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동춘추 - 리부트-198화 (198/217)

〈 198화 〉 유민의 지난 이야기 ­ 2027년 9월 25일

* * *

­ 오후 2시, 일본 치바현 치바시 주오구 일대

경찰에 고소장을 접수하러 가는 날,

민재는 정경호가 준비해 준 고소장 서류를 들고 아이의 집으로 향했다.

그녀와 함께 경찰서까지 동행하기 위해서였다.

아이의 아버지 요시노부는 이번 일을 도와줄 변호사가 한국인이라는 말을 듣고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일본어) 왜 하필이면 한국인이야? 야쿠자들이나 폭력단원들 중에서 한국계가 얼마나 많은데? 또 요즘 한일 관계도 안 좋은 마당에 꼭 한국인 변호사 도움을 받아야겠니?”

하지만 아이의 집에 도착한 민재를 보자

요시노부는 물론 아이의 어머니 린코 모두 입이 떡 벌어졌다.

일본인들 중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커다란 키에 다부진 몸매,

한류 스타처럼 잘생긴 얼굴,

거기에 위아래로 고급 정장 수트까지 갖춰 입고 있는 민재를 향해

변호사를 맞이하는 게 아니라 무슨 백년손님 사위한테 하는 거 마냥 환한 얼굴로 그를 맞이해주었다.

“(일본어) 오...! 당신이 아이가 말한 그 변호사님이신 모양이군요! 어서 안으로...! 도조 도조~!”

두 사람은 정성스럽게 1층 거실로 민재를 안내했다.

아이가 2층 자기 방에서 외출 준비를 하는 동안,

요시노부와 린코는 그에게 다과를 대접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본어) 변호사이신데 몸이 참... 처음 보고는 운동선수인 줄 알았어요.”

린코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일본어) 어려서부터 킥복싱을 배웠고 아마추어 선수 생활도 했지요. 지금은 그냥 시간 날 때마다 웨이트 트레이닝 정도만 하고 있습니다.”

“(일본어) 오, 역시 그랬군요! 아직 20대 정도로 밖에 안 보이는데, 올해 나이가 몇이신지...?”

“(일본어) 올해 30살입니다. 로스쿨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변호사 일 시작한지는 얼마 안되었습니다.”

“(일본어) 아, 그럼 중간에 군대도 다녀오셨겠군요? 한국은 예전부터 징병제가 있어서 남자들은 모두 한번은 군대를 다녀와야 한다면서요?”

“(일본어) 네, 맞습니다. 저도 현역 육군으로 다녀왔습니다.”

요시노부가 쟁반 위에 일본 과자를 하나 까서 입에 넣으며 말했다.

“(일본어) 한국이야 원래부터 남자들은 성인 되면 다 군대 다녀오는 게 당연한 일일 테니까 별 문제 없었지만, 요새 일본 젊은이들은 아주 난리가 났어요. 다음 주부터 정부에서 강제로 징병을 실시한다고 했거든요. 그거 때문에 젊은 남자애들이 매일 같이 거리로 나와 징병 반대 시위하고 그래서 전국이 아주 시끌시끌합니다.”

“(일본어) 네, 저도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일본 청년들에게는 자신의 인생 계획에 없던 군대를 갑자기 가게 생겼으니 반발이 아주 심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일본어) 게다가 의무 복무도 3년씩이나 시킨데요! 지금 한국은 군대 가면 얼마나 있다가 나오죠?”

“(일본어) 육군은 1년 6개월입니다. 해군이나 공군은 그보다 더 길고요. 2차 한국전쟁을 치르느라 1년 6개월 이상을 복무하고도 제대 못하는 이들도 많다고 들었는데, 이제 전쟁이 끝났으니 그들 모두 곧 전역하게 될 것 같습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린코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일본어) 어머나 세상에, 그럼 군대 가는 기간도 한국의 2배나 되는 거네요? 스무살 가장 꽃다운 시기를 군대에서 3년이나 지내야 한다니... 젊은이들이 징병 반대 시위하는 게 이해가 가기는 해요.”

