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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아이돌-47화 (47/125)

47화

알람에 맞춰 일어나 씻고 나온 정우가 갈아입을 옷과 함께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젖은 머리를 대충 수건으로 털어내던 정우는 아직도 깨지 못하는 재경을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재경은 정우의 시선도 눈치채지 못하고 깊이 잠들어 있었다. 베개에 반쯤 얼굴을 묻은 채 쌔액쌔액 내뱉는 숨소리를 듣고 있으니 깨우기가 미안할 정도였다.

정우는 아예 무릎에 팔꿈치를 댄 체 재경의 얼굴을 향해 고개를 기울였다. 눈을 뜨고 있을 땐 얄밉게 흘겨볼 때도 많고 아니면 태연한 얼굴로 받아칠 때가 대부분인데 자는 모습은 아방함 그 자체였다.

문득 팀원모으기 미션이 떠올랐다. 그날 재경을 팀원으로 데려오려던 건 정우만이 아니었다. 팀원들이 자리를 잡을 동안 팀장들끼리 모인 장소에서 그들은 데려오고 싶은 연습생의 이름을 말했고 재경은 대부분의 입에서 한번쯤 거론되었다.

누구든 재경을 마주치기만 하면 데려갈 듯한 분위기였다. 일단 노래부터 춤까지 뭐 하나 부족한 게 없었고 화제성도 있었다. 그들 사이에서 정우는 어떻게 재경을 데려갈 수 있을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야만 했다.

- 일단 3명을 눈에 띄는 대로 채워. 그리고 나랑 같이 재경을 찾는거야.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하준은 정우와 한 팀이 되고 싶다는 뜻을 밝히며 팀장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그리고 둘이 남았을 때 하준이 한 말이었다. 그래서 기다렸다는 듯 나타난 태연에게 끈을 받고 그 다음으로 눈에 띈 양채준과 최우주를 잡았다.

그렇게 데려온 재경과 한방까지 보내는 동안 정우는 꽤나 만족스러웠다. 재경과 함께 밥을 먹을 때도 좋았고 연습할 때는 특히나 합이 잘 맞아서 힘들어도 힘든 줄 몰랐다. 능구렁이를 키우는 하준이나 단순한 태연, 까칠한 건후와 달랐다. 다음 발표식과 이후에 지낼 때까지 생각해보았다. 역시나 지금 잠깐의 룸메이트로는 부족했다.

순간 시끄럽게 울리는 휴대폰 벨소리에 재경이 움찔했다. 자던 그대로 눈꺼풀이 떨리더니 눈을 뜬 재경이 멍하니 있었다.

오죽하면 정우가 그 앞에 대고 손을 흔들었는데 재경이 무겁게 눈을 끔벅거리더니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졸려.”

“나가야 해.”

정우는 이왕 깨어난 거 재경의 어깨를 흔들다가 아예 팔을 당겨 상체를 들어올렸다. 재경이 힘없이 끌려오다가 한쪽 눈만 떠 정우를 보더니 흠칫 놀랐다. 동시에 잡힌 팔에 힘을 주려고 하자 정우 역시 손에 힘을 주었다. 재경의 팔을 꼭 붙든 정우가 그를 깨우듯 말걸었다.

“왜 놀라.”

정우는 자신의 머리부터 훑어내려가는 시선에 다소 불퉁하게 묻자 재경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네.”

뭐가 아닌건지 재경이 정우에게 잡힌 팔에 힘을 뺐다. 그 탓에 정우가 황당한 듯 바라보다 다시 재경을 일으켰다.

“밥 먹고 연습 가야돼.”

정우는 일단 재경을 데리고 나가는 것만 집중했다. 재경을 팀원으로 들인 팀장의 재량대로.

*  *  *

오전 연습까지 끝나고 하나둘 홀에 모여들고 있으니 구석에 앉은 재경이 연신 하품을 했다. 모자를 푹 눌러쓴 채 몸을 웅크리고 벽에 기댄 꼴이 웃겨서 지나가던 연습생 몇몇이 돌아보았다.

