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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아이돌-103화 (103/125)

103화

주도원을 바라보는 재경의 시선은 더할 나위 없이 고요했다. 그 차분한 분위기 때문인지 주도원은 재경이 어떤 말을 하든 그대로 받아들이겠다고 마음먹었다.

“용서할 것도 없어.”

그동안 주위에서 들었던 서재경을 떠올려보면 괜찮다며 용서해줄 거란 기대가 없진 않았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번 일로 인해 평생 지워지지 못할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면 어떤 사과로도 마음이 풀어지지 않을 거라는 대답도 들려올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결정이든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여겼는데 재경의 대답이 예상외였다. 뭔가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그런 대답이었다.

“그말은 용서 안 해주겠다는…….”

“할 게 없다는 말이야. 결과적으로 나는 여기 남았고 너는 나갔잖아.”

재경의 무정한 대답에 주도원이 잠시 말문이 막힌 듯 굴었다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와, 팩폭 오지네 너?”

“현실이 그렇다는거지.”

주도원이 엄숙한 분위기에서 사과의 말을 꺼내지 않은 듯 재경도 착한 마음으로 그의 용서를 받아주지 않았다. 딱히 그의 사과를 받을 이유도 없다는 게 재경의 생각이었다.

“남한테 악플 남겨서 어떤 벌을 받았는지 너 스스로가 느꼈을거잖아.”

“응. 나 진짜 이 바닥에서 쫓겨나는 줄 알았어.”

주도원이 반쯤 해탈한 미소로 제가 겪었던 마음고생을 떠올렸다. 잘못했으니 벌을 받아 마땅하지만 그렇다고 괴롭지 않은 건 아니니까. 물론 그건 주도원이 행한 행동에 대해 책임져야 할 부분이고 재경에게 건네는 사과는 벌개였다. 하지만 그것조차 재경은 받아들일 마음이 없다는 걸 드러냈다.

“그리고 나는 아직 너를 몰라. 그래서 네가 내개 벌인 짓을 용서할 판단이 안 서.”

그래서 더욱 주도원의 마음이 편하게 어느 한쪽을 결정해주지 않았다. 실제로 그가 어떤 말을 한다 해도 아직은 믿을만한 사이도 아니고 또 그를 모르는만큼 오늘의 사과에 얼마의 진정성이 있는지도 가늠되지 않았다. 재경의 대답에 주도원은 잠시 생각하는가 싶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너는 날 모르지.”

단순히 자기가 재경에 대해 소문으로만 판단했던 것과 비슷한 맥락이었다. 결국 서로가 잘 모르는 상태이기에 재경의 의견도 일리가 있었다.

“좋아.”

주도원은 더는 재경을 설득하지 않는 대신 깔끔하게 물러났다.

“앞으로 친해지면 되는거지?”

대신 재경을 당황하게 할 대안을 내놓았다. 오늘이 지나면 주도원과 만난다고 할지라도 딱히 어울릴 생각이 없었던 재경이 미간을 찡그리며 그를 경계했다.

“나는 그럴 생각 없는데?”

오디션에서 만난 사람들은 어쩜 다들 이렇게 친해지지 못해 안달인건지.

“대화 끝난 거지? 이제 헤어졌으면 하는데…….”

재경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며 반쯤 주도원을 밖으로 내보내려고 했다. 어쨌든 그가 찾아와서 하고 싶은 말은 다 들어줬고 그에 따른 제 대답도 건네주었다. 그런데 무슨 생각인지 주도원은 나가려는 재경의 손목을 잡으며 다시 그자리에 앉혔다.

“아직.”

“우리가 더 나눌 이야기가 어딨다고…….”

“전상국.”

재경의 불만스러운 중얼거림을 단박에 잘라낸 주도원이 아까보다 더 여유로운 눈으로 싱글벙글 웃어댔다.

“너 전상국이랑 사이 안 좋잖아.”

“그게 뭐 어쨌다고.”

사이가 안 좋은 걸 알면서도 굳이 언급하는 주도원이 못마땅해서 재경은 아까보다 더 불편한 분위기를 풀풀 풍겨냈다. 전상국의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다는 티를 내면 알아서 입을 다물길 바랐지만 주도원은 전혀 그만둘 생각이 없어보였다.

“그래도 한번은 듣는 게 좋을 거 같은데.”

“왜 들어야 하는데.”

재경이 팔짱을 낀 채로 주도원을 노려보았다. 전상국과는 다시 얽히고 싶지 않았다.

“왜 들어야 하냐면…….”

주도원은 일부러 말끝을 흐리며 재경의 관심을 끌어모았다. 그래봐야 재경이 퍽이나 주도원을 재촉하겠냐만은. 결국 원하는 반응이 나오지 않으니 주도원이 먼저 입을 열었다.

“걔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까?”

“그게 무슨 소리야. 이미 다 끝난 일인데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른다는거야?”

“단순히 오디션에서 하차하는 정도로 끝났으면 걔도 아마 열받겠지만 참았겠지. 그런데 이번에 화이트에서도 쫓겨났어.”

주도원은 듣기 싫어도 들으라는 듯 재경의 옷을 놔주지 않았다.

“원래는 내가 이 오디션에서 데뷔하면 화이트 데뷔조에 상국이가 들어가는 거였거든. 그런데 다 틀어졌지. 소속사 이미지를 위해서 나는 남았는데 상국이는 일을 벌인 주범이라서 품고 갈 수 없었거든.”

결국 여기저기에서 다 전상국을 내치게 된 꼴이었다. 재경을 향한 강한 악의가 전상국을 노리는 화살이 되었다. 어떻게 보면 데뷔를 위해서 연습생으로 버텨왔던 그였지만 재경은 전상국에게 어떤 동정심도 들지 않았다.

