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화 〉 유민의 지난 이야기 2027년 9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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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0시, 한국령 평안남도 안주시 수도기계화보병사단 임시 주둔지
2차 한국전쟁이 모두 끝났지만, 한국군 최고 전력이라 할 수 있는 제7기동군단 예하 기계화사단 대부분은 북쪽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점령한 북한 지역의 현지 안정화 작전에 참여하는 것과 더불어,
혹시 모를 중국의 돌발행동을 견제할 목적에서였다.
다행히 중국은 전쟁 중 한국과 비밀리에 약속한 바대로 신의주와 압록강 가까이까지 이동시켰던 인민해방군 병력을 모두 원래 위치로 복귀시켰다.
한국이 북한을 점령하고 동북아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건 그들로서도 간과할 수 없는 일이었겠지만,
중국도 지금 대만을 두고 미국과 일촉즉발의 관계인 상황,
만약 중국이 한반도로 군을 보내게 된다면 미국도 동맹국인 한국을 돕겠다고 나서게 될 게 불 보듯 뻔했다.
중국으로서는 한반도에서 미국과 대결하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미국에 절대 열세라는 걸 자각하고 있었기에,
태평양 진출의 열쇠라 할 수 있는 대만 점령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판에 한반도에서 불필요하게 병력을 낭비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북한의 핵무기까지 확보한 한국군의 전력은 이제 미국, 러시아, 중국에 이은 세계 4위 수준까지 도약해 있었으니,
미국 하나를 상대하는 것도 버거운 마당에 한국까지 적으로 돌리고 싶지 않을 수밖에.
한반도 전체가 자유 진영이 되는 건 못내 아쉬웠지만,
중국 공산당은 ‘삼년불비우불명(三?不??不?, 새가 삼 년 동안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는다는 뜻으로 훗날 대업을 도모하기 위해 침착하게 때를 기다린다는 고사, [사기]의 [골계열전]과 [여씨춘추]의 [심응람]에 나오는 말)의 고사를 기억하라.’며 쓰린 속을 달래고 있었다.
송호원 중령이 이끄는 81 전차대대도 사단을 따라 평양 북쪽 안주시에 머무는 중이었다.
지난 전투에서 북한군 최강의 부대라고 불리던 근위 서울 류경수 제 105 땅크사단을 단 전차 1개 대대만으로 전멸시킨 전공으로 대령 진급이 확정되기는 했지만, 송호원의 군복 계급장에는 아직 2개의 대나무잎 (한국군 영관 장교 계급장 문양을 말똥, 혹은 무궁화라고 부르는 이들이 많은데, 사실 이 문양은 금강석을 중심으로 대나무잎 9개를 둥그렇게 펼쳐놓은 것이다.) 만이 달려 있었다.
몇 주 후에 있을 무공훈장 수여식과 함께 대령 계급장을 받고 추후 다음 보직으로 이동할 예정.
“이제 대령 진급하시면 후방으로 내려가시는 거 아닙니까? 육본 같은데 좋은 데로 가셔서 참모 보직 맡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주임원사는 전장에서 함께 동고동락한 지휘관과의 이별이 얼마 남지 않아 못내 아쉬운 표정이었다.
두 사람은 함께 대대 연병장에서 장병들이 전차 등 장비를 점검하는 것을 돌아보는 중이었다.
이곳은 원래 북한군이 병영으로 사용하던 곳이었는데, 연병장이 매우 널찍한 것 빼고는 시설이 매우 낙후되어 있었다.
겨울이 일찍 찾아오는 북쪽 땅인데다가 아침저녁으로 기온도 많이 선선해졌는데, 바람 숭숭 들어오는 나무로 지어진 주둔지 막사 안에는 보일러조차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고작 있는 것이 한국에서 7, 80년대 쓰던 것과 같은 조개탄, 혹은 목재를 태워 열을 내는 대형 난로 정도.
화장실도 냄새나는 재래식 화장실이었고, 여러모로 말도 못 하게 열악한 환경이었다.
