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카메라에 찍히지 않으려고 해봐야 소용없었다. 제작진은 최대한 모든 연습생을 찍으려 했다. 카메라로부터 도망가는 걸 포기하니 이제 뭐, 호텔에서의 생활이 더 편해졌다.
“소운이 나오네.”
하준의 목소리에 재경의 흐릿했던 초점이 점점 또렷해졌다. 다른 팀의 무대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가볍게 봤는데 소운이 나온다고 하니 조금 진지하게 보게 되는 마음이 있었다.
“소운아.”
“네, 재경이 형.”
“내 픽이 너인가 봐. 네가 나오니까 저절로 집중하게 돼.”
재경의 담담한 고백에 소운이 놀란 얼굴 위로 발긋한 빛이 올라왔다. 갑자기 열이 오른다는 듯 소운이 부산스럽게 손부채질을 했다. 그러다 소운의 입매가 파들거리며 떨리더니 양쪽으로 벌어졌다.
“형, 갑자기 절 픽이라고 하시면 어떡해요. 놀라잖아요.”
소운은 방송에 집중하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하준이 옆에서 소운의 머리를 살살살 밀자 머리만 왔다 갔다 하는 인형처럼 움직였다. 소운의 부끄러워하는 모습에 재경은 다시 화면을 보았다. 눈화장이 진하게 들어간 소운이 잔뜩 멋있는 방송과 옆에 있는 애랑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저도… 저도 형 팬이에요.”
“어, 그래. 고맙다.”
훈훈한 대화에 어색해진 재경이 시선을 돌렸다. 그저 소운을 볼 때 더 자세히 보게 되었다는 건데 이렇게 팬으로 연결되어버린 게 어이없었다. 그런데 기분이 나쁘지 않단 말이지.
소운의 무대가 지나가고 어느새 마지막 한 팀만 남았다. 재경은 이제 민낯으로 나오는 제 모습을 익숙하게 받아들였다. 늘 가면처럼 진한 화장을 하고 나오던 때와 달랐다. 그래서인지 더 눈매가 밋밋한 거 같기도 하고 얼굴도 노란 거 같기도 하고.
“네 얼굴이 신기해?”
귓가에 들려오는 속삭임에 재경은 대답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가까이 붙어있는 정우의 코가 머리카락에 스치는 걸 느끼며 재경이 그에게 고개를 돌렸다.
생각 이상으로 가까이 있는 그의 얼굴에 재경이 입술을 꽉 다물었다. 놀란 티를 내지 않으려고 몸에 힘이 들어간 것이다.
자기가 할 말을 하고 멀어진 줄 알았다. 재경은 화면에서 흘러나오는 빛에 음영이 진 정우의 얼굴을 보았다. 이마, 코, 광대 어디든 빛이 닿는 곳과 아닌 곳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며 그의 얼굴에 입체감이 도드라졌다.
잘생겼고 특유의 매력이 돋보이는 얼굴이었다. 시원하고도 잘생긴 이목구비가 그림처럼 어울리고 그 정점으로 찍은 눈빛이 인상깊었다. 아직 소년과 청년의 중간인 얼굴에서도 이런데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욱 눈을 뗄 수 없을 것이다.
제 얼굴만큼이나 자세히 들여다보게 된 정우의 얼굴 또한 낯설었다. 실은 그의 얼굴을 이렇게 가까이, 자세히 들여다본 적이 없었던 거 같았다. 한 무대에 서도 늘 그들은 다른 곳을 보곤 했으니까.
재경은 제 생각을 정우에게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했다. 자신은 민낯이거나 연한 화장으로 이목구비가 흐려졌고 이정우는 민얼굴도 이목구비가 진하다.
“나 못생기게 나오지 않아?”
“…일단 목소리 낮춰 봐.”
“왜?”
“다른 사람이 들으면 너 욕먹을 거 같으니까. 갑자기 왜 네가 못생기게 나온다는 건데.”
“봐봐. 머리는 젖어서 얼굴에 붙어있고 피부도 노랗게 떴어. 이목구비가 흐릿하잖아.”
정우가 설명을 들으며 방송에 나오는 재경의 모습을 보았다. 나름 진지하게 들여다 보았지만 딱히 재경의 말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래. 그렇다 치자. 그런데 다른 사람한테는 그런 말 하지 마.”
정우는 그냥 재경의 의견을 존중해주는 대신 욕먹지 않도록 조언을 건네줬다.
“그건 아무리 네 팬인 소운이라도 받아들이지 못할거다.”
재경의 눈이 가늘어졌다. 소운과의 대화를 들었구나.
“형, 나와요. 나온다.”
소운이 재경보다 더 긴장한 목소리로 조명으로만 비추는 무대에 집중했다. 주먹을 꽉 쥐고 침을 삼키는 소운의 반응에 다른 사람의 무대를 저렇게 보는 게 신기해하면서도 재경 역시 제 무대를 보았다.
벚꽃이 흩날리는 영상과 함께 6명의 남자가 나타났다. 정장을 캐쥬얼한 옷으로 바뀌니 처음의 컨셉은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바뀌었다.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6명이 움직이는 동작이 전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괜찮았다.
풀로 찍힌 무대에서 6명이 하나의 안무를 추고 빠르게 동선을 변화시켜 다음 안무를 이어가는 등 재경이 보지 못한 전체적인 모습이었다. 하나의 안무에 맞춰 6명이 움직이고 있으니 한 팀처럼 느껴졌다.
짧은 순간 훅을 치고 들어오는 양채준을 보고 있으니 금방 1절이 끝났다.
