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화 〉 유민의 지난 이야기 2027년 10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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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2시,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요코하마항 컨테이너 부두
가네무라는 헬스 파이브 멤버들과 조직원 수십 명을 대동하고 커다란 컨테이너들이 연립주택처럼 쌓여 있는 부두 한 구석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달도 보이지 않는 깊은 어둠 속에서 희미한 등대 불빛만이 가끔씩 그들을 비추고,
양아치들은 초조한 표정으로 줄기차게 담배 연기만 뿜어대고 있었다.
잠시 후,
부두 반대편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일본어) 무례하군, 첫 거래부터 지각이라니.”
츠키시마 토키오가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퉤, 뱉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네무라와 다른 멤버들도 컨테이너 사이에서 빠져나와 앞으로 나아갔다.
“(일본어) 기다리게 해서 미안합니다.”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나타난 남자가 서툰 일본어로 사과했다.
그 남자 등 뒤로 세 명의 남자들이 더 있었는데, 모두 하나같이 가네무라 무리들보다 덩치가 큰 자들이었다.
“기다렸습니다. 물건 확인부터 합시다.”
가네무라가 일본어 억양이 섞인 북한 사투리로 대답하자 남자가 흠칫 놀라며 물었다.
“우리 말을 할 줄 아십니까?”
“물론.”
남자가 살짝 긴장한 표정으로 뒤에 있는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한국말 다 알아들으니 쓸데없는 말은 일절 하지 말라는 듯이.
남자는 헬스 파이브 멤버들이 보는 앞에서 캐리어를 열어 보였다.
그 안에는 하얀 가루가 가득 든 봉지가 빼곡히 쌓여 있었다.
“(일본어) 켄.”
가네무라가 말라깽이 이자키를 앞으로 불렀다.
이자키는 봉지 하나를 뜯어 하얀 가루를 자신의 팔뚝에 조금 덜고는
빨대를 코에 대고 깊이 들이마셨다.
“(일본어) 크으~! 죽이는데? 이거 완전 좋은 물건인 거 같아! 흐흐흐흐~!”
이자키는 금세 뽕에 취한 듯 킬킬거렸다.
가네무라도 만족한 표정으로 뒤에 있는 꼬봉이 들고 있던 돈 가방을 남자들에게 건네주며 한국말로 말했다.
“앞으로도 좋은 관계 쭉 이어 갑시다.”
“저희 형님께도 거래가 잘 이루어졌다고 말씀 전해드리겠습니다.”
“아니키께서는 아직 한국에 계십니까?”
가네무라는 마두원을 아니키, 즉 형님이라 부르고 있었다.
“원래는 필리핀으로 가실 계획이셨는데 그게 틀어지고 말았습니다. 요새 한국은 해안이며 항만 모두 경계가 무척 삼엄한 상태거든요.”
“그렇군요. 정상적인 비즈니스를 하시려면 어서 빨리 한국을 벗어나셔야 할 텐데요.”
가네무라는 옆에 있던 마코토를 불러 몇 마디 나누고는
다시 남자들에게 웃으며 말했다.
“아니키께, 이 가네무라가 아니키를 일본으로 모실 준비를 하겠다고 전해 주십시오.”
“네? 형님을 일본으로요?”
“아니키가 안전하셔야 우리의 거래도 지속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앗, 감사합니다! 형님께 바로 말씀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들이 가네무라로부터 돈가방을 받고 자리를 떠나려 할 때,
스르르르릉~!
콘크리트 바닥을 쇠파이프로 긁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네무라 일당이 소리 나는 곳을 쳐다보니
부두 북쪽에서 쇠파이프, 야구방망이, 각목 등 둔기를 든 수십여 명의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오고 있었다.
“(일본어) 어이, 치바 촌놈들!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들어와?”
“(일본어) 요코하마가 우리 나와바리라는 것도 잊었나? 우리 구역에서 장사를 하려면 당연히 세금을 내셔야지?”
마코토가 긴장한 얼굴로 말했다.
“(일본어) ...치사이도라곤(小?) 놈들이다.”
치사이도라곤은 요코하마 차이나타운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준폭력집단으로 헬스 파이브와 같은 한구레였다.
이들은 대부분 재일 중국인들로 이루어진 조직이었는데,
일본 최대 야쿠자 조직인 야마모토구미 밑에 있는 4차 단체라는 소문이 있는 자들이었다.
“(일본어) 야마모토구미 놈들...!”
가네무라는 바닥에 침을 탁, 뱉고는 입고 있던 가죽 점퍼를 벗었다.
“(일본어) 어이, 유스케. 어떻게 할까?”
타미야도 두꺼운 손가락 마디를 우드득 거리며 앞으로 나섰다.
“(일본어) 늘 하던 대로 해야지.”
헬스 파이브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치사이도라곤 일당들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오전 2시, 일본 도쿄도 시부야구 다이칸야마 일대
도쿄의 다이칸야마는 한국의 청담동에 비견 되는 부자 동네이다.
