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소개와 심사 무대까지 합한다면 순위 발표 전에 1분도 훌쩍 넘게 나오는 것이다. 재경은 다소 불만스러운 기색을 억누르며 시청하고 있는데 옆에서 태연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저렇게 다 소개할 수 있나?”
“뭐가? 아, 양념 없는 날 것이라?”
건후가 반응했다.
“응. 몇몇만 정해서 나가는 게 아니라 아예 다 내보내겠다는 심산데 저렇게 할 수 있나? 지루하다고 넘어갈 수도 있잖아. 우리야 상관없지만 다 우리 같진 않잖아.”
이 자리에서 가장 어린 태연이 가장 냉정하고도 이기적으로 상황을 짚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방송이 잘되려면 그에 걸맞는 화제성이 필요했다.
그러려면 99명의 연습생을 모두 내보낼 게 아니라 몇몇만 집중해서 나가는 게 더 효과적이었다. 그걸 방송에 참가하는 태연도 아는데 제작진이라고 모를 리 없었다.
“최PD님이 우리 희생양으로 두지 않는댔잖아.”
건후가 가볍게 받아쳤다. 그들의 대화를 듣는 재경은 답을 알고 있다는 걸 감추려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입술을 말아 물었다. 재경은 전생에 이 프로그램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주변에서 떠드는 몇 마디 말로 이 프로그램이 어떤 식으로 뜨게 되었는지 들었다.
녹화하는 장면을 떠서 짧게 소개하고 방송될 것을 광고하고 어떻게든 그날 방송을 볼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의 광고를 때렸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생방송 외에 모든 게 다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티저 방송은 없었고 공식 홈페이지에는 번호만 늘어놨을 뿐 사진도 이름도 없던 그 물음표 가득한 창이 한껏 궁금증을 자극했다.
본방이 시작되고 시청률은 높지 않았다. 대신 화제성을 가져갔다. 최PD는 정말 연습생을 위해서 과감한 선택을 했고 나중엔 놓쳤다고 생각했던 시청률까지 잡았다.
덕분에 심심하게 느낄 수 있는 본방 1화에 많은 관심이 쏠렸고 특히나 연습생 하나하나 관심 집중하는데 제대로 시선을 끌 수 있었다.
전부 PD의 계획하에 진행되었다.
‘다른 프로는 티저부터 터트리면서 실패한거지만.’
이후로도 잡다한 대화가 오가면서 재경은 그 어느 쪽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적당히 흘리듯 봤다.
“으앗.”
소운이 자신이 나오는 장면에서 숨을 멈추며 고개를 숙였다. 그래도 아는 얼굴이 나와서 그런지 재경이 순간 집중해서 보게 되었다.
“귀엽게 나오네.”
가감없이 내뱉은 말을 들은 소운이 숨을 집어삼켰다.
“형.”
붉은 얼굴로 어쩔 줄 모르는 소운의 몸부림에 재경은 짧게 웃음을 터트렸다.
“어? 웃었다.”
계속 재경을 힐끗거리던 태연이 웃는 걸 발견하며 신기하다는 듯 보았다. 조가 달라서 같이 다니지 않았더니 아직 재경과 사이가 어색했다. 태연은 재경의 노래를 들은 후부터 친해지고 싶어서 자꾸 다가가지만 좀처럼 거리가 좁혀지지 않던 차에 오늘 만나서는 자꾸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이번에도 재경이 소파에 앉고 정우가 그의 옆에 앉으니 태연이 다가갈 수 없었다. 덕분에 소운이 옆에 나란히 앉아있다 재경의 웃음을 본 거고 말이다.
“귀여워서.”
재경은 금세 웃음을 마무리하며 소운을 가리켰다.
“저는요?”
“…뭐?”
“저는 안 귀여워요?”
태연이 두 손으로 턱을 받치고 재경을 보며 고개를 이리저리 갸웃거렸다. 어색해야 할 꽃받침이 너무나도 잘 어울려 재경이 상체를 뒤로 뺐다.
“여기서 제가 제일 어려요.”
“어… 그래?”
