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TALK
우르륵까꿍 [언젠가 이 둘이 함께할 줄 알았어]
이모님짱 [왜 정우를 선택했는지 안타까웠는데 이걸 보니…… 인정]
스크럼블 [실력으로는 아무도 못깐다 이둘]
DrFaust [그냥 신혼분위기만으로도 충분했는데 고마워, 재경아]
전체코멘트보기 [재경이는 다 생각하고 있었던 거야]
내편이없어 [언제 끝나나요? 아니 끝내지 말아달라고요]
뷃뷃 [채널돌리다봤는데 뭐야...나 아이돌 좋아하네...]
와이라노 [허ㅋ촤ㅋ 재경아 그런 식으로 하면 트리플크라운에 연말 대상밖에 못따고 전세계가주목하는넘버원아이돌밖에 못된다..]
워메 [와 쟤네 뭐냐 왜 반짝거려?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후광이냐 세상에 할렐루야다]
된장님원장찌개 [저 두사람은 데뷔해야한다 쉬바ㅏ #가보자고]
아이러브카페 [저 둘 무조건 데뷔한다에 내 커피콩 주식 건다]
ddd [롸? 냉온탕이 요깃네.. ㄷㄷ 둘이 와꾸합 머선129]
욘두해요 [서재경 이정우 데뷔 #가보자고]
* * *
“아, 그래. 서재경 너 잘할 줄 알았어.”
모자를 눌러쓴 남자가 재경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다 올라간 입꼬리가 한쪽만 내려오더니 잔뜩 비틀린 미소를 지어냈다.
서재경은 늘 잘해왔다. 별다른 기복 없는 실력과 그것을 조금도 내세우지 않는 조용한 성격이었다. 그래서인지 다들 연습생으로 들어온지 얼마 안 된 서재경을 금방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쟤라면 데뷔조에 들 수도 있겠다, 그런 생각 따위를 하며.
전상국은 그게 싫었다. 엄연히 먼저 들어온 자신들이 있는데, 왜 굴러온 돌에게 자리를 내어주냐 이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이는 자신만이 아니었다. 실력으로 좀 부족하다고 여길지라도 데뷔를 위해 달려온 시간과 노력만큼은 절대 뒤지지 않는다고 여긴 몇몇은 서재경을 싫어했다. 그래서 전상국은 그들과 함께 서재경을 몰아냈다.
데뷔조에 들만한 실력이면 다른 곳에 가서 데뷔하면 된다. 굳이 여기서 박힌 돌의 자리를 뺏어갈 필요는 없는 거다. 그래서 내쫓았고 오디션도 마찬가지였다. 이 오디션에서 데뷔하지 않아도 될 놈이 괜히 비비적대는 게 보기 싫었다.
그 이면엔 서재경을 향한 질투가 있음을 인정했다. 어쨌든 전상국은 서재경이 싫었다.
“그런데 너만 잘되는 꼴을 어떻게 봐.”
전상국이 주머니에 넣어둔 손을 꼼지락거리며 서재경을 노려보았다.
‘내가 쫓겨났으니 네 데뷔도 물 건너가야 하지 않겠어?’
전상국이 모자의 챙을 아래로 내리며 조용히 무대 뒤편으로 향했다.
* * *
노래가 끝나자 제 숨소리가 마이크로 흘러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한껏 숨을 죽여도 워낙 안무가 거칠었던 탓에 숨소리가 꽤 거칠어졌다. 재경은 유난히 눈이 부시도록 강한 조명을 보다 정우에게 고개를 돌렸다.
조명에 익숙해져 정우의 얼굴이 순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천천히 그의 얼굴이 차츰 명확하게 인식되는 순간 재경의 입이 벌어졌다.
“아…….”
정우의 얼굴이 온통 땀에 젖어 있었다. 아마 자신도 별다르지 않겠지.
그리고...
홀가분한 표정의 그를 보자 재경이 무의식적으로 웃음이 나왔다.
‘다 끝났다.’
마지막 결과발표를 두고 제가 보여줄 건 다 보여줬다. 그 홀가분함이 재경의 굳었던 몸을 풀어주었다.
‘아, 아직 긴장을 놓으면 안 되는데.’
투표하는 동안 단체 무대에 올라가야 하는데.
그런데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웃음이 나왔다. 지금만큼은 다른 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적어도 이번 무대를 마친 그 뿌듯함만이 가득했다.
“그렇게 좋아?”
가까이 다가온 정우가 제 마이크를 손으로 살짝 가리며 속삭였다. 그런다고 마이크에 목소리가 못 들어갈까. 급 울려대는 함성에 재경이 조용히 있으라는 듯 눈을 흘겼다. 제 신호에 정우가 어깨를 으쓱였다.
이후 MC의 멘트에 맞춰 몇 번의 반응만 하고 무대에서 내려왔다.
스태프의 안내에 따라 대기실로 안내받은 재경과 정우는 곧장 화장대에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재경은 아예 화장대에 엎어졌고 정우는 의자에 늘어지듯 앉았다. 둘 사이에 어떤 대화도 오가지 않았다. 그저 각자만의 생각에 빠져들었다.
재경은 분명 무대에 올라가기 전까지 복잡했던 걸 기억했다. 그러나 그게 뭐였는지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강렬한 기억이 앞선 감정과 기억을 흐린 탓이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떠올릴 수도 있지만 재경은 잠시 모든 것을 내려두었다. 지금은 그냥 이 가벼운 마음을 그대로 가져가고 싶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땀이 식어서 약간은 춥다고 느껴질 정도가 되어서야 재경이 상체를 일으켰다. 그리고 무심코 고개를 돌리다 자신을 보고 있던 정우와 눈이 마주쳤다.
“수고했어.”
“…너도.”
