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CHOOSE NINE 공식 홈페이지]
TALK
스크류 [재경이 진짜 잘했어ㅜㅜㅜㅜㅜ]
오늘로난 [예상한 일이야]
gmgmgm [정우 픽이 많아서 걱정된다]
ㄷㄷ [처음부터 실력적으로 재경이 1등이엇어 이건당연한거야]
몰랑몰랑 [우리 맬렁콩떡아기백설기고양이깜찍이 데뷔해]
asdf [재경아 1위해!]
aaa [지금껏 보기만 하다가 응원해주려고 하는데 투표는 어디서함??]
TI키타카 [누가 스포좀 해줘]
답정 [응 재경이가 최종 1등이래]
소소하다 [결과 아직 안 나왔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익게] 재경이 응원하는 사람?
나는 재경이 픽인데 그동안 아슬아슬하게 올라가서 속상했어ㅠ 오늘은 가족 폰까지 다 끌어와서 눌렀는데 혹시 나와 같은 사람 없나?
└나
└실력으로 뽑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1인
└└그래서 재경이
└└ㅇㅈ
└내주변에 재경이 팬들 이갈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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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재경은 두 눈을 꾹 감았다. 그럴수록 더욱 소리에 민감해지고 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무서워서 눈을 뜨고 있을 수가 없었다. 아까 눈물을 흘리느라 힘이 빠진 몸은 살짝만 힘을 줘도 무너질 것만 같았다.
“축하합니다.”
MC의 목소리가 천둥처럼 다가왔다. 제발, 정우의 이름이 불리길…….
“1위의 자리를 지켰네요. 서재경 연습생입니다.”
제 이름이 들린 순간 재경의 몸이 휘청거렸다. 모두가 재경을 향해 뭐라고 하는데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백색소음처럼 전부 멀게만 다가왔다.
재경은 혼미한 정신에 결국 몸에 힘이 빠져버렸다. 그대로 주저앉으려고 하는 순간 누군가에게 기대어지면서 불상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재경은 누가 자신을 잡아준건지 보지 않아도 알았다. 그의 넓은 가슴에 기대 잠시 숨을 쉬던 재경이 중얼거렸다.
“이상해.”
재경은 자신을 부축해준 정우를 올려다보았다.
“분명 네가 1등이었잖아. 그런데 왜 갑자기 내가…….”
“그건 중간 평가였잖아.”
“아니야. 그게 아니라…….”
정우는 지금껏 자신이 1위를 했던 건 다 탈락자가 있었던 중간중간의 발표식을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재경은 그게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는 이 오디션의 진짜 1등이 정우라는 걸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재경은 몇 번 입술만 달싹일 뿐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어떻게 말해. 내가 미래에서 봤다고… 네가 1등인 걸 알고 있다고 어떻게 말하냐고.’
그때처럼 당연히 정우가 1등이라 생각하고 오디션에 임했는데…….
재경의 머뭇거림이 길어지며 정우가 의아해하는 찰나 MC의 말이 잇따랐다.
“참고로 집계 과정은 그 어느 때보다 철저하게 절차를 지켜 공정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오늘 현장에서 진행된 투표와 단 하루 진행한 2차 투표까지 전부 한 치의 거짓 없이 반영되었으며 이에 따른 그 어떤 부정도 저지르지 않았음을 말씀드립니다. 저희 제작진이 투명성을 위해 전부 공개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럼 CHOOES NINE의 최종 1위가 서재경 연습생이 되었음을 발표합니다.”
“서재경 너 1등이야.”
정우는 누구보다 기쁘게 재경의 1등을 축하해주었다. 같이 데뷔하자고 할 때는 계속 재경이 아슬아슬하게 올라오는 걸 염두에 두었는데 이제 상황이 반대가 되었다.
“서재경 연습생의 1위 소감… 은 잠시 미루고 9위를 먼저 발표하겠습니다.”
재경의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아 MC가 능숙하게 순서를 바꾸었다. 그러면서 눈짓으로 재경에게 합격자석으로 가라고 신호했다. 정우가 재경의 등을 밀자 재경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옮겼다.
합격자석으로 오니 가장 먼저 하준이 재경을 안아 주었다. 축하한다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도 카메라로부터 가려 주는 것이다. 다른 연습생도 하준과 마찬가지로 재경을 동그랗게 감싸 주었다.
“정우도 올 거야.”
하준이 재경에게 귓속말로 달래주었다. 아직 불리지 않은 연습생이 열 명이나 있었다. 그중엔 자신과 함께 팀을 했던 누군가가 마지막 합격 티켓을 쥐었으면 할 것이다. 그래서 하준은 재경에게만 들리게끔 조용히 속삭여 주었다.
우리가 원하는 정우가 마지막 합격자가 되기를.
하준의 품에서 재경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마지막 합격자를 발표합니다. 9위에 오른 연습생입니다.”
MC의 진중한 음성이 공기를 무겁게 깔았다. 가장 중요한 건 1위지만 가장 긴장되는 순간이 바로 지금이었다. 남은 10명의 연습생. 거기서 한 명이 마지막 데뷔 멤버가 된다.
“…9위에 오른 연습생은 바로…….”
재경이 두 손을 모으고 간절히 바라보았다.
“제발, 제발. 제발…….”
“축하합니다. 이정우 연습생입니다.”
MC의 발표와 함께 공간을 울리는 함성이 울려 퍼졌다. 모두가 정우의 합격을 축하해 주었고 그중엔 눈물을 흘리는 이도 있었다. 정우와 함께 팀을 이뤘던 친구들이었다. 그들도 은근히 정우가 떨어질까 불안해하고 있었나 보다.
