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동춘추 - 리부트-190화 (190/217)

〈 190화 〉 유민의 지난 이야기 ­ 2027년 9월 15일 (1)

* * *

­ 오전 3시, 경기도 우성시 일월촌

그날 밤도 유민은 박광을 포함, 일곱 명의 조폭을 몸으로 받아야 했다.

그렇게 다들 지쳐 잠이 들고 더 이상 자신의 몸을 추잡하게 주무르는 놈들이 없게 되었을 때,

그녀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벌겋게 부은 아랫도리를 손으로 부여잡고 엉거주춤한 걸음걸이로 화장실로 향했다.

쏴아

샤워기 물 떨어지는 소리가 거실에 누워 잠자던 조폭들에게까지 들렸다.

여자들은 섹스를 하다 실신해 쓰러지지 않는 이상 꼭 샤워를 하고 잠이 들었다. 최근에는 운용 엄마의 부탁으로 여성용 청결제나 가글 같은 것도 사다 놓았다. 윤락가 창녀들처럼 매일 여러 명의 남자와 동시에 관계를 맺고 있으니 조폭들도 제법 위생에 신경을 쓰는 중이었다.

잠결에 들려오는 물소리에 조폭들은 그저

‘아, 지금 유민이 저년 다 끝나고 씻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며 별다른 의심도 없이 코를 드르렁거리며 잠에 빠져들었다.

유민은 평소보다 더 오랜 시간을 씻었다.

물소리가 멈추고,

화장실의 붉은색 조명이 꺼졌다.

오래된 미닫이문이 열리고,

안에서 수건으로 모두 닦았는지 몸에 물기가 남아 있지 않은 유민이 거실에 누워 있는 조폭들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주방으로 들어갔다.

평소에도 조폭들과 맨살을 부대끼며 같이 자기 싫어서 일부러 좁은 주방 구석으로 들어가 웅크린 채로 잠이 들곤 했다.

하지만 오늘은 그곳에 잠을 자러 가는 게 아니었다.

그녀는 소리가 나지 않게 싱크대 아래 서랍을 열고

그 안에 몰래 넣어두었던 츄리닝 상하의를 꺼냈다.

불안한 마음에 뒤를 돌아보니 불 꺼진 거실에서 시끄럽게 코 고는 소리만 들려올 뿐, 그녀를 지켜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크게 한번 심호흡을 하고

조용히 츄리닝을 챙겨 입기 시작했다.

유민은 그렇게 츄리닝 차림에 슬리퍼만 신은 채 조폭들의 아지트를 빠져나와 어둠 속을 달리기 시작했다.

가로등도 없고 당연히 불 켜진 집도 하나 없는 어두운 일월촌의 좁은 길,

미로 같은 이 길 속에서 헤매는 동안 그녀의 가슴으로 밀려오는 가장 큰 감정은

두려움이나 무서움이 아니라

부끄러움과 수치스러움이었다.

선욱과 그 똘마니들에게 잠에 취해 범해진 것도 모자라

전도한 등 조폭들에게 끌려가 견딜 수 없을 만큼 끔찍하고 고통스러웠던 폭행과 고문을 당하고

결국 길들여진 개처럼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

그들이 하라는 대로 별의별 굴욕적인 짓까지 다하고,

그들에게 다리를 벌리고 그들의 더러운 성기를 입으로 빨아주고,

갖은 수치와 윤간을 당하면서도 고문과 폭행에 대한 두려움에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했고,

더럽혀지고 또 더럽혀지고,

찢겨지고 너덜너덜해진 걸레처럼 되고 말았다.

걸레,

그 단어가 생각나자 갑자기 가슴이 울컥하며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여기서 도망치면... 난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가장 두려운 것은 전도한이 협박했던 것처럼 조폭들이 자신을 강간하는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리면 어떻게 하나, 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찍은 동영상의 개수는 그녀가 알고 있는 것만 100여개가 넘었다.

우성경찰서에 있을 때는 물론 지금 이곳 일월촌에 들어온 후까지,

그들은 유민과 운용 엄마를 두고 관계하는 모습을 핸드폰으로 매일 매일 찍고 있었다.

그것도 하나의 핸드폰으로만 찍는 게 아니라 각자 가지고 있는 핸드폰들을 돌려가며 찍고 있으니,

그 많은 동영상을 모조리 막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그 동영상을 친구들도 보고

아는 사람들도 전부 보고

성모까지 보게 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

유민은 가슴이 턱 막혀왔다.

달리느라 숨이 차 그러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지금까지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이라고 믿었던 성모가 자신을 버렸다는 말,

미련스럽게도 그 말은 사실이 아닐 거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선욱과 조폭들이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라고,

심지어,

이 사람들과 같이 있으면 성모 오빠 있는 곳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언젠가는 꼭 다시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고,

이런 헛된 희망을 갖고 있었다.

