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화 〉 유민의 지난 이야기 2027년 9월 16일 (1)
* * *
오전 4시, 중국 옌볜 조선족 자치주 지린성 렁유안 촌
2차 한국전쟁이 남측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나자 옌볜 자치주의 조선족들은 미래에 대한 밝은 기대감으로 크게 고무되었다.
“이제 북조선 땅을 남조선이 장악하게 되었으니, 거기서 가까운 여기 옌볜하고도 당연히 교류가 많아지겠지?”
“이제 남한 사람들이 북한으로 몰려가서 건물도 짓고 사업도 하고 그렇게 되겠네요! 그럼 우리 일자리도 엄청나게 늘어나겠지요?”
“거지처럼 못사는 북조선하고 이웃하는 거 보다야 돈도 많고 잘 사는 남조선하고 이웃하는 게 훨씬 이득이지, 안 그래?”
조선족들은 한국의 승리를 절대적으로 반기는 분위기였다.
물론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는 법,
북한 사람들과의 밀무역을 통해 이득을 보던 조선족들과
전쟁을 피해 옌볜으로 넘어온 북한 출신들이 그러한 부류의 사람들이었다.
어찌 보면 난민이고 망명자라고도 할 수 있는 이들이었지만, 중국 입장에서는 북한 사람들 때문에 몹시 골치 아픈 상황이었다.
북한 땅이 이제 한국 땅이 되었으니 다시 돌아가라고 하기에도 뭐하고,
그렇다고 자국 인민으로 받아주려니 딱히 도움 되는 부류의 사람들이 많은 것도 아니고,
난민으로 대우하고 보호해 주려 해도 당장 거기에 들일 예산도 부족하거니와 언제까지 그들을 공짜로 먹여 살릴 수도 없는 노릇.
과거 한 해 수만 명에 달하던 탈북자들의 경우 그냥 잡으면 잡는 대로 북한으로 돌려보내면 되니까 일 처리가 쉬웠지만,
이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국이니 답답한 일이었다.
북한을 탈출한 북한 사람들은 옌볜 조선족 자치구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다.
대부분 일용직 일로 겨우겨우 입에 풀칠을 하며 살아가는 경우가 많았고,
얼굴 반반한 여자들은 자신의 몸을 파는 일로 생계를 유지하기도 했다.
심지어 남편도 있고 자식까지 있는데도 제 가족 식구 먹이기 위해 돈을 받고 다른 남자와 잠자리를 갖는 여자들도 허다했다.
전쟁으로 집을 잃고 고향을 떠나온 이들의 삶은 하루하루가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일 수밖에 없었다.
조선족 자치주 중심지에서 다소 멀리 떨어진 렁유안 촌에도 많은 북한 난민들이 들어와 있었다.
특히 최근 들어 이곳으로 유입되는 이들이 상당히 늘어났는데,
류광택 차수가 한국군의 참수 작전에 의해 사살되고 쿠데타 세력이 와해 되자
한국군이나 김성운 세력에 투항하지 않은 이들이 생존을 위해 압록강을 건너 이곳까지 오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이 작은 마을에 북한 사람들의 수가 점점 늘어나게 되었을 무렵부터
이상하게 하늘 위를 떠다니는 정체 모를 작은 드론 비행체들,
어떤 건물 주위를 수상쩍게 빙빙 도는 차량들,
타지에서 온 것 같은 건장한 체구의 남자들이 자주 목격되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은 이들을 그저 난민들을 감시하기 위해 온 공안들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들이 물건을 사거나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중국말 쓰는 걸 들어보면 상당히 어설프고 서툰 것이, 딱 외국인 같아 보이기만 했다.
드론과 수상한 차량, 덩치 큰 남자들이 계속 주위를 맴돌던 건물은 얀지 로와 와이후란 로, 두 개의 큰 도로가 교차 되는 곳 가까이 위치한 상가 건물이었다.
원래 1층에는 차량 정비소 같은 게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영업은 하지 않는지 늘 셔터가 내려진 채로 있었고,
2층부터 5층까지는 사무실로 임대를 주는 곳인데 딱히 간판이 걸려 있는 것도 아니고 오가는 사람들도 거의 없는 곳이었다.
