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아이돌-76화 (76/125)

76화

재경은 제게 쏠리는 시선과 카메라의 앞에서 의연하게 앉아 있었다. 어떤 결과든 받아들이겠다는 듯 초연히 굴고 있으니 하나둘 몰렸던 시선들이 떠나고 있었다. 어차피 재경을 보고 있어 봐야 어떤 것도 알 수 있는 게 아니니 금세 다른 곳에 신경을 보내는 것이리라.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재경은 발표식에 그 어떤 마음도 두지 않으려 반쯤 눈을 내리깔며 지루한 기색을 감췄다. 방송을 위해서 일부 끄는 건 이해하지만 꽤 오래 앉아있었던 것 같았다.

“우선 27위 후보 두 연습생을 발표하겠습니다.”

평소와 다르게 흘러가는 진행에 재경이 티 나지 않게 주변을 훑어보았다. 후보라니?

PD는 처음으로 합격과 탈락의 경계선에 선 두 사람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아마 방송을 위한 극명한 효과를 나타내기 위한 거겠지만 탈락할 연습생에겐 가혹한 순간이었다.

이번만큼은 재경도 최PD가 이런 구성을 한 게 조금 의아했다. 이제껏 가만히 있던 게 무색하게 처음으로 최PD를 빤히 바라보게 되었다.

재경만이 아니라 모두가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저마다 표정을 숨기려고 할 때에 최PD가 화면을 가리켰다.

“후보가 된 두 연습생의 얼굴을 비추겠습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모두가 화면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재경 역시도 다르지 않았다. 화면에 비칠 연습생이 누굴지 기다리면서도 이번 발표식이 유난히 길고 답답하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잠시 후 화면에 로고가 사라지더니 두 연습생의 얼굴이 차례로 드러났다. 재경과…… 중하랑이었다.

재경은 제 얼굴이 떠오른 것보다 중하랑을 보고 더 놀랐다. 낯익은 얼굴이 떠오르면서 재경이 고스란히 당황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왜 하랑이 형이… 설마, 나랑 하랑이 형이라서 이렇게 짠거야?’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냥 27위인 사람을 호명하면 될 일인데 굳이 시간을 들여 후보를 발표했다. 어떻게 보면 1위였던 정우를 호명할 때보다 더 많은 시간을 주면서까지 한 이유가 한 무대에 섰던 두 사람이라 그런 거였다.

중하랑 역시 제 얼굴이 떠오른 걸 보고 놀란 것도 잠시 경쟁해야 할 사람이 재경인 걸 알고 많이 당황한 표정이었다. 자리에 앉아있지만 안절부절못하면서 또 재경이 있는 쪽을 보는 등 중하랑의 얼굴에 여러 표정이 오가고 있었다.

“이번 같은 무대에 올라간 두 연습생이죠. 안타깝게도 둘 중 한 사람은 남아서 다음 무대를 다른 한 사람은 이 오디션을 떠나게 됩니다.”

금세 생각을 정리한 재경은 최대한 입술을 꾹 다물어 표정을 지우려고 했지만 이미 속이 복잡하게 엉켜 버려 답답해져 가고 있었다. 차라리 한 사람을 빨리 지목하지. 재경이 입 안 연한 살을 깨물며 감정을 누르는 동안 중하랑도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다. 다른 연습생들의 웅성거림도 점점 가라앉더니 이내 주위가 조용해졌다.

“두 연습생은 앞으로 나와주세요.”

최PD의 진행에 맞춰 재경이 엉거주춤 일어났다. 꼭 앞으로 나가야 할까, 싶긴 하지만 중하랑이 먼저 움직이는 걸 본 재경이 두말않고 뒤따라갔다.

중하랑과 나란히 서서 누군가 한 명이 떨어지는 이 순간이 달갑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으로 오디션에 와서 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카메라는 야속하게도 재경을 끈질기게 붙잡기만 할 뿐이었다.

중하랑과 나란히 선 재경은 한숨을 감췄다. 매번 겪는 발표식이 이렇게 사람 피말리게 할 줄이야. 이번에는 그냥 떨어지는 정도만 생각했는데 중하랑이라는 인물이 끼어들면서 뒤통수를 얼얼하게 맞은 기분이었다.

재경은 자신을 보는 시선에 슬쩍 옆을 보았다. 재경을 보고 있던 중하랑이 눈이 마주치자마자 환한 미소를 지었다. 카메라를 의식해서 그렇게 웃는 걸까 싶을 정도로 너무도 기분 좋게 벌어지는 입술에 재경이 저도 모르게 상체를 뒤로 물렀다.

형, 왜 그렇게 웃어요.

“중하랑 연습생. 왜 그렇게 서재경 연습생을 보고 웃고 있나요?”

“좋아서요.”

“뭐가 좋은가요?”

“재경이랑 같이 무대에 서서 좋았는데 이렇게 또 나란히 서니까 좋네요.”

중하랑은 여기서 둘 중 한 사람은 떨어진다는 것도 잊었는지 그냥 싱글벙글 웃었다. 오죽하면 재경이 입만 벙긋거리며 ‘형, 그러지 마요.’라고 할 정도였다. 그런데도 중하랑은 환하게 웃다가 손을 들었다.

“저 한마디만 해도 될까요?”

“얼마든지요.”

스태프로부터 마이크를 건네받은 중하랑이 재경을 향해 돌아섰다.

“진짜 놀라긴 했는데 그래도 네가 거기 서 있으니까 좋다.”

뭐가 좋아요, 재경이 입술을 삐죽이며 작게 중얼거렸다. 누구도 들을 수 없게 나직히 중얼거리는 불만을 다 들었다는 듯 중하랑이 씩 웃었다.

“형은 너 찍었으니까 형 몫까지 잘해라.”