요시노부가 손을 저으며 말했다.

“(일본어) 모두 다 가는 건 아니고 신체검사 해서 이상 있는 사람들은 군대 안 가게 한다잖아? 그런데 군대 같은데 보내려면 양키나 DQN 같은 놈들 싹 잡아들여서 보내면 좋으련만, 착하게 공부 열심히 하는 젊은이들 군대에 보내야 하는 건 나도 너무 아까운 거 같아.”

린코가 물었다.

“(일본어) 근데 정부에서 폭력단이나 전과 있는 사람들은 군대 징집에서 제외시킨다면서요? 몸에 문신 많은 사람들도 제외된다고 하구요.”

“(일본어) 그러게 말이야. 난 그게 정말 이해가 안 가더라고. 힘을 주체못해서 못된 짓이나 하고 다니는 놈들이나 군대로 보내야지, 왜 그런 놈들은 안 받아준다는 건지 원.”

민재가 물었다.

“(일본어) 그럼 이제 앞으로 군대 못 가는 사람들은 몸이 불편한 사람들 아니면 야쿠자 같은 폭력단이라는 꼬리표가 붙게 되겠군요?”

요시노부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일본어) 변호사님 말씀대로죠. 건전한 젊은 남자들은 죄다 군대로 끌려가고 길거리에는 온통 불량한 놈들이나 돌아다닐거라 생각하니... 딸을 둘이나 가진 아버지로서 걱정이 안될 수가 없습니다.”

요시노부에게는 아이 말고도 유키나라는 딸이 하나 더 있었다.

유키나는 지금 도쿄에 있는 명문대에서 공부 중이라고도 했다.

“(일본어) 이번에 따님을 스토킹 한 사람도 야쿠자라 들었습니다. 이번 일을 맡기 전까지 아직도 야쿠자들이 활개치고 있나, 하고 생각했었는데 말이죠.”

요시노부가 손사래를 쳤다.

“(일본어) 그놈들은 야쿠자가 아닙니다. ‘한구레’에요.”

“(일본어) 한구레요?”

한구레는 반 불량배, 반달(반쯤 건달) 정도의 의미를 가진 합성어로, 일본 경찰에서는 ‘준폭력단’이란 용어로 개념 짓는 집단이다.

폭대법 시행 이후 경찰의 통제가 강화되면서 야쿠자들의 세력은 점점 약화 되었다.

이 틈을 타 새로운 범죄집단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폭주족, 폭력서클 등에서 활동하던 나이 어린 양아치들이 모여 조직한 단체들이 바로 ‘한구레’였다.

한구레는 야쿠자처럼 경찰이 관리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폭대법의 적용을 받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하청업체처럼 야쿠자의 의뢰를 받아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많았고, 심지어 촉법소년의 혜택을 악용해 불량 청소년들을 사주, 범죄를 저지르도록 뒤에서 조종하는 일도 많았다.

또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나이 어린 양아치들의 모임인지라 범죄 양상도 매우 폭력적이고 잔인하다고 알려져 있다.

이들은 성매매, 사채업 등 사업은 물론, 보이스피싱, 노인들과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한 사기까지 돈 되는 것이라면 가리지 않았다.

단, 도박과 마약 유통만은 절대 건드리지 않았는데,

그 두 가지는 야쿠자의 주요 자금원이기 때문에 이를 건든다는 것은 곧 전쟁을 의미했다.

대부분의 한구레들은 야쿠자 조직들과 제휴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 간의 영역을 분명히 지키곤 했다.

이곳 치바와 도쿄를 주무대로 활동하고 있는 ‘헬스 파이브(Hell’s Five)’란 유치한 이름의 조직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일본어) 저도 처음 아이가 연예 기획사 들어간다고 했을 때는 거기가 그냥 일반적인 연예기획사겠거니, 생각했었거든요? 그런데 나중에 아이가 거기 나올 때 하도 이상해서 사람들 통해 알아보니 거기가 바로 악명 높은 헬스 파이브란 한구레들이 하는 사업체였더라구요.”

