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아이돌-35화 (35/125)

35화

‘나 분명 아이돌 친구 생길 거라 기대하지 않았었나?’

그러니까 이정우는 연예인 할 거고 자신은 아무것도 안 할 거니까 아이돌 친구 정도로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어디까지나 자기가 아이돌이 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재경이 허탈하다는 듯 천장을 보았다. 깔끔한 내부 인테리어가 돋보였다. 의미 없이 천장을 눈으로 훑어보고 있자니 옆에 앉은 정우가 소리죽여 웃어대고 있었다.

“재밌어?”

“…어.”

정우가 핸드폰을 들여다보더니 곧 재경에게 화면을 보여줬다.

“이것봐.”

톡방에 불이 난 듯 화력이 어마어마했다. 오늘 2화는 따로 보기로 하면서 왜 둘이서만 보냐고 하더니 쉴 새 없이 톡이 오고 있었다. 물론 재경은 재 핸드폰을 들여다보지 않았다. 정우가 화면을 보라고 가리키니 모두 재경의 이야기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재경이 모든 일의 원흉인 2화를 노려봤다.

[가만히 있어도 시선이 가는 친구네요.]

[부끄러워하는 거 봐요. 너무 귀엽다.]

[와. 여기 원석이 하나 나왔네.]

[바로 고음을 내는데도 하나 흔들리지 않지?]

[맑은 목소리라 고음이 매끄럽게 잘 올라가는데 저음에서 허스키한 음색이 섞여서 특이하네요. 그리고… 정말 듣기 편해요.]

[노래를 오래 해온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음색도 잘 들리고요.]

[춤을 못 봐서 보고 싶네.]

[아직 전부를 보지 못했지만 노래 하나만으로도 A 줘도 아깝지 않네요.]

온통 칭찬 일색의 평에 재경의 얼굴이 점점 달아올랐다.

“하아.”

본선에 가자마자 올라갔던 무대에서 아무 말도 안해서 망한 줄 알았다. 아니, 심사 결과는 방송으로 들으라고 했지만 표정들이 좋지 않아서 그냥저냥 흘러가겠지 싶었다. 그런데 저런 말들이 오갔을 줄이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재경이 너무하다는 심정으로 울상을 지었다.

왜 저렇게 칭찬이 자자한 건데!

“잘했다네.”

“그만 말해.”

재경이 달아오른 얼굴을 쓸어내렸다.

정우가 옆에서 부추기지 않아도 다 알아들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말이 많네.”

“뭐가 그럴 줄 알았다야.”

재경이 뜨끈한 귀를 감쌌다. 열기가 다 귀로 가버렸는지 유독 뜨거웠다. 누구 하나 별로라는 말을 안 했다. 멋 부린다고 여길 줄 알았던 허스키한 부분조차도 괜찮다고 했다. 그날 고음을 내질렀던가? 생각해 보니 바로 내질렀다. 아이돌로 무대에 설 때 의식하고 노래 부르던 것과 달라서인지 제가 어떻게 불렀는지도 곰곰이 생각해봐야 알았다. 어쨌든 제 노래가 마음에 들었다는 게 솔직히 기분 좋았다.

‘아니지. 좋아할 게 아니잖아.’

전부 망했다고 절망하다가 칭찬에 기분 좋아지려고 하니 이거 뭐 조울증도 아니고. 재경이 정신 바짝 차리려는 듯 머리를 흔들었다. 칭찬이 좋은 게 아닌데 홀라당 넘어간 걸 반성했다.

표정을 굳힌 채로 고개를 들자 정우가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웃은 거 같은데…….’

재경은 정우를 한번 힐끔거린 후 다시 화면에 시선을 고정했다.

‘제발 날 좀 내 버려둬.’

실력 좋은 사람은 많았으니 이 이상 튀지만 않는다면…….

[또 듣고 싶다.]

누군가의 마지막 댓글에 재경의 표정이 무너졌다. 재경이 끄응 앓는 소리를 내며 테이블 위로 엎어졌다.

“잘됐네. 제대로 눈도장 찍겠는데?”

