이 바로 벌겋게 달아올랐다. 해림은 차마 셔츠를 놓지 못하고 우물쭈물거렸다. 명색이 같은 남자 앞에서, 그것도 주신도한테 어린애처럼 바지춤을 까일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으랴. 이런 일엔 면역이 없어 당혹스러운 반응이 튀어나왔다.

후, 하고 주신도가 가볍게 한숨을 쉬더니 아래를 덥석 움켜쥐었다. 해림이 헉, 하며 상체를 굽혀도 맨 처음 사장실에 불렀을 때처럼 손아귀에 쥐고서 가차 없이 주물럭거렸다.

“도련님, 털이 없네? 언제 밀었어.”

유전이라고 대답할 정신이 없었다. 손바닥에 굳은살과 뜨뜻하다 못해 뜨거운 온기가 아랫도리 전체를 쥐었다. 말랑말랑한 음낭을 조몰락거리다 손가락으로 기둥을 감쌌다. 딱딱하고 사포처럼 까끌까끌한 검지와 엄지가 둥근 끄트머리를 꼬집듯이 쥐었다.

“색도 예쁘고.”

“그, ……아윽.”

아팠다. 우악스러운 손길이었다. 입 밖으로 튀어 나간 신음은 느껴서가 아니라 통증에 어린 비명에 가까웠다. 아랫도리를 인질처럼 잡혀 도망치지도 못하고 해림이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손님은 제가 더 힘이 강해 밀기나 했지, 주신도는 힘이 장사였다.

“그만, 요. 아파.”

“엄살도 심하고. 내가 도련님 좋으라고 만져? 확인하려고 이 짓거릴 하는 거 아니야. 정말 안 서? 감각 없어?”

“제발, 좀…….”

이것 좀 놔 달라고. 해림의 눈꼬리에 눈물이 찔끔 맺혔다. 주신도의 손목을 두 손으로 붙잡고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하자, 억세게 문질러대던 손길이 슬그머니 노선을 틀었다. 터트릴 듯이 기둥을 움켜쥐었던 손아귀가 느슨하게 풀리고 둥근 끄트머리를 비벼 대는 손끝이 순두부를 뭉개듯 부드러워졌다.

통증으로 달아오른 자리에 다른 감각이 들어왔다. 삽시간에 감각이 바뀌어 참고 자시고 할 시간이 없었다. 등골이 간질간질하고 아랫배에 열기가 뱀처럼 똬리를 틀었다. 비상사태였다. 차라리 만지는 이의 면상을 보면 열기가 사라질까, 해림이 눈을 가느스름하게 떴다. 호흡이 점차 달아오르고 눈가도 축축하니 물들어서 주신도의 얼굴이 흐릿하게 보였다.

그만하라고 몸을 비틀면 아래를 잡아뗄 듯이 쥐고, 손목을 움켜잡으면 오히려 자극받았다는 듯 기둥을 쥐고 잡아당긴다. 꺼끌꺼끌한 손아귀에 흔들리던 아래가 점점 열이 오르려 했다. 이럴 거면 아까는 왜 그렇게 묵묵부답이었을까.

해림이 눈을 꾹 감았다 떴다. 물건의 상태를 확인할 것처럼 덤덤하게 쳐다보고 있을 거란 예상과 달리, 주신도는 입을 헤벌리고 일견 어린아이처럼 해림의 얼굴을 뜯어보고 있었다. 호기심과 정체를 알 수 없는 미묘한 열기가 뒤섞인 불그스름한 눈동자가 제 모습을 물가처럼 비추었다. 까만 동공이 커다랗게 부풀었다가 점처럼 작아지는 찰나, 해림에 엉덩이에 힘이 담뿍 들어갔다.

“아……!”

주신도의 손아귀 안에서 기둥이 통통하게 살집을 부풀렸다. 주신도가 오, 짧게 감탄하며 손을 뗐다. 셔츠 자락이 내려와 발갛게 성이 난 기둥을 가렸다. 해림이 거칠게 숨을 내쉬며 셔츠 끝을 끌어 내렸다.

“잘 서네. 근데 도련님, 호모였어? 왜 누님한테는 안 서고 내 손에는 세워?”

“그건, 사장님이 너무 이상하게 만져서……. 아까는 너무 긴장했고.”

해림이 횡설수설 변명했다. 저라고 이런 미친 상황에 반응하고 싶었겠는가. 다만 통증을 달래듯이 찾아온 감각이 몸뚱이를 뒤흔들 만큼 달콤해서 그랬다. 주신도의 손놀림 때문은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지금 내 기술 칭찬하는 거야? 그냥 도련님이 호모였다고 인정하는 게 빠를 텐데. 으, 도련님. 사장 자리가 이렇게 힘들어. 싫어도 사내새끼 자지도 만져야 하고 말이야.”

주신도가 서랍에서 손수건을 꺼내 손을 꼼꼼하게 닦았다. 해림이 재빨리 허리를 숙여 속옷과 바지를 손에 쥐었다. 아직 덜 식은 기둥을 억지로 속옷에 뭉개지도록 넣고 지퍼를 올렸다. 푹 숙인 얼굴이며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귓바퀴며 옷깃 너머로 보이는 목덜미가 붉은 물에 담갔다가 뺀 듯이 시뻘겠다. 처음 겪는 상황에 당혹감이 온 피부로 드러났다.

“내일은 다른 손님한테 들어가 봐. 확인 끝났어. 나가”

이번에는 사정 봐줘서 여자 손님이었지, 내일부터는 남자한테 보낸다는 속뜻이었다. 해림이 벌게진 얼굴을 추스르기 전에 고개를 벌떡 들었다.

“아닙니다! 제가, 그게. 차라리 여자 손님이 좋습니다.”

“내 손에 자지 세웠잖아. 남자가 더 좋은 거 아니야?”

“아닙니다. 절대 아니에요.”

“뭐, 상관없고. 어차피 여기서 살려면 자지가 달렸든 안 달렸든 손님이 왕이야. 뭐 해? 안 나가고. 한 번 더 만져 달라고?”

주신도가 온 얼굴 근육을 일그러트리며 해림을 위아래로 훑었다. 경멸과 혐오가 눈가와 입가에 주렁주렁 매달렸다. 절대 아니었다. 억지로 구겨 넣은 기둥은 차게 식어 원래 크기를 되찾았다. 주신도의 손이 다시 닿는다는 생각만으로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게, 끔찍함이 지나쳐 그런 듯싶었다. 해림이 삑 하고 어긋난 목소리로 아닙니다, 크게 외치고 돌아섰다.

“내일도 그 모양이면 지하로 돌릴 거니까 그렇게 알아.”

지하가 뭔지는 몰라도 되물을 상황이 아니었다. 1초라도 빨리 사장실에서 나가고 싶은 마음에 해림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을 뛰쳐나갔다.

* * *

“지하요?”

이형이 토끼 눈을 뜨고 되물었다. ‘지하’라는 단어가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 물어보던 참이었다.

“형, 그 말은 어디서 들었어요?”

“사장이.”

고자인지 아닌지 판명하겠다고 대뜸 바지춤을 열어다가 아랫도리를 변태처럼 주물럭거렸다는, 거기에 반응해서 저가 벌떡 세웠다는 길고 슬픈 이야기는 생략하고 주어만 말했다. 하, 하고 이형이 기가 찬 듯이 숨을 터트렸다. 고정 자리에서 누워 뒹굴대던 시훈도 움찔하며 오뚝이처럼 몸을 세웠다.

“형이 고자라서?”

소문은 이미 파다하게 퍼졌다. 안 그래도 해림을 탐탁지 않아 하던 노덕구가 이런 씹기 좋은 거리를 소문 안 내고 배길 리 없다. 해림이 한 손으로 얼굴을 문지르며 소파에 앉았다. 어제 사장실에서 겪은 파렴치한 성희롱이 떠올라 뺨이 후끈거렸다.

“그거 사실 아니야. 너무 긴장해서 그랬어.”

