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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아이돌-17화 (17/125)

17화

아무것도 묻어나지 않았지만 엉덩이를 털며 부산스레 움직이니 이소운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가 곧 웃음으로 가늘어졌다.

“그런데 우리는 조금 구석에서 해요.”

카메라에 이소운만 좀 잡히도록 하고 자기는 사각지대 쪽에서 추면 되겠지.

“처음부터 시작해볼게요.”

이소운이 핸드폰으로 영상을 틀었다. 재경은 그것을 열심히 보는 대신 이소운을 관찰했다. 소속사가 어딘지 모르지만 이소운은 정말 기본밖에 배우지 못했는지 손발이 따로 놀았다. 영상이 끝나고 이소운이 민망한 미소로 재경에게 다시 영상을 틀겠다고 했다.

“그것보단 노래로 트는 게 좋겠어요. 그래야 우리가 앞을 보고 연습할 수 있으니까요.”

영상을 보면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볼 수 없단 설명에 이소운이 바로 다운받은 음원을 틀었다. 재경은 편하게 팔을 늘어뜨린 자세로 서 있다 박자에 맞춰 팔을 들었다.

물론 아까 본 영상처럼 과장되지 않게 일부러 동작을 작게 했다. 팔을 내리며 가볍게 웨이브로 이어지다 다음 안무를 위해 발을 굴렀다.

“어? 어어. 어떻게 하신거에요?”

이소운이 같이 팔을 들었다가 엉거주춤 내리며 재경을 돌아보았다. 첫 동작부터 버벅거리던 자기와 달리 별로 힘들이지 않고 따라한 재경을 보고 놀란 것이다. 재경은 춤을 멈추고 거울로 이소운과 눈을 마주쳤다.

“팔을 내리면서 흐르듯이 웨이브를 받으면 돼요.”

“흐르듯이요?”

“네. 그래야 안무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니까……. 이렇게요.”

이소운이 팔을 내리고 부자연스러운 웨이브를 선보였다. 재경이 고개를 저으며 다시 시범을 보였다.

“이렇게요.”

팔을 내리면서 웨이브로 이어지라고 보여주고 이소운이 따라하는 걸 지켜보았다.

“팔이랑 웨이브랑 따로 놀지 말고.”

이소운이 재경의 조언을 새겨들어 다시 따라 했다. 아까보단 자연스러웠지만 전체적으로 어설픈 연결 동작이었다. 재경이 잠시 이소운을 바라보다 손을 뻗었다.

“잠깐만 손댈게요.”

“네네.”

이소운이 버벅거리다 크게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재경이 그의 등에 손을 댔다.

“다시 천천히 팔 내려볼래요?”

“이렇게요?”

“네. 그 속도로 다시 내려볼게요. 그리고 제가 미는 부분을 앞으로 내민다는 생각으로 움직여봐요.”

이소운이 팔을 내리는 속도에 맞게 재경이 그의 등 위쪽을 밀었다. 어설펐지만 재경이 웨이브 시작하는 박자가 잘 맞춰줘서 동작 사이가 매끄럽게 연결되었다.

“우와.”

“빨리 안해도 되니까 천천히. 다시 해볼게요.”

이소운의 몸에 손을 대며 자리를 옮긴 재경의 뒤로 카메라의 빨간 불이 깜박였다.

“이 곡은 강하게 출 필요 없어요. 몸에 힘이 들어가는 것보다 유연하게 뻗은 팔이 더 자연스러워요.”

“이렇게요?”

“네. 조금만 더 쭉 뻗어보세요.”

재경이 이소운의 굽혀진 팔꿈치를 직접 펴줬다.

“어정쩡하게 뻗으면 이상해요.”

몸에 힘이 많이 들어가고 자신감이 없어 팔다리가 움츠려 있고… 봐줘야 할 것 투성이었다. 이소운의 어설픈 동작에 재경이 제 볼을 살살 긁으며 어디서부터 잡아줘야 할까 견적을 냈다. 이소운이 제 발을 몇 번 퉁퉁거리며 안무를 따라해봤지만 곧 어설프게 꼬여버렸다. 일부러 재경에게 보여주려고 춤을 췄다.