깊은 새벽이 되고 도로에 차량도 인적도 모두 끊겼을 무렵,
저 높이 밤하늘에서 미세한 프로펠러 소리가 들려왔다.
수시로 이 건물을 감시하던 드론이었다.
드론이 건물 위를 비행하는 동안,
다섯 대의 대형 승합차가 건물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옌볜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한국산 승합차였는데, 차유리는 모두 짙은 선팅이 되어 안을 볼 수 없게 되어있었다.
차량들이 건물 주위를 에워싸듯 멈춰서고,
총을 든 남자들이 조용히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목표 건물 주변 이상 없음. 진입하라.]
[교전 수칙 재확인 바람, 이상.]
[자유 교전, 자유 교전, 단, 타겟은 반드시 산채로 확보할 것.]
[확인, 현 시간부로 CR팀 목표로 진입하겠다, 이상.]
총을 든 남자들은 군복이 아닌 청바지나 사제 테러복, 점퍼 차림에 방탄 패널을 넣을 수 있는 전술 조끼를 착용하고 있었다.
미군이나 영국군 특수부대에서 주로 사용하는 (헤드셋을 착용하기 위해) 귀 부위가 오픈된 방탄 전술 헬멧을 착용한 인원들도 있었지만 얼굴을 가리는 바라클라바 만을 착용한 이들이 대부분이었고, 야구 모자에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이도 있었다.
밖에 6명의 남자들이 사주 경계를 하는 동안 다른 10여 명의 남자들이 외부에 있는 계단으로 올라갔다.
이들은 모두 4안식 GPNVG18 야간투시경을 착용하고 있었다. 총에도 야간 표적지시기 등 각종 군용 장비들을 잔뜩 가지고 있었는데,
모두 미국이나 서방, 한국의 특수부대에서 주로 사용하는 것들이었다.
빠각
2층으로 들어가는 문은 빠루로 쉽게 열렸다.
5명의 남자들이 지향 사격 자세를 취하고 건물 안으로 돌입하고,
다른 인원들은 한 층 더 올라가 같은 방법으로 3층으로 진입할 준비를 했다.
퍽! 퍽! 퍼벅!
마치 커다란 나무망치로 흙바닥을 강하게 내리치는 소리가 3층 입구까지 들려왔다.
소음기가 달린 자동소총 소리였다.
[2층에서 3명 사살, 현 위치에 타겟 없음, 반복한다, 현 위치에 타겟 없음.]
[양호, 좀 더 수색해 보고 4층으로 이동하도록.]
[확인]
남자들은 인이어를 통해 무전을 마치자마자 빠루를 문틈에 들이밀었다.
3층은 사무실처럼 꾸며져 있었는데 오래된 가죽 소파 위에 두 사람의 남자가 누워 자고 있었다.
야간투시경으로 그들의 얼굴을 확인한 남자들은 그들 머리에 조용히 총구를 겨누었다.
퍽! 퍽!
[3층에서 2명 사살, 이곳에도 타겟 없음, A조 마지막 5층으로 이동한다.]
[확인, B조 4층 진입 준비 중]
남자들이 3층에서 나와 계단을 타고 5층으로 향했다.
지나가며 보니 2층에 있던 이들이 벌써 4층 문을 부수고 안으로 들어가 내부를 수색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총성, 아니 총성 같지도 않은 조용한 소음이 산발적으로 들려왔다.
[4층, 총 여섯 명 사살. 이곳에도 타겟 없음. 역시 5층에 있나 보네. 행운을 빈다.]
[양호, 여기도 없으면 1층 내려가서 뒤져 봐야 할 것 같은데.]
[1층에는 문 없고 셔터 자물쇠 부수고 들어가야 할 듯.]
[여기 지하실은 없다고 했지?]
[양호, 지하실 없이 지상 1층부터 5층까지만.]
[확인, 여기에도 없으면 아까 죽인 시체들 얼굴 다시 한 번씩 들여다보고 가자.]
남자들이 빠루로 문을 부수고 마지막 5층으로 돌입했다.
5층은 다른 곳과 달리 커다란 원룸 형태로 되어있었다.
