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화
“야, 직캠 조회 수 봐. 너 이번에 아슬아슬하겠다. 존나 쪼렙.”
전상국은 제 옆에서 직캠 조회 수를 비교하는 주도원을 노려보았다. 같은 소속사이기도 하고 또 이번에 같이 오디션을 지원해서 종종 어울려 다니지만 좋은 감정이 있는 건 아니었다. 엄밀히 말하면 경쟁자니까.
다만 내일 다시 합숙에 들어가기 전에 사이좋은 모습을 찍어 SNS에 올리라는 실장의 명령에 억지로 만났다.
전상국은 빨리 올리고 헤어질 요량으로 핸드폰을 건드리고 있는데 정작 주도원은 이리저리 검색질만 하고 있었다. 그는 아예 직캠을 하나씩 보면서 전상국에게 걱정을 가장한 빈정거림을 던졌다.
“너 발버둥이라도 쳐야 하는 거 아니냐?”
“개소리하네. 내가 왜 발버둥을 쳐.”
“너 조회 수 만도 안 나와.”
주도원이 전상국이 잘 볼 수 있도록 핸드폰의 들이밀었다. 그리고 직캠 아래 찍힌 숫자를 가리켰다. 전상국은 보기 싫지만, 괜히 그럴수록 주도원에게 말릴 걸 알기에 태연한 표정을 꾸며냈다. 8807이라는 숫자 그리고 아래 주도원의 직캠에 찍힌 9만을 봤지만 못 본 척 고개를 돌렸다.
“직캠만 있냐?”
“직캠도 있는 거지.”
주도원이 낄낄거리며 전상국을 비웃었다.
“어차피 떨어질 거 나라도 밀어주든가. 내가 데뷔해야 네 자리가 생기는 거 알지?”
소속사에서 그랬다. 데뷔 조의 마지막 자리를 두고 전상국과 주도원을 생각하고 있다고. 그것을 판단하기 위해 둘에게 오디션에 참가할 것을 제의해 왔다. 둘 다 오디션에서 데뷔하면 그건 그것대로 좋고 아니면 한 명이라도 데뷔하게 되면 다른 사람은 소속사 데뷔 조에 들어간다.
지금으로서 전상국은 오디션에서 데뷔하기가 글러 보였다. 주도원이 말하지 않아도 자신이 그렇게 반응이 좋지 않은 건 잘 알고 있었다.
“와, 진짜 서재경, 이정우는 미쳤네. 얘네는 천상계야.”
이리저리 직캠을 눌러보던 주도원이 꺼낸 이름에 전상국이 순간 미간을 팍 찡그렸다. 가뜩이나 기분이 안 좋은데 서재경의 이름을 들으니 더욱 짜증이 올라왔다. 그런 전상국의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주도원이 서재경의 영상을 재생시키며 말했다.
“서재경 직캠 조회 수 얼만지 아냐?”
주도원이 장난스럽게 화면을 톡톡 두드리며 묻자 전상국이 다소 높아진 언성으로 대꾸했다.
“내가 그 새끼 조회 수 알아서 뭐하게.”
“까칠하기는. 너 얘 존나 싫어 하더라.”
서재경이 나가고 나서 들어온 주도원은 전상국이 저렇게 파드득 떨 때마다 재밌다는 반응으로 보았다.
“20만이야. 이거 직캠 올라온 지 얼마 안 됐는데 존나 높지 않냐?”
“너 같은 새끼가 눌러 줬나 보지.”
전상국의 말대로 서재경의 직캠을 계속 반복 재생하던 주도원이 어깨를 으쓱였다.
“확실히 보는 맛이 있어. 얘는 그냥 아이돌 같다니까.”
“아이돌 같은 소리하네. 처돌았냐?”
“새끼, 흥분하기는. 너 대체 서재경 이름만 나오면 왜 그러냐?”
주도원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으니 전상국이 짜증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전상국은 어느 날 갑자기 굴러들어온 돌 같은 서재경을 별로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소속사에서 자리를 잡았고 연습생 사이에서도 보이지 않는 서열 정리를 마친 제 구역에 서재경이 끼어들어 온 것이었다.
