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동춘추 - 리부트-209화 (209/217)

〈 209화 〉 유민의 지난 이야기 – 2027년 10월 5일

* * *

­ 오전 10시,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와대

어제 뉴욕에 있는 UN 본부에서 열린 회의에서,

한국 UN 대사는 국정원과 국군정보사령부에서 획득한 첩보를 바탕으로

현재 일본이 몬주에 있는 원자력 발전소에서 플루토늄을 추출, 핵무장을 시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 세계에 알렸다.

하지만 일본 UN 대사는 이에 대해 뻔뻔스러운 답변을 내놓았다.

“한국은 지난 2차 한국전쟁에서 북한이 가지고 있던 핵무기들을 탈취함으로써 새로운 핵무기 보유국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작금에 이르러 자국(일본)에 대해 상당히 배타적인 태도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한국 정부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일본 정부는 부득이하게 자위적 측면에서의 핵무장에 대해 검토하는 중입니다. 하지만 이미 핵무장을 시작했다는 한국의 주장은 사실이 아닙니다. 또한 앞으로 일본이 핵무장을 하게 된다면 이에 대한 원인은 모두 한국이 제공한 것임을 분명히 밝혀두는 바입니다.”

사실 일본은 이전부터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지속해서 군사력 강화를 시도해오고 있었다.

러시아와의 쿠릴 열도 영토 분쟁을 이유로 전차 등 기계화 전력을 크게 확충시켰고,

중국과의 센카쿠 열도 분쟁을 이유로 항공모함을 건조, 운영했으며,

2차 한국전쟁 이전 북한의 ICBM 등 장거리 미사일 개발을 이유로 미국과의 핵공유를 추진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미국은 러시아, 중국, 이란 세 나라와 언제 전쟁을 벌이게 될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을 맞이하고 있었고,

일본과의 핵공유는 커녕 일본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들마저 모두 빼 다른 곳으로 이전 배치시켜야 할 형편이었다. (주한미군 역시 몇 년 전 베트남으로 이동하는 바람이 미군은 2차 한국전쟁이 벌어지는 동안 강 건너 불구경하는 거 마냥 아무런 관여도 하지 못했다.)

그래도 미국은 일본이 스스로 군사력을 강화하는 부분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군사 동맹국으로서 미국과 함께 중국, 러시아를 견제할 줄 주요 전력이 되어줄 거란 판단에서였다.

물론 미국은 한국의 군사력 강화에 대해서도 같은 생각을 견지하고 있었다.

미국에게 있어 한국과 일본 두 나라 모두 자국의 안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나라들이었기 때문이다.

북한까지 흡수 통일하며 세계 4위의 군사 강국으로 급성장해버린 한국은 반도의 특성을 살려 중국과 러시아를 턱밑에서 견제할 수 있었기에 미국으로서는 절대 잃으면 안 되는 존재였고,

일본 역시 전통적으로 강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중국과 러시아가 태평양으로 진출하려는 걸 봉쇄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었기에 절대 버릴 수 없는 카드였다.

미국에게 제일 좋은 방향의 결과라면 한미일 삼국이 든든한 군사 동맹을 맺고 다 함께 중국과 러시아 등에 대항하는 것이겠으나,

지금 이 두 동맹국이 (한국과 일본은 각각 미국과 동맹을 맺고 있지만 한국과 일본 양국끼리는 동맹 관계가 아니다.) 언제라도 전쟁을 치를 기세로 으르렁거리고 있으니, 미국의 속은 바싹 타들어가기만 했다.

일본 UN 대사의 망언이 있은 다음 날,

김창수 대통령은 청와대 지하 벙커에서 NSC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소집했다.

“이쯤 되면 싸우자는 거지요? 싸우자고 덤비는 오만한 자에게 굳이 우리가 예의와 격식을 갖추고 대할 필요가 뭐 있겠습니까? 일본에 있는 우리 대사관 직원들, 모두 귀국시키세요. 우리나라에 있는 일본 대사관도 폐쇄시키겠다고 전달하시구요.”

외교관 소환과 대사관 폐쇄.

이는 국교 단절은 물론,

더 나아가 선전포고로도 비칠 수 있는 중대한 결정이었다.

­ 오후 1시, 경기도 안양시 국군정보사령부

대통령의 지시가 떨어진 후 가장 먼저 분주하게 움직인 조직은 외교부가 아닌 국정원과 국군정보사령부였다.

국군정보사령부 변성일 중장은 일본에 침투시키려 했던 휴민트, CR팀 요원들에게 지금 즉시 일본으로 이동할 것을 명했다.