“어제 못 잤어?”

“잤어요.”

“그런데 왜 이렇게 피곤해해?”

“저녁 식사로 상추가 나와서요.”

상추를 많이 먹으면 졸음이 온다는 말을 가지고 오자 하준이 웃으며 받아쳤다.

“상추를 바구니째 두고 먹었나봐?”

고작해야 흩날리는 몇 장 먹어놓고 잘도 핑계삼고 있었다. 그러나 말거나 재경은 벽에 기댄 채로 눈을 감고 있었지만.

두명씩 짝을 지어 앉으니 재경이 가운데 벽쪽으로 붙었고 옆에는 하준이 앉았다. 그리고 정우가 뒤로 가면서 양채준이 그 옆에 앉았다.

“지금부터 마피아를 뽑는 투표를 진행하겠습니다. 각자 앞의 부스에서 한 명의 이름에 도장을 찍어주세요.”

최PD의 진행과 함께 가장 앞에 있던 연습생들이 주섬주섬 일어났다. 몇몇은 이미 밝혀진 마피아의 정체를 알기에 확신했고 또 누구는 헷갈린다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다녀올게요.”

가장 먼저 일어선 태연이 확신에 찬 듯 당당하게 걸어갔다. 각자 투표를 하는 동안 재경의 차례가 오자 정우가 친절하게 그의 모자를 벗겨주었다. 재경은 부스스한 머리 그 상태로 일어나 투표하고 돌아왔다. 연습하고 나서 조금 피곤해보이는 정도라 다들 재경을 이상하게 보지는 않았다.

“투표가 끝났으니 지금부터 집계해보겠습니다.”

최PD가 잠시 기다리라는 말과 함께 태연이 재경을 돌아보았다.

“형은 마피아 누구 했어요?”

“그거 말해도 돼?”

“이미 투표 끝났으니 말해도 되잖아요.”

태연의 그럴싸한 대답에도 재경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자 태연은 곧바로 최우주에게도 물어보고 정우와 하준에게도 물었는데 마지막 양채준에서는 그냥 넘어갔다. 양채준은 태연을 바라보고 있다가 자신에겐 묻지 않으니 멋쩍은 미소만 짓고 말았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한번 인식하고 나니 재경은 더는 눈을 감지 못했다. 아예 몰랐다면 모를까 알고 나니 마음이 무거웠다. 그리고 태연의 은근한 따돌림이 서서히 거슬리기도 했고. 결국 재경이 먼저 양채준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넌 누구 했어?”

“저는… 하준이 형.”

“나? 날 찍었어?”

하준이 제 이름이 불리자 양채준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양채준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 왜? 마피아같이 보였어?”

“이중에서는 가장 마피아… 같아서.”

“욕이야 칭찬이야?”

양채준이 말을 잇지 못하자 정우가 끼어들었다.

“욕. 그러게 왜 그렇게 음흉스럽게 다녔어.”

“내가? 내가 그랬어? 재경아. 내가 그랬니?”

하준이 억울하다는 듯 재경에게 물었다. 그러나 재경은 차마 아니라는 말이 나오지 않아 말을 아끼고 있자 하준의 눈이 가늘어졌다.

“재경아. 너 누구 찍었어?”

재경은 역시나 말하지 않았다. 그것으로 대답을 들은 하준이 제 이마를 부여잡았다.

“내가 이런 이미지구나.”

“형은 누구 투표했는데요?”

재경이 적당히 받아치는 말에 하준이 곧바로 한 사람을 지목했다.

“너.”

재경을.

재경이 자신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저 왜요?”

“소거법. 거짓말 안하는 이정우 못하는 민태연 제외. 룸메이트 최우주 제외. 그리고 소운이처럼 어설프게 걸릴 거 같은 양채준 제외.”

나름 타당한 이유를 들어 소거했다.

“아니면 말고.”

