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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아이돌-46화 (46/125)

46화

미션이 발표되고 난 후 연습실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동그랗게 모여있는 그들이 서로의 눈치를 보았다. 연습하기 전 누가 마피아인지 살펴보는 것이다. 대놓고 묻지는 않지만 서로의 얼굴을 한번씩 돌아보는 와중에 재경은 태연과 양채준이 눈을 마주친 걸 보았다.

우연히 서로 눈이 마주친 것 같았는데 태연이 먼저 양채준의 시선을 피했다. 그것도 어딘가 기분이 상한 듯. 그러자 양채준이 반쯤 포기한 기색으로 고개를 돌리다 재경과 눈이 마주쳤다.

양채준이 놀란 듯 눈이 크게 떠지다가 곧 파스스 가늘어지며 작은 미소를 지었다. 뭐가 좋다고 웃는 건지. 재경은 곧 양채준에게 시선을 뗐다.

이제 누구를 볼 필요가 없었다. 자신이 마피아인데 굳이 시민을 의심할 필요가 없으니까. 그러나 어디선가 느껴지는 시선에 재경이 고개를 들었다.

정우가 재경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다른 이를 돌아보지 않고 자신에게만 고정하고 있으니 재경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 마피아 아니라고.”

“푸훕.”

정우가 하도 노려보듯이 쳐다봐서 그런건데 옆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하준이 뒤늦게 입을 막았다가 재경이 다 들은 걸 확인하고는 어색하게 손을 내렸다.

“너 마피아냐고 안 물어봤는데 대답하는 게 웃겨서.”

재경은 손가락으로 정우를 가리켰다. 그제야 하준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 저기 집요한 시민이 있었네.”

“왜 시민이에요?”

정우를 집요한 시민이라고 말하는 게 이상해서 물어보니 하준이 별거 아니라는 듯 가볍게 대답했다,

“쟤가 마피아였으면 말했을 테니까. 이정우 너 마피아야?”

“아니.”

“봤지?”

“…지금 저거 가지고 시민이라고요?”

“응.”

“와… 신뢰 장난아니네.”

재경의 기가 막힌 중얼거림에 하준이 별거 아니라는 듯 눈을 찡긋했다.

“정말 그게 다예요?”

“그럼 뭐가 더 있어? 쟤는 거짓말을 안하잖아.”

“그럼 저는요?”

재경은 아예 자신을 가리키며 물으니 하준의 눈이 가늘어졌다. 대놓고 재경을 품평하듯이 살펴보는 그를 두고 재경이 긴장해서 침을 꼴깍 삼켰다. 재경만이 아니었다. 어느새 둘의 대화를 듣는 모두가 하준에게 집중했다.

“너는 좀 애매해. 정우처럼 거짓말을 귀찮아하는 성격도 아니고 태연이처럼 밥먹듯이 거짓말하는 애도 아니잖아.”

“하준이 형.”

태연의 분한 듯 내지르는 소리에도 하준은 조금도 타격을 받지 못한 듯 중얼거렸다.

“거짓말하면 뒷일을 감당하기 귀찮아서 하기 싫어할 거 같은데 또 필요하면 할 거 같은? 뭐 그래.”

“그래서 재경이 형이 마피아가 맞냐고 아니냐고. 그것만 말해.”

태연이 답답하니 콕 집어 말하라며 하준을 몰아붙였다. 원래도 하준의 빙글뱅글한 말투 때문에 속 터질뻔한 적이 많았는데 오늘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하준이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그거야 나도 모르지. 정우처럼 오래 본 애도 아니잖아.”

기운 빠지는 대답에 태연이 발끈했다.

“아 뭐야. 그럼 처음부터 분위기를 잡지 말던가.”

“재경이가 물어봐서 그런 건데.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얼렁뚱땅 상황을 넘기려는 줄 알고 태연이 다시 입을 열려는 찰나 하준이 조금 더 빨랐다.

“개인 미션.”

“…뭐?”

“마피아에게 주어진 개인 미션이 있다잖아. 이상한 행동을 보이면 그 사람이 마피아일텐데 뭐하러 고민해.”

“아…….”

“물론 마피아가 누군지 알아도 바로 맞추기보단 생각해봐야겠지. 마피아를 맞추면 300점을 얻는다지만 개인 미션으로 얼마를 가져갈지 모르잖아. 예를 들어 내가 마피아라고 가정했을 때, 내가 개인 미션으로 300점 이상을 가져갈 수 있는지 생각해보는거야.”

태연이 부드럽게 말을 이어갔다.

“그럼 제가 마피아면?”

“바로 밝혀야지.”

“왜요!”

“네 개인 미션은 점수를 많이 얻을 거 같지 않아서.”

하준의 칼같은 말에 태연만 억울해할 뿐 대부분 하준을 존경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재경도 제가 놓치고 있던 걸 하준이 짚어내자 의외라는 듯 보았다. 그러나 단 한사람 정우만이 하준의 말에 코웃음 쳤다.

“그걸 왜 이제 말해.”

지금까지 연습 안하고 빙글 둘러앉아있었던 시간이 제법 길었다. 하준은 어깨를 으쓱이며 대꾸했다.

“나는 네가 말할 줄 알고 기다렸지?”

그냥 자신은 뒤로 쏙 빠져서 구경하려다가 말했다는 뜻이었다. 정우도 금방 눈치챘다고 하니 재경은 생각보다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 쉽지 않다고 여겨졌다.

“그보다 개인 미션이 뭔지 궁금하네.”

하준이 눈을 반짝이자 재경이 그에게서 슬쩍 고개를 돌렸다.

