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7화 〉 유민의 지난 이야기 – 2027년 10월 4일 (2)
* * *
오전 4시, 일본 치바현 치바시 미도리구 일대
가네무라 무리는 다시 이나게구에 있는 이자키의 사무실로 돌아가고 있었다.
“(일본어) 역시 나가시마 상은 가슴 큰 여자라면 환장하는군. 켄의 예상이 맞았어.”
뒷자리에 앉아 있던 타미야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일본어) 그 아줌마가 제 나이로 보이지 않을 만큼 동안에 예쁘기까지 하니까, 나가시마 상도 마음에 든 거겠지.”
운전대를 잡고 있던 마코토가 졸음방지 껌을 딱딱 씹으며 대답했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가네무라가 뒤에 있는 타미야를 돌아보며 말했다.
“(일본어) 어이, 히데토. 넌 양심의 가책도 못 느끼냐?”
“(일본어) 무슨 소리야?”
“(일본어) 그 아줌마, 나루사와 아이의 엄마잖아?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 너랑 아이가 결혼했으면 그 아줌마가 네 장모님이 되는 건데, 그런 사람이 이제 나가시마 상의 니쿠벤키(???, 육변기)가 되었는데 아무렇지도 않냐고?”
타미야가 당황한 표정으로 더듬더듬 대답했다.
“(일본어) 아, 그, 그래도 아이짱이 그렇게 된 건 아니니까... 아! 유스케! 그런데 너 정말 아이짱을 납치해서 나가시마 상 한테 보낼 작정이야?”
“(일본어) 약속은 약속이니까.”
“(일본어) 그래도 내가 아이짱 좋아하는 거 너도 잘 알고 있잖아!”
“(일본어) 나가시마 상 한테 넘겨주기 전에 네가 먼저 그녀를 차지할 기회를 줄게. 그 정도로 만족하라고.”
“(일본어) 그, 그치만...!”
“(일본어) 어차피 너도 몇 번 재미나 볼 생각이었지 결혼해서 평생 같이 살 생각은 아니었잖아? 그렇게라도 할 수 있는 걸 다행으로 생각하라고.”
“(일본어) 그, 그럼... 언제 아이짱을 납치할 건데?”
“(일본어) 일단 경찰들 눈치를 봐야겠지. 나가시마 상 말대로 경찰 놈들이 조용히 있어주는가 확인하고 그때 움직여도 늦지 않는다.”
타미야는 빨개진 얼굴로 뭐라 들리지 않게 궁시렁거리고 있었다.
타미야의 옆에서 핸드폰을 보던 츠키시마가 말했다.
“(일본어) 밑에 애들한테서 연락 왔다. 타키 녀석 지금 중환자실에 있는데 아직 의식이 없다는군. 의사 말로는 죽지는 않겠지만 후유증이 심하게 남을 거 같데.”
타키는 아이의 집 앞에서 민재에게 두드려맞고 실신했던 녀석이었다.
타미야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일본어) 타키 그 녀석, 부시도 대회 10전 이상 전적이 있는 녀석이잖아? 그런 녀석이 어쩌다 그렇게까지 당한 거야?”
부시도 대회는 한구레 등 양키들이 주로 출전하는 지하 격투기 대회였다.
타키는 이 대회에 10번 이상 나가 꽤 준수한 성적을 거둘 만큼 뛰어난 격투 실력을 보유하고 있었고,
가네무라는 그런 타키를 개인 경호원처럼 데리고 다니기도 했다.
“(일본어) 그 변호사 놈이었다. 단 두 방으로 타키를 보내버렸지.”
가네무라가 손톱을 잘근거리며 분한 듯 대답했다.
“(일본어) 또 그놈인가? 그놈 진짜 변호사 아닌 거 아냐?”
“(일본어) 게다가 그놈, 집 근처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어.”
“(일본어) 뭐? 기다리고 있었다고?”
“(일본어) 저녁에 나루사와 아이가 타고 왔던 차, 분명 그 변호사 놈의 차였을 거야. 그때 나루사와 아이만 내려주고 돌아갔다고 생각했는데... 우리가 집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갑자기 어디선가 튀어나왔어. 우리가 뭘 할지 알고 기다렸던 것처럼 말이야.”
“(일본어) 그게 가능한 일이야? 무녀처럼 미래라도 볼 수 있는 놈이라는 거야, 뭐야?”