군사령부에서 조립식 건물들과 컨테이너 등을 공수해 와 장병 생활관으로 사용하게끔 해주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송호원도 상부에 주둔지 변경을 요청하려고까지 생각했었다.
주임원사의 말에 송호원은 고개를 저으며 웃음 지었다.
“네, 저도 그럴 줄 알았는데 좋은데는 바로 못 갈 거 같습니다.”
“그럼 어디 야전 부대로 발령난답니까? 대령 되시니까 사단이나 군단 참모 보직으로 가시는 건가요?”
“며칠 전 군단 참모들이 언질을 주었는데, 아마 다른 사단 기계화 부대 연대장이나 여단장으로 가게 될 것 같답니다.”
“네? 참모 보직 거치지 않고 바로 또 지휘관으로 가신다구요? 뭐, 정신적으로 힘든 것보다야 육체적으로 힘든 게 더 낫긴 하겠습니다만, 원래 지휘관이었다가 참모 안 거치고 바로 또 지휘관으로 가는 일은 거의 없지 않습니까?”
“들어보니까 저 말고도 이번 전쟁에서 실전을 경험한 야전 부대 지휘관 대부분은 그대로 계급만 진급시켜서 차상급 부대 지휘관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하더군요. 육본에서 지침이 그리 났다고 합니다.”
“육본에서요?”
“네, 아마 다음 전쟁을 위한 준비겠지요.”
이들도 이틀 전 대통령이 일본에 대해 거의 선전포고나 다름없는 발언을 한 것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대통령이 진짜 일본을 칠 생각인 거 같던데요? 내 살아 생전에 북한이랑도 싸우고 일본이랑도 싸울 줄은... 참, 대대장님, 어제 뉴스 나온 거 보셨습니까? 일본 국회 대변인인가 뭔가가 나와서 우리 대통령이 한 말에 뭐라뭐라 씨부렸던데요?”
김창수 대통령이 일본에 독도와 7광구를 즉각 반환하고 포로들을 송환하라는 기자회견을 가진 바로 그 다음 날,
일본 국회 대변인이 이에 대해 일본 정부의 공식 답변을 내놓았다.
[다케시마는 역사적으로 우리 일본의 영토였으며, 7광구 일대의 영해 역시 국제법상 일본의 소유가 확실하다. 한국은 해당 지역을 오랜 기간 동안 무력으로 불법 점유하고 있었을 뿐이다. 이제 일본이 자국 영토와 영해에 대한 권리를 되찾은 것 뿐이니, 한국 대통령은 앞으로 언동에 주의해 달라.]
송호원도 이를 알고 있는 듯, 기가 차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일본 놈들이 만화를 너무 많이 봐서 그런가, 아무래도 현실 감각을 상실한 것 같죠?”
“그러게 말입니다. 우리가 마음 먹고 대한해협 넘어가 전차 앞세워서 상륙해버리면 일본 열도 불바다로 만드는 건 시간문제일 텐데 말이죠.”
“일본은 지들이 이런 짓을 하고도 미국이 큰형님처럼 자기네랑 우리나라를 중재시켜 줄 거라 생각하고 이렇게 막 나가는 짓을 하는 모양인데요, 어차피 미국은 러시아, 중국, 이란이랑 언제 전쟁 날지 모르는 판이라 우리가 일본과 전쟁을 해도 개입하기 어려울 거예요.”
“대통령이 진짜 미국 눈치 안 보고 일본이랑 전쟁하려고 할까요?”
“우리군은 단기간에 별 피해도 입지 않고 북한군에 대승을 거둔 상태라 사기가 오를 대로 올라 있어요. 게다가 일본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분노도 끓을 대로 끓은 상태구요. 결국 정치인은 여론에 따라 움직이기 마련입니다. 국민들이 일본과의 전쟁을 원한다면, 대통령도 당연히 이에 따르게 되겠지요.”
송호원은 정비를 마친 K2 흑표 전차의 포신을 매만지며 말을 이었다.
“조만간 우리 K2가 일본 10식 전차를 상대하는 걸 볼 수 있겠군요. 북한군 전차들은 다 쓰레기들 밖에 없어서 너무 시시했는데, 그때가 되면 K2가 왜 실전 최강의 전차인지 전 세계에 증명하게 될 겁니다.”
