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아이돌-125화 (완결) (125/125)

125화(完)

비나인 데뷔 1주년 기념 팬 사인회가 열렸다. 오디션 프로그램 ‘CHOOSE NINE’을 통해 뽑힌 아홉 명의 연습생, 그들이 모여 B-NINE이라는 그룹으로 데뷔했다.

1차 경연부터 쌓아 올린 노래들을 정규 앨범에 두둑하게 채워 들고 온 그들은 활동 시작과 동시에 미리 찍어 둔 리얼리티 방송으로 실력파 보이그룹이라는 이미지와 친숙함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그중 오디션에서 1등한 재경은 대한민국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큰 유명세와 사랑을 받았다. 이제 길을 걸어만 다녀도 재경을 알아보는 이로부터 둘러싸이기 일쑤였고 그가 연습생일 때 찍은 과거 사진이나 알바했던 사진들이 인터넷에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게다가 오디션에서부터 검증된 실력 덕에 방송가에서도 그를 무시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렇게 이미 재경은 모두가 관심을 기울이는 스타 중의 스타가 되어 있었다.

“재경이 너, 이번에 또 CF 들어왔다며?”

막 사인회를 준비하면서 나란히 앉은 비나인은 저마다 옆에 앉은 멤버와 떠들었다. 그중 하준은 중앙에 앉은 재경의 어깨를 툭 치며 매니저에게 들은 소문을 가져왔다. 재경은 하준의 물음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엔 뭔데?”

“D 의류.”

“와, 그런데 너 지금 H 의류 찍고 있지 않아?”

하준이 부럽다는 듯 굴다가 이내 의아한 듯 물어왔다. 그래서 이번에도 재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종류는 하나씩 하는 게 좋잖아.”

“겹치지 않게 조율해 준대요.”

“그런 것도 알아서 해 주는구나. 그래서 하겠다고 했어?”

“음…….”

이번엔 재경도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하준의 말대로 제안을 받은 것도 맞고 그 기간도 알아서 조율해 준다고 한 것도 맞았지만 그렇다고 선뜻 한다고 한 건 아니었다.

“왜?”

“…같이.”

재경의 목소리가 작아서 제대로 못 들은 하준이 그에게 상체를 기울였다. 그리고 재경의 왼쪽에 앉은 건후마저도 호기심이 일어 귀를 쫑긋 세웠다.

“같이 하고 싶다고 했어요.”

“아, 서재경. 너 진짜…….”

하준이 감격스러운 듯 재경을 바라보다 이내 그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재경의 이런 조건이 처음이 아니었다. 가장 유명해진 게 재경이다 보니 개인적으로 들어오는 CF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재경은 항상 그룹으로 찍었으면 좋겠다는 답을 보냈다. 그러면 알겠다면서 그룹으로 바꿔주기도 하고 자금적인 부담이 있는 곳은 재경이 기꺼이 제 몫을 줄여서 조건을 맞춰주었다.

재경 혼자서 찍는 CF도 있지만 그룹으로 하는 게 많다 보니 고스란히 비나인에게 영향을 끼쳐왔다. 재경이 아닌 다른 멤버들의 매력을 알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고 정우 같은 경우는 벌써 드라마와 영화 쪽으로 찍어둔 감독도 있었다.

하준과 태연의 경우엔 일찌감치 예능 쪽에서 러브콜이 들어오고 있으니 모두 재경의 영향이 컸다. 덕분에 재경은 그룹에서도 예쁨 받는 메인보컬로 자리 잡았다.

“이러니 널 안 예뻐할 수가 없어.”

“형, 재경이 이리 줘봐. 나도 안아 줄래.”

재경은 하준의 품에서 숨이 막혀오는데도 쑥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얌전히 있었다. 예전에 활동하던 때와 다르게 요즘은 하루하루가 너무도 행복하고 즐거웠다.

같이 연습할 때는 서로 다독여 주며 손발을 맞췄고, 누군가 실수할 때는 모두가 달래 주며 다음에 잘하자고 응원해 주었다. 그런 그룹에 몸담고 있다 보니 재경은 활동이 너무 재밌고 좋았다.

혼자였을 때의 외로움도 비밀 연애 중인 정우가 달래 주고 악플로 상처받았던 마음은 선플과 팬들의 응원에 싹 나았다. 이제 예전의 어두웠던 재경은 사라지고 밝고 환한 웃음으로 사람을 대하는 재경만 남았다.

“무슨 일인데 그래?”

“설마… 또 CF 들어온 거야?”

하준과 건후의 호들갑에 하나둘 시선이 모인다 싶더니 사이에 낀 재경을 본 멤버들이 알아서 눈치채왔다. 하준이 고개를 끄덕여주니 그들이 재경의 주변으로 모여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듯 한참을 귀여워해 주었다.

여기서 재경이 막내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중엔 정우까지 와서 재경에게 잘했다는 듯 머리를 톡톡 짚어주었는데 재경이 그것을 느끼며 시선을 들었다. 아직까지도 서로 얼굴만 보면 좋은 정우와 은근한 시선을 주고받은 재경이 헤실거리며 웃었다.

“연습생일 땐 그렇게 까칠하던 형이 왜 이렇게 말랑말랑해졌지?”

태연이 재경의 눈웃음을 보며 신기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사랑을 많이 받아서 그런가 보지.”

“하도 예쁘다 예쁘다 해서 그런 거 아니야? 식물도 예쁘다고 해주면서 물주면 더 잘 자라는 법이잖아.”

“그럼 재경이 형이 식물인가?”

엉뚱하게 흘러가는 대화 속에서도 재경은 금방 익숙한 듯 이리저리 만지는 대로 휩쓸렸다. 소운이 제 손을 만져올 땐 재경도 같이 만져주고 헤이스가 어깨를 툭툭 두드려줄 땐 아프다고 엄살도 부렸다.