처음엔 서재경을 어떻게 눌러야 할까 고민했지만, 딱히 누구와 사귈 마음이 없는지 서재경이 혼자 다니기에 전상국은 그를 가만히 놔두었다.
어디서 깨나 구른 듯 실력도 제법이라 전상국은 서재경을 건드는 대신 공존을 택했다. 그러나 그런 전상국에게 먼저 태클을 건 건 서재경이었다.
“재수 없는 새끼니까.”
연습생 생활이 지겨워서 나름의 활력소를 찾고자 애 하나 건들고 있는데 그걸 서재경이 제지했다. 전상국이 만들어 놓은 서열을 흐트러뜨리는 것도 모자라 다음 데뷔에 그 새끼를 눈여겨보는 실장 때문에 전상국은 눈에 뵈는 게 없었다.
당장 자신도 언제 데뷔할 줄 모르는데 서재경 그 새끼한테 빼앗길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 그래서 서재경이 감싸 주던 새끼를 꼬드겼다. 다신 괴롭히지 않겠다는 약속과 함께 서재경을 소속사에서 내보냈는데 이번 오디션에서 만난 것이다.
“그래도 다행이다. 둘이 곧 헤어질 거잖아. 너는 떨어지고 서재경은 남고.”
“야이, 씨.”
“왜? 맞말 들으니까 짜증 나냐?”
주도원이 킬킬거리며 서재경의 직캠을 다시 재생시켰다. 조회 수 올려줘야지, 장난스럽게 중얼거리면서.
안 그래도 서재경에게 바짝 엎드리라고 했던 전상국은 제가 엎드리게 되는 거 같아 기분이 더러웠다.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데 씨발. JT에서는 아주 데뷔 조를 데려와선 네 자리 고스란히 처먹겠네. 아… 나 데뷔할 수 있는 건가.”
주도원이 핸드폰을 던지듯 놓고 테이블에 엎드렸다. 그의 앓는 소리에 전상국은 무시하듯 쳐다보았다가 불현듯 하나의 생각이 들었다.
“야, 주도원.”
“왜.”
“너 진짜 이번에 오디션으로 데뷔해라.”
“뭐?”
“대신 약속해라. 너 데뷔하는 대신 소속사 데뷔 조 자리는 내 거다.”
“그거야 내가 9등 안에만 들어갈 수 있으면… 그런데 무슨 생각이냐.”
아까까지만 해도 여유가 없어 보이던 전상국이 주도원을 보고 웃고 있었다.
“서재경 떨어뜨리게. 그 자리로 네가 들어가 봐.”
막강한 경쟁자를 하나 제거해 준다면 주도원이나 자신에게 좋은 일이겠다.
“어쩌려고.”
“서재경한테 붙은 소문 이용해야지.”
전상국은 이번 2차 발표식이 끝나고 난 후를 떠올리며 야비한 미소를 지었다.
“저 새끼 눈깔 미쳤네.”
주도원은 전상국의 표정을 보고 중얼거리면서도 딱히 말리지 않았다.
* * *
세 번째 합숙은 발표식 전부터 이루어졌다. 미리 곡을 받고 연습하다가 발표식을 통해 탈락한 자를 제외 남은 자는 그대로 연습을 이어가면 된다.
재경은 호텔로 들어오자마자 스태프가 내민 커다란 통에서 하나의 공을 꺼냈다. 이제 제비뽑기 같은 거는 왜 뽑는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냥 뭐가 나오면 알아서 안내해 주겠거니.
“2인실이 되었네요.”
이번 제비뽑기는 방이구나. 재경은 스태프가 내미는 카드를 받아들고 바로 룸으로 향했다. 옷을 갈아입고 미션부터 시작한다는 안내를 들었으니 더 머물 필요가 없었다.
자신을 따라오는 카메라도 익숙하고 엘리베이터도 익숙하고 문을 열었을 때 보이는 이정우의 얼굴도 익숙하고…….
“설마 같은 방 아니지?”
