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화 〉 유민의 지난 이야기 2027년 9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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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시, 일본 치바현 치바시 일대
일본의 윤락가는 한국과는 달리 자정까지만 운영하게 되어 있었다.
경찰들 눈을 피해 새벽까지 운영하는 곳도 있긴 하지만 단속이 심해 그리 많지는 않은 편.
그래서 일본 남자들은 한국과는 반대로 윤락가에서 1차로 논 후 2차로 술을 마시러 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치바의 홍등가는 도쿄나 오사카, 고베 등에 비해 규모는 크지 않지만 도쿄와도 가깝고 공항이 있어 외국인들도 많아 그런지 제법 고급스러운 업소들이 있었다.
지금은 그 업소들 모두 간판 불이 꺼지고 폐점한 시간,
그 중 가게 앞에 고급 외제차 몇 대가 주차되어 있는 업소가 하나 있었다.
일본에서 ‘캬바쿠라’라고 불리는 주점은 한국의 모던바, 착석바와 비슷한 개념의 공간이다.
‘캬바죠’라고 불리는 여직원들을 지목해 옆에 앉히고 술을 먹을 수 있는데,
흔히들 애프터, 라고 부르는 여직원과의 2차가 가능한 곳이었다.
이곳 치바의 ‘비 원(B 1)’은 도쿄에 있는 유명한 캬바쿠라들에 꿇리지 않을 만큼 명성이 자자했고 그만큼 찾는 손님들도 많았다.
주된 이유는 이곳에서 근무하는 여직원들 다수가 아이돌 출신이거나 아이돌 지망생이어서 다른 곳보다 여직원들의 외모가 출중했고,
게다가 돈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여기 직원에게 돈만 많이 찔러주면 직원 명단에도 없는 현역 아이돌을 불러와 옆에 앉혀준다는 소문도 있어 기대를 걸고 다른 지방에서부터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였다.
이게 가능한 게,
이 캬바쿠라를 운영하는 사람이 바로,
헬스 파이브의 수장 가네무라 유스케였기 때문이다.
이미 영업이 끝난 상태인데도, 이 곳 비 원 캬바쿠라 안에는 몇몇 사람들이 테이블 한 곳에 모여 앉아 있었다.
가네무라 유스케와 타미야 히데토 등 헬스 파이브 멤버들과,
그가 데리고 있는 소속사 여자 아이돌 두 명이었다.
그녀들은 DQgirls 란 이름의 걸그룹으로, 이곳 치바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한때는 도쿄로 진출해 공중파에도 자주 출연했을 정도로 인기 있는 그룹이었다.
그룹의 센터 나루사와 아이가 탈퇴하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작은 체구에 어깨까지 내려오는 장발의 가네무라가 담배를 물고 있던 입으로 연기를 후우, 내뱉으며 말했다.
“(일본어) 아이 그년이 지금 변호사랑 같이 다닌다고 했다며? 고용한 한국인 경호원들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고 말이야.”
맞은 편에 앉아 있던 히나는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대답했다.
“(일본어) 아이가 라인으로 분명 그렇게 얘기해줬어요. 지금은 변호사랑 같이 다니고 있다고... 진짜 경호원이 왔다는 말은 안 했다구요...”
“(일본어) 그럼, 변호사가 우리 애들을 박살 낸 거라고? 응? 공부만 한 샌님이, 우리 애들을 셋 씩이나 박살을 내?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가네무라가 재털이로 테이블을 쾅, 하고 내리치며 소리를 질렀다.
화들짝 놀란 두 사람은 거의 울먹이기 직전 표정으로 떨고 있었다.
“(일본어) 어이, 유스케. 너무 겁주지 말라고. 얘들은 그냥 아이 그년이 말한 대로 우리한테 전한 것 뿐이니까.”
옆에 앉아 보드카 잔을 홀짝이던 빨간 머리의 마코토 쇼지가 기분 나쁘게 웃으며 말했다.
“(일본어) 그래도 이게 말이 되는 일이냐고? 세상에 무슨 변호사가 그렇게 싸움을 잘 할 수가 있어? 우리 애들은 방망이며 체인이며 무기까지 다 들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갔다는데 말이야!”
앞에 앉아 부들부들 떨고 있던 히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일본어) 아이가... 그 변호사도 한국에서 왔다고 했어요...”
“(일본어) 뭐? 그럼 한국에 있던 일본인 변호사가 아니라 그냥 한국인 변호사였던 거야?”
“(일본어) 네, 그 변호사... 한국 사람이 맞아요.”
여자들 옆에서 그녀들의 허벅지를 주무르고 있던 말라깽이 이자키 켄이 킬킬거리며 말했다.
“(일본어) 여어~ 그럼 유스케 너랑 말이 좀 통하겠는데? 너 아직 한국말 잘 하잖아? 그렇지?”
가네무라의 부모는 두 사람 다 조총련계, 즉 재일 조선인 출신이었다.
한때는 국적도 일본이 아닌 조선, 즉 북한이었고,
학교도 조총련계 학교를 다녔다.