“그건 좀 그렇고… 잔디 인형 정도로 하자.”

“잔디 인형 뭐야. 그게 뭔데.”

“누구야, 여기 옛날 사람 누가 숨어 있는 거야.”

한마디씩만 붙여도 워낙 멤버가 많아 금방 왁자지껄하게 시끄러워졌다. 덕분에 아직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이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멤버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린 모양이었다.

“이제 곧 시작합니다.”

한참을 멤버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재경이 자리를 벗어날 수 있었던 건 사인회의 시작 신호 덕분이었다. 문이 열리고 들어오는 팬들과 눈을 마주치며 재경은 환하게 웃었다.

*  *  *

팬사인회가 끝나고 멤버들이 저마다 찌뿌둥한 몸을 풀고 있을 때였다. 재경 역시 오래 펜을 쥔 덕분에 저릿한 손을 주무르며 무의식적으로 누군가를 찾아 댔다.

‘정우가 어디갔지?’

가장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막 어딘가로 들어가는 정우의 뒷모습을 확인한 재경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게?”

하준의 물음에 재경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다녀오겠다는 듯 손을 흔들었다.

정우가 얼마나 갔을지 몰라 걸음을 서둘렀다. 혹시나 길이 엇갈리기라도 하면 허탕치고 돌아가는 거였다. 오늘 사인회가 끝나고 숙소로 들어가면 다 같이 있을 테니 정우와 단둘이 있을 기회가 없었다.

“이길로 간 거 같은데.”

재경이 어두운 주변을 둘러보며 정우의 흔적을 찾아보려 했다. 그러나 불이 꺼진 곳이 많아 안 보이는 곳이 많았다. 어쩔 수 없이 돌아가야 싶을 때 어둠 속에서 팔이 나오더니 재경의 허리를 감싸 잡아당겼다.

“읏.”

놀란 재경이 비명을 지르지도 전에 등에 단단하고도 따뜻한 온기가 닿았다. 동시에 귓가에 들려오는 웃음소리가 돌아보지 않아도 누군지 알 만했다.

“내가 소리라도 지르면 어쩌려고.”

“나 따라온 거잖아.”

정우는 재경이 소리 지르지 않을 거란 걸 안다는 듯 태연히 중얼거렸다. 맞는 말이긴 한데 당연하게 대답해오는 정우가 얄미워 재경이 뒤통수로 그의 쇄골 부분을 꾹꾹 눌러댔다.

“이렇게 안고 싶었어.”

아까 멤버들 사이에서 재경의 머리를 가볍게 건든 것만으로는 부족했나 보다. 정우는 재경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은 채 깊은숨을 내쉬었다.

“나도 그래.”

재경은 수줍으면서도 용기를 내어 제 마음을 고백했다. 실은 정우와 같이 살면서도 이렇게 둘만 있을 때가 적으니 더욱 그에게 제 마음을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언제쯤 따로 살 수 있을까?”

“글쎄, 지금이야 1년밖에 안 됐으니 못 나가고… 나중에 소속사에서 그룹으로 나올 때?”

재경은 비나인이 끝나면 곧바로 JT엔터로 들어가 정우와 계속 그룹을 이어가기로 계약했다. 그래서 그게 언제쯤이 될까 손을 꼽아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에 한 번 연장될 거 같으니까 아무래도 우리 둘만 살 날은 먼 거 같아.”

내는 앨범마다 성공하고 그룹의 이미지는 나날이 좋아지고. 덕분에 처음 2년이라는 기존의 계약에서 한 번 연장하자는 제의가 들어왔다. 당연히 연습생들이 있던 엔터에서 관계자를 뽑아와서 기획사를 만들었기에 큰 반감도 없었다.

재경도 정우와 둘이 있지 못한다는 아쉬움만 빼면 지금 그룹도 마음에 들었다.

그게 얼마나 아쉬운지 정우가 재경을 끌어안은 팔에 더욱 힘을 주었다.

“잘되도 문제네. 서재경 하나를 독차지하기가 이렇게 힘들어서야.”

“잘되면 좋은 거지.”

재경은 툴툴대면서도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재경도 정우와 있는 이 시간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지 잘 알았다. 재경은 몸에 힘을 뺀 체 정우의 가슴에 기대며 눈을 감았다. 그의 심장이 뛰는 규칙적인 진동에 안정감이 느껴졌다.

이제 막 1년이 넘은 비밀 연애, 적당한 거리를 두고 활동하다가도 이렇게 둘만 있을 땐 서로에게 집중하는 그 모든 게 좋았다.

한참을 안겨있던 둘은 동시에 주머니에서 느껴지는 진동에 한숨과 웃음을 동시에 터트렸다. 멤버들과 매니저가 자신들을 찾는 연락이었다.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이번에 얻은 휴가 때 말이야.”

재경은 아직도 미련에 떨어질 줄 모르는 팔을 떼며 몸을 돌렸다. 아까처럼 정우의 심장을 느낄 수는 없지만 그의 얼굴을 바로 볼 수 있어 좋았다. 재경이 그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며 말했다.

“어디 가지 말고 둘이서만 있자.”

1주년 기념으로 얻은 휴가. 재경은 그때를 들먹이며 정우의 입술에 가벼운 입맞춤을 남겼다.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제 운명이 오디션을 만나고 이정우를 재회하면서 완전히 뒤집혔다. 빚을 지우기 위해 오디션을 들어온 게 재경에게는 새로운 삶의 시작이었다.

다시, 아이돌을 하게 되면서 재경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매일이 행복한 나날이었다.

<다시, 아이돌 完>

[Hi]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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