“여기서 스텝이 꼬여요.”

“이건 엇박으로 들어가야 해서 그래요. 스텝을 바꾸자마자 정박에 맞게 상체를 움직어야 해서 어려워요.”

재경은 시범을 보여주겠다는 듯 천천히 발을 튕기듯이 바꿨다. 일부러 속도를 느리게 했더니 이소운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움직였다. 원래 빨리 움직여야 할 자세를 천천히 움직이다 보니 포즈가 이상했지만 이소운은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재경은 거기에 힘입어 이소운의 발끝의 각도를 잡아줬다.

“발이 먼저 균형을 맞춰주고 나면 움직이기가 좋죠. 턱을 쓸어주면서 그대로 팔을 뻗고 골반을 튕겨줘요.”

“이렇게요?”

“네. 조금만 더. 어설프지 않으려면…….”

말하던 재경이 현타를 맞은 표정으로 굳어버렸다.

‘잠깐만. 내가 지금 뭐하는거지?’

이소운의 동작을 하나둘 잡아주다보니 저도 모르게 집중하고 있었다.

“흠흠. 그렇게 하면 돼요. 나머지는 선생님이 잡아줄거에요.”

재경이 주먹쥔 손으로 입가에 대며 억지로 헛기침을 끌어냈다. 다행히 집중하고 있는 이소운이 재경을 붙잡지 않고 같은 동작을 연속해서 연습하니 더 붙잡진 않을 것 같았다. 재경이 슬쩍 그에게서 멀어졌다.

‘미쳤네. 미쳤어.’

내가 지금 누구를 가르칠 상황이 아닌데 정신이 나간 게 분명했다. 대체 댄스 트레이너는 언제 오냐고 한숨을 내쉬던 재경이 애꿎은 벽을 꾹꾹 찔러댔다. 연습실마다 방음벽으로 들어간 쿠션이 재경의 힘에 들어갔다 나왔다.

“흠흠.”

애꿎은 목만 다시 가다듬고 괜히 숨도 참았다가 어깨가 올라갈 정도로 갑갑할 때까지 참아봤다. 신나서 이소운을 도와줬다는 자괴감이 든 것도 잠깐이었다.

“하아.”

자기가 생각해도 노답이었다. 아이돌 안 한다면서, 이제 전부 지긋지긋하다면서 왜 이소운을 가르치면서 재밌다고 생각하냐고.

이소운을 도와주면서 안무가 나아질때마다 뿌듯하고 더 나아지게 할 수 있단 생각에 계속 말을 걸었다. 눈에 띄지 않겠다고 결심한 게 무색하게 이소운의 자세를 나노 단위로 잘라서 파악한 건 다 자기만족 때문이었다.

재경의 입가에 자조 어린 미소가 스쳐갔다.

“이거요.”

“악…… 네, 네?”

갑자기 들린 목소리에 재경이 깜짝 놀라 돌아보았다. 언제 다가왔는지 이정우가 재경과 이소운의 사이에 서서 바라보았다.

“이 부분이 잘 안되는데 한번만 봐주세요.”

“아니, 제가 왜…….”

“가르쳐 주는 거 봤어요.”

이소운을 턱짓으로 가리킨 이정우가 자기도 봐달란 식이었다.

“저기 윤하준 연습생 있잖아요.”

재경도 마찬가지로 턱짓으로 윤하준을 가리켰다. 이소운과 춤을 추기 전에 둘러봤을 때 이정우는 윤하준과 함께였다.

“이상하대요.”

“어디가요?”

이정우는 저도 모르는지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서 봐달라고 왔다는 것이다.

“아니, 그…….”

재경은 전혀 달갑지 않은 제안이었지만 이정우는 뻔뻔하게 노래까지 틀고 어렵다는 안무를 췄다. 이소운이 가장 어려워하던 그 포인트 안무였다.

