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아이돌-90화 (90/125)

90화

“PD님께서 이 시간에 웬일이세요?”

전상국은 새벽이 다 되어가는 시각에 찾아온 PD를 의아해하면서도 일단 반갑게 맞아주었다. PD는 카메라맨도 없이 혼자서 전상국을 보고 있었다. 잠시 핸드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한 PD는 평소와 다름없는 차림이었는데 어딘가 낯설게 느껴졌다. 그 이유가 뭔지 몰라 전상국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PD가 여상히 물었다.

“안 자고 있었네요.”

“오늘 CHOOSE NINE하는 날이었잖아요. 당연히 안 잤죠.”

거기까지 말한 전상국은 제 분량이 적었다는 말을 할까 말까 하는 작은 고민에 휩싸였다. 제 분량이 실종이라도 된 듯 사라져 버렸다. 그나마 무대에 올라가서도 개인 컷을 받지 못해서 PD에게 따로 연락하고 싶었던 참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개인적으로 찾아왔으니 한번 말해봐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지금 잠깐 시간 되죠?”

“이 근처에 새벽까지 하는 카페가 있긴 한데 그쪽으로 가실래요?”

집 앞의 어두운 골목에서 대화를 나누기가 여의치 않아 다른 장소로 옮길 것을 말하면서 전상국은 PD의 표정을 살폈다. 무슨 말을 하려고 이 시간에 온 걸까? 깜짝 미션이라도 있나 싶었지만 카메라도 없고 작가도 없었다.

그제야 전상국은 PD가 다른 사람처럼 느껴진 이유를 알았다. 그리고 지금껏 진행하면서 PD의 웃는 얼굴만 봐 왔던 탓인지, 오늘의 무표정한 얼굴은 무척 낯설었다.

“거기까지 안 가도 되고 여기서 바로 이야기하죠.”

PD는 전상국의 제의를 거부한 채 그 자리에 꿋꿋하게 서 있었다. 웃지도 그렇다고 제 프로그램에 매진하는 연습생이라고 예쁘게 보는 눈빛이 아니었다. 사무적이고 딱딱한 반응에 전상국이 제 뒤통수를 긁적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왜 그러시는데요?”

“이거 본 적 있어요?”

PD가 핸드폰을 몇 번 터치하더니 전상국이 볼 수 있도록 내밀었다. 전상국은 뭐냐는 듯 PD를 한번 응시하더니 그가 아무 말 없이 보기만 하니 어쩔 수 없이 핸드폰을 향해 눈을 내렸다. 그리고 익숙한 플랫폼과 함께 자신이 올린 글을 본 전상국은 속으로 놀랐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PD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이거야 합숙할 때 보긴 봤죠.”

생각보다 제 목소리가 태연하게 나왔다. 전상국의 가벼운 대답에 PD가 살짝 눈썹을 휘어올렸다.

“더 없어요?”

“뭐가요?”

전상국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PD와 빤히 눈을 마주쳤다. 모른 척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이미 글을 올릴 때부터 제가 하지 않았다고 발뺌할 다짐을 해왔으니까. 그렇기에 빠르게 표정을 다잡을 수 있었는데 PD와 눈이 마주친 시간이 길어질수록 전상국은 점점 표정을 유지하기가 힘들어졌다. 아무 말 없이 그저 지그시 바라보기만 하는데도 이상하게 숨이 막혀올 듯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전상국 연습생.”

PD의 무거운 음성이 전상국의 마음을 둔중하게 울렸다. 전상국이 인상을 찌푸리려는 걸 겨우 참으며 PD와 다시 눈을 마주쳤다. 전상국이 말하려는 기미가 보이지 않자 PD가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먼저 말해줬으면 좋았을텐데 아쉽네요.”

“뭐가 아쉽다는 거예요? 저는 지금 PD님이 무슨 말을 하시는지 모르겠는데요.”

전상국도 서서히 이 상황을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긴장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사근사근했던 말투가 점점 단단해지고 주변을 둘러보며 당장이라도 이 자리를 벗어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우리 처음에 오디션 시작하기 전에 썼던 계약서 기억나나요? 분명 안에서 있었던 일을 미리 발설하지 않을 것과 다른 연습생에 관한 악의적인 글은 함부로 남기지 않는 거였습니다.”

“PD님, 지금 PD님은 이걸 제가 썼다고 생각하신겁니까? 그래서 이 시간에 절 찾아왔고요?”

전상국은 의심받는 게 억울하다는 듯 점점 흥분이 차오르고 있었다. 여기서 밀려나면 그가 너무도 불리한 상황이기에 전상국이 강하게 제 가슴을 치며 PD에게 격양된 얼굴로 말했다.

“저는 잘하고 있다고 응원해주려고 오신 줄 알았는데 죄를 뒤집어씌우려고 절 부른거였어요? 저 지금 PD님한테 실망했습니다.”

전상국은 한번 내지르면서 아예 두 번은 없다는 듯 PD에게 강하게 짚어나갔다. 내게 엄한 죄를 씌우다니 이럴 줄 몰랐다는 의미를 팍팍 실었다. 전상국의 목소리가 PD를 잡아먹을 듯하는데도 그는 여전히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그저 기회를 줄 때 솔직하게 말하라는 압박에 전상국이 이를 악물었다가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다. 자신을 보는 PD의 눈빛이 절대 호의적이지 않으니 이제 전상국도 그가 누군지 생각하고 조심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정우, 서재경을 살리려고 저를 끌어내리려는 거죠? 걔네 논란 없애려고 절 방패막이로 쓰려는 거 맞죠? 와… 방송하는 사람들이 지독하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PD님이 그럴 줄이야.”

