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아이돌-113화 (113/125)

113화

“그럼 파이널 라운드 시작합니다.”

지금껏 PD가 진행했던 것과 다르게 생방송을 위한 MC가 투입되었다. 생방송이 시작되는 것과 동시에 참가자 모두는 한켠에 마련되어 있는 자신들의 자리에 앉아있었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아니더라도 경연이나 기타 여러 방송에서 생방송을 진행할 때와 다른 시작이었다.

“그동안 많이 보고 싶었던 우리 참가자들입니다. 오늘 집에 가기 전까지 계속 볼 수 있으니까 즐겁게, 아주 즐겁게 지켜봐주시기 바랍니다.”

이건 방청객에게 잠깐씩만 얼굴을 내비치고 싶지 않다는 연습생들의 뜻에 따라 PD가 전면 재조정한 결과였다. 덕분에 MC의 진행 사이로 끼어드는 방청객의 환호성이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었다.

이제껏 녹화로만 뜰 때와 다른 반응이었다. 카메라에 찍히는 제 얼굴이 흔들리고 잡음도 들릴 거 같아서 부산스럽지만 그 모든게 생생하다고 여겨지는 그런 시간이었다.

재경은 어색한 표정을 지우려 애써 미소를 짓는 연습생을 차례대로 돌아보았다. 전부 방송이 처음인 탓에 긴장하지 않으려고 해도 그게 잘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건 VOB로 활동했던 태연과 건후도 마찬가지인지라 소리 없는 미소가 흘러나왔다.

모든 걸 다 잘하던 정우에게도 어색한 시기가 있었구나 싶었는데 그건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오디션에 참가하면서 예전 멤버들의 몰랐던 모습을 보는 게 재경에게 있어 잊지 못할 기억이 되고 있었다.

물론 이런 일이 아죽 익숙한 듯 구는 하준을 제외하고. 잔잔한 미소와 함께 방청객을 향해 손을 흔들 때마다 술렁이는 반응이 실시간으로 느껴졌다.

“형은 진짜 강심장이네요. 누가보면 지금 한창 활동하는 아이돌인 줄 알겠어요.”

소운이 작게 하준에게만 들리도록 속삭였다. 그게 재경이 근처에 있어서 어쩌다 보니 들려서 소운을 힐끔거렸다. 그러다가 소운이 보는 하준에게 자연스럽게 시선이 옮겨갔다.

“꼭 아이돌 경험이 있어야지만 긴장을 늦출 수 있는 건 아니지.”

“그럼요?”

“어릴 때부터 관심을 받아왔으니까 비슷하게 생각해보면 긴장을 내려놓을 수 있단다. 다 생각하니 나름이야.”

하준이 나름의 방법을 대입해서 여유롭게 즐기는 모습을 보여주니 소운이 새로운 걸 배웠다는 듯 귀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옆에서 같이 하준의 설명을 들은 재경은 더욱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생각하기 나름이긴 하지만 맞나? 싶은 재경의 의심스러운 표정에 하준이 비죽이 미소지었다.

“역시 안 통하네.”

그렇게 말한 하준은 재경과 눈을 마주친 채로 입술만 벙긋거렸다.

“실은 나도 떨려.”

아닌 척하고 있다는 뜻에 재경은 뒤늦게 하준의 잘게 떨리는 손끝을 보았다. 결국 마지막까지 아닐 줄 알았던 하준을 비롯해서 예전의 멤버 모두가 아직은 병아리에 불과한 때라는 걸 알자 재경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기분을 느꼈다. 그들의 어설픈 미소를 보니 더욱 친근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재경이 너야말로 진짜 긴장 안 하네.”

하준의 새삼스럽단 눈에 재경은 제가 그랬나 돌아보다가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아무래도 돌아온 시간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생방송의 경험이 적진 않았다. 거기다 콘서트까지 해왔었으니 방청객을 돌아보는 여유도 제법 있었다.

‘이러니까 마치 바뀐 거 같네.’

재경이 신기한 눈으로 다른 참가자를 보다가 이제 방청객을 보기 시작하니 정우가 그런 재경이 귀엽다는 듯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MC의 진행을 들으며 재경이야말로 긴장된 기색 없이 여유롭게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사이 첫 무대에 올라갈 참가자가 떠나면서 가려졌던 시야가 확보되기도 했다. 그래서 그 틈으로 막 고개를 내민 재경이 불현듯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왜 그래?”

재경의 이상반응을 알아챈 정우가 곧장 그의 팔을 붙잡으며 물어왔다. 그러면서 참가자의 얼굴을 비춰주는 카메라로부터 등을 돌려 재경을 가려주었다.

“어, 어어.”

재경이 당황해서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다가 또 방청객이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등 부산스러운 행동을 보였다. 방금까지 차분하던 재경이 무엇에 동요했는지 모르는 정우는 재경이 바라본 곳을 보거나 아니면 다른 원인이 있나 부지런히 살펴보았다. 그러나 예상가는 게 없어서 일단 재경을 달래보려고 하는 순간 마침 다음 무대를 준비하라는 스태프의 부름이 들려왔다.

“나가자.”

정우가 재경을 일으켜서 밖으로 나오는 동안 재경은 아직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저 누군가 이끄는 대로 걸어가는 게 고작이었다.

“서재경.”

