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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아이돌-53화 (53/125)

53화

아진짜로@really_really_really

예고 무슨 일이지?

#CHOOSE NINE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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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 무슨 일이지?

└벽치기 무슨 일이지?

*  *  *

재경은 빠른 손놀림으로 테이블을 정리하면서도 머리 한 켠에는 어젯밤 엄마와 나눈 대화로 가득찼다. 엄마에겐 안된다고 했지만 원래는 자진하차도 생각했던 일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그걸 생각한 건 아니었다.

재경은 미래를 알고 있다는 이유로 누군가의 자리를 빼앗아 들어갔다. 자신에게는 빚을 피하기 위한 대안이었지만 그게 누군가에는 아이돌이 되고 싶은 희망일 수 있었다.

그에게 미안해서라도 자진하차까지는 하지 않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1차에서 남게 되었고 혹시나 2차 3차까지 남게 된다면 재경이 알아서 나오는 방법밖에 없다고 여겼다.

그런데 엄마가 실장을 언급했을 때 심장이 뚝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아직까지 연락하고 있을 줄이야.’

그나마 엄마가 실장과 계약을 하지 않은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재경이 오디션에서 떨어지거나 하차하자마자 쓰겠지만.

처음의 계획은 이미 어그러졌다. 한달만 버티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은 여전히 오디션에 참가하고 있었고 엄마도 실장과 계속 인연을 맺고 있었다. 그렇다면 조금 더 버텨야 했다.

‘새해까지 남은 시간이…….’

이제 점점 추워지고 있는 계절에 재경은 자신이 20살이 넘을 시간을 계산했다. 50일 정도 남았다. 그리고 얼추 오디션이 끝나는 것도 그 정도 기간이었다.

재경은 20살이 되기 며칠 전은 잠깐 잠수를 탈까도 생각했다가 말았다. 그래봐야 엄마가 계약을 안 할 것도 아니고.

막 테이블의 물기까지 닦아내고 빈 그릇을 든 재경이 앞으로 누군가 다가왔다.

“이쪽으로 앉으세요.”

다 치워놓은 빈자리라 다가온 줄 알고 재경은 가벼운 인사와 함께 앉아도 된다는 걸 설명했다. 그런데 상대방이 가만히 서 있기만 하니 재경이 다시 설명할 참으로 고개를 들 때였다.

“뭐야. 네가 여기 어떻게 왔어?”

“너 여기서 일하는 거 떠서…….”

정우는 말로 설명하기보다 아예 보여주려는 듯 핸드폰을 톡톡 두드리더니 눈앞에 들이밀었다. SNS에 자신이 일하는 모습이 어렴풋이 찍힌 사진과 함께 가게명이 있었다.

이 가게에 들른 손님이 그랬나 싶은데 사진 찍은 자리가 어딘가 이상했다. 재경이 어디에서 찍었나 돌아보니 사장이 헛기침과 함께 고개를 돌렸다.

“일단 앉아.”

재경이 물러서자 정우가 자리에 앉았다.

“혼자 왔어?”

“응.”

“혼자서 밥 먹으려고?”

정우가 계속 고개만 끄덕이니 재경은 그래, 그래라. 라고 반응하고는 돌아섰다. 빈그릇을 갖다놓기도 해야하거니와 메뉴판도 가져와야 했다. 그러다 급하게 고개를 돌리는 몇몇 시선을 알아챘다.

재경은 한숨이 나오려는 걸 감추고 움직였다. 일단 일이 우선이었다.

“맛있게 먹어라.”

정우의 앞에 막 따끈한 김이 피어오르는 파스타를 내어주며 말했다. 고소한 크림 파스타를 시킬 줄 몰랐다. 그 안에 피클까지 넉넉히 챙겨주고 돌아서려는데 정우가 재경의 옷을 잡았다.

“언제 끝나?”

“알바?”

정우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니 재경이 벽시계를 보았다. 원래 재경은 알바에서 짤릴까 고민하던 참이었다. 오늘까지 알바할 수 있으니 마감까지 할까 싶은 마음에 사장에게 말을 꺼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다녀올 때까지 자리를 비워둘테니 갑자기 그만두지나 말라고 하셨다.

“7시.”

그래서 재경은 오늘 원래대로 퇴근할 수 있었다.

“기다릴게.”

“날 왜 기다려.”

“갈데가 있어서.”

재경은 오늘 정우와 만날 것도 몰랐는데 어디를 가자는지 몰라 의아한 듯 보았다. 그러나 정우는 제 앞에 있는 파스타를 휘적일 뿐 더 말해주지 않았다.

“먹고 가라.”

재경은 정우의 기다린다는 말을 거절했다. 그리고는 대답도 듣지 않고 돌아섰지만 정우는 상관없는지 묵묵히 파스타를 먹었다.

“사장님. 저는 괜찮은데 정우는 손님으로 온거잖아요. 그러니까 사진 찍지 말아주세요.”

재경은 주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카운터에서 몰래 보고 있던 사장에게 다가가 말했다. 안 그래도 재경과 정우를 한 화면에 잡히도록 찍은 사장이 찔끔한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이건 어디까지나 팬이라서…….”

“대신 제 얼굴은 대놓고 찍으셔도 되요.”

“으응?”

안그래도 재경에게 허락받지 않고 찍은 거라 일부러 흔들린 사진으로 올렸던 사장이 솔깃한 듯 마음이 기울었다.

“그래도 되, 되나?”

“사장님께서 많이 배려해주셔서 여기서 일할 수 있는 거잖아요. 아무리 사정이 있대도 며칠씩 빠지는 알바생이 어딨어요.”