“네가 무슨 생각으로 전상국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지만 내가 걔를 동정하라는 거라면 나는 안해.”

“딱히 동정하라고 말한 거 아니야. 그리고 걔가 어떻게 나올지 몰라서 하는 말이라고 했잖아.”

주도원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라는 듯 동정에서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걔 지금 여기저기 건들 생각으로 잔뜩 벼르고 있어. 지금까지 자기가 한 잘못은 조금도 인정하지 않고 복수하겠다는 듯이 굴고 있다고.”

주도원이 전상국을 떠올리는지 고개를 내저었다. 전상국은 제 행동에 대한 반성은커녕 자신을 쫓아낸 모든 곳을 향해 이를 갈고 있었다. 어떻게든 갚아주겠다면서 이리저리 쑤시고 다니는 걸 들었기에 주도원으로서는 조금 걱정이 되었다.

“지금껏 걔가 괴롭힌 연습생도 많았고 사귀자고 들이댄 여자애도 많지. 그중 몇은 데뷔해서 더는 추근대지 못하지만 다른 애들이 전상국 피해다니고 그랬었단 말이야. 그때도 소속사에 말하면 되는데 왜 걔를 피해다녔겠어. 걔가 그만큼 많이 끈질기고 진상이었거든.”

주도원이 의자에 등을 묻으며 전상국의 예전 이야기를 하나씩 들췄다.

“클럽에 드나든 것도 걸렸는데 다른 애를 팔아서 넘어가고 이번에도 학폭으로 올라온 글 소속사에 말해서 바로 묻은 거로도 모자라 네 이야기로 덮었잖아.”

주도원이 줄줄이 늘여놓는 전상국의 이야기에 재경은 가만히 듣고 있다 물었다.

“그런데 넌 전상국이 그런 걸 알면서도 왜 붙어다닌거야?”

“응? 내가 붙어다녔어? 아니? 나는 어디까지나 이 오디션에 같이 들어와서 어울린거지 그 전엔 걔량 안 놀았는데?”

주도원이 의외의 말을 들은 듯 바로 받아쳤다. 실제로도 전상국과 오디션 중간에 소속사에서 불러서 따로 시간 내어 만난거지 둘은 원래 친분이 없었다. 나중엔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서 조금 더 어울리긴 했었지만 엄연히 전상국을 마음에 들어하진 않았다.

“걔가 반성하고 넘어가면 좋겠지만, 전혀 아닐 테니까 조심하라고. 내 할 말은 끝.”

주도원이 홀가분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아직도 생각에 잠겨 있는 재경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더니 검지로 그의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다음에는 데뷔해서 보자.”

주도원이 살랑 손을 흔들며 미련 없이 방을 나갔다. 용서받진 못했지만 그는 오늘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모양이었다. 물론 남겨진 재경은 찝찝한 기분에 사로잡혀 버렸지만.

“학폭, 클럽…….”

재경은 전상국이 벌였다는 짓을 떠올렸다. 아직 데뷔하기 전인데도 꽤 하지 말아야 할 짓을 많이 벌였다. 그리고 재경이 기억하는 한 과거의 전상국은 분명 아이돌로 데뷔했었다.

가끔 만날 때마다 재경을 둘러싼 악플을 읽어대며 조롱하곤 했었기에 기억하고 있었다.

“제의현.”

그때 전상국의 예명을 떠올린 재경이 입에 담아 굴려보았다. 그러다 머리를 흔들어 생각을 털어냈다. 당시 제게 씌워졌던 루머, J로만 나왔던 이니셜이 생각났지만 그것을 전상국에게 뒤집어씌우는 건 옳지 못했다.

재경 역시 그때 억울하지 않았나. 그러니 섣부르게 누군가에게 미루기보단 그냥 덮기를 택했다.

그렇게 전상국에 대한 걸 모두 털어낸 재경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방송이 끝나지 않았을테니 뒤늦게라도 가서 볼 생각이었다. 재경이 나간 뒤로 방은 아무도 없던 듯 원래의 모습을 찾아갔다.

*  *  *

TALK

망글몽글 [오늘 무슨 날이야? 안 그래도 재경이 분량 없어서 갈증났는데 이렇게 오아시스 퍼주기 있어요?]

이모님짱 [흐음 냄새가 나는데]

란난지 [알게모르게 카메라에 많이 잡힐 행동만 햌ㅋㅋㅋㅋㅋㅋㅋ]

코멘트 [아니 진짜 미안한데... 재경이 왜 이렇게 소심하고 순진하고 귀엽지만 호락호락하지 않은 지질이 같지?? 신선한 캐릭터야 이러면 감기는 인간이 대충 937291917명……]

999 [재경이랑 정우 루머 돌아서 그런가보다ㅜ 우리 애긔들 그동안 마음고생한 거 같던데 알아서 이런 코너도 마련해주고 PD 당신이란 양반 정말 사랑스럽다]

RRREE [그게 루머인지 어떻게 앎?]

윙? [무슨 소린지.. 누가 설명 좀]

오이오잉 [재경이 데뷔해서 행복해져라 ㅜㅜ]

뛟 [그거 아시져 말랑콩떡이 메댄이라 춤 가르칠 때만 예민해지는 본업한정 예민미에 사람들 미치는 거… 진짜 미친다 재경아]

운항 [정우 밀어준다는 루머는 소속사에서 계약서 내밀고 아니라는 거 보여줬는데 재경이한테 붙은 학폭과 불성실 관련 논란은 커버쳐줄 곳이 없었음 그런데 지금 PD가 재경이 그런 애 아니라고 말해주는거임]

하하호호버스 [그런데 재경이 순위 많이 떨어졌잖아.. 어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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