내게 네 마음을 줄래

나만이 너의 boy야

내 이름을 불러줘

네게 보이는 바로 나야

스텝이 엉켜 주춤하던 이소운과 다르게 이정우는 매끄럽게 동작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걸 본 재경의 표정이 점점 이상하게 변해갔다. 이정우가 팔을 내리며 재경의 대답을 기다렸다.

“어때요?”

“그러니까……”

이소운처럼 못 추는 건 아니었다. 트레이너에게 레슨을 받기 전부터 안무는 다 외우고 있는 듯했다. 윤하준이 말한 문제점이 뭔지 바로 감이 왔다. 당연히 대형 소속사에 있는만큼 동작에 대한 이해는 제법이었다. 몸도 유연하고 박자감도 좋았다.

다만…….

“이게 무슨 노랜지 알죠?”

“네.”

“무슨 노랜데요?”

“‘절 선택해 주세요’라고 유혹하는 댄스곡이요.”

유혹이라고 쓰기엔 연령대를 조금 더 낮춰야 하겠지만 얼추 비슷했다.

알고 있네.

재경이 이상하게 변하려는 표정을 다잡았다.

“그런데 왜 그렇게 추세요?”

“잘못 췄나요?”

“아니, 왜 무섭게 추시냐고요.”

이정우의 무표정에 실금이 갔다. 재경은 저렇게 작은 표현으로도 감정을 드러낼 수 있는 게 신기했다. 그렇다고 그 감정에 동요하는 건 아니지만.

“이 노래는 다크하게 들어가는 곡이 아니에요. 처음부터 끝까지 상큼하게 가야 하는데 표정이…… 그러니까…….”

재경이 더 말해도 되나 고민하다 한숨과 함께 뱉었다.

“날 안 뽑기만 해봐, 협박하는 거 같다고요.”

어디선가 푸흡, 웃음소리가 들리자 재경이 고개를 돌렸다. 이정우는 마음에 안 드는지 인상을 찡그리기만 했는데 어디서 웃음소리가 들렸는지 모르겠다. 근처에 있는 누군가의 뒷모습을 의심스럽게 바라본 재경은 다시 대화를 이어갔다.

‘설마 윤하준이 웃었을라고’

“그래서요?”

“그러니까 그 표정…… 노려보지 마시고. 이왕이면 웃으세요.”

이정우가 더욱 미간을 찡그리자 재경이 그의 이마를 콕 찍었다.

“인상 말고 웃으라고요.”

외국어도 아닌데 왜 못알아듣지. 재경은 이정우에게 보란 듯이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이정우의 눈이 놀란 듯 커지더니 어벙한 표정이 되어버렸다.

아니 웃으라니까.

“웃을 줄 몰라요? 상큼하게 웃으라니까?”

“왜 그렇게 잘 웃어요?”

“네? 아니. 무대에 서면 웃어야 하잖아요.”

“평소엔 잘 안 웃으면서 뭐가 그렇게 자연스럽냐고요.”

“여기서 그런 말이 왜 나와요?”

내가 웃든 안 웃든 그게 뭐라고 이 사람아.

“푸하하하.”

엄한 인간이 웃음을 터트렸다. 재경이 불만스럽게 윤하준을 돌아보았다. 아까 이정우가 다가왔을 때부터 은근슬쩍 시선을 주더니 슬금슬금 근처까지 왔었다. 연습하는 척 팔다리를 휘두르지만 자신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는 게 티났다. 그래놓고 지금은 몰래 들은 걸 감추지도 못한 채 웃고 있었다.

“상큼하게라잖아. 상큼하게.”

윤하준이 웃음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말 사이사이에 흘러넣었다. 이정우의 불만스러운 표정에도 윤하준은 꿋꿋하게 그를 놀려댔다.

“안 그래도 보여도 잘 추는 앤데 여기 들어와서는 빙구처럼 구네요.”

윤하준이 이정우의 대변인처럼 말했다. 재경도 이상하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그가 알기로 이정우의 연습생 기간이 제법 되는 걸로 알았다. 그런데 이런 간단한 표정연기 하나 못 하는게 이상했다.

“카메라가 있어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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