하지만 일본이란 나라는 그런 가네무라에게 너무나 가혹할 정도로 배타적인 곳이었다.
재일 한국인, 혹은 중국인 출신 청소년들이 한구레 등 폭력집단에 적극 동조하게 되는 이유로 그들에 대한 일본인들의 지독한 차별과 멸시를 첫 번째로 꼽곤 한다.
가네무라 역시 어려서부터 조선인이란 이유로 일본 아이들로부터 손가락질 당하고 따돌림 당하곤 했다.
그게 너무 싫고 괴로워 언젠가부터 일본인들을 모두 패고 다니는 사람이 되겠다는 비뚤어진 생각을 품게 되었고,
그게 폭력에 눈을 뜬 계기가 되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여전히 일본에 동화되고, 일본인으로부터 인정 받고 싶다는 이중적인 욕구도 가지고 있었는데,
집과 가족들에게마저 조선말을 쓰지 않고 일본어로만 말하고,
월드컵이나 올림픽 등 스포츠 대회 때마다 일본팀을 미친 듯이 응원하곤 했다.
게다가,
이제는 국적도 확실히 일본으로 바꾼 상태였다.
“(일본어) 쓸데없는 소리하지 마라, 켄. 맞기 싫으면 말이야.”
그가 무서운 눈으로 이자키를 노려보며 말했다.
“(일본어) 아, 아, 농담이라구, 농담.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마.”
이자키는 비굴하게 웃으며 두 손을 흔들었다.
옆자리에서 핸드폰을 보고 있던 폭주족 가죽 자켓 차림의 츠키시마 토키오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일본어) 아무리 우리가 히데토 연애 사업을 도와주려고 이러고 있다 해도, 이번 일로 경찰들 이목을 끄는 일은 없도록 하자구. 한국 국회파가 동남아에서 들여오는 마약을 우리한테만 넘겨주겠다고 한 거, 지금쯤이면 야마모토구미 놈들도 눈치챘을 거야. 그놈들이 역으로 경찰에 찌를지도 모르니까 다들 괜히 경찰 눈에 띄게 다니지 말자구. 응?”
가네무라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오른쪽에 앉아 있는 커다란 덩치에 짧은 스포츠머리를 한 타미야 히데토를 보며 말했다.
“(일본어) 토키오 말이 맞아. 네 연애 사업도 중요하지만 큰 건을 앞두고 몸을 사리는 게 좋아.”
타미야는 답답하다는 듯, 주먹으로 넓은 가슴팍을 쾅쾅, 두드리며 말했다.
“(일본어) 히나가 한 말 기억 안 나? 아이가 날 경찰에 고소했다잖아?”
“(일본어) 겨우 스토킹으로 고소한 거야. 벌금 좀 나오고 말 거니까 걱정하지 마.”
“(일본어) 아니, 그년을 잡아다가 고소 취소하라고 하고, 응? 이제 본격적으로 나하고 사귀는 거 동의하라고 하고, 응? 그래야 모든 게 시원하게 풀리는데 뭘 자꾸 몸을 사리라는 거야?”
“(일본어) 본격적으로 사귀기는, 걔가 너랑 언제 사귈 뻔 한 적이라도 있었냐? 그냥 히데토 네가 좋다고 걔 쫓아다닌 거지.”
“(일본어) 아니! 아이하고 나하고 분명 영혼의 교감이 있었다니까?”
“(일본어) 영혼의 교감은 무슨, 이제 쓸데없는 짓 그만하고 좋은 변호사나 찾아봐. 누가 알아? 벌금 나올 거 무죄로 만들어줄지?”
마코토가 보드카를 쭉 들이키며 말했다.
“(일본어) 그런데 이상하긴 하단 말이야? 그 변호사, 애들 말로는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빠르고 강했다는데.”
민재에게 맞아 쓰러진 세 명은 모두 병원으로 실려 갔다.
모두 코뼈, 광대뼈 등 얼굴 대부분이 골절되고 함몰되었을 정도로 큰 부상을 입은 상태로 말이다.
“(일본어) 격투기 선수 정도는 되야 그 정도 칠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야.”
“(일본어) 그 자식, 변호사 하기 전에 운동 좀 했나?”
조용히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던 가네무라가 입을 열었다.
“(일본어) 아이 그년을 어떻게 해보자는 계획은 잠시 보류다. 대신 그 변호사 녀석, 어떤 녀석인지 좀 알아봐야겠어.”
“(일본어) 변호사 자식은 왜?”
가네무라가 타미야를 보며 대답했다.
“(일본어) 진짜 변호사는 아닌 거 같아서 말이지. 어떤 놈인지 모르지만 엄청 강한 놈인 거 같기도 하고.”
“(일본어) 왜, 갑자기 가슴이 끓어오르나? 그 자식과 한판 붙어보고 싶어서?”
“(일본어) 한 판? 뭐 좋지... 아무튼 그 녀석, 어떤 놈인지 알아보고 싶어.”
가네무라는 멤버들과 함께 보드카를 한 잔씩 돌리고는,
맞은편에 앉아 있던 히나와 걸그룹 멤버를 자기 앞으로 불렀다.
