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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아이돌-23화 (23/125)

23화

토요일이 되자 연습생들 사이에서 활기가 느껴졌다. 매일 비슷하게 흘러가는 연습시간이 지루했는지 그들은 어떤 미션이 나올까 기대감에 차서 돌아다녔다.

그 사이에서 아침밥을 든든히 먹고 나른하게 하품을 하는 재경은 별개의 인간이었다.

“형은 어떤 미션이 나올 거 같아요?”

이제 당연하게 옆에 있는 이소운이나

“글쎄. 조끼리 뭉쳐놓은 거 보면 단체로 해야 하는 건가?”

자기 소속사 동생들은 어디에 버렸는지 자유롭게 다니는 윤하준이나

“트레이닝복을 입으라는 걸 보면 몸으로 하는 거겠지.”

처음부터 끈질기게 붙어있는 이정우까지 있어 재경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따로 다니고 싶다고…….’

이젠 제 의견따위 묻지 않고 자연스럽게 옆에 붙어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제가 혼자 다니고 싶다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척 무시해버리는 뻔뻔한 인간들이었다. 재경은 혀를 차면서도 애써 그들과 거리를 벌리지 않았다. 이정우의 인터뷰 이후로 재경은 굳이 그들에게 상처를 주려고 몰아세우지 않았다. 대신 관심 없다는 듯 굴었지만.

“재경이 형은 미션 뭐했으면 좋겠어요?”

소운이 재경을 콕 찍어 물었다. 이렇게 질문하면 답이 오는 걸 아는 듯 재경을 빤히 바라보며 기다렸다.

정적인 미션으로 나는 움직이지 않고 팀미션으로 대표가 나가서 나는 움직이지 않는 거.

“…아무거나.”

재경은 말하고 싶은 내용을 삼키고 대충 둘러댔다. 크게 대답을 기대하지 않았던 소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하준과 대화를 이어갔다.

“이번 미션에서 어떻게든 1분을 따와야 하는데 걱정이에요.”

“아무래도 노출빈도를 무시하지 못하지.”

그걸 pd가 철저하게 계산할 줄 몰랐다며 하준이 혀를 내둘렀다. 말수가 적은 재경과 정우 대신 늘 대화는 하준과 소운 위주로 돌아갔다. 어색하지 않게 기름칠하면서도 시끄럽지 않은 분위기라서 재경은 그런대로 버틸만 하다며 걸어갔다.

“노래 말고…….”

그때 정우가 재경에게 바싹 몸을 붙이더니 말을 걸어왔다. 뒤에 끊긴 말이 뭔지 궁금해서 재경이 그를 올려다보았다.

“좋아하는 거 있어요? 농구라거나 게임이라거나…….”

이제껏 자신이 노래만 불러댔으니 노래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말투였다. 재경은 ‘내가 뭘 좋아하지?’ 라는 생각에 미간을 좁혔다. 연습생으로 보낸 대다수의 시간. 아이돌을 하면서는 스케쥴을 소화하기 바빠서 따로 취미생활이 없었다.

재경이 깊게 고민하느라 그 자리에 멈추자 다른 사람도 덩달아 멈췄다. 계속 대답이 없자 정우는 괜한 질문을 던졌나 싶어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그와 같이 다닌다고 친한 것도 아니라 대답도 잘 안해주는데 신경쓰였다.

재경이 대놓고 싫다는 눈빛을 보내고 가버릴 것 같았다. 그래서 정우는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말하려고 했다.

“공부.”

“…….”

“음?”

what?

“…공부요?”

재경이 어렵게 꺼낸 한마디에 각자 비슷하면서도 다른 반응을 보여주었다. 순순히 대답할 줄 몰랐던 정우나 되묻는 하준 그리고 자신이 들은 게 맞나 되짚는 소운까지 의외라는 시선이었다.

“혹시 공부를 좋아한다고 해서 잘할 거라 생각하지 마.”

재경이 정우와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재경은 정우의 반응을 신경쓰고 있었다. 자신이 그에게 대놓고 말을 놓고 있으니 정우가 싫다고 하면 다시 올릴 생각이었다. 아니면 말지, 싶은 마음이라지만 기다리는 시간이 여유로운 건 아니었다.

정우에게 미안했던 마음과 그간 거리를 두려고 했던 것을 어떻게든 갚고 싶었다. 재경이 슬쩍 정우에게 시선을 피했다가 다시 그를 보는 등 가만히 있는 상태인데도 부산스럽게 느껴졌다. 그걸 알아본 건 정우가 유일했다. 그는 말없이 재경을 보다 픽 웃었다.

“공부 잘하게 생겼는데?”

그리고는 재경에게 제 나름의 농담을 건넸다. ……농담이라고 생각한 현타를 외면한 채 재경이 정우에게 흘겨보았다.

“못한다고. 좋아한다고 다 잘하는건 아니잖아.”

“그래.”

“그렇게 대충 넘기지 말지?”

“알았어.”

“진짜 못한다니까? 나 공부 존나 못해.”

“그랬구나.”

정우가 귀엽다는 듯 재경의 머리까지 토닥이자 졸지에 이상한 취미를 가진 애가 된 기분이었다. 재경은 손을 치워버리고 싶었지만 정우의 손길에서 느껴지는 친근함에 이번만 넘어가기로 했다.

아무것도 몰랐을 그에게 치졸하게 군 빚도 있으니 겸사겸사. 재경이 고개를 숙여 더 쓰다듬기 좋은 각도가 되자 정우의 손이 멈칫하더니 더욱 강하게 머리카락을 헝클었다.