가구도 있고 싱크대 주방도 있는 것이 살림집처럼 꾸며 놓았는데,
창가의 커다란 침대 위에 한 쌍의 남녀가 이불을 덮고 잠들어 있었다.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와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자,
속옷만 입고 있는 두 사람은 자신들의 주변을 총 든 사람들이 둘러싸고 있다는 것도 느끼지 못하고 쿨쿨 잠만 잘 자고 있었다.
야간투시경으로 침대 위 남자의 얼굴을 본 그들은 서로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타겟을 찾았다는 뜻이었다.
야구 모자를 쓰고 마스크를 하고 있던 남자가 손가락으로 옆에 누워 있는 여자를 가리키고는,
손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여자는 죽이고 갈까? 라는 뜻이었다.
리더로 보이는 남자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들은 전술조끼에서 테이프와 케이블타이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잠든 두 사람에게로 소리 없이 다가가
소리 지르지 못하게 입부터 먼저 테이프로 막아버렸다.
“읍, 으읍! 웁! 우우웁!”
남자가 소리를 지르며 저항해보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두 사람은 순식간에 제압당한 채 손발이 케이블타이로 묶여 더 이상 옴짝달싹 못하게 되어버렸다.
[타겟 확보, 반복한다. 타겟 확보.]
[양호, 지금부터 B조는 넥스트 스텝 진행.]
[확인, A조 타겟 데리고 차량으로 이동한다.]
남자들이 두 사람을 데리고 차량이 있는 곳으로 내려가는 동안,
4층에 있던 남자들이 석유가 든 말통을 가져와 각 층에 널브러져 있는 시체 위에 뿌렸다.
건물 각층에서 시뻘건 불길이 일고,
기다리고 있던 다섯 대의 승합차들이 조용히 현장을 빠져나갔다.
그와 함께 하늘 위에서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드론도 밤하늘 높이 사라져 가고 있었다.
오전 9시, 중국 옌볜 조선족 자치주 지린성 일대 한국 국군정보사령부 소유 안전 가옥
총을 든 남자들은 국군정보사령부 특수임무대 HID 소속으로
일명 CR팀으로 불리는 특수요원들이었다.
지난날 류광택 차수를 사살했던 것도 바로 그들이었다.
지금 이들이 납치해온 인물은 류광택 차수의 측근이었던 리병철 상장,
지난번 울진 한울 원자력 본부를 공격한 일과 우성시에 빨치산들을 침투시키는 데 모두 일본이 개입했음을 증언해 줄 유일한 인물이었다.
리병철은 머리 위에 오래된 전등 하나가 달려 있는 어두운 지하실 같은 곳에 갇혀 있었다.
의자에 앉아 있었지만 손은 뒤로 케이블타이로 단단히 묶여 있는 상태,
옷이라고는 아까 잡혀올 때와 같이 밑에 사각 팬티 한 장 달랑 입고 있는게 전부였다.
그는 초조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 상태로 혼자 있는 게 벌써 몇 시간째,
시간이 갈수록 불안감만 더욱 증폭되고 있었다.
끼이이익
계단 위에 있는 문이 열리고,
드디어 몇 시간 만에 누군가 나타났다.
나이가 제법 들어 보이는 중년의 남자였다.
그의 손에는 맥도날드의 노란 종이봉투가 들려있었다.
고소하고 맛있는 냄새가 지하실 안에 풍겨났다.
“오래 기다렸소? 아침 좀 사오느라 늦었지. 여기 연변은 아침 일찍 여는 식당이 없더라고. 그래서 멀리까지 가서 맥모닝 좀 사왔소. 아, 근데 이런 거 먹어 본 적 있소? 북한에 맥도날드 같은 건 없으니까 먹어본 적은 없을 것 같고, 어떻게 먹는 줄은 아시오?”
남자는 빙글빙글 조롱하듯 웃으며 말하고 있었다.
리병철이 인상을 쓰며 차갑게 대꾸했다.
“북한이라 하지 말고 조선이라 하오! 내 나라 이름은 북한이 아니란 말이오! 그리고 나도 전에 러시아하고 스위스, 일본에 있어 봐서 다 아오! 양키놈들 음식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유세요, 유세는?”
“아아, 당에서도 유학파 엘리트로 엄청 인정받으셨었지? 뭐 이제 그 조선노동당도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지만.”
리병철은 분한 듯 입술을 깨물었다.
