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아이돌-39화 (39/125)

39화

“처음엔 자기보다 노래 잘 부르는 애를 발견했다면서 나보고 서재경이라는 애 아냐고 물어봤었거든.”

재경은 멍한 시선으로 하준의 말을 흘리듯 들었다. 하준의 이야기는 재경뿐만 아니라 한 팀으로 모인 사람들에게도 흥미진진하게 들려왔다.

“노래를 듣고 반한 것처럼 굴었는데 첫날 재경을 딱 발견한 거야. 당연히 달라붙지 안 달라붙겠어?”

“그래서 정우 형이 그렇게 재경이 형 옆에 딱 달라붙어 있었구나.”

이제야 알았다는 듯 태연이 킥킥 웃으며 정우의 어깨에 기댔다가 튕겨 나갔다. 늘 받아주는 건후와 다르게 정우는 태연의 어리광을 받아주지 않았다. 태연이 제 뒤통수를 쓰다듬으며 입술을 삐죽였다.

“앞에 나타나서 끈까지 풀어줬는데 치사하게.”

태연이 꿍얼거리고 있자니 재경이 한숨이 나오려는 걸 애써 참았다.

“그런데 이렇게 팀을 만든다고 하면 당연히 재경이부터 데려오려고 하겠지. 솔직히 재경이 만능이잖아. 내가 팀장이었어도 재경이부터 찾았다.”

하준의 설명에 태연이 가장 먼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팀장이었어도 재경이 형이지. 물론 팀원으로도 재경이 형을 원하고요. 그래서 어떻게 했는지 알아요?”

태연은 아까 하준이 말하던 걸 이어서 어떻게 자신을 찾았는지 말했다.

“제가 제일 먼저 정우형한테 끈 주고 대기실에서 재경이 형 들어오나 기다렸어요. 그리고 하준이 형이 정우형이랑 대기실을 오가면서 상황을 봤고 정우 형이 재경이 형을 찾아다닌 거죠.”

“꼭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죠.”

재경이 난감해서 하는 말에 태연이 바로 받아쳤다.

“저번에 형이랑 같은 조가 아니라서 아쉬웠는데 이번에 잘해봐요. 형.”

태연의 인사에 재경은 아주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이정우를 피해다니겠다고 숨어다닌 자신처럼 정우 역시 머리를 썼다. 그것도 세 사람이 합심했으니 재경이 어쩔 도리가 없었다.

재경은 굳이 정우의 입으로 확인하지 않았지만 자신을 찾아다닌 이유를 아주 자세히 들었다. 그것도 아예 예선부터 시작해 준 하준의 친절한 성격 덕분에 정우에 대한 의심이 싹 사라졌다.

- 저는 좋아요.

- 목소리가 좋았어요. 그래서 계속 옆에서 노래 듣고 싶어요. 같이 있고 싶고요. 그래서 따라다녔어요.

- 목소리가 좋았는데 얼굴도 좋고 성격도 좋고요.

재경이 정우에게 그만 좀 따라붙었으면 해서 잔뜩 미운 말을 쏟아낸 적이 있었다. 그때 정우는 제 목소리가 좋다고 하는 바람에 같은 멤버로서 싫어할 적이 떠올라 흘려넘겼는데 정말이었다.

’그래, 다 좋아. 다 좋다 이거야.‘

재경은 정우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보다 다른 데 신경이 미쳤다.

’팀원이…….‘

회의실의 동그란 원탁에 앉아서 얼굴을 확인해 보고 있으니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었다. 끈에 이름이 붙어있지 않으니 누구를 데려왔는지 지금에서야 확인했다. 하준은 둘째치고 민태연이라니 진짜 지긋지긋한 JT소속이었다.

그 사이 정우가 종이에 팀원의 이름을 적어 내려갔다. 팀장에 자신의 이름을 적고 밑으로 민태연, 양채준, 최우주, 서재경 그리고 윤하준을 적었다.

재경이 낯선 두 이름을 보다가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한 사람의 이름을 어디에선가 들어본 거 같았다.

’어디였지.‘

막상 기억을 헤집어보려니 잘 떠오르지 않았다. 재경이 제 머리를 가볍게 헤집어보며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최우주라는 남자는 짙은 눈썹에 높은 콧대 때문인지 인상이 강했고 양채준은 태연만큼이나 귀여운 외모였다. 동그란 얼굴형에 쏙 들어가는 보조개가 웃을 때마다 나타났다. 둘의 얼굴을 자세히 보고도 더 생각나는 게 없어서 재경은 그냥 흘려넘겼다. 떠오르지 않는거면 어디선가 아이돌을 하다 스친 인연이겠지.

서로 얼굴을 익힌 시간이 끝나고 나니 바로 다음으로 넘어갔다.

곡은 각 부서별로 미리 정해둔 곡이 있었다. 이정우가 홍보팀이기 때문에 그들은 현 남성 아이돌 그룹의 노래 중 하나인 ‘내 이름을 불러줄래’를 받았다.

미디움 템포의 곡은 그루브한 리듬과 함께 중독성 있는 멜로디를 가지고 있었다. 재경은 몇 번 노래를 반복해서 들어보는 것으로 익히는 동안 팀장이자 리더가 된 정우가 역할을 나누기 위해 운을 띄웠다.

“센터 하고 싶은 사람?”

보컬, 랩, 댄스 등 다 중요하지만 가장 최우선으로 따질 건 센터, 그리고 킬링 파트였다. 보통 센터를 맡은 사람이 킬링 파트를 담당하게 되기 때문에 정우는 그것부터 정하도록 했다.

정우의 질문에 팀원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하고 싶어서 눈치를 보는 걸 수도 있고, 전혀 관심이 없기에 누가 하려나 보기도 하고 그냥 재밌어서 보는 이도 있었다.

