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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아이돌-20화 (20/125)

20화

유민혁은 재경이 제 의견에 동조한다는 제스처에 힘입어 제 생각을 마음껏 풀어놨다.

“정장이 잘 어울리는 사람인데 교복을 입혀놓은 거 같아요. 저기서 조금 더 톤을 올리고 적극적으로 해도 좋을텐데 좀 아쉬워요. 뭔가 힘입게 들어가지 않으니까… 그래도 목소리는 좋네요.”

얼굴 믿고 성의가 부족하다는 의미도 은근히 실어오면서 안 어울린다는 말을 에둘러 표현하고 있었다. 유민혁처럼 생각하는 연습생이 없진 않을 것이다.

잘생기면 뭐해. 더 잘하려고 노력해야지 하는 그런 생각.

재경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지금은 저게 더 좋은 거 같아요. 막상 무대에 올라가면 달라질지 모르지만 지금은 트레이너에게 자기 목소리를 보여주는 시간이잖아요. 크게 들뜬 모습보다는 앞으로 있을 레슨에 맞춰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하니까요.”

유민혁이 살짝 당황했다가 곧바로 제게 유리하게 말을 돌렸다.

“아, 그럼 지금은 얌전히 부르다가 무대에서 빵 터트리라는 거죠?”

“연습이 곧 무대에서 보여주는 모습이니까 그렇게 달라지게 할 순 없어요. 아마 저 연습생은 비슷하겠죠. 다만…….”

재경은 왜 자신이 이런 말을 하고 있나 회의감이 들었다. 이정우는 같은 소속사에서 온 친한 무리가 있는데 말이다.

하지만…….

‘그냥 넘어가면 나도 다를 게 없잖아.’

자신의 단면만 보고 떠들어대던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저 노래에 제가 가장 잘 맞겠다 싶은 목소리를 내는 걸거에요. 경쾌하진 않지만 가사전달이 잘되고 있잖아요.”

“아…….”

유민혁이 말을 끌었다. 제게 맞장구를 쳐주지 않아서 그런건지 곧 대화가 끊겼기에 재경이 미련없이 고개를 돌렸다. 왜 귓속말을 해서. 어차피 마이크를 달고 있어서 속삭여봐야 소용없는데 말이다. 재경은 이정우도 유민혁도 없는 방향으로 고개를 틀었다.

당연히 카메라가 모여있는 쪽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리느라 그를 향해 카메라가 움직인 건 보지 못했다. 노래가 끝난 이정우가 악보를 내리며 트레이너를 바라보았다. 트레이너는 몇 번 피아노 건반을 누르며 생각하더니 피식 웃었다.

“잘하네. 목소리가 좋다.”

트레이너가 목소리를 시작으로 발성이나 박자까지 부족한 게 없다며 칭찬을 했다. 그녀의 친근한 반응에도 이정우는 예의상이라도 웃지 않고 감사하다며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그럼 다음 연습생은…….”

이정우가 앉은 것과 옆에 누가 있는지 확인한 트레이너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거 어떻게든 방송나가겠는데?”

심사위원이기도 했던 트레이너가 나지막한 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녀의 혼잣말을 들은 몇몇이 의미심장하게 재경을 바라보았다.

“서재경 연습생.”

재경이 자리에서 일어나 아까 이정우가 섰던 곳으로 갔다. 묵례하고 노래를 시작하려고 악보를 눈앞까지 들었지만 실은 가사는 다 외웠다.

“노래 좋아해요?”

시작하라고 할 줄 알았던 재경이 의외의 질문에 악보에서 눈을 뗐다. 트레이너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노래 좋아하는 거 같아서.”

좋아하지 않아요. 제 인생을 완전히 망가뜨린 게 노랜데 좋을리가요. 재경이 말없이 종이를 매만지고 있자 트레이너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작할게요.”