“난 또. 사장 성격에 형을 바로 지하로 돌리는 건 아닌지 엄청 걱정했는데. 한 번 더 기회는 준다니까 다행인가. 근데 사장이 웬일이래.”

“형은 얼굴이 되잖아. 어제 회장님도 형 얼굴 잘생겼다고 어마어마하게 칭찬하더만.”

그건 그렇지, 하며 시훈이 고개를 주억였다. 난데없는 외모 칭찬을 무뚝뚝하게 받아넘기며 해림이 지하가 뭐야, 하고 주제를 상기시켰다. 이형이 다른 이들과 눈빛을 주고받다가 어깨를 으쓱했다.

“저도 말만 들었지 가 본 적은 없어요. 케이만 가 봤을걸.”

“돈은 훨씬 더 번다는데 가면 그냥 망가진대요, 사람이.”

“케이 그 새끼 얻어터진 데도 거기잖아. 지하.”

“이 건물 지하야?”

가만히 듣던 해림이 물었다. 내도록 입을 다물고 있던 지원이 머뭇거리다가 해림의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소파 등받이에 등을 묻고 팔짱을 꼈다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나, 가 본 적 있어.”

해림을 제외한 나머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지원을 쳐다봤다. 지원이 한쪽 무릎을 끌어 올려 발바닥을 소파 끝에 딛고 종아리를 감싸 쥐었다. 흉터가 남은 곳이었다.

“이 꼴 나기 전에 사장이 먼저 데려간 곳이 지하였어.”

시훈이 벽에서 등을 떼고 지원을 쳐다봤다. 대기실에 있는 모든 이의 눈이 지원에게 꽂혔다. 지원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씁쓸하게 웃었다.

“이 건물 말고 저쪽 뒤에 건물 하나 더 있잖아. 거기 지하. 존나 큰데……. 우리한텐 지옥이고 그 새끼들한텐 낙원이야. 거기는 한 달만 버티면 빚은 반 이상 갚을걸. 대신 팔 하나 다리 하나 날아갈 거고, 눈알도 하나는 버려야 할 거고.”

“대체 뭘 보고 온 거야.”

“안 듣는 게 좋아.”

지원이 오한이 온 듯 어깨를 부르르 떨며 몸을 움츠렸다. 그때의 악몽이 떠올랐는지 얼굴은 백지장처럼 허옇게 질렸다. 이형이 지원이 옆에 앉아 옆구리를 툭툭 치며 얼른 밝히라며 졸랐다. 시훈도 압박을 가했다. 둘의 극성에 지원이 오만상을 찌푸리더니 이윽고 백기를 들었다.

“한 명한테 일곱 이상 달라붙는 거, 이 미친놈들아. 뚫려 있는 구멍은 둘인데 나머지는 어디에 박고 있었겠냐. 피 철철 나서 숨이 간당간당한 걸 잡고 달려드는데, 다들 약 빨아서 그런지 상대가 죽어 가는지도 모르더라. 여기는 최소한 약은 안 하지. 거기는…….”

으으, 하며 지원이 진저리를 쳤다. 소름 돋는 목격담이었다. 해림을 제외한 나머지들이 어깨를 파르르 떨거나 소름이 돋은 팔뚝을 벅벅 문질렀다.

“형, 약 처먹으면 악력이 엄청 강해지는 거 알아요? 그런 뉴스 있었잖아. 약하고 돌아 가지고 얼굴 잡아 뜯었다는 거. 그걸 봤어요.”

거짓말이라고 믿고 싶었다. 아무리 법보다 불법이 가까운 곳이라지만 사람 목숨을 가지고 노는 곳은 아닐 거라고. 장기를 판다는 말도 단순한 협박에 지나지 않을 거라고.

“거기서 죽느니 장기 팔겠다고 했거든요. 그랬더니 사장이 닥터한테 데려가더라고요.”

팔다리가 꽁꽁 묶인 채 칼날이 뱃가죽에 닿으니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고, 그대로 죽기는 싫어 울며불며 빌었단다. 결국 본전도 못 찾고 계약 기간과 빚만 무섭도록 늘리고 목숨은 보전했다는 결론이었다. 다리에서 피부 뜯어 간 건 목숨값에 비하면 저렴하다고 지원이 쓰게 웃었다.

침묵이 길었다. 아무도 섣불리 입을 열지 않았다. 꿀꺽, 하고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리고서 이형이 제일 먼저 말문을 열었다.

“유리 누나한테 간단하게 듣긴 했지만 그 정도일 줄은.”

“하여튼 형. 이번엔 잘해요.”

시훈이 걱정스레 쳐다봤다. 탈출이 제일 중요한 과제이나 그 전에 살아남아야 한다는 전제가 붙었다. 해림이 턱과 입술을 쓸어내리며 맞은편을 바라봤다. 지하로 보내겠다는 사장의 낮은 목소리가 귓속을 맴돌았다.

@@냥냥웅@@공금 갠소 

* * *

고자라고 짜하게 소문이 났으니 어디 뽑히겠냐마는. 반은 포기한 상태로 해림이 줄을 섰다. 손님을 받지 못하면 바로 지하로 끌려가는 건 아닐까 걱정이 반, 다른 이들이 저를 겁을 주려고 과장과 거짓을 보태 떠들었을 거라는 불신이 반이었다.

노덕구가 일본 순사처럼 기분 나쁘게 해림을 위아래로 훑었다. 소문의 근원이 어디인지 누가 알려 주지 않아도 답은 바로 나왔다. 혹여 시선이 마주쳤다가 제 눈동자에 뜬 경멸을 노덕구가 읽을까 봐 해림이 정면만 뚫어져라 바라봤다. 노덕구가 피식 웃더니 팔을 높이 들어 해림의 뺨을 손등으로 툭툭 쳤다.

“오늘 날 잡았다, 이 개새끼야. 들어가.”

짐승 목덜미 잡듯이 해림의 멱살을 턱하고 잡고 노덕구가 끌고 갔다. 해림이 노덕구의 팔목을 가볍게 비틀어 털어 내고 옷깃을 바로잡았다.

“제 발로 가겠습니다.”

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산다지 않는가. 방에 사람 잡아먹는 괴물이 있다 하더라도 정신을 다잡고 있으면 최소한 죽음은 피할 수 있을 터다. 해림이 옆에서 큰 소리로 상스러운 욕을 해 대는 노덕구를 무시하고 앞장섰다. 몇 번 오지는 않았으나, 미로같이 꼬인 길은 대충 익혀 놔서 가는 걸음에 망설임이 없었다.

해림의 달라진 기세를 눈치챘는지 노덕구가 해림의 등 뒤에서 멍하니 있다가 후다닥 달려왔다. 뒤를 흘끔흘끔 바라보며 해림의 눈치를 살피다가 무슨 방인지 알려 주고 사라졌다.

“후우.”

이제는 싫어도 인정해야 한다. 생존이 먼저였다. 탈출하기 전까지 어떻게든 매춘을 피하고 싶었건만, 주신도를 비롯한 다른 이들의 말을 들어 보건대 목숨이 바람 앞의 등불 상태였다. 최악의 일을 피하려면 적당히 적응하며 기회를 노리는 수밖에 없었다.

노크를 하자 들어오라고 굵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남자였다. 어제 최선을 다해 어떻게든 이 사태를 피했어야 하거늘. 일은 일어났고 벌어진 일을 되감기 할 수는 없으니, 즐기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피 보는 일은 없게끔 해야 했다. 해림이 속으로 생존, 생존 되뇌며 문을 열었다.

머리숱이 드문드문한 중년 남자가 소파 정중앙에 앉아 있었다. 양 옆구리에 기생오라비처럼 생긴 남자 둘을 끼고 황제라도 된 듯이 호강 중이었다. 술이 이미 거나하게 올랐는지 낯빛이 불콰해서는 양손으로 남자들의 엉덩이와 고간을 주무르기 바빴다. 보기 민망하기보다 더러웠다. 해림이 애써 표정을 숨겼다.