하준의 가벼운 대답과 함께 최PD가 외쳤다.

“자, 집계 끝났습니다.”

최PD의 말에 재경은 다행이라는 듯 하준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누가 마피아인지 알고 그냥 아무나 찍은 것뿐이라 하준의 반응에 상당히 찔렸다.

“인사팀부터 할까요? 5표를 얻은 이소운 연습생이네요. 그럼 이소운 연습생이 마피아인지 알아볼까요?”

카메라 대부분이 전부 엉거주춤 선 이소운에게 향해갔다. 그에 이소운이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스피커에서 나오는 두근거리는 효과음과 함께 영상이 재생되었다.

막 연습하는 같은 조 연습생의 모습을 몰래 카메라를 찍다가 어설프게 소형캠을 감추는 모습이 보였다. 간혹 뒤늦게 숨기기도 해서 연습생들이 소운이구나, 장난치는 소리가 그대로 오디오에 잡혔다.

“인사팀의 마피아는 이소운 연습생이 맞습니다. 이것으로 300점 획득입니다.”

특별히 찍힌 영상이 많지 않아 마피아인 걸 밝히는 게 좋은 선택인 것 같았다.

“다음으로는 영업팀.”

각자 투표 결과에 따라 마피아로 지목된 연습생이 불리고 마피아인지 확인하는 영상이 이어졌다. 대놓고 마피아인 걸 밝히는 곳은 카메라를 바라본 채 온갖 장기를 보여주기도 하고 몰래 코 파는 연습생을 찍기도 하는 등 재밌는 영상들이 쏟아져나왔다.

확실히 카메라에 서는 것보다 자연스러운 모습이 많이 나왔다.

“이번엔 홍보팀입니다. 4표가 나왔네요. 바로…….”

재경은 자신의 팀에서 누가 마피아로 지목될지 몰라 잔뜩 긴장했다.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했는데 걸렸으려나?

“윤하준 연습생입니다.”

“와…….”

하준이 기가 차다는 듯 4표의 주인을 차례대로 바라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이렇게 신뢰가 없는 사람이었구나.”

“그냥 음흉하다고.”

정우가 퉁명스럽게 하준을 깎아내렸다.

“너는 형한테 그러면 안 돼.”

“앞이나 봐.”

정우의 살갑지 않은 반응에 하준이 상처받은 듯 돌아섰다. 그렇게 카메라에 연습생들의 반응을 담은 최PD가 비죽 웃었다.

“홍보팀은 결과부터 말하겠습니다.”

보통 영상으로 확인하던 것과 달랐다.

“윤하준 군은… 선량한 시민이었습니다.”

그에 하준이 자신을 가리키며 선량한 시민임을 강조했다.

“하준이 형이 아니야? 그럼 마피아가 없는데?”

태연의 외마디 외침에 재경이 움찔했다. 그리고 재경의 반응을 기민하게 알아챈 정우는 남몰래 미소지었다.

“이제 누가 마피아인지 홍보팀에서 찍은 영상을 볼까요.”

최PD의 말이 끝나자마자 영상이 재개되었다.

아니, 영상을 튼 건지 아니면 화면을 끈건지 모르겠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태연의 반응과 함께 하준이 무슨 생각이 든건지 슬쩍 재경을 돌아보았다. 아까는 의심스러워서 투표했는데 이제 확실해졌다.

“상추가 아니었네.”

잠이 부족한 이유로 말미암아 재경이 언제 연습생들을 찍었는지 알았나보다. 재경은 하준의 능물스러운 웃음을 모른 척 화면만 보았다.

온통 검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검은 화면에 연습생들의 웅성거림이 커져왔다. 그때 검은 화면이 물결처럼 일렁이며 누군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아, 뭐야. 여긴 공포야?”

어두운 와중에 움직이는 소리만 들리자 누군가의 혼잣말이었다. 그의 말처럼 공포가 가미된 으스스한 배경음을 시작으로 영상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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