정우도 가만히 팀원들을 둘러보다가 재경에게서 눈길이 향한 후부터는 그만을 바라보았다. 정우의 시선을 느낀 재경은 모른 척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센터고 나발이고 절대 눈에 띄고 싶지 않고 이번에 떨어지고 싶은 마음이고 정우도 잘 알 거라 여겼다. 역시나 정우는 재경에게 묻는 대신 다른 사람들 전부 들을 수 있게 말했다.

“하고 싶은 사람은 마음 편하게 말해요.”

재경은 가만히 기다렸다. 그러다 하준과 태연을 보았다. 왜 하고 싶단 말을 안 하지? 재경의 시선을 눈치챈 하준이 슬쩍 고개를 기울여 속삭였다.

“내가 센터하기엔 존재감이 약하거든.”

재경은 말도 안 된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준은 특유의 능글거리는 캐릭터로 인기가 아주 많았다. 별 힘을 들이지 않고도 사람들의 신경을 쏠리게 하면서 무슨 소리를 하는건지.

“저… 제가 해봐도 될까요?”

손을 든 건 얌채준이란 남자였다. 얌채준이 혹시 다른 지원자가 있나 살폈지만 딱히 나서는 이가 없었다. 잠깐의 정적 끝에 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센터는 채준으로 넣을게요.”

채준이 기쁜 듯 상기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다음으로 메인보컬은…….”

“추천해도 돼?”

하준이 정우의 말을 끊고 들어왔다. 마치 지금을 기다렸다는 듯 나서는데 정우는 놀란 기색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난…….”

하준의 고개가 슬쩍 재경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그에 재경이 눈을 크게 뜨며 무언의 협박을 건넸다. 나 추천하기만 해봐.

“우주가 좋겠어.”

하준이 재경을 보는 시선 그대로 엄한 사람의 이름을 언급하자 우주가 놀라 펄쩍 뛰었다.

“나?”

“저번에 보니까 노래 잘하던데?”

하준의 자연스러운 진행에 우주가 쑥스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메인보컬을 해도 좋을지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하준은 아예 우주를 설득하려 말을 꺼냈다.

“콘셉트에 따라 노래가 조금 달라지긴 하겠지만 우주 네 차분한 목소리라면 잘 어울릴 거 같아.”

“그럼 제가 해 볼게요.”

“그리고 메인 댄서는 태연이 네가 하고 싶지?”

“응. 나 이것만 기다렸어.”

“그럼 태연이는 이거랑 랩 파트 일부 하는 게 좋겠고 나도 랩으로 갈래. 정우 넌 리드 보컬?”

정우가 대답 대신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하준이 말한 대로 각 역할 옆에 이름을 적기 시작했다.

“재경이는 서브 보컬 하면 되겠다.”

하준이 가장 아래에 있는 곳을 가리키니 재경이 홀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분량이 적고 눈에 안 띄는 파트다. 당연히 마음에 들었다. 제 마음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구는 하준 덕분에 재경의 표정도 처음보단 많이 풀어졌다.

정우가 전부 나뉜 것을 보더니 재경에게 말했다.

“조금씩 도와줘.”

누구를 어떻게 도와주라는지 자세한 설명은 없었지만 재경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자신의 분량이 적다는 것에서 오는 기분 좋은 반응이었다. 그 솔직한 모습에 정우는 웃음이 나오려는 걸 손으로 가렸다.

하준과 태연은 대놓고 웃었지만.

“콘셉트는 어떻게 할까요?”

센터 다음으로 중요한 게 콘셉트 회의를 시작하면서 하준이 웃음기를 지우고 손을 들었다.

“지금 이 모습 그대로 하는 건 어떨까?”

하준의 말에 모두가 자신들의 모습을 돌아보았다. 재경 역시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을 보았는데 회사원이라고 깔끔한 정장을 입었다.

“회사원 콘셉트로 깔끔한 정장으로 가자.”

“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생각일걸요?”

태연이 다른 회의실을 가리켰다. 멀지 않은 곳에 모여있는 회의실에서는 각 팀원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대화가 안 들리기에 언뜻 회사원들처럼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하준이 손가락을 세우며 별거 아니라는 듯 말했다.

“같은 옷을 입어도 분위기가 다르면 되잖아.”

그러니 옷이 같아도 상관없다는 아주 가벼운 대답에 재경은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즐기는 이유는 어쩌면 모든 것의 해답을 알고 있는 여유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  *  *

숙소로 돌아온 재경은 여전히 정장 차림이었다. 그의 목에는 스태프가 주고 간 출입증이 있었는데 홍보팀에 제 사진이 들어간 사원증과 호실이 적힌 카드가 함께 있었다. 꼭 들고 다니지 않아도 좋다며 폴짝폴짝 뛰어가던 태연이 떠올랐다.

재경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어느새 익숙해진 복도를 돌아보았다. 한 달간 생활했다고 익숙해진 호텔을 돌아보며 걷고 있자니 괜히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마음 편하게 밥 먹을 수 있겠다.”

가장 먼저 떠오른 건 호텔 밥이었다. 소운이 가장 많이 생각날 거라고 했던 게 거짓말이 아니었다. 학교에서는 워낙 제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서 밥을 먹기 힘들었고 알바할 때는 바빠서 저녁 먹을 틈이 없었다.

번호를 확인하고 카드를 댄 수호가 문을 열며 안을 확인했다.

“이인실이네.”

방은 작아졌지만 침대 역시 두 개뿐이었다. 두 명이서 쓰는 방이라고 생각하니 저절로 누구와 같이 쓰게 될지 궁금했다. 재경이 벽에 있는 침대를 선택하고 근처에 가방을 내려놓고 있으니 누군가 안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재경이 침대에 앉은 채로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으니 한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