물론 이 부질없는 희망이

매일 같이 절대 씻을 수 없을 것처럼 더럽혀지는 하루 하루를 겨우 겨우 살아가게 해주고 있었지만...

박광과 함께 아지트 밖으로 나갔던 날,

정확하게는

그의 구애를 단호하게 거절했던 날,

유민은 그에게 굴욕적으로 얻어맞았다.

주먹으로 배를 맞고 그 자리에 고꾸라지자

박광은 그녀에게 발길질을 해댔고,

쓰러진 그녀의 머리채를 잡아 흔들며 뺨까지 때렸다.

“야, 이 씨발년아! 그 새끼가 너 버렸다고! 그런데 뭐? 그 새끼 때문에 몸은 줘도 마음은 못 줘? 이 씨발, 개병신 같은 년! 그럼 난 너 같은 년 마음 같은 건 필요 없으니까 오늘부터 네 몸 내 마음대로 하겠어!”

그는 그 자리에서 그녀가 입고 있던 츄리닝을 거칠게 벗겨 버리고,

어마어마한 크기에 엄청난 모양의 보형물까지 박혀있는 성기를

콘돔도 없이 생으로 그녀의 다리 사이로 쑤셔 넣었다.

한참을 길바닥 위에서 그녀의 몸에 올라타고 허리를 흔들며 짓누르던 그는 그녀의 몸에 사정을 하더니

고통으로 헐떡이는 그녀의 몸을 발로 짓밟은 채 담배를 피웠다.

그리고는,

“네년 따위가 감히 날 거부해? 여기서 우리 애들 육변기 노릇이나 하는 년 팔자 고치게 해줄라니까 이 년이 지금 배가 불렀지? 응?”

마구 조롱하며 그녀의 엉덩이에 담배 꽁초를 비벼 껐다.

그리고 그녀의 헝클어진 긴 머리카락을 마치 개줄처럼 붙잡고는

아지트까지 개처럼 네발로 기게 해서 끌고 갔다.

그렇게 유민은 또 한 번 폭력에 무릎 꿇고 무너지고 말았다.

그때부터 유민은 박광과 관계를 맺을 때마다 거의 폭행에 가까운 짓을 당해야 했다.

다른 조폭들도 뒷치기를 하며 엉덩이를 때리거나 가슴이나 젖꼭지를 거칠게 주무르고 잡아당기기는 했지만,

그는 아예 그녀의 목을 조르거나 아니면 뺨을 세게 때리거나,

배나 엉덩이를 주먹과 발로 사정없이 치고 때리기까지 했다.

어떻게든 성모가 있는 곳을 알 때까지만 참고 견뎌내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지만,

(유민은 선욱과 조폭들이 말하는 것처럼 성모가 진짜 필리핀에 간 거라고 확신하지 않았고, 정말 필리핀에 간 거라면, 혹은 다른 곳에 있다면 정확한 주소나 위치라도 알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대로 계속 박광의 폭력에 당하다가는 정말 성모도 만나지 못하고 맞아 죽을지도 모르겠구나, 겁이 덜컥 났다.

그래서 결국 도망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일월촌의 미로 속에서 해맸지만, 좀처럼 밖으로 나가는 길은 보이지 않았다.

‘일단 한쪽으로만 계속 가자. 그럼 결국 이 마을 끝이 나오겠지.’

유민은 손으로 옆에 있는 판잣집 벽들을 집어 가며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그렇게 얼마쯤 갔을 때,

갑자기 주변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뭐지?’

유민이 놀라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소리는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불안하긴 했지만 일단 조폭들은 아닐 거란 생각에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누, 누구요?”

어둠 속에서 먼저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낡고 오래된 외투로 몸을 감싸고 머리가 하얗게 샌 노파였다.

“아, 아, 아니, 전...”

유민은 잠시 당황해 말을 더듬었다.

노파는 등에 커다란 바구니 같은 걸 매고 있었다.

손에도 집게를 들고 있는 게 폐지나 헌옷 같은 걸 줍는 일을 하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 시간에 왜 일월촌 안에 들어오신 거지?’

유민은 이상한 생각에 조심스럽게 물었다.

“할머니, 혹시 여기 이 동네 사세요?”

그 물음에 노파는 경계심 가득한 표정으로 유민을 노려보며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그런 걸 왜 물어? 뭐하는 사람인데 왜 여기 까지 들어와서 그런 걸 묻냐고?”

유민이 놀라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다.

“아, 아뇨, 저 지금 여기서 나가려고 하는데 길을 못 찾겠어서... 혹시 여기 사시면 나가는 길 아시나 해서 여쭤보려 했던 거예요.”

그러자 노파의 표정이 부드럽게 변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나가려고? 여긴 어떻게 들어왔길래 나가는 길을 찾어?”