“(일본어) 자, 그럼 너희들도 시작해야지?”
가네무라와 멤버들이 킬킬 웃으며 바지를 밑으로 내렸다.
히나는 체념한 표정으로 웃옷과 브레지어를 벗고는
그의 다리 사이에 무릎을 꿇고 앉아
가네무라의 것을 혀로 핥기 시작했다.
“(일본어) 흐음...”
가네무라는 보드카를 주욱 들이키고 소파에 등을 기댄 채 고개를 뒤로 젖히고는
그녀의 펠라치오를 즐기는 듯 야릇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오전 11시, 일본 치바현 치바시 주오구 일대
어제 결국 간단하게 패스트푸드로 저녁을 먹고 헤어진 민재와 아이.
그녀는 이걸 핑계로 또 민재를 불러냈다.
“(일본어) 어제는 너무 경황이 없어서 제대로 식사 대접도 못 해드렸잖아요? 쇼핑하는 내대 같이 다녀주시고, 양아치들 시비 거는 것도 다 물리쳐 주셨는데, 햄버거만 사드리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요. 오늘은 제가 꼭 맛있는 데에서 점심 사드릴게요! 낮에 가는 거니까 어제처럼 이상한 양아치들과 만날 일도 없을 거예요!”
민재는 웃으며 그녀에게 곧 가겠다고 대답했다.
두 사람은 시내에 있는 이탈리아 식당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스파게티 등 음식을 주문을 한 뒤, 아이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일본어) 그런데 변호사님! 어제 변호사님이 너무 싸움을 잘 하셔서, 궁금해서 한 번 찾아봤거든요? 한국 남자들은 군대 가면 태권도도 배우고 총 쏘는 것도 다 배운다면서요? 그래서 다들 변호사님처럼 싸움을 잘 하나요?”
“(일본어) 하하, 모두 맨손 격투를 잘한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한국 성인 남자의 80%는 잘 훈련된 전투 기계 같다고 보시면 됩니다.”
“(일본어) 헤에~? 정말요? 어떻게 그럴 수 있죠?”
“(일본어) 한국이란 나라는 특수부대 나온 사람이 소방수로 일하고 전차 몰던 사람이 지하철 모는, 뭐 그런 나라입니다.”
“(일본어) 아, 마사카... 정말 한국이란 나라는... 절대 싸우면 안 되는 나라일거 같군요...”
주문한 스파게티와 피자가 나오고,
두 사람은 즐겁게 식사를 마친 뒤, 후식으로 나오는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었다.
“(일본어) 아까 한국 군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잖아요? 저 사실 요즘 뉴스 보면 걱정이 많이 되요.”
“(일본어) 한일 관계 때문에 그러신가 보군요?”
“(일본어) 네, 정말 일본하고 한국이 전쟁을 하면 어쩌나 하고 말이죠...”
아이는 정말 불안한 듯, 표정이 어두워졌다.
“(일본어) 만일 전쟁이 나면... 변호사님은 한국으로 돌아가실 건가요?”
“(일본어) 네, 여기 잠시 일하러 온 것이니 그리되면 한국으로 바로 돌아가야겠지요.”
“(일본어) 그럼... 변호사님도 다시 군인 돼서 전쟁에 나가게 되시나요? 총도 들고 무장도 하고...?”
그녀의 말에 민재는 씁쓸히 웃으며 대답했다.
“(일본어) 지난 2차 한국 전쟁 때 예비군들을 동원하기는 했지만... 만약 일본과 전쟁이 난다면 정부에서 또 그렇게 할지는 모르겠군요. 육지로 붙어 있던 북한과는 달리 일본은 바다 건너 있으니 양쪽 중 한 나라가 다른 나라에 병력을 상륙시키지 않는 이상 예비군들까지 동원하지 않을 것 같긴 합니다.”
“(일본어) 예비군이면... 변호사님도 군대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이죠?”
“(일본어) 네, 맞습니다.”
아이가 슬픈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일본어) 이 전쟁, 제발 안 일어났으면 좋겠어요. 변호사님도 군대에 다시 안 가셨으면 좋겠고, 또...”
그녀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일본어) 변호사님도 당분간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일본어) 하하, 제가 계속 일본에 있기를 바라시는 건가요?”
“(일본어) 네... 저 변호사님과... 좀 더 함께 있고 싶어요...”
아이는 그렇게 말하고는,
수줍은 듯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떨구었다.
처음에 아이의 말을 이해 못하고 그냥 웃음만 짓던 민재는
그 말의 뜻을 이해하고는 이내 입가에서 웃음이 싹 사라졌다.
“(일본어) 나루사와 씨...”
“(일본어) 농담이 아니구요... 진짜... 저 변호사님 좋아해요!”
민재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군가가 자신을 지구보다 더 큰 질량으로 끌어당기는 경험을 했다.
쿵, 쿵, 내 안의 심장 소리가 귀에까지 들리고
마치 저 높은 하늘 위로 올라간 것 같은 아찔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에게 첫사랑은
그렇게 다가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