“고놈 참 예쁘게 생겼네. 이리 와. 술 한 잔 따라 봐.”

옆의 둘이 막고 있으니 잘하면 별 탈 없이 보낼 수도 있겠다. 해림이 손님 옆에 약간의 거리를 두고 앉았다. 손님이 해림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남자들의 옷 속에 넣은 손을 거푸 거칠게 움직였다. 해림이 못 본 척 양주병을 쥐고서 빈 술잔에 따랐다.

“주 사장은 어디서 이런 예쁜 걸 데려왔대? 역시, 사장이 보는 눈은 있어. 너, 저리 가고 너, 이리 와.”

하늘도 야속하시지, 옆에 있는 남자를 저쪽으로 보내고 손님이 빈자리를 툭툭 쳤다. 끔찍했던 지하의 묘사, 주신도가 했던 협박 등을 떠올리며 해림이 딱딱하게 입매를 굳히고 손님의 옆에 앉았다. 입술을 등신같이 벌리고 해림의 얼굴을 홀린 듯 쳐다보던 손님이 슬그머니 허벅지에 손을 올렸다. 퉁퉁한 손등을 후려치고 싶었다.

“이름이 뭐야?”

“정하입니다.”

“목소리도 야하네. 아저씨하고 놀까.”

허벅지를 위아래로 슬슬 쓰다듬던 손이 다리 사이로 들어왔다. 양주병을 쥔 해림의 손에 힘이 훅 들어갔다. 하마터면 양주병으로 대가리를 깰 뻔했다. 그랬다가는 사장실에 불려 갈 필요도 없이 당장 지하에 장기 긁어낼 거라며 보내겠지. 해림이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했다.

“이사님, 새로운 사람 들어왔다고 이렇게 소박 맞히시면 어떡해요. 서운합니다.”

옆에 있는 남자가 교태를 부렸다. 잘한다, 하고 해림이 속으로 응원했다. 더 열심히 아양을 떨어 저를 이 구렁텅이에서 구해 주길 바랐다.

“응? 아니, 당연히 정하가 더 예뻐서 그랬지. 요 얼굴을 봐.”

손님이 다리를 더듬던 손을 들어 정하의 턱을 쥐고 문질렀다. 허억, 허억 하고 흥분이 여실한 숨소리가 뺨에 닿았다. 솜털이 곤두서고 손가락 마디마디에 힘이 들어가 구부러졌다.

손님은 해림의 차가운 태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손으로 해림의 창백한 피부를 더듬었다. 셔츠 안으로 손을 넣어 없는 가슴살을 손아귀에 쥐고, 그 아래로 내려 배도 쓸어내리며 어린 소년을 희롱하듯이 조몰락거렸다. 치미는 구역질과 역겨움을 참아내느라 해림이 손등이 벌게지도록 손에 힘을 줬다.

생존. 생존이 우선이다.

“말을 안 해도 예쁘네. 사장이 예쁜 애 데려왔다고 그렇게 자랑을 해 대더니만, 주 사장이 성격은 더러워도 거짓말은 안 해.”

손님이 해림의 셔츠 단추를 풀다가 설핏 드러난 젖꼭지에 시선을 꽂았다. 눈에 번들번들하게 욕망이 들끓더니 아예 해림의 손을 잡아다가 제 고간에다 갖다 대었다. 다리 수십 달린 산 지네를 만진 것처럼 해림이 기겁했다. 그 반응은 차마 숨기지 못했다.

해림의 태도가 오히려 흥을 돋웠는지 손님의 숨결이 씨근덕거리며 달아올랐다. 해림의 오그라든 손가락을 제 다리 사이에 문지르며 몸을 바짝 붙였다. 해림이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옆에 앉은 남자에게 막혀 더는 물러날 곳이 없을 때까지.

“튕기는 것도 예뻐.”

해림이 도움을 청하듯이 남자를 쳐다봤다. 남자는 흥미로운 구경거리 본 듯이 과일을 주워 먹으며 방관했다. 해림이 얼른 고개를 돌려 손님 어깨 너머에 앉은 이를 쳐다봤다. 그도 어깨를 으쓱하며 아예 손님 쪽에서 조금 떨어져 앉았다. 아군이 아무도 없었다.

손님은 아예 해림의 손을 제 손처럼 가지고 비벼 대다가 그거로는 성에 안 차는지 바지춤을 훌렁 풀어 젖혔다. 속옷을 내리자 거무튀튀한 살덩이가 바짝 서서, 초가집 지붕에 매달린 박처럼 둥근 배 위로 툭 튀어나왔다. 저는 사장 앞에서 바지를 내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건만 손님이란 놈은 수치심이 존재하지 않는지 훌렁훌렁 잘도 벗어젖힌다.

보기도 싫어 해림이 고개를 돌리려 했다. 찰나에 뒷머리가 휘어 잡혔다. 억, 하는 사이에 허리가 앞으로 꺾이며 얼굴에 뱃살이 부딪쳤다. 출렁이는 뱃살 아래로 손님이 해림의 얼굴을 꾹꾹 눌렀다.

뻑뻑하고 수북한 털들이 해림의 뺨을 따끔하게 긁었다. 입술과 뺨에 옆으로 휜 자지가 부딪치며 흔들렸다. 손님이 해림의 머리를 내리눌러 한 바가지인 불알도 뺨을 쓸고 지나갔다.

“잘 빨아 봐. 그러면 정하 너, 아저씨가 오늘 밤에 예뻐해 줄게.”

지린내에 시큼한 땀내에, 오래 묵은 생선 비린내 같은 끔찍한 냄새는 죄다 풍겼다. 우욱, 하고 구역질이 절로 치미는 악취였다. 해림이 테이블을 잡고 입술을 꾹 다물자 손님이 아예 두 손으로 해림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허리를 흔들었다.

이대로 물어뜯고 도망칠까. 격렬한 충동이 일었다. 하나 충동은 뒤이어 일어날 일이 눈에 보여 금방 사그라졌다. 어떤 꼴이 될지, 지원의 다리에 길쭉하게 난 흉터가 말보다 강렬하게 알려 줬다.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생존. 지금부터 절대적으로 따라야 하는 개념을 세뇌하듯 되뇌고서 해림이 눈을 감았다. 입술을 뚫을 듯이 밀고 들어오는 살덩이에게 진 듯이 입을 열었다. 비린 액을 벌써 줄줄 흘리는 귀두가 치아 사이로 들어와 혓바닥에 닿았다.

허억, 하고 손님이 고개를 뒤로 젖혔다. 해림이 테이블을 더듬거리다가 모서리를 있는 힘껏 움켜쥐었다. 참아야 한다는 이성과 죽이고 싶다는 살심이 한 자리를 두고 치열하게 싸웠다. 항상 강물처럼 고요하던 내부에 흡사 풍랑이 몰아쳤다.

이성과 감성 둘 다 어느 자리도 차지하지 못했다. 성기가 막무가내로 들어왔다가 혓바닥 뒷부분을 아프게 눌렀다. 더는 참지 못하고 해림이 손님의 손모가지를 잡아다가 뻐걱 소리가 나게 비틀었다. 손님이 비명을 지르며 손가락을 폈다. 머리가 들리기 무섭게 해림이 테이블을 쥔 채 우웩, 하고 토사물을 주르륵 쏟아 냈다.

“아니, 이, 미친……!”

누런 토사물이 손님의 살덩이 위에 엉겨 붙었다. 바지춤과 뱃살 위에도, 바닥에도 후드득 떨어졌다. 옆에 앉은 접대부들이 놀라서 벌떡 일어나고, 손님만 소파 옆으로 엉금엉금 물러났다.

한 차례 더 쏟아 내고서 해림이 손등으로 토사물이 묻은 입술을 훔쳤다. 난 죽었다, 하는 깨달음은 뒤늦게 찾아왔다. 눈물이 고여 흐릿해진 시야에 야차같이 일그러진 손님의 얼굴이 들어왔다. 접대부들이 휴지를 뽑아서 손님의 헐벗은 하체를 부지런히 닦아 냈다.