“네. 저는 16살. 여기 소운이 형은 17살.”
재경이 한 살 차이구나 알게 되면서 소운을 보았다가 다시 웃음이 터졌다. 소운이 못 보겠다는 듯 눈을 가려놓고 손가락을 벌려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던 것이다.
“칫. 내가 더 귀엽고 어린데.”
태연이 아쉽다는 듯 혀를 차며 신경질적으로 건후의 어깨에 뒷머리를 마구 부볐다. 기본적으로 애교가 많은 그의 몸짓에 건후가 어깨를 들썩이며 뒷머리를 툭툭 때렸다. 태연이 받아주지 않는 건후에게 주먹질하는 동안 소운이 길게 숨을 뱉었다.
“너무 짧다.”
다른 연습생이 나오자 소운이 참았던 숨을 길게 내쉬었다. 방송에 제 얼굴이 나온다니 부끄러워서 얼굴을 붉히면서도 눈은 TV에서 떼지 못하는 게 귀여워 모두가 소리 없는 미소를 지었다.
재경이 잠시 다른 연습생으로 돌아간 화면을 보다가 다시 소운에게 고개를 돌렸다.
“짧아?”
“순식간에 지나가서 눈에 띄었을지 모르겠어요.”
소운이 핸드폰을 들어 무릎 위로 올리면서 걱정스럽게 중얼거렸다. 옆에 앉은 하준이 소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충분하다고 달래주었다.
‘상대적이구나.’
생각해보면 자기만 길게 느껴질 수도 있었다. 어차피 계속 소개 위주에다 99명이니 그사이에 묻힐 수도 있으니 괜찮을지 싶어 조금 기대되었다.
“아까부터 뭘 그렇게 봐?”
건후가 목을 길게 빼서 소운의 핸드폰을 훔쳐봤다. 개인적인 거라면 가리겠지 싶어서 한 행동인데 소운이 아무 반응도 안 하는 게 괜찮나 싶었다. 그리고 곧 건후가 무엇을 봤는지 푸핫 웃음을 터트렸다.
[하...cute]
[기절할거같다진짜 어떻게 이런 생명체가]
[뽀쨧하니 귀여운데]
[원래 누군가가 귀여워보이면 끝난거랬어요, ]
[나 벌써 랜선 이모 된 것 같아……]
[귀없기있긔없긔]
[귀여워서 짜증나…….]
실시간 올라오는 TALK를 읽고 있었다. 건후가 그 중 하나를 콕 집었다.
“너 귀여워서 짜증난대.”
소운이 핸드폰에 얼굴을 묻고 중얼거렸다
“님아 화내지 마요.”
그 말에 모두가 웃었다. 아예 배를 잡고 뒹굴다 일어난 태연은 검지로 눈물을 닦아내며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귀여운 거 인정.”
이건 뭐 나이와 상관없었다.
“모태 귀여움을 장착했네, 이 형.”
소운이 붉어진 얼굴을 손등으로 비비며 고개를 들던 참이었다.
“어?”
소운의 놀란 음성에 모두의 시선이 TV로 향했다.
‘JT.’
JT엔터로 묶인 네 사람이 비치더니 이내 한 사람씩 나왔다. 하준, 건후, 태연, 정우가 한명씩 노래를 부르는 게 나왔다.
‘여기가 진짜 금맥이구나.’
생각해보면 소속사에서 나온 연습생 모두가 데뷔조가 되는 건 신기한 일이었다. 보통의 소속사에서는 데뷔조가 아닌 연습생을 내보낸 것에 비해 JT에서만 데뷔조 아이들을 보낸 것처럼 유난히 눈에 띄었다. 랩을 하는 건후의 시원시원한 이목구비가 메이크업을 하지 않아도 반듯하게 잘 나왔다.
“우와. 잘생겼다.”
소운의 감탄에 건후가 아닌 척 고개를 돌렸지만, 그의 귀가 붉게 달아올랐다.
“형이 얼굴은 뭐…… 괜찮지.”
“뭐 임마?”
건후가 태연의 목에 팔을 감아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태연이 놓으라고 건후의 팔을 때리면서도 놀리는 걸 멈추지 않았다.