정우의 말은 그냥 듣기 좋으라고 한 말이라 애써 흘려 봤다. 다른 사람이 나왔을 때 재경은 다시 평온을 찾았다.

두 사람이 만난 곳은 룸 형식의 한식당이었다. 방마다 TV가 설치된 것도 신기한데 프로그램이 다 끝나면 일어나도 된다고 했다. 재경은 다시 룸을 신기한 듯 바라보고는 단호박 튀김을 집었다. 자기가 지나갔으니 이제야 가라앉았던 식욕이 다시 올라왔다.

바삭하면서 달달한 단호박 튀김을 먹던 재경이 다시 TV로 시선을 돌리니 그 모습을 정우가 놓치지 않고 바라보았다. 확실히 소운이 말한대로 잘 먹었다. 한식 특유의 많은 가짓수의 반찬을 하나씩 먹어 없애면서도 먹는 소리가 안 났다.

정우는 재경을 보다가 슬그머니 눈을 내려 톡방을 보았다. 소운이 올린 링크를 누르니 자유게시판이라고 올라온 글이 있었다.

[자게] 오늘부터 서재경 덕질한다 [76]

1화 봤을 때부터 그냥 노래 잘하는 연습생으로만 생각했던 나 자신을 오늘 많이 혼냈어

응 진작 모자 벗고 오지 않은 재경이 탓도 있어

쨌든 어쩌면 좋지?

호텔이 익숙한지 거침없이 가놓고 정작 스탶이 되게 자연스럽게 왔다는 걸 못 알아듣는 거 보고 가서 귀를 꽉 깨물어주고 싶었어 귀없나봐 못알아듣는거 너무 귀없//귀여버

다른 연습생 보라고 했더니 자기만 캐리어 없다고 퓨후후후후후후…

재경아..그거 아니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 괴리감 어쩔거야

스탶도 재경이 귀여운 거 알아서 또 보자는데 벌써 팬 된거 같은데 그럼 내가 2빠네?????

댓글(76)

씹똥땡구리: 모자 벗고 온순간 끝이였음 청바지에 흰티라니 남친룩을 입고 왔잖ᄋᆞ

└ 럴수럴수이럴수: 선배룩아니었어?

└ replay0n: 그냥 존잘남

마션: 호텔 자주 다니는 사람인 줄 알았는뎈ㅋㅋㅋㅋㅋㅋ캐리어라고 대답하는 거 듣고 현웃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크로스 마크: 나는 원래부터 재경 빨았어요 2빠 내놓으세여

└작성자: nooooooope

└크로스 마크: 가져와

└작성자: 사절합니다

오늘부터 1일: 피구할 때 완전 쓰러졌어여 상대방한테 패쓰하면어떡햌ㅋㅋㅋㅋㅋ

└Dayyyyyy: 진짜 나 쓰러져쓔ㅠㅠㅠㅠㅠㅠㅠㅠㅠ

거부를거부한다: 메인보컬이 여기있네요.

└작성마:ㅆㅇ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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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가 그 창을 벗어나며 핸드폰을 옆에 내려놨다. 재경이 알아서 톡을 읽다가 보면 상관없겠지만 굳이 언급하지 말아야겠다.

“그런데…….”

대신 정우는 재경을 향해 운을 띄웠다. 둘이 되었을 때 물어보고 싶은 건 많았다. 왜 자율적으로 신청했으면서 그렇게 카메라를 피하고 싶어하는지, 왜 자신을 유독 피하려 하는지, 왜 그리 다 싫다는 듯 구는지.

“살이 빠진 거 같은데 다이어트라도 해?”

하지만 정우는 그 모든 걸 물어볼 수 없었다. 누가 봐도 사정이 있는데 그것을 말해올 것 같지 않았다. 자신은 아직 재경이 정해둔 선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저 이전보다 조금 말을 튼 정도지.

정우의 물음에 재경이 방금까지 부지런히 놀리던 젓가락질을 멈췄다. 지금 먹는 걸 보면 딱히 다이어트 생각이 없다는 걸 알지 않나?