민재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일본어) 헬스 파이브란 조폭들이 일본에서 그렇게 유명한가요?”

“(일본어) 보통 한구레들은 야쿠자들과 싸우지 않아요. 그들과 잘 지내려 노력하는 편이죠. 하지만 이 녀석들은 그렇지 않아요. 야쿠자들을 이빨 빠진 늙은 호랑이라고 하면서 어떻게든 이겨 먹으려 하죠. 일본 최대 야쿠자라는 야마모토구미와도 대립하고 있을 정도로 세력도 제법 큰 모양이더라구요.”

요시노부가 TV 앞에 놓아둔 주간지를 가져와 그에게 보여주었다.

“(일본어) 이 사람이 헬스 파이브의 대표 카네무라 유스케에요. 아이의 전 소속사 대표이기도 하죠. 지금은 이런 저런 사업을 하는 사업가 행세를 하고 있지만 이곳 사람들 중에서 그가 어려서부터 이 근방에서 폭주족 이끌고 다니며 어떤 짓을 하고 다녔는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죠.”

“(일본어) 이름을 보니 이 사람은 따님을 스토킹한 사람이 아니군요?”

“(일본어) 네, 그 사람은 타미야 히데토라는 사람이에요. 그 사람도 헬스 파이브의 파이브 중 한 명으로 카네무라 유스케의 절친이죠.”

요시노부는 헬스 파이브 다섯 명이 함께 찍은 사진 중 가장 덩치가 큰 사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일본어) 덩치를 보니 유도 같은 걸 한 모양이군요?”

“(일본어) 네, 어려서부터 유도도 했고, 한구레들이 여는 지하 격투기 대회 같은 데에도 여러번 나갔다고 하더군요.”

민재는 타미야 히데토의 얼굴을 머릿속에 기억하기 위해 사진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일본어) 실례했어요! 많이 기다리셨죠?”

2층에서 발걸음 소리가 나더니 아이가 계단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분명히 고소장을 접수하러 가는 건데 차려입은 건 너무나도 예쁜 데이트룩.

아이의 귀엽고도 사랑스러운 모습에 민재는 그만 환하게 웃고 말았다.

민재는 가지고 온 차에 아이를 태우고 경찰서로 향했다.

“(일본어) 나루사와 씨는 어머니를 많이 닮으셨더군요?”

“(일본어) 네! 어려서부터 주변 분들한테 엄마 얼굴이랑 몸매 그대로 물려받은 거라고, 항상 감사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말 많이 들었어요!”

아이는 정말 린코를 쏙 빼닮았다.

얼굴은 물론 글래머러스 한 몸매까지.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운전을 해나가던 중,

신호등도 없는 곳에서 갑자기 차를 멈추게 되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도로를 가득 메우고 시위를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일본어) 전쟁 반대! 징병 반대!”

“(일본어) 평화헌법을 유지시켜라!”

“(일본어) 젊은이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강제 징병에 반대한다!”

일본 청년들은 깃발을 흔들고 구호를 외치며 도로를 행진하고 있었다.

치바의 경찰들이 나와 도로를 점거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밖으로 나오라고 설득하고 있지만 그들은 좀처럼 통제에 따르지 않고 있었다.

핸들을 잡고 있던 민재가 핸드폰을 꺼내 그 장면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촬영하기 시작했다.

아이가 이를 보고 의아한 듯 물었다.

“(일본어) 아라? 변호사님 인스타하세요?”

“(일본어) 아, 아뇨. 하하. 한국에 있는 지인들한테 보여주려구요.”

사실 회사 (국군정보사령부)에 보고용으로 쓰려고 찍는 중이었다.

시위대가 모두 지나갈 때까지,

민재는 일본 청년들의 간절한 외침을 핸드폰에 모두 담아두었다.

­ 오후 5시, 경기도 우성시 일월촌

박광은 계속해서 일월촌을 빠져나가 서울로 들어갈 방법을 찾고 있었다.

마침 정보원 노릇을 하는 여고생으로부터 우성시에 있던 계엄군들 모두가 철수했다는 연락을 받게 되고,

그는 곧장 랜트카를 얻어 이곳에 있는 조폭들 모두를 데리고 서울로 이동할 준비를 했다.