그도 이곳 옌볜에서 엊그제 있었던 남북 정상회담의 결과에 대해 뉴스로 들어 알고 있었다.
김성운이 노동당 해체를 선언하며 사실상 항복 선언을 한 것도 모두 다 말이다.
남자는 봉투 안에 있는 걸 탁자 위에 꺼내 놓았다.
치즈 냄새가 진하게 풍기는 베이컨 에그 맥모닝과 바삭하게 튀겨낸 해쉬 브라운, 애플파이 같은 것들이었다.
“자 그럼 후딱하고 아침 먹읍시다.”
남자는 품에서 질문지가 담긴 A4용지를 꺼내 들고 그를 마주 보고 앉았다.
녹음기나 카메라 같은 건 없었다.
아마 어딘가에 보이지 않게 설치해 놓은 모양이었다.
“리병철 상장, 류광택 차수가 사망하고 바로 얼마 안 되서 여기 옌볜으로 내뺐지? 몇몇 측근들만 데리고 압록강 건너서 야반도주까지 하고 말이야. 지휘관으로서 분열된 군을 재정비하고 류광택 차수를 대신해 당신들이 말하는 혁명 과업이라는 걸 완수할 의무가 있었을 텐데... 대체 왜 그랬지? 전쟁에 지고 당신도 류광택 차수처럼 죽을까봐 그게 무서웠나?”
리병철의 눈썹이 격하게 꿈틀거렸다.
“나, 난...! 조선인민군 해군 상장일 뿐이오! 조선인민군의 전시 통제권은 육군 대장이 갖게 되어있소! 류광택 차수 유고시에는 그 밑에 육군 대장 중 하나가 통제권을 갖게 된다 이 말이오!”
“그래서, 당신은 책임이 없으시다?”
“내 책임에 대한 문제를 왜 당신이 따지는 거요? 당신이 조선인민군 정치장교라도 된다는 거요? 말투보니끼니 딱 봐도 남조선 아새끼구만, 그걸 물어 뭐 어쩌자는 말이오!”
리병철이 격렬하게 소리를 치는데도, 남자는 여전히 여유롭게 웃으며 그를 상대하고 있었다.
“후후, 당신이 왜 도망갔는지 내가 말해줄까? 우리가 류광택 사살하고 거기 있는 거 다 뒤져서 가져갔을 때 하나 없는 게 있더라고. 류광택이 가지고 있는 해외 계좌 자료들.”
그 말에 씩씩거리며 화를 내던 리병철의 표정이 싹 굳어지기 시작했다.
“그거 당신이 알고 있지? 류광택이 해외 계좌 관리는 당신한테 맡겼었잖아?”
“그, 그건... 흠, 흠!”
리병철은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남자는 여전히 웃음 띈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이제 류광택 죽었으니까 그 돈 가지고 어디 좋은 데라도 가시려고 하셨나? 어디? 스위스나 체코 같은데? 아니면 마요르카나 뭐 이비자 같은 데로 도망쳐 살고 싶었어? 그런데 가려면 가족들을 데리고 가야지, 마누라며 자식 새끼들은 북한 땅에 그냥 두고 몰래 바람 피우던 여군 장교 데리고 도망을 나오나?”
아까 건물에서 함께 붙잡힌 여자가 바로 그와 내연관계에 있던 여군 장교였다.
리병철이 안절부절 못 하고 있을 때,
남자가 표정을 싹 바꾸며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지금, 그년 데리고 내려와.”
잠시 후 지하실 문이 열리고,
건장한 체격의 두 남자가 양옆에서 발가벗고 있는 여자의 팔을 붙들고 내려오고 있었다.
“아, 아니! 지금 뭐 하는 거요!”
리병철이 놀라 소리를 버럭 질렀다.
여자는 머리가 헝클어진 채 겁에 잔뜩 질려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자, 장군님...”
그녀가 리병철을 보며 울먹였다.
두 사람이 뭐라고 말을 하려는 찰나,
책상 앞에 앉아 있던 남자가 손을 휘휘 내저였다.
그러자 남자들이 여자를 끌고 다시 계단을 올라갔다.
“장군님! 장군님!”
문이 닫히고,
여자의 슬픈 비명도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리병철이 불안한 듯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 여자한테...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요?”