*  *  *

한참 연습하는 와중에 잠시 화장실에 다녀온다던 하준이 어쩐 일인지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재경이 티를 펄럭이며 몸속 더운 열을 빼내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다들 연습으로 인해서 거친 호흡을 내뱉으면서도 하준이 어디 갔는지 궁금한 티가 역력했다. 아마 하준보다 그가 뭔가 알아올 것 같은 것 때문이겠지.

재경은 옆에서 더운 열이 훅 끼쳐오는 느낌에 돌아보니 정우가 서 있었다.

“왜? 할 말 있어?”

정우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더니 거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재경도 따라 거울을 보니 방금까지 함께 연습하던 사람들이 한 눈에 들어왔다.

“밋밋해.”

“뭐가? 춤이?”

정우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이제껏 계속 생각해왔던 말을 한번에 풀어냈다.

“이대로 무대에 올라가는 게 걸려.”

정우의 말에 재경은 방금까지 췄던 춤과 자신들의 컨셉을 떠올렸다. 사무실 배경으로 정장을 입은 회사원들로 하여금 절제된 춤을 보여주는 컨셉이었다. 각자 춤만 잘 춘다면 어느정도 봐줄 순 있지만 잘했다고 할 순 없을 무대가 나올 것 같았다.

“넌 어떻게 생각해?”

실은 재경도 정우와 비슷한 생각이었다. 노래 자체는 어떻게 해석하냐에 따라 어디든 맞출 수 있었다. 회사원으로 정한 건 나쁘지 않았지만 센터가 십대인 양채준이었다. 그럴싸하게 꾸며도 앳된 티가 나니 귀여워보일 것 같았다. 그런데 또 태연이 만든 춤은 큰 동작이 없이 절제된 안무가 주를 이뤘다. 이제와서 센터를 하준에게 맞춘다면 그럴싸하게 나오겠지만 전체 그림을 따져보면 태연과 양채준이 걸렸다.

이래저래 연습생 모두의 이미지가 부합되는 컨셉은 아니었다. 최상은 아니어도 충분히 상의 무대가 될 수 있는데도 저렇게 고민하는 모습에 재경은 새삼 정우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 적당히 해도 될 거 아닌가?

재경의 시선을 눈치챈 정우가 그와 눈을 마주쳤다. 어쩌다 보니 두 사람이 서로를 지그시 바라보게 되면서 이상한 침묵이 감돌았다. 먼저 입을 연 건 정우였다.

“어디까지나 내 욕심에 한 말이니까 아니면 아니라고 말해도 돼.”

“아니, 뭐…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어.”

재경이 남은 시간을 따져보았다. 정확하게 반이 지나갔고 각자 춤은 익숙해졌다. 이제 단체로 맞춰보는 게 남았으니 그래도 여유가 있는 편이었다. 물론 이대로만 간다면.

“그럼 다 불러서…….”

“잠깐.”

갑자기 재경이 손을 들어 막아버리자 정우가 의아한 눈빛을 띄웠다. 재경은 정우의 시선에도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진짜 이상하잖아.’

이번에 노래를 부르지도 않고 춤을 추는데 주어진 시간이 이주일이었다. 처음엔 미션이 함께 있어서 넉넉하다 생각하지 못했는데 일주일이 지난 지금 얼추 정리가 되었다. 모든 연습생이 다 여유로운 건 아니겠지만 연습한 만큼의 성과가 대부분 나오고 있었다. 이런 걸 제작진이 모르고 있을까? 아니면 첫 무대를 할 때처럼 충분히 연습하고 받아들일 시간을 준 것일까? 하지만 재경의 감으로는 다른 게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방에 숨겨놓은 소형캠에 생각이 미쳤다.

- 혹시 컨셉을 다 잡으셨나요?

‘어쩌면…’

이번 미션에서 큰 변화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재경은 제가 맡은 일이 생각 이상으로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일단 지켜보자.”

재경이 툭 내뱉은 말에 정우는 앞뒤 사정을 따져봐야 했다. 그러나 마피아로 최PD의 말에서 힌트를 얻은 재경은 어디까지 말해줘야 하나 고르고 있었다.

“하루 정도만 기다렸다가…….”

“개인 미션 알아왔어.”

하준이 돌아오면서 외치는 소리가 재경의 말을 잘랐다.

“뭔데요?”

“개인 미션이 뭐래요?”

다들 기다렸다는 듯 하준에게 다가가서 물어보니 하준은 대답대신 보라며 문을 열었다. 그러니 아까는 단절되었던 소음이 물밀듯이 들어왔다. 복도가 떠들썩하니 모두가 연습실 입구로 갔다. 그건 재경과 정우도 마찬가지였다. 재경은 방금까지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하던 와중에 나오는거라 더 호기심이 크게 일었다.

“조금 더 액션!”

누군가의 외침에 한 연습생이 복도에서 멋지게 덤블링을 넘었다.

“저게 개인 미션이야?”

“뭐? 덤블링?”

“할 줄 알아요?”

태연이 하준에게 순수한 물음을 던졌다. 그러자 하준이 태연의 머리를 헝클며 웃었다.

“그게 아니라 저기.”

하준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사람을 향해 모두의 시선이 돌아갔다. 물론 재경 역시 고개를 더 내밀어 소형캠을 든 사람을 바라보았다. 개인 미션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재경에겐 대놓고 나 마피아요, 하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

“뭔가를 찍는 게 미션인 거 같아.”

“그럼 마피아 찾기 쉬워지네. 우리 중에 누군가도 찍어야 하잖아요.”

다른 팀을 보고 제대로 감을 잡았다. 결국 마피아인 재경만 불리하게 되었다. 태연의 깔끔한 정리에 재경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냥 마피아인 거 밝히고 300점을 가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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