물론 유민과 운용 엄마도 다 데리고 말이다.

하지만,

계엄군이 나가자마자 인근에 있던 향토사단 병력 중 1개 연대가 갑자기 우성시로 들어왔다.

원래 우성시에는 동원 예비군들을 관리하는 1개 대대만이 있었는데,

통일에 반대하는 이들이 인천, 평양 등지에서 테러를 자행하는 바람에

서해안 산업단지가 있고 외국인 노동자들도 많이 들어와 있는 이곳 우성시에도 테러리스트들이 침투할 가능성이 많다고 판단한 육본에서 이곳에 1개 연대를 주둔시키도록 결정한 것이다.

게다가 계엄군이 그랬던 것처럼 새로 들어온 부대도 주요 도로 및 타지역과의 경계 지역에 병력들을 배치하고 있었고,

사복 경찰들의 불심 검문과 신분증 검사 빈도도 예전보다 빈번해졌다.

일월촌을 벗어날 기회는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조폭들을 데리고 일월촌 아지트로 돌아왔을 때,

오랜만에 마두원의 전화가 걸려 왔다.

그는 조폭들을 모두 아지트로 들여보낸 후,

밖에 조용한 곳을 찾아 들어가 마두원과 통화를 나누었다.

“...네, 형님. 군바리 새끼들이 워낙 많아 가지고 우성시 밖으로 나갈 틈이 안 보입니다. 틈이.”

[그래서 내가 그냥 거기 있으라고 안 했냐? 움직이면 더 위험하다고.]

“진짜 형님 말씀대로 한동안 여기서 죽은 듯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고생스럽겠지만 어쩌겠냐? 잡혀서 깜방 드가는 것보다야 거기 있는 게 낫지.]

“맞습니다, 형님.”

[내가 돈 계속 보내줄 테니까 거기서 얌전히 지내고 있어. 다른 데 있는 식구들도 잘 관리되고 있는 거 맞지?]

“네, 형님. 다들 수시로 통화하고 문자 나누면서 커뮤니케이션 하고 있습니다.”

[그래, 잘하고 있어. 아, 그리고 나, 새 거래처 텄다.]

“어디 다른 곳하고 마약 거래 트셨습니까, 형님?”

[응, 우리 이제 일본놈들하고의 거래는 야마모토구미가 아니라 헬스 파이브하고 하기로 했다. 나이 어린 새끼들이라 그런지 개런티를 겁도 없이 야마모토구미보다 배로 부르던데?]

이야기를 듣던 박광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혀, 형님! 걔들은 야쿠자 아니지 않습니까? 그냥 양아치 패거리들인데 그러다 나중 그것들 전쟁에 휘말리면 어쩌려 하십니까?”

그도 일본에서 한구레들은 야쿠자들의 영역인 도박과 마약에는 절대 손 안 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일이 있다면 바로 그들 표현으로는 항쟁,

즉 조직 간의 충돌과 유혈사태가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마두원이 일본에서 가장 큰 야쿠자 세력인 야마모토구미를 손절하고 ‘한구레 따위’ 헬스 파이브와 손을 잡고 일본에 마약을 유통하겠다?

야마모토구미 입장에서는 이를 배신이라 여길 게 뻔했고,

언젠가 그들이 헬스 파이브는 물론 마두원과 국회파를 상대로 반드시 보복에 나설 것 또한 불 보듯 뻔했다.

박광은 저도 모르게 등에 식은 땀을 흘렸다.

박광이 어두운 표정으로 아지트로 들어갔을 때,

화장실에서 누군가 토하는 소리가 들렸다.

“뭔 소리야? 누가 안에서 토하냐?”

“유민이가 저러고 있습니다.”

“유민이가?”

잠시 후,

팬티만 입고 있는 유민이 초췌한 표정으로 화장실 문을 열고 나왔다.

그녀는 거실에 서 있는 박광을 보고는,

거의 울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 몸이 너무 이상해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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