무대 뒤로 나온 정우가 곧장 재경의 두 뺨을 감싸왔다. 그리고 재경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분명 누구보다 여유롭게 잘 있었던 재경이 아무 이유 없이 이러진 않을 것이다.

“왜 그러는거야?”

“엄마가, 엄마가 있었어.”

재경은 아직도 믿지 못하겠다는 듯 희게 질린 얼굴로 겨우 말을 내뱉었다. 생방송이 시작되면서도 엄마가 없는 걸 확인했는데, 분명 확인했는데 다른 곳에 있었다.

“왜 거기 있지? 왜 엄마만…… 거기에.”

엄마가 왔어도 흔들리지 말라던 정우의 예상이 그대로 맞아 떨어졌다. 정우 역시 재경의 어머니가 왔나 싶어 확인했지만 분명 없었던 걸 확인했다.

“다른 곳에 앉아있었어.”

그런 정우의 의아함을 알기라도 한 듯 재경이 더듬거리며 손으로 벽을 가리켰다. 아마 이 벽 너머에 있다는 의미겠지.

“안 보여서 안 온 줄 알았는데. 그래서 마음 놓고 있었는데 다른 데 있었어. 왜, 왜 그랬지? 왜 다른 곳에 있는거지?”

“재경아.”

정우는 점점 흥분에 휩싸이는 재경을 보다 급기야 강하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서재경. 내가 한 말 벌써 잊었어?”

“아…….”

잊지 않았다. 다만 정우가 하라는 대로 그에게 집중하질 못했다. 그런 제가 한심하게 여기면서도 쉽게 마음을 놓지 못했다.

그때 정우가 재경의 몸을 강하게 끌어안았다. 등을 끌어안는 그 힘에 재경이 놀라 고개를 들었지만 정우의 얼굴을 볼 순 없었다.

“지금 울면 목소리가 잠길거야. 그건 너도 원하진 않지?”

정우의 달래는 목소리가 재경이 고개만 끄덕였다. 재경은 그렇게 정우의 품에 안겨 호흡을 고르는 데만 집중했다.

“다 끝나고 나서 다시 안아줄게. 그러니까 우리 잘해보자. 재경아, 너 지금까지 누구보다 잘했어. 그거 알지? 네가 오디션에 지원했을 때를 생각해봐.”

끊임없이 들려오는 정우의 위로가 효과가 있었는지 재경의 호흡이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다. 이러려고 회귀해서 오디션을 지원했나? 이렇게 못난 모습을 보이려고 이런 선택을 했던 걸까? 그런 질문을 던지면서 점점 현실을 깨달은 재경의 흥분이 눈에 띄게 가라앉아갔다. 엄마가 왜 혼자 떨어져 그곳에 있었는지 싶기도 했지만 정우의 말대로 지금은 무사히 노래를 끝내는 게 우선이었다.

“이제… 괜찮아.”

그가 없었다면 아마 끝까지 진정하지 못했을 것이다. 재경이 고마움을 담아 정우에게 속삭였다. 자신의 한심한 모습에도 계속 달래주던 정우의 위로가 큰 힘이 되었다.

“올라가자.”

팀이름이 호명되는 소리와 함께 정우가 재경의 몸을 놔주었다. 그의 품에서 제법 안정을 찾은 재경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부모님들이 모여 있는 그곳에 있었다면 지금처럼 많이 놀라진 않았을 것이다. 정말 깜짝 이벤트를 한 것처럼 실은 아직도 미약하게 놀란 감정이 남아있긴 했다. 그래도 한결 차분해진 재경은 놓치고 있던 다른 게 하나둘 떠올랐다. 정말 제 생각이 맞다면, 엄마가 일부러 눈에 띄지 않으려고 그 자리를 택한 거라면.

‘내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한 거라면.’

늘 재경을 이용해 다시 가수가 되어보고자 했던 엄마가 이번에 반성하면서 생각이 달라진 거라면…….

정말 그렇다면 엄마가 느낄 수 있도록 더 잘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순수하게 자신을 보러 온 엄마에게 꼭 한번 제대로 된 무대를 보여주고 싶었다. 재경의 눈동자에 얕게 맺혔던 눈물이 사라지며 결연한 빛이 차올랐다.

*  *  *

전주가 흘러나오기 전 재경은 제 숨소리에 집중했다. 다른 건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전부 숨죽여 재경과 정우를 바라보고 있었고 그 어수선한 침묵 사이로 노래가 막 시작하기 직전의 긴장감을 선사했다.

방청객을 향한 조도가 확연히 낮아지고 무대를 비추는 조명이 밝아지는 동시에 전주가 터지듯 흘러나왔다. 재경은 새볔까지 연습하던 대로 움직이며 노래에 제 몸을 맡겼다. 정우와 하나씩 맞춰서 만들어간 안무가 재경의 손끝까지 하나의 섬세한 선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The world has forgotten me

No one recognizes me

세상이 나를 잊었다며 누구도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는 씁쓸함이 가득 배인 가사는 재경의 덤덤한 어조를 입어 흘러나왔다. 고음에서는 듣지 못할 허스키함이 섞인 특유의 톤이 순식간의 방청객의 귀를 사로잡았다.

전주에서 강한 안무를 췄음에도 불구하고 흔들림 없는 목소리에 방청객들이 소리 없이 놀란 감정이 드러냈다.

I keep dreaming

I want to live in your world

재경의 점점 고조되어가는 노래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무대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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