“길을... 잘 못 들었어요. 이제 나가야 할 거 같은데 밤이라 나가는 길이 어딘지 도저히 모르겠어서요.”

“이 새벽에? 다 큰 처자가 왜 이곳까지 왔누?”

“아, 그게, 저... 친구들이랑 왔다가 그 친구들이 저 놀리려고 저만 놓고 먼저 가버렸어요.”

“여기 또 귀신 나온다는 헛소리 때문에 찾아왔었나 보구만? 귀신은 무슨, 요즘같은 세상에 무슨 귀신이야? 또 유튜븐가 뭔가 찍으러 온 모양이구만. 하여간 요즘 것들 별 쓸데없는 짓들을 다 해.”

노파는 궁시렁 거리며 유민의 곁으로 다가왔다.

“나도 나가는 길이니 나 따라와.”

노파는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앞장 서서 걸어갔다.

유민은 안심하며 그녀의 곁에 바싹 붙어 함께 걸었다.

“할머니, 그럼 할머니는 여기 어떻게 들어오셨어요?”

“나? 나 여기 살아.”

“여기 사신다구요? 전에 빨치산들 몰아낼 때 군인들이 여기 살던 분들 다 밖으로 내보냈다고 들었어요.”

“빌어먹을 군인 놈들. 그때 여기서 쫓겨나가긴 했지. 하지만 우리 같은 늙은이들을 그렇게 내몰면 밖에 나가서 어떻게 살라구? 금수도 비 피하고 이슬 피할 곳이 다 있는 법인데 갈 데도 없는 사람들을 그렇게 내몰면 죽으라는 말밖에 더 돼? 그래서 몰래 다시 들어왔지. 이젠 죽어도 여기서 그냥 죽으려고.”

“그럼 여기 집이 있으신 거예요? 여기 근데 전기도 없고 가스도 안 들어 오잖아요?”

“나 같은 늙은이가 전기 같은 게 뭔 필요 있어? 나 핸드폰도 없고 텔레비전도 안 봐. 어두우면 촛불키면 되니까 전기는 없어도 되더라구. 밥은 부르스타에 냄비 올리고 후라이팬 올려서 해 먹으면 되니까 가스도 필요 없구.”

유민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할머니, 할머니처럼 여기 다시 들어와 사시는 분들이 또 있어요?”

“전에 웬 외국인 남자 하나랑 마주친 적이 있었지. 아마 그치도 원래 여기 살았는데, 어디 갈 데 없으니까 나처럼 다시 들어온 모양이야. 아니면 지금부터 몰래 들어와 살라고 한 걸지도 모르고. 모르긴 몰라도 길거리 노숙자들도 꽤 들어와 빈집 차지하고 들어와 앉았을걸?”

그 말에 유민의 얼굴이 화끈거렸다.

‘설마, 밤마다 나랑 아줌마가 거기서 신음 소리 내던 거, 들은 사람 있는 거 아냐?’

노파는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부지런히 꼬불꼬불 미로 같은 길과 계단을 따라 어디론가를 향해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한참을 노파를 따라가고 있을 때,

갑자기 뒤편에서 사람들의 뛰는 발걸음 소리,

무어라 고래고래 외치는 남자들의 거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설마 조폭들이?’

유민이 노파의 어깨를 잡으며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할머니, 저 급해서 그런데 어디로 나가야 하는지만 가르쳐 주실래요? 저 정말 급해서 그래요!”

노파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고는,

앞으로 난 계단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해 주었다.

“저 계단 따라 쭉 내려가다가 파란색 지붕집 나오면 오른쪽으로 가. 그리고 거기서 쭉 가다가 큰길 나오면 다시 왼쪽으로 가. 가다 보면 밖에 나가는 길이 보일 거야.”

“할머니,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유민은 즉시 노파가 말해 준 길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파란색 지붕집 나오면 오른쪽으로, 큰길 나오면 다시 왼쪽으로!’

그녀는 노파가 알려준 길을 마음속으로 되뇌며 계단을 달려 내려갔다.

지난밤 박광 등 보형물 박은 성기 가진 조폭 놈들에게 수 차례 범해진 탓에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음부가 쓰리고 다리까지 저려왔다.

몸만 성했다면 또래 여자들 중 그 누구보다도 빨리 달리 자신이 있었지만, 지금 상태로는 빠르게 경보하는 정도로 밖에는 달리지 못하고 있었다.

드디어 노파가 말해 준 파란색 지붕집이 나오고,

유민은 재빨리 오른쪽으로 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이제 큰길만 나오고 거기서 왼쪽으로 돌면 곧 나가는 길이라고 했는데,

100m 정도 달렸을 때,

그녀는 그 자리에 멈춰 설 수 밖에 없었다.

“야, 이 년아. 진짜 뒈지고 싶냐?”

언제 쫓아왔는지,

구형 M­16 소총을 든 조폭들이 그녀의 앞을 가로 막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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