트레이너가 반주를 시작하자 재경의 탁성이 섞인 허스키한 음성이 나긋하게 울렸다. 유민혁이 이정우의 노래를 깎아내린 것처럼 제 노래를 듣는 연습생 모두가 긍정적으로 생각하진 않을 것이다. 누군가는 자신에게 아무 관심이 없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제 목소리를 걸고넘어질 수도 있다.

그래도 이 오디션에 지원하고 나서 노래하는 것만큼은 두렵지 않았다. 잘하든 못하든 마음을 비우고 시작하니 적어도 목소리를 내는 게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노래를 부른 게 이번이 세 번째던가?

머릿속에서 트레이너가 건넨 질문이 왜 자꾸 맴도는걸까.

노래가 끝나고 난 후 재경은 머릿속을 맴도는 단 하나의 생각을 갈무리하지 못하고 천천히 눈을 떴다. 정통으로 바라보고 있던 이정우와 눈이 마주쳤지만 재경은 주문에 걸린 듯 꼼짝없이 그와 마주보고 있었다.

*  *  *

보컬 레슨이 끝나며 오늘 하루 공식적인 수업이 전부 끝났다. 이제 조금 쉬었다가 저녁을 먹은 후 개인 연습을 하면 된다. 트레이너가 나가면서 연습생들이 분분히 움직여 제가 친한 사람들끼리 뭉쳤다.

재경은 그 사이에서 어디도 가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자기 내면에서 일어난 혼란스러움에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아까 노래를 부를 때 좋다고 느꼈던 감정. 더 부르고 싶다는 그 생각을 떨치지 못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서 그런 거겠지?’

나중엔 노래는 노래방에나 가서 부를테니까 조금은 마음 편하게 즐겨도 되지 않을까? 재경이 조금 후련한 듯 제 가슴을 쓸어내렸다.

트레이너도 이대로만 연습하면 되겠다고 했고 따로 추가 레슨 시간은 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으니 자유시간이 늘어나게 되었다. 씻고 밥 먹을까? 아니면 밥 먹고 씻을까?

어떤 게 나을지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동안 재경의 옆으로 어슬렁거리며 다가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형 진짜 잘하네요.”

이소운이 다가와서 건네는 칭찬에 재경보다 먼저 반응한 사람이 있었다.

“형?”

“네. 오늘부터 형이라고 부르게 되었어요.”

이정우의 시선이 이소운에게서 재경으로 넘어왔다. 자기한테는 말 놓지 말라더니? 라는 의미가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재경은 딱히 이정우에게 반응하기도 귀찮아 고개를 돌려버렸다.

“형이라니 소운이가 많이 어리구나.”

윤하준이 자연스럽게 대화에 끼어들었다.

“저 17살이에요.”

“나는 20살이고 정우는 19살.”

“어? 그럼 재경이 형이랑 정우 형이 동갑이네요.”

재경은 가만히 있는데 알아서 나이까지 오픈되었다. 언젠가 나이 꺼내지 않았었나? 그런데 윤하준이 일부러 형을 언급하려고 나이를 끌고 온 걸 알았다. 더구나 윤하준은 재경의 노래까지 끌고들어와서 정말 잘 부른다며 칭찬에 칭찬을 건넸다.

‘진짜 왜 이래.’

재경이 윤하준을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자신이 알던 그 사람이 아닌 것처럼 구니까 이젠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싶을 정도였다.

“그에 비해 나는 노래가 너무 느끼했어.”

윤하준이 아쉽다는 듯 제 볼을 긁적이며 말하자 이소운이 화들짝 놀라서 두 손을 휘저었다.

“느끼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담백하게 부르는 것보다 더 눈에 잘 띄었어요.”

“그거 칭찬이지?”

“그, 그럼요.”

“그래? 소운이도 목소리가 예쁘더라. 특히나 고음에서 되게 안정적이더라.”

“정말요? 저는 목소리가 얇아서 좋은 줄 모르겠던데…….”