결과는 전부 뒤로 미룬 순수한 인사였다. 지금만큼은 누가 데뷔하고 떨어지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열심히 한 대로 만족한 결과를 얻었다는 게 좋았다.
재경과 정우는 서로를 따스한 시선으로 보았다. 서로를 믿고 의지한 만큼 무대에서 둘이 나누는 감정의 교류도 좋았다.
재경은 정우와 한 팀이 된 것만 같은 기분에 더할 나위 없는 만족감을 느꼈다. 그래서 재경은 이 기분 그대로 정우에게 고백했다.
“나 오늘 진짜 좋았다.”
“…….”
정우가 당황한 걸 보고도 재경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예전엔 같은 무대에 올라가도 네가 멀게만 느껴졌거든. 그런데 오늘은 정말 네가 나와 한팀 같았어. 그냥, 그게 좋았다고.”
“하아. 서재경.”
재경의 뒤이은 말을 들은 정우가 못말린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를 좋아하는 제게 좋았다는 말을 저렇게 서슴치 않고 하다니. 정우는 재경의 순수한 표정에 그냥 웃고 말았다. 어떤 이유든 좋다는 말이 정우에겐 달콤하게 들려왔다.
“음료수 좀 뽑아올게.”
“응.”
정우가 대기실 문까지 갔다가 깜박한 게 있는지 도로 돌아왔다.
“뭐 놓고 갔어?”
“이거.”
정우는 걸어오는 속도를 늦추지 않더니 그대로 재경을 끌어안았다.
“끝나고 다시 안아 준다고 했잖아.”
정우의 웃음기서린 목소리가 재경의 귓가를 부드럽게 감쌌다. 정우는 그 이후로도 재경에게 잘했다는 말을 계속 해줬다.
한참을 재경이 녹아들만한 말을 해준 정우가 진짜 음료수를 뽑아온다고 대기실을 나가자 재경이 다시 엎어졌다.
겨우 가라앉혔던 심장이 다시 크게 뛰고 있었다. 이번엔 격하게 몸을 움직여서 그런 게 아니었다. 이건 순수하게 정우한테 설레서 뛰는 거였다.
왜 다시 안아준다고 했더라.
재경이 엎어진 그대로 생각해보니 무대에 올라가기 전 제가 놀랐던 이유가 떠올랐다.
“아… 엄마.”
가족석이 아닌 의외의 곳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엄마가 떠올랐다. 정말로 제게 부담주지 않으려고 그런거냐고 묻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은 잠시 대기실에 있다가 도로 올라가야 하니 참을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지금 엄마라도 온다면 물어볼 수 있을텐데.
재경은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며 더욱 고개를 깊게 묻었다. 지금 최대한 쉬어야 다시 카메라 앞에 설 힘이 생길 거다.
그때, 대기실의 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재경의 감긴 눈이 천천히 떠졌다. 조심스러운 움직임이 스태프나 정우가 아니었다.
‘정말 엄마가…….’
재경이 엎어졌던 몸을 일으키며 화장대 거울로 먼저 상대를 확인했다. 그리고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인물과 눈이 마주치면서 재경의 반사적으로 의자에서 일어났다.
전상국을 향해 몸을 튼 재경이 그에게 잔뜩 경계심을 올렸다.
“뭐야, 네가 여길 왜 들어와.”
“구경? 아. 대기실 좋다. 아직 별것도 아닌 애들이 쓰기엔 너무 좋아. 그지?”
전상국이 대기실을 둘러보며 점점 안으로 들어왔다. 정확하게 재경을 향해서 왔다.
“나가.”
“나갈거야. 그러니 그따위로 명령하지마.”
전상국은 재경에게 날카로움을 드러내다가도 다시 씩 웃으며 대기실을 돌아보았다. 간간히 휘파람도 불어대는 게 어지간히 이 상황을 못마땅해하는 듯했다.
“너는 참 운도 좋아. 옮기는 소속사마다 데뷔조에 들어가니 마니 인정받는 것도 모자라 이렇게 오디션에서도 꾸역꾸역 올라왔잖아.”
전상국은 재경이 마지막 무대까지 한 걸 걸고 넘어졌다.
“여기서 너한테 표가 제대로 몰려서 반전각이 서면 볼만하겠다.”
턱걸이로 들어왔는데 9등 안으로 가봐, 얼마나 재밌겠어. 전상국의 잔뜩 말을 비꼬며 재경과 눈을 마주쳤다. 천천히 걸어들어왔음에도 사방이 막힌 공간이었다.
전상국과 재경은 의자 하나를 두고 마주하고 있었다.
“그런데 네가 끝까지 올라가는 꼴은 또 내가 보기 싫단 말이야.”
“아무짓도 하지 말고 그냥 나가는 게 좋을거야.”
재경이 전상국을 노려보며 경고를 날렸다.
“여기서 사고치면 너만 더 망가져.”
“망가져? 내가? 글쎄.”
전상국이 제 몸을 돌아보더니 상의를 털어냈다. 그리고는 재경 보란 듯 아무것도 없는 두 손을 내밀었다.
“어차피 난 이제 더 쫓겨날 데도 없어.”
그러니 여기서 더 망가질 것도 없었다. 오디션에서도 떨어져 나갔지, 소속사에서도 버림받았지. 여기서 다른 소속사를 옮겨 바닥부터 올라갈 의지도 없었다.
“이제 아이돌은 때려치웠고… 뭐, 미래야 얼마든지 다시 세우면 그만이니까.”
어떻게든 붙어서 데뷔하려던 전상국이 아니었다. 그 사이에 겪었던 경험이 그를 이렇게 만든 거 같았다.
“그런데 나 혼자 망가지는 건 좀 억울해서 말이야.”
전상국이 재경을 보며 씩 웃었다.
“너도 망가뜨리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