“이 미친 새끼가!”

손님이 테이블에 차려진 안주며 술병 술잔 얼음들을 팔로 휩쓸어 해림의 허리 위로 쏟아 냈다. 그걸로 모자라 해림의 뒷머리를 잡고 들어 올려다가 뺨을 모질게 후려쳤다. 손뼉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터지며 해림이 휘청거렸으나 머리카락이 잡혀 쓰러지지는 않았다. 콧속이 후끈하게 달아오르더니 뜨거운 핏물이 인중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분이 안 풀린 손님이 해림을 바닥에 처박고 발로 걷어찼다. 깨진 유리조각과 날카로운 얼음이 해림의 뺨과 목덜미를 긁었다. 부딪히는 둔탁한 통증과 모서리가 피부 위를 긁고 벌겋게 일어나는 뜨끔한 고통이 신경을 직격했다. 일어나서 반격하고 싶지만 그럴 틈이 보이지 않았다. 해림이 몸을 둥그렇게 웅크리고 팔로 머리를 막았다. 그 위로 폭력과 욕설이 쏟아졌다.

손님의 기세가 거세서 그런지, 아니면 그럴 능력이 없는지 아무도 해림을 막아 주지 않았다. 구둣발이 팔뚝과 옆구리를 짓밟을 때마다 해림의 잇새로 거친 숨소리와 신음이 턱턱 흘러나왔다. 요령껏 살려 달라고 매달리면 그나마 덜 얻어맞을 것을, 채홍사에게도 허리 한 번 안 굽히는 고지식한 인사가 성희롱을 일삼는 인간 앞에서 사과나 애원이 쉬이 나오랴. 주신도의 협박과는 달리 이 정도 폭력으로는 목숨이 위험하지는 않으리라는 판단이 서서 일 수도 있다.

씩씩거리며 해림을 복날 북어 패듯이 패던 손님이 노크 소리를 듣고 잠시 멈칫했다. 뭐야, 하고 큰 소리로 대꾸해도 바깥의 인물은 방 안의 소리를 못 들은 듯 똑똑똑, 하고 다시 문을 두드렸다. 전보다 노크가 신경질적이었다. 손님이 짜증을 내며 가서 문이나 열라고 남자를 보냈다. 남자가 이상한 감을 느낀 듯 주춤거리다가 손님의 재촉을 못 이기고 이내 문을 열었다.

“아이고, 임 이사님.”

주신도였다. 손님을 껴안을 듯이 두 팔을 활짝 벌리며 방 안으로 성큼 들어왔다. 엉망이 된 내부는 보이지 않는 것처럼 입가며 눈가에 싱글벙글 웃음을 매달았다. 등 뒤로 문 전체를 가리고도 남을 덩치의 영수가 뒷짐을 서고 두 다리 간격을 벌린 채 바위처럼 섰다.

“오랜만에 가게에 찾아오셨는데 제가 공사가 다망하여 인사를 못 드려 가지고. 이렇게 부랴부랴 찾아왔습니다. 우리 임 이사님은 내가 직접 보러 와야지.”

해림이 소파를 손으로 짚고 비틀대며 무릎을 세웠다가 발밑에 깔린 토사물과 얼음을 밟고 도로 주르륵 미끄러졌다. 숙인 고개 아래로 붉은 핏물이 뚝뚝 떨어졌다. 주신도의 시선이 잠시 해림에게 꽂혔다가 떨어졌다.

흠흠, 헛기침을 하며 임 이사가 흐트러진 머리를 쓸어 올렸다. 해림에게 발길질을 할 때 보여 줬던 일그러진 표정을 가다듬더니 곧 듬성듬성한 눈썹을 위로 끌어 올리며 주신도를 향해 삿대질했다.

“아니 주 사장, 요새 애들 관리를 어떻게 하기에 저런 미친놈이 들어와? 감히 내 면전에 대고 토를 해? 저런 버릇없는 씨발놈은 혓바닥을 뽑아 버려야지. 너 이 새끼, 당장 이리 안 와?”

“신입이 감히 주제도 모르고 임 이사님께 실례를 저질렀네요. 이를 어쩌면 좋담.”

주신도가 맞장구를 치며 걸어왔다. 빙글빙글 웃는 낯짝이었다. 해림이 가쁜 숨을 정리하며 주신도를 올려다봤다. 눈썹 아래로 음영이 드리워져 부채꼴 호선처럼 휜 입매만 보였다. 주신도가 손을 뻗어 해림의 팔을 잡아다가 일으켰다.

해림이 비틀거리다가 순전히 주신도의 힘에 끌려 바닥에서 소파 위로 올라왔다. 주신도가 해림의 턱을 강하게 잡고는 이리저리 돌려 봤다. 잡힌 턱이 저릿하고 아파 해림의 눈가가 절로 구겨졌다. 왼쪽 눈은 이미 부었는지 시야가 좁고 흐릿했다.

“하…….”

주신도가 고개를 숙인 채 길게 한숨을 쉬고서 고개를 들었다. 시선이 임 이사 쪽으로 옮겨 갔다. 임 이사가 움찔했다가 해림을 노려봤다. 더 패고 싶다는 얼굴이었다.

“근데 임 이사님. 지하도 아니고, 여기 애들은 얼굴이 생명인데 아무리 화가 나도 그렇지 이렇게 패시면 어떡합니까. 우리 이사님이 자비롭고 친절하고 자상하신 분이라 제가 존경하는 마음에서 큰마음 먹고 회원권 드렸는데…… 이렇게 애들 패고 그러면 존경하는 마음이 사라지지 않겠습니까. 예?”

“아니, 주 사장. 지금 잘못한 게 누군데 나한테 협박인가. 저런 버릇없는 새끼를 단단히 교육시킬 생각은 안 하고!”

임 이사의 낯빛이 붉으락푸르락 난리가 났다. 주신도가 다가올수록 뒤로 물러나면서도 큰소리였다. 주신도가 임 이사와 한 걸음 남짓 거리를 두고 그 자리에 서서 하하, 웃었다.

“협박이라니요. 제가 당치도 않게 감히 임 이사님께 협박을 하겠습니까. 그저 알려드리는 거죠. 제집 물건 예뻐해 주시는 건 좋은데, 얼굴은 안 됩니다. 다음 손님이 보고 실망하면 어떡합니까. 임 이사님 작품이라고 밝힐 수도 없고. 안 그래도 김 사장님, 윤 회장님을 비롯해 다른 분들이 요새 회원권 남발하는 건 아니냐고 말들이 많으십니다. 격 떨어진다고.”

“이봐, 주 사장.”

임 이사가 주춤거렸다. 발끈했던 기세도 수그러들었다. 주신도가 만들어 낸 시커먼 그림자가 임 이사의 몸 위로 드리웠다.

“저도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에 대해 참으로 유감입니다, 임 이사님.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저희도 규칙이라는 게 있어서요. 임 이사님의 회원권을 거둬야 한다니. 사장으로서 가슴이 아프기 그지없습니다.”

주신도가 가슴에 손을 대고서 가증스레 눈썹을 구겼다. 방에 있는 그 누구도 찡그린 눈가가 가슴 아파서 발생한 표정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주 사장!”

임 이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주신도는 임 이사가 코앞으로 얼굴을 디밀어도 한 치도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의아한 듯이 고개를 갸웃하다가 천진난만하게 방긋 웃었다.

“영수야, 뭐 하니. 임 이사님 나가신단다. 가는 길 잘 모셔다드려라. 아, 이사님. 피해 보상액은 그쪽으로 청구하겠습니다. 그간의 신의를 봐서 오늘 술값은 할인해 드리고요.”

주신도가 가증스럽게 한쪽 눈을 찡긋해 보였다. 영수가 고개를 수그리며 방 안으로 들어왔다. 테이블 너머로 다가오려 하자 임 이사가 발악하듯 악을 썼다.