그리고,

어제 받은 현지 요원의 보고대로 미리 일본에 대기 중이던 민재는 다시 한국으로 소환하기로 했다.

참모들 중에서는 민재의 복귀에 대해 반대하는 이들이 많았다.

“해당 요원은 HID 중에서도 손꼽히는 최정예 요원입니다. 곧 일본으로 향하게 될 CR팀의 중요 멤버기도 하구요.”

“어차피 잠시 한국으로 소환했다가 다시 일본으로 보낼 거라면 굳이 두 번 일 시킬 필요 없다고 봅니다. 그냥 일본 현지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기게 하는 것이 대안이라 생각합니다.”

“일본 정부에서 해당 요원에 대한 신상 조회 요청을 했다고는 하지만, 한일 관계가 악화된 지금 상황 때문에 의심 나는 인물들을 하나씩 체크해 보는 중인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이번 참수 작전에서도 활약한 요원을 작전에서 배제하는 건 우리로서는 손해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조심성 많은 변성일 중장은 결정을 번복할 생각이 없었다.

“만일 이 일로 어렵게 자리 잡고 있는 일본 현지 요원들이 노출된다면 그것이 우리에게 더 큰 손해가 될 것이다. 해당 요원 바로 소환시켜. 일단 본부에서 대기시켰다가 어떻게 재투입시킬지 다시 방법을 강구해 보고하도록.”

변성일 중장은 단호한 목소리로 참모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의 말투는,

마치 대동에 있는 강운예가 부하 장성들에게 명을 내릴 때와 거의 흡사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대동으로 오기 전 강운예가 가장 가까이에서 보고 배운 지휘관이

바로 변성일 중장이었으니 말이다.

­ 오후 3시, 일본 치바현 치바시 주오구 일대

요시노부는 한 밤 중 집으로 침입한 괴한들이 휘두른 둔기에 머리를 맞아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의사의 말로는 생명에 지장은 없으나 뇌출혈 증상이 있어 당분간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민재는 부친을 간호하는 아이를 찾아가,

갑자기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고 말했다.

“(일본어) 아, 하필 이런 때에... 왜 갑자기 돌아가시는 건데요?”

아이의 커다란 눈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일본어) 미안해요, 아이. 회사에서... 로펌 회사에서 급히 돌아오라는 연락을 받았어요. 그래서... 일단 한국으로 들어가봐야 할 거 같아요.”

민재는 미안함에 그녀의 어깨를 안아주었다.

“(일본어) 이제 곧 한국에서 경호원들이 도착할 거예요. 그전에는 위험하니까 혼자 돌아다니면 안 돼요, 알았죠?”

“(일본어) 오빠 그럼... 언제 돌아오실 건데요?”

“(일본어) ...최대한 빨리 돌아올 수 있게 노력할게요.”

아이는 결국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울음을 터뜨려 버렸다.

민재도 그녀를 꼭 끌어안고

안타깝고 분한 마음에 이를 꽉 깨물었다.

“(일본어) 돌아와서 꼭 어머니 찾아드릴게요. 약속해요.”

“(일본어) 빨리 돌아오셔야 해요. 꼭이요...”

“(일본어) 그럴게요, 최대한 빨리 돌아오도록 할게요...”

어느새 민재의 두 눈에도 눈물이 고여 있었다.

민재가 아이를 만나고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향할 때,

병원 맞은편 먼 발치에서 그를 지켜보는 이가 있었다.

그는 캐리어와 짐을 든 민재가 택시를 타고 병원을 나서는 것을 보자,

핸드폰을 들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일본어) 총장님, 고로입니다. 지금 그 변호사, 병원을 나와 택시 타고 이동했습니다. ...네, ...네, 손에 커다란 트렁크 가방을 들고 있는 걸로 봐서는 어디 가는 모습이었습니다.”

­ 오후 4시, 경기도 우성시 일월촌 일대

오늘도 경찰의 수색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들은 집 하나 하나 모두 들어가 확인한 후, 확인이 끝난 집 밖에 스프레이 락카로 X 표시를 했다.

일월촌에 있는 가옥 중 3/10 정도에 대한 수색을 마쳤을 때 쯤,

이제 더 이상 숨어 있는 노숙자도 없는 건지 아니면 밤사이 모두 달아난 건지

오늘은 개미 새끼 하나 나오지 않았다.

“제길, 여기 조폭들 숨어 있다는 말, 누가 구라 친거 아냐?”