재경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정우의 이름이 불리는 순간 재경은 왈칵 눈물을 쏟아냈다. 짧은 시간 쌓인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정우가 간단한 소감을 끝마치는 동시에 곧바로 합격자석으로 돌아왔다. 모두가 정우의 어깨와 머리를 두드리며 축하한다고 인사를 전해주자 정우가 미소로 받아쳤다.
그리고 정우는 오열하느라 자신이 다가온 것도 모르는 재경을 안아 주었다.
“하아, 떨려 죽는 줄 알았네.”
정우의 혼잣말에 재경의 울음 사이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닌 것 같았지만 그 역시 긴장하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기뻐서 우는 건 여기까지. 이제 고개를 들어봐. 지금이 아니면 볼 수 없을 순간이잖아.”
정우의 달래는 말에 재경이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백색소음처럼 멀게만 느껴졌던 소음이 순식간에 제 몸을 감싸웠다. 귀를 먹먹하게 메우는 함성과 축하가 잇따라 들려왔다.
모두가 자기에게 축하한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비난이 아니라 응원의 소리가 들려왔다. 그게 신기하게 느껴지다가 한편으로는 믿기지 않았다.
“자, 이제 1위 한 소감을 들어볼까요?”
어느새 합격자석으로 넘어온 MC가 재경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재경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것을 받아들였다. 아까도 한번 소감을 발표했는데 지금은 그때와 다르게 마음이 가벼워졌다.
“정우… 지금까지 정우가 1등 했었으니까 마음 편히 팀이 되어서 무대를 채우고… 그리고 홀가분하게 오디션을 떠나려고 했습니다.”
재경은 잠깐 고민하다가 제 속마음을 내보이기 시작했다.
“오늘을 끝으로 가수가 되는 길에서 내려오려고 했었습니다. 음… 지금까지 제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연습생으로 버텨 온 10년 동안 행복하지 않았거든요.”
재경의 진심이 마이크를 타고 흘러가며 많은 이의 가슴을 울렸다. 옆에 서 있는 정우는 물론 한쪽에서 눈물을 흘리며 보는 엄마에게까지도 그간 재경의 마음이 얼마나 무거웠을지 전해지고 있었다.
오디션이 시작된 초반에 재경이 미지근하게 굴었던 이유를 알게 된 연습생들마저 저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었습니다. 춤을 추고 노래하는 게 싫었어요. 공부도 하고 싶었고요. 아, 저 공부 좋아해요. 잘하는 거 아니지만 좋아합니다. 그리고 대학교도 가고 싶었어요.”
재경이 중간에 농담을 끼워 넣으며 쑥스러운 듯 웃었다. 그러다 다시 메어오는 목을 가다듬었다.
“그런데 오디션을 하는 동안 정말 행복했어요. 지금껏 억지로 쌓아온 것만 같았던 제 실력이 너무 자랑스러웠고 재밌었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집중했던 거 같아요.”
재경의 어두운 과거와 다른 반전이 시작되자 조용히 듣고 있던 방청석에서 응원이 쏟아져 내렸다.
“저한테 꼭 붙어 있던 정우도 너무 좋고, 귀여운 소운이도 좋고, 덜 귀여운 태연이도 좋았어요. 팀이 되어서 손발을 맞춘 모두가 좋았어요. 아, 이래서 가수가 하고 싶은 거였구나. 다들 이런 마음을 느꼈던 거구나. 그래서 가수가 꿈이 되는 거구나.”
오디션은 재경이 오랜 시간 다쳐온 상처를 많이 아무는 기회가 되었다. 제 음색도 원하는 대로 마음껏 내보이고 춤도 췄다. 팀이라는 게 뭔지 알았고 그 안에서 제 역할을 해내는 성취감까지 느꼈다. 어쩌면 이런 기회를 처음에 가져보지 못해서 더 불행했을 수도 있었다. 오래 연습생 생활을 하다가 얼떨결에 소속사에 들어가 데뷔한 게 아니라 오디션을 통해 단계를 밟아가며 올라왔다. 이제 재경은 아이돌이 되는 게 두렵지 않았다.
“그래서 저, 좋아하는 공부 말고 좋아하는 노래 할게요. 감사합니다.”
재경이 허리를 깊게 숙이며 이 기회를 만들어준 모두에게 진심 어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재경이 너무 소감을 길게 해서 민망한 듯 MC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아, 이번에 소감 안 시켰으면 큰일 날 뻔했네요. 자, 여러분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이 9명의 데뷔조가 앞으로 활동하게 될 그룹명이 남았거든요.”
능수능란하게 상황을 조율하는 덕분에 모두가 MC의 말에 빠져들었다.
“그룹명은 바로… 이것입니다.”
모두가 MC가 가리키는 전광판을 보았다. 그리고 단 한 사람, 재경만이 그것을 보지 않은 채 소리 없이 중얼거렸다.
“비나인.”
B-NINE이 떠오르면서 또다시 귀를 울릴 정도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이로써 길고 길었던 CHOOSE NINE이 모두 끝이 났습니다. 그동안 시청해 주시고 응원해 주신 국민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긴 여정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MC의 인사를 끝으로 긴 오디션이 끝났음을 실감한 재경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끝이다.
그때 정우가 재경에게 상체를 붙이며 귓가에 속삭였다.
“우리는 아직 이야기 안 끝났어.”
정우가 재경에게 어디 가지 말라는 듯 단단히 손목을 휘어잡았다. 어디도 빠져나가지 못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