재경이 지긋지긋하다는 표정과 함께 말을 건네자 정우가 입매를 비틀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분명히 만날 놈이 또 만나지 말라고 제비뽑기 하는 거잖아.”
그런데 어떻게 널 또 만나, 재경의 불만스러운 말투에 정우가 헛웃음을 뱉었다.
“나랑 같은 방 쓰는 게 싫어?”
“아니, 너랑 붙어 다니는 게 싫어.”
“막상 지낼 땐 잘 지내놓고 이제 와서?”
“늘 그랬지만 이제 와서 그럴 수도 있지.”
재경이 안으로 터덜터덜 걸어들어오며 하는 말에 정우가 팔짱을 끼고 바라보았다. 진짜 마음에 안 드는데 뭐라고 해봐야 재경이 다 받아치니 아예 노려보기만 했다.
“아씨, 죽는 줄 알았네.”
그때 화장실의 문이 열리면서 한 사람이 나왔다. 재경이 돌아보자 막 바지 속에 들어간 티를 꺼내고 있던 건후가 그를 향해 검지를 들었다.
“서재경? 너 이방이야?”
“그런데.”
“오. 대박. 나도 이 방인데. 이번 룸메이트는 너구나.”
건후의 말에 재경이 정우를 돌아보았다. 정우는 왜 여기 있는지 싶은 눈빛에 건후가 알아서 설명해 주었다.
“정우는 그냥 놀러온 거야.”
“아…….”
그것도 모르고 재경은 정우에게 또 만났냐면서 싫은 티를 팍팍 냈다. 정우는 팔짱을 풀지도 않은 채 재경을 지나쳤다.
“두고 보자, 서재경.”
정우는 재경의 태도에서 잔뜩 토라진 듯 경고를 날리고 나가 버렸다.
“쟤 왜 저래?”
“몰라.”
재경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침대로 다가갔다. 한눈에도 확연히 더러워진 침대를 보고는 다른 침대 옆에 제 가방을 내려놨다.
“잘 지내보자.”
건후가 재경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악수를 하자는 의미였지만 재경은 건후의 손을 무시하고 그의 침대를 가리켰다.
“너 잘 치우면서 지내라.”
침대뿐만이 아니라 정말 지긋지긋하게 안 치우는 건후의 습관을 알기에 재경은 미리 잔소리를 했다.
“안 그러면 선 그어 놓을 거다.”
“오. 선 그어서 넘어가면 네가 가져가는 거야?”
책상에 선 긋는 것처럼 좋아하는 건후의 웃음에 재경은 대답할 힘을 잃었다. 짐을 정리하고 나가는 사이 재경은 정우의 경고를 잊어버렸다.
* * *
홀에 들어가자마자 소운과 대화를 하던 태연이 재경을 발견하고 손을 들었다. 오랜만에 본 게 반가운지 붕붕 팔을 흔들고 있으니 소운 역시 어서 오라고 손짓했다.
재경은 그 신호를 무시할 수 없어 태연의 뒤에 가서 앉았다.
“잘 지냈어요?”
태연이 의자에 팔을 기대며 재경에게 반가움을 들어냈다. 그의 주변에는 소운부터 시작해서 친한 연습생이 많았기에 재경과의 인사에 소홀히 하지 않았다. 오히려 소운도 재경과 오래 떨어져 있었던 만큼 많이 반가워했다.
“잘 지냈어.”
“형, 이따가 밥 같이 먹어요.”
“어.”
재경은 심드렁하게 대답하자 태연이 소운과 끊긴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이번에 몇 명 그룹으로 갈지…….”
막 말을 늘어놓던 태연은 갑자기 제 정수리에 닿는 온기에 뒤를 돌아보았다. 누가 제 머리에 손을 올렸나 싶었는데 의외의 사람이 팔을 뻗고 있었다.
“재경이 형?”
지금껏 태연의 머리를 한 번도 쓰다듬지 않았던 재경이었다. 특히나 스킨십은 더욱 없었기에 태연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대신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미안하다.”
“네? 뭐가…….”
태연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보았지만, 재경은 그냥 그의 머리를 두어 번 쓰다듬고 손을 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