“주 사장 이 새끼야, 네가 이러고도 장사 계속할 수 있을 줄 알아? 내가 여기에 얼마를 퍼부었는데. 어디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건방져서는 이 근본 없는―!”

하, 하. 하고 주신도가 임 이사의 말을 끊으며 딱딱하게 웃었다. 입매며 눈가에 매우 웃긴 이야기를 들었다는 듯이 미소가 그려졌다. 주신도가 더 해 보라는 듯 고개를 삐딱하게 틀며 테이블에 남은 술병의 주둥이를 만지작거렸다.

주신도의 비웃음이 아니꼬웠는지 임 이사가 막 대거리를 할 찰나였다. 쿵, 하는 소리가 바로 이어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임 이사의 머리가 테이블에 처박혀 있었다.

뒷머리를 잡고 젖은 테이블 위로 임 이사의 대가리를 한 번, 두 번, 세 번 연이어 쾅 소리가 터지도록 박아 대고는, 주신도가 가벼운 손놀림으로 테이블 위에 술병을 내려쳤다. 묵직한 유리 조각이 사방으로 와장창 흩어지고 주신도의 손아귀엔 끝이 뾰족한 술병의 주둥이만 남았다.

빛이 번쩍이는 유리 조각이 임 이사의 목뒤에 닿았다. 임 이사가 비틀거리다가 주신도의 한 손에 뒷머리가 틀어 잡혀 목 따이기 직전인 닭처럼 테이블에 처박혔다. 몸집이 살이 피둥피둥 오른 돼지만큼이나 비대해 한 손에 가누기 힘든 무게임에도 주신도의 팔은 흔들림 없이 굳건했다.

“임 이사님. 들리십니까. 제가 고막은 아직 안 터트렸는데, 정신 잃지 마시고요.”

“주, 주 사장. 이거 놓고, 우리 대화로 합세.”

“영수야. 우리 임 이사님 상환일 언제냐. 내가 알기로는 나흘하고도 여섯 시간 남았는데.”

“정확합니다, 형님.”

“주 사장, 설마 지금 우리 사이에 돈 가지고…….”

“저희가 원래 근본 없이 돈 가지고 노는 놈들이라서요. 아, 저번에 보니 임 이사님 아드님이 피아노 잘 치대요. 손가락도 예쁘고. 근데 거 중지 하나만 부러져도 피아노는 영영 못 친다며? 부상 조심해야겠네. 혹시라도 집 가는 길에 교통사고가 나서 손가락 다 부러지면 참 절망스럽겠다, 그죠. 사모님도 느지막이 본 외동아들이 병신 된 거 알면 슬퍼할 거고. 참, 사모님 새로 낸 가게는 잘 된대요? 화분 하나 보냈는데 잘 받았다는 말이 영 없어서.”

주 사장, 하고 부르는 목소리가 애원조로 변했다. 주신도가 손을 풀자 임 이사의 몸이 미끄러지듯 스르륵 내려왔다. 졸지에 무릎을 꿇은 자세로 임 이사가 주신도를 올려다봤다. 부딪친 이마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 살집이 두둑한 턱 아래로 뚝뚝 흘러내렸다.

“내가, 돈은 바로 마련할 테니 우리 아들은 건드리지 말게. 아무것도 모르는 애야. 걔만은, 걔는.”

“에이, 임 이사님. 누가 들으면 제가 임 이사님 아들 열 손가락 다 뽑겠다고 협박이라도 한 줄 알겠습니다. 진정하시고요. 오늘은 오랜만에 일찍 귀가하셔서 가족들하고 오붓하게 행복한 시간 보내십쇼. 영수야, 뭐 하냐. 임 이사님 나가신다고.”

주 사장, 제발. 하며 임 이사가 바짓자락을 붙들었다. 주신도 심드렁하니 바지를 툭툭 털어 손을 떼어 내고 옆으로 비켜섰다. 어느새 다가온 영수가 임 이사의 멱살을 쥐고 억지로 일으켰다. 주 사장을 애타게 부르짖었지만 영수의 손에 잡혀 결국 질질 끌려 나갔다.

임 이사가 사라지고 나서야 해림이 나직하게 한숨을 쉬며 손등으로 입술을 훑었다. 토사물과 핏물이 뒤섞여 손등에 묻었다. 팔로 얼굴을 최대한 막았는데도 한 대 맞았는지 턱도 뻐근했다.

어쨌거나 상황의 빌미는 저가 제공했으니 싫어도 사과는 해야 했다. 더 따지고 들자면 애초에 빚 갚으라고 사람 억지로 잡아 와 감금하고 매춘을 강요한 주신도의 탓이나, 이 상황에서 시시비비를 가려 봤자 본전 찾기는 어렵다.

“죄…….”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해림이 일어난 순간 주신도의 손바닥이 날아와 철썩 매서운 소리를 내며 해림의 뺨을 갈겼다. 해림이 몸이 짚단처럼 옆으로 풀썩 쓰러졌다. 귀에서 삐― 하는 이명이 들리고 눈앞에 별똥이 튀었다.

“너희는 일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안 말리고 뭐 하고 자빠졌어! 저 새끼가 토하려고 하면 너희들이라도 대신 달려들었어야지. 그걸 멍청하게 지켜만 봐!”

주신도의 노성이 방에 쩌렁쩌렁했다. 앞에 선 둘이 바짝 겁에 질려 고개를 푹 숙이고서 사시나무 떨듯이 바들바들 떨었다. 막 임 이사 배웅을 마치고 돌아온 영수가 그 장면을 보고 가볍게 한숨을 쉬며 뒷짐을 졌다.

“이것들은 지하에서 이틀 돌려. 얼굴, 사지만 멀쩡하게.”

영수가 예, 하고 짧게 답했다. 앞에 선 둘의 낯빛이 순식간에 허옇게 물들었다. 남자는 더러운 바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예 무릎을 꿇고 주신도에게 살려 달라고 빌었다.

“저건 어떻게 할까요.”

영수가 턱 끝으로 해림을 가리켰다. 날카로운 시선이 해림의 얼룩덜룩한 얼굴에 꽂혔다. 주신도가 한 대 더 친 바람에 멎었던 코피가 다시 주르륵 흘러 입술과 턱에 범벅이었다. 뺨은 어떻고. 하루만 지나도 울긋불긋 꽃 피듯이 멍들고 퉁퉁 부을 터였다.

주신도가 가슴을 들썩이며 깊게 한숨을 쉬었다. 머리카락을 신경질적으로 헝클이고서 품에서 담배를 꺼내 들었다. 툭툭 쳐 한 개비를 꺼내 잇새로 물고 주신도가 눈동자만 돌려 해림과 시선을 마주했다. 해림은 잔뜩 긴장해서 소파 천 위로 손가락 끝을 세우면서도 주신도의 눈동자를 피하지는 않았다. 저도 모르게 혀로 찢어진 볼 안쪽을 훑으면서.

“저건 사장실에 갖다 놔.”

처분이 떨어졌다. 둘이 한 번만 재고해 달라며 주신도의 바짓자락을 붙들고 늘어졌다. 울며불며 매달리는데도 내려다보는 주신도의 눈동자에 귀찮음과 약간의 따분함이 역력히 드러났다. 먼지라도 털어 내듯이 주신도가 들러붙은 손들을 툭툭 쳐냈다.

주신도가 나가고 둘이 망연자실하게 바닥에 주저앉았다. 한 명은 넋 나간 듯 흐느꼈고 다른 한 명은 어깨를 부들부들 떨다가 홱 하고 고개를 돌리며 해림을 노려봤다. 이를 뿌득 소리 나게 갈며 남자가 해림에게 달려들었다. 해림의 멱살을 잡고 지푸라기 인형처럼 탈탈 흔들었다.

“너 이 새끼 때문에……! 이 개새끼가!”

들어온 두 장정이 영수의 지시에 따라 해림에게서 남자를 떼어 냈다. 남자가 발버둥 치며 한 대라도 치려고 팔을 휘둘렀다. 영수가 잡아채 해림에게 닿지는 않았다.