한걸음 뒤에 있던 하준이 그런 둘을 묘한 시선으로 바라보았지만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의외네요.”

소운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하는 카메라의 수를 세어보며 재경에게 말을 걸었다. 이 중에서 몇 대가 자신들을 찍어줄까 생각하며.

“왜?”

“형은 노래랑 춤을 잘 춰서 공부라고 말할 줄 몰랐어요.”

“노래 안 좋아해.”

재경이 고개를 저었다. 재경의 단호한 말투에 소운이 카메라를 확인하다 말고 그를 보았다.

“공부는 좋아하는데 못하고 노래는 안 좋아하는데 잘해요?”

그게 정상인가요? 싶은 반응에 재경이 심드렁히 대답했다.

“배우면 할 수 있는 거잖아.”

“…그게 그렇게 되나요?”

배운다고 할 수 있는 게 노랜가?

아무리 요즘 세상에 노래가 조금 부족해도 끼만 있다면 아이돌을 할 수 있다지만 아이돌 그룹에 무조건 노래 잘하는 멤버는 있었다. 하물며 아이돌 전체가 수준급의 실력의 가지기도 하는데 그게 배운다고 되는 건 아니었다.

“형. 아무리 그래도 노래는 일이년으로 실력이 늘진 않거든요.”

“7년 정도 하면?”

재경이 무심히 내뱉는 말에 소운이 입을 다물었다. 자기도 7년이면 어느 정도로 바뀔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보다 재경이 그토록 오래 연습생을 했던 걸까 싶어 입을 열 수 없었다.

“형 혹시…… 연습생 7년 하셨어요?”

“아니.”

“휴. 전 또 형이 그렇다는 줄.”

“10년 넘었는데?”

“…….”

무슨 강산이 변하는 동안 연습생만 해?

소운은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낫다고 여겼다.

“그 정도면 연습생의 시조새 아니야? 아니면 삼엽충? 조상?”

다행히 하준이 분위기를 가볍게 띄워줘서 카메라 앞에서 적당히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그럼 이 오디션은?”

정우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재경이 그를 돌아보았다. 노래를 좋아하지 않으면서 이 오디션을 지원한 이유를 물어보고 있었다. 재경은 별거없다는 듯 태연하게 답했다.

“지원하고 싶어서.”

노래는 싫지만 오디션은 지원하고 싶다. 다른 사람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동안 재경은 미션장으로 걸어갔다.

“노래는 안 좋아하는데 아이돌은 되고 싶다?”

누군가 꺼낸 가설에 재경의 걸음이 삐끗했다.

*  *  *

강당에서 하나둘 모여드는 연습생을 보니 점점 넓었던 공간이 좁아지고 있었다. 다 같은 트레이닝복을 입었지만 저마다 화려한 머리카락이나 메이크업이 미션을 신경쓰는 게 눈에 보였다. 그렇게 바닥에 앉아서 홀을 둘러보고 있는데 귓가로 정우의 목소리가 스쳤다.

“이제 친구인거지?”

정우는 아까의 일을 어영부영 흘려넘기지 않으려는 듯 정리하려는 낌새가 보였다. 재경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인터뷰하길 잘했네.”

“그거 때문만은 아니야.”

실은 그게 재경의 못났던 모습을 돌아보게 했지만 그전에도 정우의 존재가 신경 쓰였다. 싫다는 티를 그렇게 내는데도 옆에 있는 게 불편하면서도 조금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과거에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멤버들이 싫었는데 반대로 그들도 오해할 수도 있단 생각이 들었다. 낙하산으로 갑자기 들어와서 무대를 망쳐버리면 누가 좋아할까?

그렇다고 재경의 상처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다르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 오디션을 끝으로 전부 헤어질거잖아.’

그럼 달라진 제 미래로 조금씩 치유해나가면…… 그거면 되지 않을까?

“자~ 주말이 찾아왔습니다.”

최PD가 나타나면서 연습생의 시선이 한쪽으로 쏠렸다.

“그동안 연습하느라 힘들었죠?”

이젠 MC처럼 능숙하게 분위기를 주도하는 그의 능청스러움에 연습생들이 저마다 격한 반응을 보였다. 정말 힘겨운 나날이었다고도 하고 그 와중에 밥은 맛있다며 엄지를 추켜세우기도 했다.

“역시 숙소를 잘 잡아야 해.”

최PD는 자신은 큰일을 했다며 자화자찬했다. 그가 두 팔을 벌리고 가슴이 부풀도록 공기를 들이마시니 연습생 몇 명이 가서 장단을 맞춰줬다.

‘확실히 숙소가 좋긴 해.’

재경도 며칠 지내면서 하나 불편한 게 없었다. 매끼 따뜻하고 맛있는 식사는 물론이고 레슨을 듣고 오면 청소도 되어 있다.

“좋아?”

재경에게 있어서 나름 격하게 반응한 걸 본 정우가 은근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밥도 주고 재워주잖아.”

“그러네.”

정우가 실없이 웃으며 상냥한 눈빛으로 재경을 바라보았다. 이제 조금씩 재경을 알아가고 있었다.

“이번 미션은 곧 있을 음악방송에서 설 자리를 정하는 미션입니다.”

그 사이 최PD의 설명이 이어졌다.

“개인전이지만 단체전이 될 것입니다.”

‘단체전?’

철저하게 개인전을 원하는 재경은 울상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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