“진짜 잘하네요.”
소운의 감탄에 태연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굴면서도 재경을 힐끗 바라보았다. 재경에게도 한마디 듣고 싶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재경은 생각에 빠져 태연의 눈빛을 알아보지 못했다.
‘나쁘진 않네.’
재경의 감상은 딱 거기까지였다. 재경에겐 귀에 익은 목소리였고 오히려 연습생이라 풋풋하고 다소 어설픈 모습에 잘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뿐이었다. 보통은 소운처럼 놀라는 게 맞았다. 소운이 들고 있는 핸드폰의 화면에서 TALK의 반응이 상당이 빨라졌다는 게 그 증거였다.
‘그래. 여기서부터 제대로 눈도장이었다 이거네.’
최종 멤버를 알고 있는 재경은 결말을 알고 보는 드라마처럼 어느 순간 흥미진진하기 시작했다.
“정우 형이다.”
‘주인공 등장이네.’
남들과 다를 거 없는 소개자막에도 재경은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무표정하게 들어와서 예의바르게 인사하는 무난한 시작이었다. 감정표현이 적고 침착하고. 언뜻 보면 재미없게 느껴지지만,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얼굴이 재밌네.’
유난스럽게 굴 필요도 없이 그냥 가만히 있어도 집중하게 만들었다. 정우보다 잘생긴 연습생도 분명 있었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저런 게 매력인가?”
움찔.
재경이 작게 중얼거린 말을 들은 누군가가 반응했다. 그러나 재경은 별로 신경쓰지 않고 TV에 집중했다. 떨지도 않고 침착하다.
노래선정도 잘해서 무반주로도 리듬감이 잘 나타났고 무엇보다 억지스럽게 소리를 올리지 않는 게 좋았다. 지금도 바로 옆에 앉아 제 반응에 움찔거리는 덩치와 동일인물이 맞는지 헷갈릴 정도였다.
“정우 형 반응이 장난 아닌데요?”
어느새 핸드폰을 보고 있었는지 소운이 빠르게 올라오는 반응을 따왔다. 재경의 눈동자가 핸드폰을 향하자 지금까지 보지 못한 가장 빠른 반응이었다.
[솔직히 아이돌 뽑는 프로 기대안했는데 ..비주얼 맛집이네... 감사합니다 하고 절해야할 판]
[개설레네 진짜ㅠㅠ]
[아니 저기는 도대체 뭐냐?? 연생아냐??? ㅁㅊ내심장치고갔다...재 누구야??? 일단 내 최애잡고간다.]
[@@:%% 극락 좌표 ㅇ<-<]
[음소거로 들어야지 안 되겠다 이러다 빠져들겠어]
[님아 음소거하는순간 자기를치고 싶을걸요?]
[이렇게 내 마음 치고가기 잇나요
정말내마음을 제대로 후려쳣어요
우리 결혼해요(・´з`・)♥]
너무 순식간에 올라가서 글도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다른 사람은 재경과 다르게 그 빠른 댓을 잘 캐치했다.
“보자마자 심사 끝. 잘생겼네. 음소거로 들어도 잘했어. 미쳤네. 노래도 잘해.”
“연습생인데 저렇게 색시하다고? 벌써 데뷔조 정해진 거 아니냐는데?”
“끝났다.”
소운의 주변으로 모여든 사람들이 빠르게 올라가는 댓글창을 보며 하나씩 읊어댔다. 전부 정우를 향한 칭찬이었다. 재경이 슬쩍 제 옆을 바라보았다. 처음 봤을 때 놀라긴 했지만 딱히 외모에 대한 감흥이 적긴 했다.
아무래도 많이 봐온 외모라서 그런 경향이 컸지만… 방송으로 처음 본 사람들이 온통 정우의 외모 이야기였다. 잘생겼는데 노래도 잘한다는 말은 적긴 하지만 적어도 눈도장 하나만큼은 제대로 찍었다.
“어? 정우 형 다음이 재경이 형이네요?”
태연의 말에 재경의 심장이 뚝 떨어진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