장정들이 난동 피우는 이와 체념한 이를 데리고 나가 방에는 해림과 영수 둘만 남았다. 영수가 무뚝뚝하게 해림을 돌아봤다.

“그쪽은 정말 운이 좋네.”

부친의 빚을 등에 지고 매음굴에 팔려 온 이 상황에, 손님과 사장한테 피 터지게 얻어터졌는데도 운이 좋단다. 웃을 일이 아니란 걸 알면서도 기가 차 해림이 피식 웃었다. 볼살이 밀려 올라가자 볼 안쪽이 따끔했다. 혀끝으로 쓸어보니 비릿한 쇠 맛이 났다. 손님이 팰 때는 용케도 피 안 나게 잘 막았건만, 주신도의 한 방에 여린 볼 안쪽이 터졌다.

“다리 안 부러졌으면 알아서 걷지?”

피멍 들게 얻어맞아도 부러진 곳은 없었다. 해림이 고개를 끄덕이고 절룩거리며 영수의 뒤를 따랐다. 어차피 한연동 내에서 해림이 도망치거나 숨을 곳은 없었다. 오로지 끌려다닐 곳만 존재할 뿐.

* * * @@냥냥웅@@공금 갠소 

해림을 사장실에 갖다 놓고도 주신도는 한참을 돌아오지 않았다. 해림은 가만히 서 있다가, 사장실을 구경하다가 그것도 지루해져 소파에 앉았다. 손님에게 짓밟힌 곳이 욱신욱신하고 머리에도 미열이 올랐다. 당장 방으로 돌아가 뜨끈한 물로 씻고 양치질을 하고 포근한 이불에 누워 잠을 청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건만, 주신도는 한 시간이 지나도 코빼기도 안 보였다.

기다리다 지쳐 꾸벅꾸벅 졸다가 옆으로 픽 쓰러질 뻔하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혹시 침을 흘리진 않았을까, 버릇처럼 손등으로 입술을 쓸었다가 따끔함을 느끼고는 손을 뗐다. 피딱지가 손등에 밀려 떨어졌다.

문득 시계를 보니 작은 바늘이 숫자 4를 약간 넘어섰다. 노비들의 퇴장 시간이었다. 주신도는 언제 오려나, 해림이 창문 밖을 바라봤다. 아직 해가 뜨려면 먼지라 바깥은 컴컴하니 땅거미의 배아래 깔려 있었다.

또 끔벅끔벅 졸다가 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에 해림이 상체를 바로 세웠다. 여기 끌려온 지 제법 오랜 시간이 지났건만 아직도 밤에 눈을 뜨고 있는 게 익숙하지 않았다. 해림이 소파에서 일어나 문 쪽을 돌아봤다.

“…….”

주신도가 해림을 흘긋 보고 긴 다리로 성큼성큼 다가와 맞은편 소파에 털썩 몸을 묻었다. 피곤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안 묻은 눈가를 꾹꾹 누르며, 세상 골머리는 저가 다 썩는다는 듯이 미간을 구겼다.

“내가, 도련님 때문에 미치고 팔짝 뛰겠어.”

해림은 주신도 때문에 미치고 팔짝 뛰겠다. 서로 미치게 만드는 악연 중의 악연이니 이쯤에서 곱게 안녕을 고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조언하고 싶으나, 씨알도 안 먹힐 이야기라 해림이 말을 삼켰다.

목울대를 꿀꺽 삼키자 입 속이 지끈거렸다. 살점이 너덜거리지는 않지만 당분간 밥 삼킬 때마다 고생깨나 하겠다.

“우리 예쁜 도련님 때문에 내가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야. 호구 방에 넣어 주면 얼씨구나 고맙다 인사는 못 할망정, 넣어 주는 족족 사고를 쳐? 아니 씨발, 그깟 자지 한 번 못 빨아서 거기다 대고 토를 해? 미쳤어?”

아무리 남자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보통 비위가 아니고서야 임 이사의 아랫도리를 좋아라 빨아 댈까. 이어지는 꾸지람에 해림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하지는 않았다. 손톱만큼도. 그래서 입에 발린 사과 한 마디 뱉지 않았다.

“원래대로라면 도련님도 지하에서 그 새끼들하고 같이 굴러야 하는 거 알아? 이걸 죽일 수도 없고, 살릴 수도 없고. 예뻐서 데려왔더니 껍질만 쓸 만하지 속은 왜 그 모양이야. 자지도 못 세우고 못 빨고. 정하야, 너 대체 어떡할래?”

“정상적인 방법으로 돈을 갚겠습니다. 차라리 취직을 해서 평생을 꾸준히 갚을 테니…….”

장례식장에서 같은 말을 했을 때는 시간을 벌고자 한 거짓말이었으나 지금은 진심이었다. 여기를 벗어날 수만 있다면 평생 월급과 연금의 반을 떼어 먹히더라도 환영이었다.

주신도가 푸핫, 하고 코웃음을 쳤다. 별 미친 소리 다 들어 본다고 얼굴로 말했다.

“지하 갈래?”

단숨에 정색하며 주신도가 해림을 협박했다. 해림 나름의 간절한 부탁이었으나 주신도는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개소리 취급했다.

해림이 얌전하게 입을 다물자 주신도가 무릎에 팔꿈치를 괴고서 허리를 숙였다. 주신도가 다가온 만큼 해림이 등받이에 바짝 등을 붙였다.

“도련님. 지하가 우리 예쁘고 순진한 도련님이 있기에는 좀 많이 무서운 곳이에요. 산전수전 다 겪은 놈들도 거기 가면 돌아서 나오더라고. 도련님이 돌아서 나오면, 그놈의 미친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갔다는 노래만 부를까 봐 내가 일부러 안 보내는 거야. 엄청, 매우, 무척이나 봐주고 있는 거라고.”

“…….”

지하에서 굴리라는 명령에 사색이 된 이들이 떠올랐다. 너 때문이라며 주먹질을 하던 남자도. 저가 임 이사에게 성희롱을 당하건, 폭행을 당하건 옆에서 지켜만 보던 이라 어떻게 되든 제 알 바 아니라고 여기고 싶으나, 막상 주신도의 입에서 지하의 정체를 일부나마 들으니 가슴에 일말의 죄책감이 일었다.

대체 얼마나 끔찍하고 무서운 곳이기에. 만약 순종했으면, 구역질을 참았으면 그나마 사태가 나아졌을까. 원망이 들끓던 남자의 눈빛이 뇌리에 유리 조각처럼 박혔다.

“……그 사람들은 그럼 어떻게 됩니까.”

“누구. 너 처맞는 거 보고 있던 애들?”

“예.”

주신도가 담배를 입에 물었다. 지포 라이터로 불을 붙이려다가 멈칫하고서 해림을 본다. 라이터를 테이블 위에 놓고 해림의 앞으로 쓱 밀었다.

“손님이 담배 물면 어떻게 해야 해.”

회장님이라 불렸던 여자 손님을 만났을 때 배웠다. 해림이 은색으로 빛나는 라이터를 내려다봤다.

“사장님은 손님이 아니라.”

주신도가 씁, 하고 고양이를 혼내듯 숨을 들이마셨다. 해림이 짧게 한숨짓고 라이터를 쥐었다. 불을 켜고 두 손으로 갖다 대자 주신도가 고개를 비틀었다. 어른거리는 불꽃이 담배 끝을 벌겋게 지지고 주신도의 얼굴 굴곡에 계곡 같은 음영을 드리웠다. 담배 연기를 깊게 빨아들이며 올려다보는 눈동자가 일렁이는 불꽃을 먹어 평소보다 짙은 적색이었다.

이대로 주신도의 잘생긴 저 얼굴도 담배 끝처럼 확 불살라 버렸으면 좋겠건만. 그대로 내장 팔리는 지름길이라 상상에서 그쳤다. 해림이 라이터의 뚜껑을 닫고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저도 니코틴을 강렬하게 원했으나 주신도와 맞담배는 사절이었다.