거기다 파스타집은 주급으로 계산되어 재경의 막힌 숨통을 뚫어주는 곳이었다. 재경이 살짝 미소지으며 대답하자 사장이 그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여지껏 잘 웃지 않던 친구였던지라 놀라서 어쩔 줄 모르던 사장이 조심스럽게 핸드폰을 내밀었다.

“그럼 우리 셀카로 한 장 찍어도 되겠니?”

30대의 여사장이 수줍은 듯 건넨 말에 재경은 흔쾌히 그녀의 핸드폰을 들었다. 그리고 곧장 셀카로 들어가서 사진을 찍었다.

“나 이거 SNS에 올린다?”

“네.”

“고, 고마워.”

재경의 상관없다는 듯한 반응에 사장이 핸드폰을 고이 품었다. 어쩌다 우연히 재방송으로 본 CHOOSE NINE프로그램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보다가 제 알바생을 발견하고 얼마나 놀랐던지. 재경이 노래하는 모습에 속절없이 빠져들게 된 사장은 어느새 팬이 되어버렸다.

재경은 사장이 좋아하는 걸 보다가 주방으로 들어왔다. TV에 나오는 이유만으로도 홍보에 쓰일 수 있다니 사장이 이렇게 좋아하는 거겠지.

그렇게 생각한 재경은 다음 손님을 받으며 부지런히 움직였다.

*  *  *

“너 왜 기다리나 했더니 여긴 왜 가려는거야.”

재경은 정우가 정말 끝까지 기다린 것보다 같이 가자는 곳이 PC방인 게 더 황당한 듯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정우는 중간에 멈춰선 재경을 잡아끌었다.

“잠깐이면 돼.”

“이해할 수가 없네.”

재경이 툴툴거리며 정우의 뒤를 따랐다. 왜 그러는지 말이라도 해주면 좋으련만 답답하리만치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냥 가버릴까 싶은데 이미 오는 동안 궁금증이 커버렸다.

재경은 한숨을 내쉬며 경고 아닌 경고를 날렸다.

“나 연습생 고인물이라 게임 같은 거 못한다.”

연습생으로 바친 시간이 인생의 대부분이라 게임의 ㄱ자도 모른다는 설명을 미리 해줘야지 싶은 마음에 한 말이었다.

“나도 고인물이야.”

그러니 정우가 태연히 대꾸하며 재경과 PC방 안으로 들어갔다.

“한 자리만 쓸게요.”

알바생은 둘이 와서 카드 한 장만 가져가는 걸 보더니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정우가 가장 구석진 곳으로 들어가자 재경 역시 그를 따라가면서 내부를 둘러보았다. 일자로 늘어선 컴퓨터와 의자들. 새삼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으니 어느새 정우가 있는 자리까지 왔다.

“이제 말해봐. 여기 왜 왔어?”

“내일 호텔 오기 전에 알아야 할 게 있어서.”

정우는 재경에게 보라는 듯 인터넷을 들어갔다. 그리고 재경에게 쓰라는 듯 헤드셋을 건넸다. 재경은 정우가 들어간 인터넷에서 익숙한 무대를 확인하고는 헤드셋을 꼈다.

정우가 곧장 재생을 누르자 '내 이름을 불러줄래'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동영상은 2라운드로 꾸며진 무대가 나오고 있었다.

“이게 벌써 방송됐어?”

“아니, 이거 직캠으로 먼저 일부 뜬거야.”

이걸 보여주려고 부른 건가?

재경은 계속 봐야 하나 싶은 한편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정우의 말대로 한사람씩 찍은 거라고 올라온 직캠은 누군가의 동선을 따라가고 있었다. 풀로 찬 무대가 아니라 어색하기도 하고 또 화면이 흔들리기도 했다. 그래도 재경을 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제 얼굴에 따라붙는 카메라와 노이즈가 살짝 섞인 노래는 확실히 퀄은 떨어졌지만 재경의 표정만큼은 제대로 담아주었다. 무대가 끝나고도 헤드셋을 벗지 않는 재경 대신 정우가 벗겨주었다.

“처음 선 무대 생방송 안 봤다고 했었지. 그리고 이번 무대도 안 봤을 거 같아서.”

“그래서 이거 보여주려고 그런거야?”

“그래. 그리고 내일 오기 전에 객관적으로 알았으면 했고.”

재경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정우를 보았다. 자신의 직캠을 보여줘서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직캠 아래로 끝없이 늘어진 댓글에는 온통 재경을 향한 칭찬뿐이었다. 이런 반응을 보여주려고 그러는 걸까.

“1차 발표식 때 나한테 한 말은 뭐냐.”

54명이 남아도 최종적으로 뽑는 건 9명이라고 했었다. 정우의 말이 재경에겐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위안이 되었었다. 그런데 왜 변덕스럽게 지금 이런 걸 보여주는지.

흥분한 재경과 다르게 정우는 다시 동영상을 되돌리더니 어딘가를 가리켰다.

“무대에 선 네 표정 보라고.”

정우가 다시 재경이 나오는 장면을 재생시켜주었다. 차분한 그의 반응에 재경은 이상한 걸 느꼈다. 재경은 제 직캠과 함께 반응을 보라는 줄 알았다. 그런데 정우는 창을 내리지 않고 연신 재경의 영상을 반복 재생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클로즈업 되는 재경의 표정을 톡톡 두드렸다.

“그러니까 내 표정을 보라고?”

“다른 사람 볼거면 그렇게 하고.”

정우는 네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하지만 손은 몇 번이나 재경의 직캠을 반복 재생시켰다. 재경이 무대에서 어떤 표정으로 춤을 주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굳이 동영상을 돌려볼 필요도 없었다. 재경은 자신의 감정을 알고도 모른 척하고 있는 것뿐이니까.

“그만 일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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