비좁은 골목길을 오르는 의경들이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그러게. 노숙자 거지 새끼들이나 이런데 오지 조폭들이 왜 여기 숨어 있겠어? 좀 더 사람 살만한 곳에 숨어 있겠지.”

“어떤 미친놈 때문에 어제 공휴일도 제대로 못 쉬고 여기서 무슨 고생이냐, 진짜? (2027년 10월 4일 월요일은 전날 일요일이 개천절이었던 관계로 대체공휴일이었다.)”

“돌아오는 주말도 졸라 황금연휴인데, 그때도 못 쉬고 여기 나와서 좆뺑이 까야 하는 거 아냐? (9일 토요일 한글날, 10일 일요일, 11일 월요일 대체공휴일)”

“아, 씨발 그때 외박 신청했는데... 설마 짤리는 거 아니겠지?”

의경들은 잡담을 나누며 조금의 긴장감도 없이 다음 집 안으로 들어갔다.

의경들의 말소리는 조폭들이 숨어 있는 아지트까지 어렴풋이 들려오고 있었다.

조폭들은 발전기, 보일러 모두 끄고는

빼꼼히 열어놓은 창문 틈으로 밖에 돌아가는 상황을 불안한 표정으로 주시하고 있었다.

“...경찰들 근처에 있는겨?”

전도한이 소파 뒤에 납작 엎드려서 초조한 표정으로 물었다.

“사람 소리가 나긴 나는데... 저 위에 있는 거 같습니다.”

밖을 보고 있던 성기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따~ 이 짭새 새끼들이 진짜 집집마다 다 뒤지고 있는 거 아녀?”

비교적 침착한 표정으로 소파에 앉아 있던 원균이 물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경찰들이 여기까지 온 거죠? 어제 오늘 계속 뒤지는 걸로 봐서는 앞으로도 계속 뒤질 모양인데, 설마 우리가 여기 있다는 걸 알고 저러는 건 아니겠죠?”

“우리가 여기 있다는 거 아는 사람 큰 형님이랑 다른 지역 식구들 쪼금 밖에 없잖혀?”

“그럼 설마... 누가 배신 때리고 짭새한테 찌른 건...”

경찰들이 일월촌으로 몰려온 바람에 박광과 선욱은 아직도 일월촌 밖에 있는 상태였고,

아지트 안에 있는 조폭들은 인기척이 조금이라도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게 집 안에서 숨소리도 제대로 못 내고 쥐 죽은 듯이 숨어 있는 중이었다.

소리날까봐 섹스도 못하는 건 당연하고,

밥도 밥솥에 남은 찬밥 (발전기를 꺼서 전기가 안 들어오므로 밥솥도 보온이 되지 않는다.)을 먹거나 생라면을 부셔 먹으며 허기만 간단히 때웠다.

심지어 용변 보고 물 내리는 소리 때문에 경찰한테 들킬새라 화장실 가는 것도 참고 참았다가 한 번에 해결하고 오고 있었다.

일월촌에서 조금 떨어진 여관방에 숨어 있는 박광과 선욱,

우선 박광은 마두원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일월촌에 경찰들이 몰려온 사실을 알렸다.

[뭐?! 짭새 새끼들이 어떻게 알고 거기까지 찾아와?!]

“그러게 말입니다, 형님! 진짜 누가 우리 여기 있는 거 꼰지른 거 아닙니까?”

한참 후,

전화기 너머에서 마두원의 침통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사나다 그 노인네가...?]

“사나다라면, 아마모토구미 오야붕 말씀이십니까?”

[전에 그 노인네랑 통화한 적이 있었는데 말이야... 설마 이번에 내가 치바 양아치들이랑 거래한 것 때문에 그 노인네가 경찰한테...?]

마두원은 갑자기 허탈한 목소리로 웃어대기 시작했다.

[허허허허~ 그 씨발 노인네... 나이 때문에 내가 사나다 사마, 사나다 사마 불러줬더니만 나를 지 꼬봉 쯤으로 생각했나 보지?]

“혀, 형님... 그럼 이제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어떻게 하기는, 너희는 어떻게든 안 걸리게 잘 숨어 있어!]

“혀, 형님...!”

[걱정하지 말고 있어! 아직 연락되는 정치인 놈들 많이 남아 있으니까! 어떻게든 걸리지 말고 조금만 더 버티고 있으면 내가 알아서 해결해줄게!]

“네, 형님만 믿고 있겠습니다.”

박광은 불안한 표정으로 통화종료 버튼을 눌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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