마코토가 창문을 열고 씹고 있던 졸음방지 껌을 퉤 뱉으며 말했다.
“(일본어) 그 변호사, 영화 속에 나오는 놈 같지 않아? 007이나 미션 임파서블 같은 영화 말이야.”
타미야가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일본어) 어이, 쇼지! 그 변호사 놈이 뭐, 비밀 요원 같은 놈이라도 된다는 말이야?”
“(일본어) 그렇게밖에 안 보이잖아? 변호사라는 놈이 싸움도 잘 하고 눈치도 더럽게 빠르고.”
옆에서 듣고 있던 가네무라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떠올랐다.
“(일본어) 그놈, 한국에서 왔다고 했지?”
마코토가 대답했다.
“(일본어) 아이가 히나한테 보낸 라인에, 분명 한국에서 온 한국인 변호사라고 그랬데.”
“(일본어) 한국인 변호사가 일본에는 왜 와?”
“(일본어) 뭐, 일 때문에 왔을 수 있지. 기업 간 국제 사법 분쟁 같은 일일 수도 있고.”
가네무라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말했다.
“(일본어) 그놈이 나루사와 아이 옆에 계속 있다면 우리 계획을 진행시키는 데 곤란해질 수 있어. 그놈이 어떤 놈인지 확실히 알아내서 나루사와 아이랑 떨어뜨려 놓는 게 우선이야.”
“(일본어) 저번에 미행하는 것도 실패했잖아? 이제 어떻게 그걸 알아내려고?”
“(일본어) 나가시마 상의 도움을 받아야겠지... 나루사와 아이를 데려오는 문제니만큼 분명 두 팔 걷어붙이고 우릴 도와줄 거야.”
빗줄기가 점점 세차게 내리고,
그들이 탄 차는 물보라를 일으키며 이나게구가 있는 서북쪽을 향해 내달렸다.
오전 8시, 일본 치바현 치바시 미도리구 일대
서재와 연결된 나가시마의 침실에는 중세 시대 유럽 귀족들이 사용했을 법한 커튼 달린 커다란 침대가 놓여 있었다.
지금 그 위에는 발가벗겨진 린코가 입에서 침을 흘리며 실신해 쓰러져 있었다.
좌우로 벌려진 두 다리 사이로 하얀 정액이 줄줄 흘러나오고,
침대 시트 위 여기저기도 땀과 체액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아직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지만 아침을 알리는 햇빛이 창문을 통해 들어오고 있는데도,
그녀는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한 상태였다.
이곳에 오기 전 가네무라 무리에게 마약을 주사 당한 데 이어,
나가시마가 그녀와 강제로 범할 때에도 성기 위에 그걸 뿌리고 그녀와 관계했던 것.
그도 가네무라를 통해 마약을 구하는 구매자 중 하나였던 것이다.
옆에 앉아 있는 나가시마는 그녀의 커다란 젖가슴을 손으로 주무르며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중이었다.
“(일본어) 응, 그래. 그 센징(?人, 조총련 등 북한계 재일 한국인을 비하하는 멸칭) 녀석이 문자를 보내왔더군. 나루사와 아이 곁에 있는 그 한국인 변호사가 진짜 뭐 하는 놈인지 좀 알아봐야 할 거 같아... 응... 응... 일단 알아보기만 해봐. 어떻게 하는 건 그 친피라(チンピラ, 양아치) 놈들이 알아서 할 테니까.”
통화를 마친 나가시마는 다시 린코의 몸 위로 올라타더니
그녀의 커다란 양쪽 젖가슴을 두 손으로 부여잡고 입으로 빨기 시작했다.
“(일본어) 참으로 훌륭한 애피타이저로군. 조만간 네년 딸도 데리고 와서 모녀덮밥을 해먹어 주도록 하지. 너도 기대하고 있으라구. 흐흐흐흐.”
나가시마는 침대 옆 서랍에서 비아그라를 꺼내 입에 털어 넣은 후,
잘 서지 않은 성기를 그녀의 다리 사이에 문지르며 혼자서 헉헉거렸다.
오전 11시, 일본 치바현 치바시 주오구 일대
아이의 아버지 요시노부는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집에 침입한 괴한들이 휘두른 둔기에 맞아 부상을 입은 것.