이소운이 제 머리를 긁적이며 부끄럽다는 듯 굴었다.

“내가 마음에도 없는 칭찬을 한 분위긴데?”

윤하준이 다른 사람에게 제 말을 좀 보태라는 의미로 보지만 그래봐야 정우와 재경뿐이었다. 이왕이면 정우보다 재경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재경은 그 시선을 받고도 입을 다물었다.

“형이 듣기엔 어땠어요?”

이소운이 직접적으로 물어보자 재경은 대답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내가 뭘 안다고.’

바닥을 딛고 있는 발이 문쪽을 향해 서고 있는 게 이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은 무의식적인 표현인가보다. 재경은 대충 마무리할 생각으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노래에 가장 잘 어울렸어.”

“정말요? 하지만 저보다 형이 더 잘했는데…… 정우 형도 잘하고…….”

“단순 기교를 비교하자면 당연히 이정우 연습생이 더 잘했어. 1-2년 배운 게 아니니 그 노래의 느낌보단 기술이 먼저 나올 수밖에 없잖아. 그래서 우리는 배운대로 노래를 불렀을 뿐이지만 넌 노래 부르는 자체를 즐거워하잖아. 그 마음이 들어가서인지 노래에 설렘이 느껴져서 잘 어울린다고 한거야.”

재경이 한방에 처리하고 말려는 듯 빠르게 말을 뱉어냈다. 대충 눈치를 보니 이소운이 더 말을 걸 것 같지도 않아서 자리를 벗어났다. 재경이 떠나고 남은 세사람은 각자의 생각에 빠져 있었다. 무슨 일이 있나 카메라가 훑고 가는데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였다. 묘한 침묵을 깬 건 얼굴이 발그레하게 달아오른 소운이었다.

“제 노래에 설렘이 있대요.”

되게 무뚝뚝하고 남에게 관심도 없어보이던 재경이 누구보다 제 마음을 잘 아는 것 같아 소운이 제 가슴을 꾹 눌렀다.

“저 너무 떨려요. 왠지 고백받은 기분이에요.”

가벼운 칭찬인데 심장이 진정되질 않았다. 그 옆에 있는 정우는 다른 의미로 재경이 한 말을 곱씹고 있었다. 그의 생각을 알고 있다는 듯 하준이 웃으며 말했다.

“우리를 한데 묶어서 좋긴 한데 묘하지 않았어?”

정우가 반응없이 재경이 나간 문을 바라보지만 하준은 아랑곳하지 않고 제 말을 이어갔다.

“너랑 내가 얼마나 연습생 생활을 했는지 누구한테 들었을까?”

그렇다기엔 여기 소운을 제외하고 친한 사람도 없어보이는데 말이다.

“1-2년 배운 게 아니라…… 맞는 말인데 그보다 더 우리를 잘 알 거 같단 말이야.그렇지?”

이래서 자꾸 옆에 있고 싶은 거라며 하준이 재밌다는 듯 웃었다. 남들한테 관심없어 보이는 재경이 자신들을 잘 아는 것처럼 말했다.

하준이 비죽 웃고 있는 사이 정우가 소운을 바라보았다. 하준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나보다.

“이소운 연습생.”

“소운이라고 불러주세요. 형.”

“어떻게 한거야?”

“네?”

“서재경 연습생한테 형이라고 불렀잖아. 어떻게 한거냐고.”

“아…….”

정우는 의외의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하준도 제 말은 귓등으로 흘려넘긴 걸 알고 헛웃음을 터트렸다.

얘 뭐야.

재경이 자신들을 알고 있던 건 아닐까 의심하는 거 아니었어? 그런데 무슨 형이야.

이소운이 당황한 채로 횡설수설 말을 꺼냈다.

“저는 그냥 나이가 더 많으니까 형이라고 부른 건데 어떻게 해서 형을 형이라 부르게 된거냐고 물으신다면…….”

점점 홍길동이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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