“사지 멀쩡하게 갖고 놀라고 했으니 살아는 오겠지. 왜.”

“……지하에 안 보내면 안 됩니까.”

“왜.”

‘한연동’의 논리에 따르면, 사실상 잘못은 저가 저질렀다. 어차피 여기는 몸 파는 곳이었고 손님이 원하면 그게 뭐든 들어줘야 맞는 일이었다. 제 탓으로 그들이 끔찍한 장소에 끌려가는 걸 원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인간적인 도리였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인정하기 싫어도 인정해야 할 때가 있다. 지금이 그때였다. 원흉을 따지고 들기보다는 저가 책임을 지고 머리를 조아려야 할 때가. 고개를 숙여 주신도가 마음을 바꾸고 그들을 지하로 보내지 않는다면 잘 때도 두 다리 뻗고 잘 일 아니겠는가.

“도련님은 착하네. 처맞을 때 가만히 보고만 있던 놈들도 감싸고. 왜. 아예 지하도 대신 가겠다고 하지.”

주신도가 빈정거리며 일어났다. 이대로 저를 지하로 끌고 가 던지면 어떡하나 더럭 겁이 났다. 괜히 오지랖 피운 건 아닌가 후회하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피가 말라붙은 곳이 다시 투두둑 찢어졌다.

주신도가 일어나 해림의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허벅지 옆면이 닿을 만큼 사이가 좁아져 해림이 얼른 엉덩이를 꼼질꼼질 움직였다. 멀리 떨어지기 전에 주신도가 해림의 턱을 잡고 억지로 돌렸다.

“아, 해 봐.”

주신도가 다른 손으로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거둬 재떨이에 비벼 껐다. 해림이 멈칫하자 사납게 인상을 찌푸리며 어서 하라고 닦달한다. 해림이 아래턱을 부서트릴 듯이 쥐는 주신도의 악력에 져 작게나마 입을 벌렸다.

“더 크게.”

치과 의사 앞이다 생각하고 해림이 입을 크게 벌렸다. 찢긴 아랫입술이 따끔하더니 기어이 핏물이 둥그렇게 올라왔다. 주신도가 까칠한 엄지로 핏방울을 닦고서 안쪽을 살폈다. 날카로운 이빨 사이를 누비는 악어새처럼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서는.

“이 정도면 문제없겠네.”

계속 벌리고 있느라 턱도 얼얼하고 침도 턱 아래로 흐를 성싶다. 해림이 얼굴을 뒤로 물리며 주신도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주신도가 해림의 뒤통수를 턱하고 움켜쥐더니, 불시에 검지와 중지를 해림의 입 속으로 밀어 넣었다.

“자지 빤다고 생각하고 빨아 봐.”

안 그래도 남들보다 길고 굵은 손가락이었다. 해림이 재빨리 주신도의 손목을 잡고 입에서 손가락을 빼냈다. 입술 밖으로 빠져나온 손가락에 침이 흥건했다. 주신도가 눈썹을 불만스레 일그러트리며 고개를 비틀었다.

“내가 진짜 자지 빨라는 것도 아니고 손가락 빨아 보라는데 그것도 싫어? 도련님이 이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나도 더는 도리가 없어. 도련님 얼굴 예쁜 것도 고분고분해야 써먹지, 아니면 그냥 쓰레기야. 지하에서 굴렸다가 장기나 뽑아 먹어야지.”

또 비열한 협박이었다. 해림이 번들거리는 주신도의 손가락을 내려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어차피 할 수밖에 없다면, 하나라도 저에게 이득이 되는 걸 얻어 내야 했다.

“할게요.”

“뭐를. 지하 가는 걸?”

“아뇨. 손가락……. 잘 핥을게요. 대신 오늘 같은 방에 들어간 두 사람, 지하로 보내는 거 취소해 주십쇼.”

주신도의 입가가 오묘하게 일그러졌다. 웃음과 비웃음의 경계선이었다. 적인지 먹이인지 살피는 뱀처럼 혀를 길게 빼 아랫입술을 핥고는 주신도가 젖은 손가락으로 해림의 입술을 두드렸다.

“도련님이 나한테 제안을 할 위치가 아닌데. 건방지기 짝이 없어. 그래도 잘해 봐. 도련님 하는 거에 따라서 생각해 보지.”

주신도가 바지춤 내리고 달려든 것도 아니고, 겨우 손가락이다. 고작 손가락 잘 빨아서 죄책감을 덜 수 있다면 수지 남는 장사였다.

―라고 애써 정당함을 부여하려고 노력했으나 자꾸만 폐포를 다 훑는 묵직한 한숨이 터져 나오려 했다. 어쩌다가 남의 손가락을 빠네 마네 하며 구걸하는 입장이 되었는지. 그것도 돈 못 갚을 거면 내장을 내놓으라고 협박을 일삼는 포주의 손가락을.

평범한 삶, 순탄한 삶이 강 건너에서 해림에게 손을 흔드는 환영이 얼핏 보였다가 흐려졌다. 자꾸만 멀어지는 환영에게 가지 말라고 백날 외쳐도 어쩌랴, 주사위는 이미 굴러간 것을.

해림이 거부감을 다잡고 두 손으로 주신도의 손을 잡았다. 저도 손이 작은 편이 아닌데 주신도의 손은 보통 남자의 배는 될 듯이 컸다.

손바닥 밑동을 양손으로 잡고 검지와 중지를 입가에 가까이 댔다. 안 보면 차라리 나을까, 해림이 눈을 질끈 감고 손가락을 입에 넣었다. 굳은살 박인 딱딱한 첫마디가 혀에 스쳤다.

예전에 어땠더라. 하도 오래전이라 어떤 방식으로 애무를 받았는지조차 희미했다. 해림이 기억을 더듬으며 혀끝으로 검지와 중지 사이를 문질렀다. 짭조름한 살맛에 담배 향이 옅게 풍겼다. 저가 마시는 담배 연기는 달콤해도 남이 내뿜는 연기나 남의 몸에서 나는 담배 냄새는 역하기 마련이지 않은가. 주신도의 손가락도 그럴 거라 예상했는데, 이상하게도 흡연 욕구만 강렬해질 뿐 역겨운 감은 없었다.

주신도의 손가락에 묻은 담배의 흔적이라도 핥을 듯이 해림이 볼우물을 쏙 패며 흡입했다. 상처 난 여린 볼 안쪽이 지끈거렸으나 눈살을 찌푸리면서 통증을 참았다.

두 번째 마디가 입술을 헤집고 부드럽게 미끄러져 들어왔다. 쪽쪽거리며 빨다가 혀끝으로 손톱 아래를 누르기도 하고, 마디 사이를 축축하게 적셨다가 이를 세워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윗니는 얄팍한 손톱을, 아랫니는 말랑말랑 손가락 살을 긁었다.

제 입에 들어온 게 누구 손가락인지도 잊은 것처럼 해림이 뾰족한 혀끝으로 손가락을 더듬었다. 그때까지 가만히 있던 손가락이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혓바닥 위를 느리게 문질렀다. 매끈한 혓바닥을 가지고 놀듯이 휘젓다가 예민한 입천장을 부드럽게 긁어내렸다. 읏, 하고 목 막힌 신음이 해림의 입에서 가느다랗게 새어 나왔다.

해림이 속눈썹을 파르르 떨며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마지막에 손가락이 혀뿌리 쪽을 문질러서 눈가에 눈물이 글썽글썽 매달렸다. 그런 눈으로는 차마 주신도를 마주 볼 수가 없어 해림이 눈을 내리깔고 손가락을 뱉었다. 검지와 중지 사이에 혓바닥이 잡혀 같이 딸려 나갔다. 축축하게 젖은 손가락과 혀끝 사이에 얇은 실이 이어졌다가 툭 끊어졌다.

같이 있던 이들을 지하에서 구해 내기 위한 몸부림이었건만, 끝내고 나니 괜한 오기를 부린 듯 부끄럽기 짝이 없다. 얻어맞아 불긋하게 피어오른 뺨 외에 해림의 목덜미와 귀 끝도 진달래 꽃물 든 듯이 벌그레 달아올랐다.