“아직 결과 안 나왔어요.”

재경은 마이크를 들고 있지 않다는 것도 잊은 채 중하랑의 말을 잘랐다. 그러나 중하랑은 개의치 않고 마이크를 내려놨다.

“원래는 각자 소감을 들어보고 발표를 하려고 했는데… 발표하겠습니다. 마지막 합격석에 앉을 27위의 연습생은…….”

최PD의 진행과 함께 조명이 어두워졌다. 그러나 중하랑과 재경만을 밝혀주는 라이트 덕분에 재경은 중하랑의 표정을 똑똑히 지켜볼 수 있었다.

“서재경 연습생입니다.”

최PD의 발표와 함 재경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중하랑만을 바라보았다. 슬로우 모션처럼 중하랑의 입가가 휘어 올라가는 것을 본 재경이 얼떨떨한 듯 아무 반응도 할 수 없었다. 분명 이름이 불린 건 자신인데 중하랑이 더 좋아하고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서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 발표식에서 합격하느냐 아니면 탈락하느냐로 바쁘게 굴러가던 머릿속이 하얘졌다. 자신보다 더 기뻐해 주는 누군가의 웃음 하나로.

재경은 제게 다가와서 안아주는 중하랑의 귓가에 속삭였다.

“축하한다.”

“형 떨어졌는데 왜 웃어요.”

“네 덕분에 28위나 한거지. 내 부족한 점 네가 다 메꿔 줬잖아.”

중하랑이 재경의 등을 툭툭 두드려주었다.

“그리고 너는 꼭 올라갔으면 했었어. 이번에 같이 무대 해서 좋았고 다음에도 기회가 된다면 또 하자.”

이제 같은 그룹이 되지 않는 이상 이렇게 한 무대에 설 일이 희박한데도 중하랑은 희망적인 이야기를 끝으로 재경을 풀어 주었다.

“아니, 그게 어떻게 돼요. 형이랑 나는 같은 소속사도 아니고 나는…….”

가수할 생각이 없는데. 재경은 말도 안 된다고 중얼거리며 중하랑의 옷을 꼭 붙잡았다. 하필이면 이번 무대에서 가장 친해졌던 사람과 이렇게 갈리는 게 너무도 충격이었다.

“중하랑 연습생, 아쉽게 탈락한 소감 부탁드립니다.”

최PD는 영악하게 재경이 아닌 중하랑에게 마이크를 건넸다. 중하랑이 흔쾌히 마이크를 건네받으며 카메라를 보았다.

“이번 무대를 할 때 저를 포함해서 저희 팀원 모두가 재경이한테 반했습니다. 막내인데도 누구보다 성실하고 열심히 하고 또 애가 진짜 착했거든요. 우리를 가르쳐 주느라 자기 연습하는 시간이 부족했는데도 불만 하나 없이 늦은 시간에 혼자 연습해서 메꾸는 걸 보고 얘는 진짜 잘 되어야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이번에 재경이가 올라가는 게 맞고 저는 재경이가 데뷔할 수 있도록 끝까지 응원할 것입니다.”

중하랑은 처음부터 끝까지 재경의 칭찬만 가득 담았다. 중하랑의 말에 따라 합격한 한시우도 탈락한 다른 팀원들도 마이크 없이 맞다고 동의해주었다.

“재경이가 말이 없어서 오해가 생길 수 있어요. 그렇지만 관심을 가지고 바라봐주시면 누구보다 착한 애라는 걸 알 겁니다. 재경아, 끝까지 희망을 놓지 마.”

중하랑이 재경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응원을 건네주고 내려갔다. 재경은 중하랑이 치고 간 어깨를 매만지며 합격자 석으로 걸어갔다.

늘 중하랑은 재경의 어깨를 툭툭 치고는 했다. 그게 중하랑만의 표현 방법인가 싶은데 지금은 이상하게 어깨가 무겁게 느껴졌다. 자신의 합격을 누구보다 기뻐했고 마지막 소감마저 제 이야기를 해 준 중하랑 때문에 재경은 무거운 마음을 안고 자리에 가서 앉았다.

최PD가 모든 순위를 발표하고 나서 발표식을 마무리하는 동안 합격자 석에 앉은 하준과 정우가 눈을 마주쳤다.

“이거 아무래도 일이 수월해지겠는데?”

전혀 생각지 못한 구원 투수가 나타나서 재경을 응원해 주었다. 중하랑 덕분에 하준은 계획했던 것을 조금 더 빠르게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발표식이 끝나고 SNS에 한두개씩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  *  *

하준@YOONHA

안녕하세요. 윤하준입니다.

요즘 오디션에 집중하느라 자주 들어오지 못해 죄송합니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지켜봐 주시고 우리 재경이도 많이 응원해주세요~!

#서재경 #형_원픽은_너야 #재경아_사랑해

└이런 짓 좀 하지마 재경이 보기 창피하지도 않아?

└내 고백에 후추 뿌리지 마 빡건후

└재경이한테 이른다?

└님아.. 그러지 마오

넘사벽@QDF3DSR

나 #서재경 연습생으로 만난 적 있었는데 실력 좋고 성실한 애였오.

이번에 잘됐으면 좋겠다

└나 재경이랑 같은 학굔데 되게 조용해

└학교도 잘 나오다가 갑자기 안 나와서 무슨 일이지 했는데 오디션에 나오고 있더라..

솔까말해본다@DDDD33DD33

서재경 까는 애가 누굴지 눈에 보인다

W에서 온 애인 거 같은데..

재경이 연습생일 때도 어떻게 돌려까지 못해서 안달냈던 애 있거든

어디 한번 그때 일 풀어봐?

└누구?

└└2222

└└33333333

└└4444444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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