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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아이돌-19화 (19/125)

19화

수중에 돈이 별로 없는데 자기한테 실망한 엄마가 언제 올지 모른다. 단기 아르바이트로 조금이라도 수익을 당길 수 없나 고민하다보니 식당에 다다랐다. 호텔 내부에 마련된 식당. 뷔페가 나오기도 했다가 나라별 음식이 나오기도 하는등 매일 새로운 요리가 주어졌다.

적어도 식사만큼은 최PD가 사랑스러울 지경이었다.

“저는 과거로 돌아가도 꼭 이 오디션에 또 지원할거에요.”

재경이 뜨끔해서 이소운을 곁눈질로 보았다.

“왜요?”

“한달 내내 호텔식이니까요.”

“아아.”

연예인 생활하면서 호텔식을 자주 먹은 재경과 다르게 다른 연습생에겐 이 프로그램에 열심인 하나의 이유인가보다. 물론 재경도 아주 마음에 들었다. 따뜻한 밥을 무료로 하루 세끼 먹을 수 있다는 게 그의 마음을 넉넉하게 만들었다. 당장 배가 부르니 숙소에 나갈 때를 생각하지 않았던 거다.

‘배부른 돼지가 된 거 같아.’

배고픈 인간으로 살던 재경에게 있어 호텔은 그의 날 선 마음을 한없이 풀어놨다가 단시간에 좁히게 하는 그런 공간이었다. 재경이 한식이 나오는 방향으로 향하니 이소운은 다른 걸 먹고 싶었는지 반대편으로 향했다.

각자 음식을 받아서 구석진 테이블에 마주보고 앉으니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다른 사람도 없이 단 둘이 있고 워낙 말수가 적은 재경이나 재경을 어렵게 여기는 이소운이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래도 집중할 게 있다는 게 다행이었다. 둘은 어정쩡하니 젓가락을 들고 각자 자신의 밥을 먹기 시작했더니 어색함이 조금 풀어지고 있었다.

“잘 드시네요.”

막 시금치를 입에 넣은 재경이 앞에서 들린 말에 이소운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필라프를 받아와서는 반도 먹지 않고 물잔을 쥐고 있었다. 재경은 그의 말을 어떻게 받아칠지 고민하다 그냥 솔직히 말했다.

“배고플까봐서요.”

자주 굶어봤기에 먹는 것에 한해서는 절대 빼지 않고 받아먹는다. 아침도 굶었기에 더욱 점심은 남김없이 먹으려고 했다. 재경이 다시 젓가락질을 시작하자 이소운이 물잔을 들고 말을 고르고 있었다.

“저 실은 같은 방이 되기 전부터 형을 되게 유심히 봤었거든요.”

‘형?’

이정우가 반말해 왔던 것처럼 달갑지 않은 관계 부여에 재경이 인상을 찡그리며 마저 시금치를 씹었다.

“다가가기 힘든 스타일이라고 해야 하나? 앗, 나쁜 뜻은 아니고 잘생기고 노래도 잘하고 키도 큰데 잘 웃질 않으셔서… 어디 부잣집 도련님 같은 기품도 느껴져서 다들 집에서 가수를 반대해서 오기로 여기 오디션을 보러 온 건가? 싶었어요.”

아니, 그 반대야. 부잣집 아니고 가수 하기 싫은데 가수 하래서 여기 온 거야. 그리고 나 진짜 가진 거 하나 없는데. 재경은 다른 반찬을 고르는 척 이소운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다른 사람 입으로 자신이 어떤지 듣는 게 오랜만이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할 때 그 사람이 듣지 못한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그들은 외모나 차림, 간단한 대화 등 단편적인 부분만 보고 모든 것을 아는 듯 굴었다.

- 생긴 건 존나 에비앙만 찾을 새끼가 수돗물을 마시더라니까?

- 도도하게 굴어서 어디 재벌집 막내라도 되는 줄 알았더니.

- 옷을 봐라. 매일 하나만 입고 오는데 무슨.

- 그럼 대체 무슨 재주로 데뷔조에 들어간거야.

외모 때문인지 아니면 말수가 적어서인지 재경은 항상 생각과 다르다는 말이 따라다녔다. 이소운도 그들과 다를 바 없는 말을 하고 있었다. 재경은 아직 다 먹지 못했지만 입맛이 사라져 조용히 젓가락을 내려놨다.

차라리 뒤에서 떠들지 왜 굳이 앞에서 말하는걸까.조심스럽게 말한다고 해서 기분이 상하지 않을 보장이 있나? 내가 부잣집 아들이 아니라는 걸 말하면 미안하다고 하려나?

“그런데 대화를 나눌수록 제 생각이 틀렸더라고요.”

이소운의 말을 바로 받아들이지 못한 재경이 인상을 찡그렸다. 자기가 밥먹는 모습이 게걸스럽기라도 했나? 알고보니 가난해보인다고 하려고?

“수줍음을 잘 타는 성격 좋은 형 같아요. 가끔 엉뚱하기도 하고 가리는 거 없이 잘 먹는 거 보면 우리 엄마도 좋아하실 거 같고.”

이게 무슨.

재경이 혼란스러운 시선을 감추려 고개를 숙였다.

“형도 첫인상이랑 다르다는 말 많이 듣죠? 저는 되게 소심한데 다들 그렇게 생겼대요.”

이소운이 마저 물을 마시는 동안 재경은 물잔대신 젓가락을 들었다. 어딘가에 집중해야 할 것 같아서 가장 만만한 걸 쥐었다. 귀가 따뜻해진 게 어디서 난방이라도 틀었나 생각하며 마저 밥을 먹었다.