“…….”

잠깐 침묵이 가라앉았다. 주신도가 긴 다리를 꼬고 앉아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손가락을 닦아 내는 행동이 손을 씻고 물기 묻은 손을 닦듯 평범했다.

“어설퍼.”

남의 손가락을 입에 넣고 빨아 본 적이 있어야지. 나름 열심히 한다고 혓바닥에 쥐 나도록 굴렸는데도 돌아온 평가가 야박했다. 해림이 젖은 아랫입술을 손등으로 닦고서 주신도를 쳐다봤다. 주신도의 시선이 먼 곳에 꽂혀 있다가 해림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 사람들은 어떻게 됩니까.”

“도련님. 지금 겨우 손가락 좀 빤 걸로 걔네를 풀어 달라는 건 설마 아니지? 무슨 베갯머리 송사를 한 것도 아니고.”

“하지만 잘하면 사장님께서……!”

“잘하면, 이랬잖아. 잘하면이라고. 도련님이 양심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봐. 이게 과연 잘한 걸까? 도련님 자지를 이런 식으로 빨면 바로 싸겠어? 지루해서 자겠지. 불면증 있는 손님들한테는 좋겠네.”

어이가 없었다. 해림의 입이 헤벌어졌다가 단단히 다물어졌다. 제대로 농락당했다. 입 속의 얼얼한 통증도 참고 손가락 빨아 줬더니만 평가는 혹독하고 바보짓만 한 셈이 됐다. 울컥하고 분노가 치밀었다. 예전엔 무슨 일이 터져도 이런 식으로 감정이 요동친 적이 평생에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적었건만, 주신도를 만나고는 빈도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하기야, 세상의 어떤 성인(聖人)을 데려온대도 주신도의 빈정거림을 웃어넘기랴. 이성을 잃고 쌍욕을 뱉지 않으면 모를까. 제 마음이 울렁이는 이유도 저가 이상한 탓이 아니라 주신도의 말본새가 지나치게 사람을 긁는 까닭이라.

“도련님, 이런 실력으로는 손님을 받아 봤자 오늘처럼 처맞기만 할 거야. 토하는 건 둘째치고 도련님 때문에 우리 가게 평판 나빠지면 난 어떡해?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불쌍한 나를 위해서라도 도련님, 특별 교육 좀 받자.”

지랄이라는 욕이 목울대까지 올라왔다. 해림이 가까스로 이성을 붙들었다. 사장, 빚, 지하 등의 현실적인 용어들을 다시금 정의하며 해림이 눈을 꾹 감았다가 떴다. 파도처럼 울렁이는 분노가 잔잔하게 가라앉기를 바라며.

“무슨 특별 교육이요.”

목소리가 가느다랗게 떨렸다. 주신도가 의뭉스레 씩 웃었다.

“교육 과정을 말하면 그게 무슨 재미야. 이제부터 도련님은 일하러 가지 말고 사장실로 출근해.”

노덕구의 못마땅한 눈초리와 몸을 팔아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해방되었으니 좋아해야 하는가. 그러기엔 눈앞의 주신도가 또 다른 복병이었다. 어쩌면 미래에 있을 손님보다 더욱 사악하고 무서운. 목 언저리에 차라리 손님을 받겠다는 말이 맴돌았다. 뱉지는 않았다.

“그래도 오늘 도련님 말 잘 듣고 예쁘게 굴었으니 그 정성 봐서 걔네들은 하루로 줄여 줄게. 앞으로도 오늘처럼 말 잘 들어. 빨라면 빨고, 누우라면 눕고, 벌리라면 벌리고.”

주신도가 개를 칭찬하듯 해림의 정수리를 쓱쓱 문질렀다. 해림은 개가 아니기에 꼬리를 흔들거나 헥헥거리지 않고 물끄러미 주신도를 쳐다봤다. 할 말 다 끝났냐는 눈빛에 주신도가 피식 웃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해림도 따라 일어나 고개를 꾸벅 숙였다. 얻어맞은 몸도 피곤하고 주신도를 상대하느라 정신도 너덜거렸다. 휴식이 절실했다.

“어딜 가? 다시 앉아.”

무슨 할 말이 남았다고. 해림이 못 들은 척 가려다가 어차피 문도 벗어나지 못하고 잡힐 거, 체념하고 자리에 앉았다. 주신도가 책상 서랍을 뒤적이더니 하얀 구급상자를 가져왔다.

그래도 마지막 양심은 남아 약은 주는구나. 해림이 상자를 봐도 주신도는 줄 생각 아니하고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아까처럼 해림의 옆에 앉아 상자를 열고 연고며 반창고 같은 잡다한 것들을 꺼냈다.

“제가 하겠습니다.”

그제야 주신도의 의도를 눈치채고 해림이 재빨리 상자로 손을 뻗었다. 어차피 씻을 거라 지금 연고를 발라 봤자 의미도 없었다. 무엇보다 주신도가 그 손가락으로 저에게 연고를 발라 주는 장면은 떠올리기조차 싫었다.

“씻으려면 30분 후에 씻어.”

해림의 속내를 읽은 것처럼 주신도가 대답했다. 연고를 손가락 끝에 바르고 점점 뒤로 물러나는 해림의 팔을 잡아채서 끌어당겼다. 벌겋게 부푼 뺨에 무른 연고가 닿았다. 해림이 어깨를 움찔 떨었다. 뺨에 닿은 주신도의 손가락이 불꽃처럼 뜨거웠다.

“화려하다, 화려해. 아주 골고루 잘 얻어터졌네. 예쁜 얼굴이 이게 뭐야, 속상하게. 흉 지면 어쩌려고.”

“사장님도 뺨 때리셨잖아요.”

주신도 덕에 볼 안쪽에서 피가 터졌다. 병 주고 약 주지 말라며 해림이 사실을 지적하자 주신도가 방긋 웃었다.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는 격언은 옛말이었다. 해림은 주신도의 웃는 얼굴 위에 침을 뱉어 줄 용의가 충분했다.

“난 돼. 내 물건 내가 던진다는데 무슨 상관이야. 하지만 다른 것들은 안 돼. 빌려 갔으면 곱게 쓰고 돌려줘야지 어디서 감히 손을 대. 잘 들어 도련님.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항상 머릿속에 새겨 둬. 도련님은 내 거야. 내 물건이고 내 소유야. 다른 새끼들한테는 어디까지나 빌려주는 거야.”

해림으로선 납득할 수 없는 논리였다. 사람을 물건 취급한다던 실장의 넋두리가 얼핏 머리를 스쳐 갔다.

“마음대로 다치지 마. 내가 허락하기 전까진.”

비싼 돈 주고 사 온 물건이 불량이면, 흠집이 나면, 남들이 함부로 다루면 화가 날 만도 하지. 지금껏 주신도가 보여 준 태도가 살짝이나마 이해가 갔다. 동시에 이해가 가려는 자신이 싫었다. 스스로 물건이라 인정해야 하는 순간이 기어코 찾아온 성싶어서.

입 벌리라는 요구에 해림이 얌전히 입을 벌렸다. 저가 하겠다며 거절해 봤자 결과는 같을 걸 알았다. 빤한 결말에 힘을 낭비할 만큼 체력이 남아 있지도 않았다.

연고를 잔뜩 바른 면봉이 상처에 닿았다. 상처를 새로 찢는 성싶은 뜨끔함에 해림이 눈살을 구기자, 주신도가 엄살이 심하다며 면봉을 거뒀다.

“이제 이거 들고 들어가. 내일 여기로 출근하는 거 잊지 말고.”

뺨 쳐 놓고 빨간 약 발라 준 사람한테 고맙다고 인사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도 최소한도 사람 된 도리로 잘 있으란 인사는 하려고 해림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저 버르장머리 하고는, 주신도가 혀를 쯧쯧 차며 한 혼잣말은 못 들은 척 사장실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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