오후 1시, 경기도 우성시 일월촌
“자, 밥 왔다, 우리 암캐.”
조폭들이 삼각대 위에 핸드폰을 올려놓고 동영상 촬영을 하는 동안,
홍규가 라면 국물에 밥 말은 것을 땅바닥에 내려놓으며 실실 웃었다.
유민은 여전히 개목걸이를 찬 채 철봉에 매어져 있었고,
두 손도 등 뒤로 묶여 있었다.
조폭들은 화장실 갈 때만 빼고 그녀를 계속 그렇게 묶어두고 희롱하는 중이었다.
다시 도망가지 못하게 그렇게 두는 거라기보다,
이대로 두고 괴롭히는 모습을 찍는 걸 즐기는 중이었다.
“뭐 하냐, 밥 갖다줬는데?”
홍규가 유민의 뒤통수를 잡아 눌렀다.
그녀는 그렇게 무릎을 꿇고 엎드린 채로,
개처럼 라면 국물에 떠 있는 밥을 혀로 핥아 먹을 수밖에 없었다.
“와, 씨발~! 이거 올려도 조회수 좆나 나올 거 같은데!”
상국이 핸드폰 카메라 앵글을 줌으로 좀 더 확대하며 킬킬거렸다.
조회수, 라는 말에 유민이 불안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한 번 쳐다보았다.
지난번 저들이 자신의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린 것 때문이었다.
물론 그녀는 조폭들이 처음 동영상을 올린 이후 그 다음부터는 다른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까지는 알지 못했다.
그저 저들이 계속 자신의 영상을 인터넷에 풀 것이고,
그로 인해 자신의 얼굴과 자신의 벗은 몸은 물론,
조폭들과 몸을 섞으며 더렵혀지는 영상들을 수많은 사람들이 보게 되고,
그 영상들을 본 사람들 중에 자신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고,
성모도 그 영상을 볼 지도 모르고...
그녀의 얼굴 옆으로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힘없이 내려뜨려지고,
작고 둥근 하얀 어깨가 위아래로 흔들렸다.
자신의 삶은 이제 모두 끝이 났다고,
버텨낼 수 없는 절망감이
그녀를 계속 무너뜨리고 있었다.
큰방에서 귀에 거슬리는 천박한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동안,
거실에서는 선욱과 전도한이 소파에 앉아 음료수를 마시고 있었다.
박광은 일 때문에 만나야 할 사람이 있다며 아침 일찍 밖으로 나가 있는 상황,
선욱은 운용 엄마를 옆에 끼고 그녀의 커다란 젖가슴을 주무르며 전도한에게 불만을 쏟아냈다.
“씨빨, 따지고 보면 유민이 저년, 제꺼 아니에요? 네? 저거 진짜 제꺼 맞잖아요? 근데 이제 광이 삼촌이 유민이 저년 더러 자기 보고 뭐라고 부르라고 한지 알아요? 자기더러 주인님이라 부르라고 했데요! 개 미친! 진짜 주인은 난데 왜 지가 유민이 저년 더러 주인님이라고 부르라고 하는 거야, 씨발!”
전도한이 이쑤시개로 이를 쑤시며 대답했다.
“뭐, 큰형님 안 계신 동안 광이가 조직 맡기로 혔다니까 이제 광이가 우리들 오야붕 아니겄냐? 여기서도 대가리는 광이 몫이고. 뭐 그러니께 그냥 말 잘 들어야지, 별 수 있었어? 안 그려? 글고 원래 유민이 저년도 그렇고 아줌마도 그렇고, 너가 우리 삼촌들 마음껏 돌려먹으라고 주고 그러지 않았냐~ 그러다보니께 니꺼 내꺼 구분이 쪼가 거시기 해지긴 했지~! 히히!”
“아, 진짜~! 모텔에 다들 모였을 때 내가 그러는 거 아니었는데~! 내가 씨발 미친 놈이지, 내가 씨발 미친 놈이에요 진짜~! 아오~!”