민재는 아이를 도와 요시노부를 병원으로 데려가고 곧장 경찰에 신고했다.
처음에 경찰들은 자신들 관할지역에서 중범죄가 일어났다며, 범인들을 쫓기 위해 언론에도 알리는 게 좋겠다고 호들갑을 떨더니만,
점심 경이 되자 갑자기 말을 바꾸기 시작했다.
“(일본어) 에... 일단 언론에는 알리지 않도록 하죠? 범인들이 방송을 보고 다른 곳으로 도망치거나 몸을 숨길 수도 있으니 우선 동일 범행 전과가 있는 놈들을 상대로 은밀히 수사하는 방향으로... 그렇게 일을 진행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는 상부의 지시가 있으니 일단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경찰들의 태도를 본 민재는 미심쩍은 기분이 들었다.
“(일본어) 말씀드린 대로 이번 일은 헬스 파이브라는 이 지역 한구레들과 깊은 관련이 있을 겁니다. 그들이 소유한 사업장과 건물 등에 대한 압수 수색을 바로 시작해야 납치된 분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일본어) 그 압수 수색이라는 것도 법원에서 영장이 나와야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리고 당장 이번 일에 헬스 파이브가 관련되었다는 직접적인 증거도 없잖아요? 우리가 아무리 경찰이라지만 증거도 없이 쳐들어갔다가는 오히려 된서리나 맞아요. 안타까운 마음은 이해하지만 뒤로 물러서서 기다려주세요. 원래 다 절차라는 게 있으니 말이죠.”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민재는 웬지 그들이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일본어) 린코 상을 납치한 차량 번호, 조회 결과는 어떻게 나왔죠?”
“(일본어) 아, 그게... 그것도 장물이라 소유자가 분명치 않더군요. 자세한 건 더 조사해봐야겠지만요.”
경찰은 집요하게 질문을 퍼붓는 민재의 눈치를 살피다가 이내 자리를 피하고 말았다.
아이의 신변을 염려한 민재는 일단 그녀를 집이 아닌 변호사 사무실로 데리고 왔다.
여직원들이 울고 있는 그녀에게 차를 내어주며 위로하는 사이.
정경호가 민재를 상담실로 불렀다.
조용히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려는 것이다.
“건물주랑 건물주 와이프 어떻게 되었는지 들었어요. 진짜 그 양아치 놈들 짓이에요?”
“그런 거 같아요.”
“경찰에 신고했죠? 그럼 이제 그 일은 경찰에 맡겨 둡시다.”
“그런데 좀 이상해요.”
“뭐가 이상한데요?”
“경찰들이... 이번 일을 덮으려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경찰이 사건을 덮어요? 설마 그 양아치 놈들이 경찰에 돈을 먹인건가?”
“그건 잘 모르겠지만, 분명 위에서 경찰들을 압박하는 존재가 있는 거 같아요. 아무래도 린코 상 찾으려면 제가 직접 나서야 할 거 같아요.”
민재의 말에 정경호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임무 외에 개인적 활동은 안되는 거 알고 있죠?”
“아직 회사에서 오더 내려온 게 없으니 그래도 남은 시간에...”
정경호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오늘 누군가가 우리 정부 행정망에 해킹을 시도했어요. 그리고 방금 전에는 일본 총무성에서 우리 대사관에 강 과장님 신원 조회 요청 공문을 보내왔구요. 그게 무슨 뜻일 거 같아요?”
민재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당연히 대사관에서는 총무성 요구를 쌩깔거예요. 한일관계 씹창 난 마당에 그런 거에 일일이 대응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강 과장님... 지금 신분이 노출된 건 확실한 것 같습니다.”
정경호가 핸드폰을 들고 만지작거리더니,
민재의 핸드폰에 문자 하나가 도착했다.
한국행 비행기 전자 티켓이었다.
“회사에 보고 다 했어요. 우선 한국으로 복귀해서 거기서 다시 오더 받으세요.”
“차장님...”
“강 과장님이 남아 계시면 우리 신분도 노출될 수 있으니 이해해주세요. 이제 곧 CR팀 여기 도착하니까 건물주 딸내미 걱정은 안 해도 될 거예요. 우리 요원들이 그녀의 경호원처럼 위장해 활동하기로 한 계획은 여전히 유효하니까.”
정경호는 미안한 표정으로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