모던하고 세련된 디자인의 대저택이 즐비한 곳이기도 한데,
이곳 사는 사람들이 가까이 가는 것조차 꺼리는 집이 하나 있었다.
일본 최대의 야쿠자 조직, 야마모토구미의 구미초(조장) 사나다 겐타로의 집이었다.
원래는 그가 이 집을 다른 이의 명의로 구입해서 아무도 이 집이 야쿠자 두목이 사는 집인지 모르고 있었는데,
한 주간지에서 이를 폭로하면서 세간에 알려지게 된 것.
이곳 사람들은 자신의 이웃집에 야쿠자 두목이 사는 것 때문에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온몸에 문신을 한 떡대들이 그 집을 드나드느라 수시로 다이칸야마에 출몰했던 것.
하지만 딱히 말썽을 일으키지도 않고 이웃에 피해를 주는 행동도 일절 하지 않고 있었기에 사람들은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 그저 불안한 마음을 애써 누르며 하루 하루 살아가는 중이었다.
사나다는 집에 있는 커다란 히노끼 탕에 몸을 담그고 잠들기 전 목욕을 즐기는 중이었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는 일은 예로부터 일본인들의 오랜 관습이었다.
습도가 높은 여름에는 몸을 씻어야지만이 개운하게 잠들 수 있고,
추운 겨울에는 집안에 별다른 난방기구가 없는 탓에 뜨거운 물로 몸을 덥히고 솜옷을 껴입고 이불 안으로 들어가야 춥지 않게 잠이 들 수 있었으니,
목욕은 일본인들에게 밥 먹는 것만큼 일상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수도 사정이 좋아지고 집집마다 보일러와 샤워 시설이 설치되면서,
간단하게 샤워로 몸을 씻을 뿐 탕에 물을 받아 몸을 담그는 일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그래도 이 늙은 야쿠자는 오늘도 수십 년 동안 해오던 대로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따뜻하게 뎁힌 사케 한 잔을 즐기고 있었다.
히노끼탕 옆에는 수건으로 몸을 가린 여인이 그의 수발을 들고 있었다.
나이는 30대 초반 쯤, 한때 연예인이나 AV 배우를 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고운 외모에 글래머러스한 몸매를 가진 여인이었다.
그녀는 사나다의 곁에서 말없이 그의 어깨를 주무르고 있었다.
“(일본어) 이토로부터 연락이 왔던가?”
사나다의 물음에 여인이 대답했다.
“(일본어) 와카가시라 호사(부두목 밑에 있는 간부급 직책)가 요코하마의 치사이도라곤에게 임무를 주었답니다.”
“(일본어) 그놈들, 전에 삼합회하고 작당 모의하다가 걸린 것도 있으니, 이번 임무는 죽을 각오를 하고 덤벼들겠지?”
“(일본어) 물론입니다, 쿠미초 사마.”
사나다가 여인의 어깨를 안으며 물었다.
“(일본어) 리에, 네가 나라면 어떻게 하겠느냐? 한국의 마두원 녀석을 말이다.”
리에는 웃으며 몸을 두르고 있던 수건을 벗고 탕으로 들어갔다.
보기 좋은 커다란 유방하며 적당하게 살집이 붙은 허벅지,
나이는 있지만 분명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농염한 몸매였다.
그녀는 늙었지만 꽤 단단해 보이는, 이레즈미로 도배된 사나다의 품에 안기며 말했다.
“(일본어) 어차피 한국에서도 쫓기는 인물 아닙니까? 쿠미초 사마의 심기를 건드린 건 치바 촌놈들이니 그놈들부터 벌하시지요.”
“(일본어) 도망치느라 조직 와해 되고 사업체도 모두 날아가서 힘들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돈 때문에 십 년 넘게 이어오던 우리 조직과의 신의를 배신해? 그런데도 그놈을 그냥 두자는 말이냐?”
“(일본어) 그렇다고 그자를 벌하시면 앞으로 동남아시아에서부터 가져오는 물건들을 구하기 더 힘들어질 텐데요?”
리에의 말이 옳았다.
마약의 주요 생산지는 멕시코, 콜롬비아 등 중남미와
라오스 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 지역.
중남미에서 오는 마약의 경우 일본과의 거리 때문에 가격이 상당히 비싼 편이다.
때문에 일본에 유통되는 마약들은 대부분 동남아시아에서 난 것들이었고,
지금은 마두원의 국회파가 이에 대한 중간 유통을 꽉 잡고 있었다.
아무리 마두원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뒤에 일은 생각 안 하고 복수부터 해버리면,
후에 야마모토구미는 마약 사업에서 엄청난 타격을 볼 게 불 보듯 뻔했다.
“(일본어) 지금은 치바의 어린 놈들 버르장머리부터 먼저 고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들 스스로 마두원과의 거래를 포기하도록 말이죠. 그런 후.”