전상국이 너무하다는 듯 PD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PD는 처음과 다름없는 표정으로 전상국을 보다가 무심히 입을 열었다.

“계속 그렇게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이 글을 올린 아이디 경찰에 조사 넘겨서 ip추적했어요.”

PD는 전상국의 미세한 반응도 다 알아차리려는 듯 눈을 떼지 않은 그대로 말했다.

“전상국 연습생인 거 나오고 또 댓글에서 다른 연습생까지 나왔더군요. 주도원 연습생에게 가서 전부 확인했고 지금 전상국 연습생을 찾아온 건 물어보고자 하는 게 아니라 걸렸다고 말하는 겁니다.”

“PD님? 저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주도원이라는 이름이 나오면서 전상국의 뻔뻔하게 버텨오던 방어가 무너졌다. 다시 목소리가 누그러들면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나오지만 전상국의 심장으 터지기 직전이었다. 주도원은 자신이 벌인 짓임을 알고 있었고 그대로 말했다면 지금 PD는 정말 제게 확인이 아니라 왜 그랬는지 물어보려고 온 게 맞았다.

“전상국 연습생은 우리와의 약속을 어겼으므로 이번 프로그램에서 하차합니다.”

“잠깐만요. 이건 전부 오해예요. 제가 그러지 않았다고요.”

“나머지는 경찰서 가서 말하면 되겠네요.”

PD가 한 걸음 물러나자 그 빈공간으로 두 명의 남자가 끼어들었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그들이 전상국에게 다가오며 주머니에서 자신들의 신분증을 내보였다.

“경찰입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서에 가서 이야기하죠.”

전상국이 뒷걸음질을 치면서 두 손을 마구 휘저었다. 고작 인터넷에 글 하나 올린 거 가지고 경찰서를 가라니. 이건 정말 해도 너무했다.

그러나 경찰이 절대 전상국을 봐주려는 기미가 아니었다. 성큼 다가와서 당장이라도 손목을 잡아챌 듯 손을 뻗어오니 전상국이 비명과도 같은 대답을 내질렀다.

“잠깐만요. 제, 제가 그랬어요. 하차 네 하차할게요.”

그러니까 경찰서에는 가고 싶지 않다고 하려고 했지만 이미 경찰에게 손목은 물론 팔 자체가 붙잡혔다. 전상국이 빠져나가보려고 하지만 결박당한 몸은 남자들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고작 글하나 올린 거 가지고. 서재경 그 새끼는 내가 올린 거 알고도 아무 말 안 했는데! 걔도 공범이에요. 제가 올린 거 알고도 외려 다른 사람한테 말하지 말라고 했다니까요? 저는 서재경이 시키는대로 했어요. 네?”

전상국이 양옆의 형사를 보며 사정하다가 안먹히자 벌컥 화를 냈다.

“그리고 제가 언제 없는 말 올렸어요. 서재경 걔가 진짜 사고쳐서 쫓겨난 거 맞다니까요? 제가 다 봤어요. 아니, 진짜라고요. 서재경이 연습생이랑 붙어먹다가…….”

“시끄럽고 어서 갑시다. 아니면 공무집행까지 얹을 수 있어요.”

귓가에 대고 소리를 버럭버럭 질러대는 게 참기 힘들었는지 경찰이 나직히 경고했다. 그제야 전상국이 잔뜩 수그러지며 그들을 따라갔다.

막 PD를 스쳐가기 직전 전상국이 그를 보았다.

“PD님 저는 그저 잘 되고 싶어서… 그래서 그런 건데 한 번만 봐주세요. 아니면 서재경한테 물어봐 주세요. 걔는 제가 처벌받기 원하지 않을 거예요. 네?”

“전상국 군, 잘 되고 싶다고 남을 밟아도 되는 건 아닙니다. 서재경 연습생과 합의를 원한다면 알아서 잘 해보세요.”

PD가 다른 건 아무 상관없다는 양 제 할 말을 하다가 잊은 게 있는지 말을 덧붙였다.

“참고로 전상국 연습생과 주도원 연습생은 프로그램에서 하차합니다. 그 이유는 소속사에도 따로 연락이 갔으니 우리의 인연은 여기까지네요.”

“PD님? 소속사라뇨. 네?”

당장 프로그램에서만 내려가는 게 아니라 화이트 소속사에서도 쫓겨날 위기에 처한 전상국이 황망한 표정을 지었다. 자기가 한 거라고는 그저 서재경을 끌어내리려고 한 것뿐인데 제가 바닥으로 떨어지게 생겼다.

전상국이 경찰에게 끌려 사라지고 난 후 PD가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연습생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빛을 받아 반짝였으면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오디션인데 이런 일이 생겨버린 게 씁쓸했다.

‘다른 아이를 끌어내리려는 노력 대신 스스로 올라가도록 노력하지.’

PD가 핸드폰을 들어 번호를 눌렀다.

“어, 김 작가. 이야기 끝났어. 하차할 거니까 그거 준비하고 또 논란으로 힘들었던 연습생들을 위해서 작은 프로도 하나 짜 봐.”

미리 알고 방어하지 못한 제 탓도 있었다. 그렇기에 PD는 정우와 재경에게 할 수 있는 보상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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