그다음은 잘 알고 있는 순서였다. 둘씩 짝을 지었던 그 구간이었다. 2마디에 불과한 짧은 구간이었는데 방송에서는 같은 구간을 3번 반복시키며 마스터와 대기실에 있는 연습생들의 반응을 비췄다.
하준은 간단한 마술로 카드를 나타내며 나른한 미소를 짓고 있었고 태연과 양채준은 귀엽게 웃었다. 그리고 최우주는 평소의 수줍은 모습이 사라지고 입동굴이 보일 정도로 시원한 웃음을 지었다.
정우와 재경도 차례대로 카메라에 비쳤는데 재경이 도발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에 정우가 못 말린다는 듯 웃는 게 고스란히 잡혔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마스터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던졌다.
- 왜 저렇게 보지. 재경아? 응?
- 진짜 너무 눈에 띄네, 저 둘.
- 쟤네가 케미가 좋다.
재경은 내심 만족스럽게 자신의 무대를 보다가 들린 마스터들의 말에 뚱한 표정을 지었다. 이정우랑 무슨 케미가 있다고. 없어. 없어.
방송의 마지막은 무대를 끝마친 모든 팀을 모으고 가장 잘한 팀을 뽑는 결과발표였다. 이 결과를 통해 1등은 후에 진행될 라운드에서 한가지의 혜택을 부여받는 것과 동시에 그들의 연습 과정을 따로 추린 너튜브 영상 홍보가 올라갈 혜택을 얻는다.
“1등 팀은… 인사팀입니다. 축하합니다.”
등수가 발표가 되고 각 팀의 모습이 나왔다. 소운이 있던 팀이었다. 누구랄 것도 없이 무대를 즐겼던 게 마스터들에게도 전달되었는지 가장 높은 점수가 나왔다. 인사팀을 축하해주면서도 부러워하는 그들의 눈빛이 전부 카메라에 잡혔다.
저 때 자신은 어땠더라. 생각하고 있자 거짓말처럼 화면에 제 얼굴이 잡혔다. 어색한 미소조차 없이 소리 없는 박수만 보내는 제 표정에 복잡한 감정이 드글드글 붙어있었다. 남들은 1등하지 못해서 그렇다고 생각할 딱 그 표정이었다.
생각났다.
알바 잘릴까 봐 걱정했었다.
그런데 제 옆에서 정우 역시 같은 반응이었다. 자신만큼이나 생각이 많이 보이는 얼굴이었다.
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 * *
TALK
대학가면살빠진다며 [아니 정우 슨배님 왜 여기에…… 우리 어제 강의실에서 만났자나여]
햄볶 [재경이 너 이제 많이 볼 수 있게 됐구나 그래서 누나 요즘 넘 햄볶해]
아라 [역시 믿고 보는 재경이 무대를 잡아먹네 실력 비쥬얼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다…… 처음부터 카메라에 제대로만 잡혔으면 일등각인데ㅠ]
puppup [정우 너 강한 것만 잘 어울릴 줄 알았더니 왜 이렇게 스위티해졌어…… 나 너무 설레자나]
alcuTek [하......... 재경아 나 어떡하지 벌써 앨범 오백만개 쟁여둘 생각하고 있어]
HAPPY BH [우주가 생겨나고 내가 생겨났다]
귀엽자나 [태여나.. 그냥 아무것도 못할 거 같은데 왜 이렇게 춤을 잘추는거야ㅠㅠ]
바라바리 [하준 오빠 사랑해요 꼭 끝까지 가세요!!!!!!!!]
동백꽃 피었다 [재경이 똑똑해... 재경이 멋있어... 재경이 귀여워... 재경이 깜쥑맬렁콩떡해... 하... 니다해라]
happy [카메라에 재경이 잡힐때마다 흥분해서 콧김내뱉었더니 비염이 완치되었습니다. 지병도 치료해주는 요정 재경이 사랑해><]
러블리 [정우오빠 꼭 데뷔하세요! 응원할게요]
왜갔니why [내 최애픽은 정우인데 자꾸 하준이랑 태연이도 걸려 어떡하지? 왜 jt는 이런 보물을 한꺼번에 내보낸거야]
쏘카 [양채준이랑 민태연이 이미지가 너무 겹치네 이소운까지 귀엽상 애들끼리 피터지겠는데?]
**234** [내 우심방 좌심방 주인 찾았네. 우재경 좌정우 느그 둘땜 이 누나 빈맥온다.]
내안목은소중하다 [저 두명 뭔데 내 심장을 치고 갔어... 이건 되는 주식이다]
쪽쪽이 [재경이 진짜 인물은 인물이네 말랑말랑하게 생긴 얼굴로 다 잘하는 것도 반전인데 심지어 무대를 씹어먹잖아 그런 와중에 왜 저렇게 도발적으로 보는건데 설마 너 투표 안했다고 그러는거야??응? 그렇다면 미안해 이제라도]
올랑올랑 [재경이 영상 너튜브에 퍼뜩퍼뜩 올려라 안그러면 그냥 바로 트럭 몰고 쫒아간다 알겠냐? 알.겠.냐.고. 그 자리에서 바로 기냥 나랑 협상하는 거시여. 없으면 미리 증조 할모님 보러 간다 생각하면 되시고. 난 딱 한 놈을 원혀 서재경 고놈 아주 내 심장을 4개로 분리 시켜서 좌심방 우심방 좌심실 우심실이 날뛰고 있거덩?]
웅앵웅 [케미미쳤어 나중에 일대일로 무대하면 좋겠다 쟤네 둘이서만 추는거 보고 싶옹]
하이바이 [저 방금 둘이 데뷔해서 아이돌판 씹어먹는 미래 보고 옴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