그런데 일주일만에 본 정우가 이렇게 물어보는 걸로 봐서 정말 살이 빠진 게 티가 나나 보다.

재경이 물잔을 들며 말을 얼버무렸다.

“다이어트는 아니고 그냥…….”

오디션에 신경 쓰느라 알바를 미리 못 구한 탓에 아직 이렇다할 수입이 없단 말이 안 나왔다. 그나마 학교에서 먹는 점심도 요즘 급 제게 시선이 많이 쏟아지면서 제대로 먹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정우를 만난 지금 오랜만에 식사다운 식사를 하는 거였다.

“바빠서… 알바도 하고 못 한 공부도 해야 하니까.”

“아, 공부하느라.”

공부를 좋아한다고 그랬지, 정우의 말을 못 들은 척 재경이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마저 남은 밥을 먹으려고 그랬다. 그러다 문득 재경의 시선이 정우의 밥그릇을 보았다.

“넌 왜 안 먹어? 입맛이 없어?”

“지금 먹을 거야.”

정우는 TV에서 제 얼굴이 나오는 걸 보고는 재경을 따라 숟가락을 들었다. 재경이 화면 속 정우와 밥을 먹는 정우를 돌아보았다.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정우는 표정이 별로 없었는데 밥을 먹는 것도 비슷했다. 그냥 저 얼굴 아래로 밥을 먹든지 춤을 추든지.

1등을 한 건 알겠는데 뭐가 저렇게 메말랐어.

재경은 자신만큼이나 정우가 특이하다고 여겼다. 생각해 보면 정우는 자신과 다르지 않았다. 어딘가 잘되고 싶어서 일부러 카메라를 찾아다니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제가 어떻게 나올지 걱정하지도 않았다.

혹시 나처럼 아이돌이 하기 싫은 건가? 그런데 막상 떠올려보면 그건 아닌 거 같은데.

재경은 모르겠다는 시선으로 정우를 보다가 미비하게 고개를 저었다. 무슨 생각을 하든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라 여겼다.

“내일 몇 시쯤 올 거야?”

그때 정우가 반찬을 집으며 여상한 말투로 물었다. 재경은 마찬가지로 밥을 입에 넣으며 흘리듯 대답했다.

“시간 맞춰서.”

정우가 그러냐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내일 합숙소에서 다시 만난다.

*  *  *

재경은 첫 촬영을 마친 날 유일하게 받은 옷을 입고 거울 앞에 섰다.

“후우.”

거울 속의 서재경이 긴장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되뇌어 보지만 전혀 표정이 풀어지지 않았다.

그 사이 옆에 둔 핸드폰이 진동했다. 보지 않아도 소운이라는 걸 알았다. 요즘 틈만 나면 연락을 해대는 통에 재경은 핸드폰이 어디에 있는지 자주 깨달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죽은 것처럼 얌전하더니 이젠 정신없이 제 존재를 알릴 때가 많았다. 대충 화면을 켜서 소운의 이름을 확인한 재경이 그대로 닫았다. 톡을 안 읽은 지 오래됐다. 어젯밤까지 알바를 하느라 바빠서 그랬다. 그러다 문득 톡 위로 떠 있는 팝업을 확인했다.

“아, 맞다.”

최PD가 2화 방송 후에 무슨 기획한 거 알려준다고 했었다. 들어가서 볼까 하다가 재경은 도로 핸드폰을 내려놨다. 어차피 거기 가면 들을 텐데 싶은 마음에.

재경은 대충 머리를 쓸어내렸다. 제법 길어져서 이마를 완전히 가리고 눈썹을 덮었다. 더 길면 아예 눈까지 가릴 수 있었으려나. 쓸데없는 생각으로 미적미적 시간을 끌었다.

그러나 이미 준비는 끝났고 아직 시간은 일렀다. 재경은 마지막으로 나가기 전에 거울 속 제 옷을 보았다.

하얀 셔츠에 남색 카디건, 베이지색 바지와 트윌리의 단체복이었다. 옷을 입고 오면 간단한 메이크업과 함께 곧바로 촬영을 한다고 했다.

오늘은 합격자와 탈락자가 결정되는 발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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