리에는 커다란 유방을 사나다의 몸에 꼭 밀착시키며 웃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일본어) 눈치채지 못하게 서서히 준비를 하셔야겠지요. 예전처럼 우리 일본 입협들이 동아시아 중간 유통을 장악할 수 있도록, 마두원이 가지고 있는 영향력을 빼앗아 올 수 있도록 말이에요.”
사나다도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며 웃었다.
“(일본어) 네 말이 옳다. 동남아로부터 오는 거래선부터 장악하고, 그때 가서 마두원 그놈을 벌해도 늦지 않겠지. 네가 말한 순서가 옳은 순서다.”
그는 풍염한 젖가슴을 주무르며 그녀와 키스를 나누었다.
“(일본어) 그래도 놈한테 본보기로 보여줄 건 있어야겠지?”
“(일본어) 어떤 본보기 말씀이십니까?”
“(일본어) 전에 그놈하고 마지막으로 통화했을 때, 제 아들놈하고 부하들 일부가 북한 빨치산들이 마지막으로 저항했던 한국의 구룡성채 같은 곳에 숨어 있다고 했어.”
사나다는 일월촌이라는 지명까지는 알지 못하고 있었다.
“(일본어) 그곳으로 사람들을 보내시려구요?”
“(일본어) 아니, 그럴 필요까지는 없겠지. 거기 한국 경찰들이 알아서 하게끔 하면 되니까 말이야.”
“(일본어) 내일 변호사를 집으로 오라고 할까요?”
“(일본어) 그래, 되도록 한국 경찰하고 연이 있는 자로 오라고 해.”
두 사람은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탕 안에서 서로를 끌어안고
서로의 입술을 맛보며 깊은 키스를 나누었다.
오전 3시,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요코하마항 컨테이너 부두
“(일본어) 헉, 헉, 헉, 헉...”
차가워진 밤공기 사이로 거친 숨소리가 가득 울려 퍼지는 가운데,
수십 명의 사람이 떡이 되도록 맞은 채 부두 위에 쓰러져 있었다.
그중 대부분이 치사이도라곤 녀석들이었다.
“(일본어) 이 자식~! 너희들을 보낸 게 야마모토구미 짓이냐? 그 놈들이 사주한 게 맞지? 그럼 얼른 맞다고 대답해 이 자식아~!”
타미야는 완전 흥분한 듯 상의까지 모두 벗어 던지고 쓰러진 치사이도라곤 간부의 멱살을 붙들고 사정없이 패고 있었다.
그의 커다란 몸에는 야쿠자 못지않게 화려한 이레즈미가 가득했다.
“(일본어) 거기까지다, 히데토. 이 놈 벌써 기절했다. 말을 못 한다고.”
마코토가 다가와 그를 말리고,
타미야는 여전히 분을 삭히지 못하는 듯 쓰러진 치사이도라곤 간부의 머리에 사커킥을 날리고 침까지 뱉었다.
가네무라는 쓰러져 헐떡이고 있는 재일 중국인 양키 녀석의 하얀색 러닝셔츠 위에 손에 묻은 붉은 피를 쓱쓱 닦고 있었다.
싸움이 시작되고 가장 먼저 달려 나간 건 역시 가네무라였다.
170cm도 안되는 작은 체구에서 어떻게 저런 강한 힘이 나오는지,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십여 명의 중국인 양키들을 쓰러뜨려 버렸다.
그의 분전에 힘입어 헬스 파이브 일당들은 야구방망이 등 둔기까지 들고 온 치사이도라곤 일당들을 순식간에 무너뜨려 버렸다.
그러면서도 가네무라는 주먹만 조금 찢어졌을 뿐, 더 이상의 부상은 입지 않은 모습이었다.
“(일본어) 부두 경비원들이 신고했을지도 몰라. 어서 여길 뜨자.”
츠키시마가 땅에 떨어진 가죽자켓을 다시 집어 입으며 말했다.
“(일본어) 그래도 가기 전에 야마모토구미 놈들에게 경고장 하나는 남겨둬야겠지?”
가네무라가 옆에 있던 알루미늄 야구방망이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 타미야에게 흠씬 얻어터지던 치사이도라곤 간부에게 다가갔다.
“(일본어) 야, 이 자식 한 쪽 다리 들어봐.”
꼬봉 하나가 다가와 그의 오른쪽 다리를 잡아 올렸다.
가네무라는 야구방망이를 어깨 위에 걸친 채,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살려달라 중얼거리는 치사이도라곤 간부에게 나직이 속삭였다.
“(일본어) 그 늙어빠진 야쿠자 놈들에게, 우리를 방해하면 모두 이 꼴로 만들어주겠다고 전해.”
가네무라는 야구방망이를 머리 위로 치켜들더니,
그의 무릎 관절을 향해 강하게 내리쳤다.
빠각!
“끄아아아아아아악~! 끄으으아아아아아아아악~!”
그는 무릎이 반대로 꺾여진 채 미친 듯이 울부짓었다.
가네무라는 무표정한 얼굴로 방망이를 집어던지고는
“(일본어) 치바로 돌아가자.”
일당들과 함께 마약이 든 캐리어를 들고 유유히 부두를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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