선욱은 운용 엄마의 손을 잡고 자신의 뺨을 때리는 시늉을 했다.
“그런데 광이 삼촌은 어디 가신 거예요? 혼자 가신 것도 아닌 거 같던데?”
“으잉, 애들 몇 데리고 누구 만난다고 나가더라.”
“누구 만나는데요?”
“몰러, 말을 해줘야 알지.”
전도한은 이쑤시개를 재떨이에 다트하듯 휙 던지고는
관심없다는 표정으로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오후 2시, 경기도 우성시 시내 외곽 지역
조폭 셋을 데리고 나간 박광은 인적이 드믄 주택가 골목에서 누군가와 만나고 있었다.
그가 돈을 주고 섭외한 사람이었는데,
잔뜩 짧게 줄여 입은 교복 치마에 노란 염색 머리를 하고 있는 불량스러운 외모의 여학생이었다.
“우성시 나가는 차는 군인들이 막고 모두 검문 검색을 하고 있어요. 톨게이트로 들어오는 차도 마찬가지구요. 다른 시하고 이어지는 산이나 경월천 주변에도 군인들이 매일 순찰을 하고 있어요. 밤에는 거기 짱 박혀서 앉아 있을 때도 많고.”
여학생이 딱딱 껌 십는 소리를 내며 말했다.
“얼마 전에 북한 잔당인가 뭔가가 통일에 반대한다면서 평양하고 인천에서 폭발 테러 일으켰잖아요? 그것 때문에 더 난리인 거 같아요. 이제 진짜 전쟁도 끝나고 군바리들도 다 가나 싶드만, 그것 때문에 계속 남아 있는 모양이에요.”
박광은 낭패스러운 표정을 감추질 못했다.
“그럼 당장 서울로 가는 길은 다 군인들이 막고 있다는 말이냐?”
“바다로 헤엄쳐서 가는 길 밖에는...? 아, 거기도 군인들이 지키고 있겠구나? 아쉽지만 군인들한테 안 들키고 서울 가는 길은 없을 거 같은데요? 여기서 서울 가는 길은 물론 서울 들어가는 데에도 군인들이 쫙 깔려 있을 텐데.”
박광은 살짝 달아오른 얼굴로 씩씩거리고는,
주머니에서 5만원짜리 지폐 몇 장을 꺼내 여학생의 손에 쥐어주었다.
“수고했다.”
조폭들이 뒤돌아서 가려고 할 때,
여학생이 끼부리는 표정으로 웃으며 그들을 불러세웠다.
“나 돈 더 벌고 싶은데, 아저씨들 상대해주면 얼마나 줄 수 있어요?”
“뭐?”
“아저씨랑 자주면 얼마 줄 수 있냐구요? 나 보다시피 몸매도 죽이고 그것도 잘하는데, 어때요, 나랑?”
여학생이 손으로 박광의 가슴을 쓱 훑어내렸다.
화장을 술집 여자처럼 진하고 하얗게 하긴 했지만 괜찮게 생긴 얼굴,
꼭 달라붙은 교복 너머로 보이는 몸매도 나쁘지 않았지만,
박광은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몸을 더듬는 여학생의 손을 꽉 붙잡았다.
“돈 더 벌고 싶으면 다음에 알아 오라는 것들이나 잘 알아 와.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왜? 아저씨 여자 별로 안 좋아해요?”
“개소리 할 거면 닥치고 꺼져.”
여학생은 이죽거리면서도 끝까지 그를 유혹해보려는 듯 싱긋 웃어보이고는 엉덩이를 흔들며 골목을 빠져 나갔다.
함께 간 경삼이 그녀의 엉덩이를 보고 휘파람을 불었다.
“그래도 함 먹어줄 만 하게 생겼구만~ 돈 좀 더 찔러주고 어디 데려가서 재미나 보고 가시지 그러셨습니까?”
박광은 말없이 그의 뒤통수를 한 대 후려친 뒤,
“돌아가자, 일월촌으로.”
조폭들을 데리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지금 그에게 저 정도 여학생은 눈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아지트에 있는 유민을 생각하면,
다른 어떤 여자도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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