“그러게? 무슨 짓을 했을 거 같애? 아니, 앞으로도 무슨 짓을 어떻게 할 거 같애?”
“말장난 하지 말고 사실대로 말해주오!”
“너나 장난하지 말고 묻는 말에 똑바로 대답이나 해!”
지금까지 웃으며 이야기하던 남자가 주먹으로 책상을 쾅, 내리치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의 커다란 목소리에 리병철도 주눅이 들어 입을 다물었다.
“저 여자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두 당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어. 그러고보니 저 여자, 당신 애도 임신하고 있는 중이라며?”
“그건 어떻게...?”
“그래, 당신 여자랑 당신 애, 둘 다 살리고 싶으면 내가 묻는 거에 똑바로 대답해. 아니면 저 여자, 지금 다시 데리고 와서 당신 보는 앞에서 죽을 때까지 강간해 버리겠어. 그러길 바래?”
리병철은 조용히 고개를 떨구었다.
“물어보고 싶은 게... 대체 뭐요?”
남자가 가지고 있던 A4용지 하나를 그에게 내밀며 말했다.
“지난번 울진 한울 원자력 본부 공격한 무장 단체, 그거 일본인들이었지?”
“그건...”
“당신 해군이라서 잘 알고 있잖아? 그때 무장 단체 수송한 일본 잠수함, 그 앞에서 길 안내 맡은 게 당신네 북한 잠수함이었으니까. 왜, 아니야?”
“...”
“그리고 우성시에 빨치산 데리고 왔을 때도 마찬가지로 일본 잠수함이 들어왔지. 당신네들은 길 안내만 해주고.”
“...”
“처음에는 왜 북한이 잠수함도 많으면서 자기네 꺼가 아니라 일본 잠수함으로 병력이랑 물자를 날랐을까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나중에 우리 군이 나포한 잠수함들 보니까 알겠더라고. 당신네 북한 잠수함들, 너무 작아서 대규모 병력이나 물자는 도저히 못 나르니까 일본의 도움을 받은 거잖아? 맞지?”
리병철은 고개를 푹 수그리고 있을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있었다.
남자가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네 여자, 다시 이리로 데리고 올까? 아니면, 저 위에서 먼저 시작하라고 해?”
그러자 리병철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맞소. 일본 잠수함으로 그리 한 거... 맞는 말이오.”
“그렇지? 그럼 이거를 입증할만한 증거가 있어야 하는데... 류광택의 계좌 거래 내역 중에 이 일로 일본과 금전 거래한 내용도 남아 있지?”
“...그렇소.”
리병철은 남자가 묻는 말에 모두 고분고분 대답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장면은 CCTV를 통해 모두 녹화되고 있었고,
위에 있는 방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잠시 후, 리병철을 심문하던 남자가 CCTV가 있는 방으로 들어왔다.
“병신같은 새끼, 별로 예쁘지도 않은 년 하나 때문에 벌벌 떨기는.”
“저 정도면 북한에서는 먹어주는 얼굴 아닙니까? 가슴도 꽤 크던데요? 크크크.”
“야, 넌 상황 안보고 그런거나 보고 있었냐? 저 새끼 말한 거 거짓말 탐지기에 어떻게 나왔어?”
“일단 목소리 분석만 놓고 보면 말한게 모두 사실일 확률이 98% 가 넘습니다.”
“좋아, 진짜 구라는 아닌 모양이구만. 자 그럼, 민재 과장.”
“네, 팀장님.”
뒤에 앉아 있던 민재 과장, 이라 불린 키 큰 젊은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민재 과장이 리병철 저 새끼랑 여자 국내로 보내는 거 담당해 줘. 둘은 따로 보내야 하니까 이동 루트도 따로 준비하고.”
“네, 알겠습니다, 팀장님.”
“먼저 한국 돌아가서 푹 쉬고 있어. 류광택 잡느라 고생 많았는데 쉬지도 못하게 하고 여기까지 데리고 와서 늘 미안했는데. 전쟁도 시마이 됐다니까 가서 마음껏 즐기고 있어.”
“감사합니다, 팀장님!”
CR팀의 정예 요원 중 한 명, 강민재는 모처럼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소식에 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