‘뭐야. 결국 없어보인다는거잖아.’

부잣집 아들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고 하는… 남들과 다를 바 없는 말이었다.

“형 먹는 거 보니까 저도 밥 먹을걸.”

“…맛있어요.”

재경은 배가 부른데도 자꾸 밥이 들어가는 건 맛이 좋아서라고 여겼다. 이소운의 말이 달게 들려서 그런 게 아니다.

“그런데요.”

이소운이 말을 할까말까 고민하다 나름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목소리를 낮췄다.

“일부러 그러신거죠?”

“뭐가요?”

“아니아니 저는 절대 이상한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냥…….”

재경이 막 국을 떠서 입에 넣으며 이소운을 바라보았다.

“일부러 표정 굳히고 춤춘 거요. 그냥 췄으면 재미없다고 편집될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시선을 끌 수 있구나 하고 감탄…….”

텅.

재경의 손에서 수저가 떨어져 식판에 부딪히면서 이소운의 말이 끊겼다.

재경은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은 하나였다.

씨발. 씨발씨발씨발씨발.

*  *  *

미션에 따라 시간을 더 준다고 했지 어떤 걸 방영할지 결정하는 건 제작진의 마음이었다. 만약 재경이 1분이라도 더 받게 되면 아까 춘 춤이 나갈 수 있다는 거였다. 어차피 연습생이니까 기본기가 되어있는 애 정도로만 비출 수 있는 걸 굳이 얼굴 근육을 비틀어가며 바꿔버렸다.

일부러 눈에 띄려고 한 게 아니라 어딘가 어설프게 보이고 싶어서 그랬다. 쟤는 잘 못하는구나 하고 흘려버렸으면 한건데 더 눈에 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바본가?’

6년이나 어려졌다고 뇌가 작아진 것도 아닌데 왜 그 쉬운 걸 생각하지 못했을까. 그걸 깨닫자마자 윤하준이 왜 머리 잘 썼냐고 했는지도 이해갔다.

‘그냥 내 모습을 그대로 보여줘도 되는건데.’

아이돌을 할 때도 새로온 멤버가 너무 눈에 안 띈다는 댓이 많았었는데 말이다. 어차피 자신은 가만히 있으면 눈에 띄는 타입도 아니니 이젠 괜히 뭐를 더 하지 않는 게 나았다.

재경이 한결 편안해진 마음으로 고개를 들었다. 보컬실에서 한명씩 번갈아가며 노래 부르는 중이라 곧 재경의 차례가 돌아온다.

“음…….”

윤하준이 노래를 맞췄을 때 트레이너가 심각하게 고민했다.

“묘하게 느끼하네?”

재경이 재빨리 입을 막았다. 자신이야 터질뻔한 웃음을 막았지만 다른 사람은 아니었다.

“선생님.”

윤하준이 상처받았다는 얼굴로 바라보자 트레이너가 농담 같지만 진심이라며 소리내서 웃었다.

“적당히 감정 빼고 불러요. 눈썹 많이 씰룩대지 말고 은근하게 보지 말고. 버터를 뭉텅이로 먹은 느낌이야.”

윤하준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주저앉자 지켜보던 연습생이 배를 잡고 뒤로 넘어졌다.

“다음 이정우 연습생.”

순서는 트레이너의 마음대로였지만 그냥 앉은 순서대로 시키고 있었다. 이름을 다 외우지 못해서 그런 것 같은데 효과는 괜찮았다. 이번에도 꿋꿋하게 옆으로 와서 앉은 이정우 때문에 다음은 재경 자신의 차례라는 걸 알 수 있으니까. 재경이 턱을 괴고 심드렁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결과가 빤히 보이는 영화를 보는 느낌이었다.

‘반전이라고는 1도 없네.’

이정우가 피아노 옆에 선 모습이 그럴싸하게 잘 어울렸다. 작은 얼굴과 맑은 피부의 수려한 외모가 다 받아줄 것만 같은 유한 성격을 생각하지만 짙게 뻗은 눈썹과 높은 콧날이 만만치 않은 고집을 드러냈다. 그 상반되는 느낌이 한 얼굴에 있으니 더욱 시선이 가는 외모였다.

예쁜 얼굴이 아니라 잘생긴 얼굴이다. 요즘 좋아하는 얼굴에 80년대 배우의 느낌이 있었다. 연습생 전부를 둘러본 건 아니지만 이정우가 최종 우승자가 되는 게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묵직하면서도 저음이라 속삭이는 듯 부르자 같은 노래를 하 각자 특징에 따라 다른 노래 같았다.

‘얼굴만 잘생긴 게 아니라 실력도 좋아.’

안 뽑을 수 없는 사기 캐릭터지.

그의 목소리야 매일같이 듣다시피 해서 잘 알았지만 연습생일 때부터 노래를 잘하는 걸 알자 괜히 질투심이 일었다. 그래서 옆에 있기 싫었고 한 카메라 안에 잡히기 싫었다. 재경이 아예 팔짱을 끼고 다른 곳을 보려다 유민혁과 눈이 마주쳤다.

A조가 쎄다고 하면서도 제게 어떻게 포즈를 잡았냐고 물어보던 연습생. 부럽다는 듯 보지만 그 이면에 숨은 시샘을 눈치채고 있었다. 그래서 재경은 되도록 그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았는데 꼼짝없이 걸려들고 말았다.

유민혁이 바로 기회를 낚아채며 그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되게 조용하게 부르네요. 계속 저렇게 부르려나 봐요.”

재경은 잠깐 고민하게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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