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동춘추 - 리부트-188화 (188/217)

〈 188화 〉 유민의 지난 이야기 ­ 2027년 9월 11일

* * *

※ 위 소설에 등장하는 필리핀의 지명과 시설명은 모두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공간입니다.

­ 오후 5시, 필리핀 리테나오 섬 바콜론 시티

우기가 지나려면 아직 몇 달은 더 있어야 한다고 한다.

필리핀의 가장 큰 섬 중 하나, 리테나오에는 아침부터 계속 스콜 (Squall, 열대성 기후에서 자주 나타나는 강한 소나기) 이 내렸다 말았다 반복하고 있었다.

주구장창 내리는 비에 질린 성모는 창문에 커튼을 치고 침대에 벌러덩 누워버렸다.

‘주말인데 저놈의 비 때문에 어디 나가지도 못하고, 날씨 완전 씨발인 동네야.’

성모는 필리핀에 도착한 후 이곳에 있는 0000 신학대학교에 편입해 공부하고 있었다.

말이 신학대학교지 돈만 주면 누구나 다 들어올 수 있어서 그냥 출석만 하고 학점만 유지하면 목사 안수받고 나갈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한국에서 총신대, 장신대 등 명망 높은 신학대에 입학할 능력은 없고 세상 물정 잘 모르는 어리숙한 교인들에게 외국에서 학위 받고 목사 안수까지 받아온 것처럼 허세 부리고 싶어 하는 수준 낮은 사이비 목회자들이 많이 몰려오는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지금 그가 생활하는 곳은 학교 근처에 있는 한 가정집,

리테나오 섬에서 한인교회를 운영하는 우성 제일교회 소속 선교사의 게스트하우스였다.

성모는 침대에 등을 기댄 채로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한국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어제 있었던 대통령 선거 결과와 정치판 뉴스로 가득했다.

[민주시민당 김창수 후보, 64.2% 압도적인 지지로 대통령 당선!]

[김창수 대통령 당선인, 취임식 후 바로 북한 김성운 만날 듯]

[국회 특검 동의안 가결, 이정만 전 대통령 및 자유공화당 전쟁 모의 혐의 조사키로]

[자유공화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마두원, 우성시에서 조직폭력배 동원해 민주시민당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사적 제재, 고문, 협박을 일삼은 혐의로 수배 중]

성모는 잔뜩 눈살을 찌푸렸다.

‘장로님(마두원)도 당분간 어디 숨어 계셔야겠네. 그나저나 선욱이 이 새끼는 왜 연락이 안 돼?’

며칠 전부터 선욱으로부터의 연락이 완전히 끊겨 있었다.

톡을 보내도 읽지 않고,

엊그제부터는 아예 톡방에 선욱의 프사가 공란이 되고‘탈퇴한 회원입니다’라는 안내 문구가 떠 있었다.

‘혹시 짭새들한테 잡힌 건가? 그럼 장로님은? 장로님도 잡힌 거 아냐? 그러면... 앞으로 내 생활비는 누가 보내주지?’

걱정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물론 마두원이나 선욱을 향한 걱정이 아닌,

자신의 안위에 대한 걱정뿐이었다.

그렇게 잔뜩 인상을 쓴 채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위이이잉~!

알 수 없는 사용자로부터 톡이 날아왔다.

‘누구지?’

성모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톡을 열어보았다.

[헤이, 마이프랜드! 잘 지내냐? 나 선욱이 ㅋㅋ]

‘선욱이라고?’

반가운 마음에 열심히 손가락을 놀리기 시작했다.

[너냐? 폰 바뀌었냐?]

[응, 여기 나랑 있는 삼촌이 혹시 군바리나 짭새들이 우리 전화 추적할지도 모른다고, 밖에 나가서 싹 다 대포폰으로 바꿔왔어.]

[지금 어디인데?]

[나 지금 삼촌들하고 잠수 타고 있는 중. 일월촌에 들어와 있어.]

[일월촌? 그 거지 동네? 왜 하필 거기로 들어갔어?]

[군바리 새끼들이 우성시 밖으로 나가는 길 다 막고 있어서 어쩔 수 없었어. 그래도 여기는 그 새끼들이 안 찾아오더라. 전에 빨치산들하고 군인들 졸라 죽어 나간 곳이라 무서워서 안 들어오는 듯. ㅋㅋㅋ 덕분에 아주 재미있게 잘 지내고 있지. ㅋㅋㅋ]

[재미있기는, 그런 거지 같은 곳에 숨어 사는데 무슨 재미있는 일이 있을라고?]

[왜 없겠냐? 여기서 거유민이 전용 오나홀로 만들어서 맨날 재미보고 있는데? ㅋㅋㅋ]

유민의 이름에,

성모의 눈썹이 살짝 떨려왔다.

[걔도 데리고 들어갔어?]

[당연하지. 그년 말고도 왜 교회 중고등부 다니던 그 찐따 새끼 엄마, 젖탱이 졸라 큰 년, 그년도 같이 데리고 들어왔지. ㅋㅋㅋ]

[걔가 너 좋다고 거기까지 따라 들어갔어? 걔가 그럴 년이 아닌데?]

함께 동거하는 동안 유민은 항상 자신과 성모 주변에서 얼쩡거리던 선욱을 무척이나 경계하고 싫어했었다.

“왜 오빠는 저런 오빠랑 어울려요? 오빠가 뭐가 부족해서? 난 그게 이해가 안 가요.”

유민은 수시로 선욱을 못마땅해하는 말을 하곤 했다.

그때마다 성모는,

“아빠들끼리 서로 친구여서 우리도 어려서부터 친하게 지냈어. 이를테면 불알친구 같은 거지.”

라며 대답했다.

선욱을 포차로 불러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표정에서부터 진심으로 반기지 않는 게 확연히 드러날 정도였다.

‘선욱이 저 새끼가 몇 번 강제로 따먹을 수는 있어도, 유민이 그년 성격에 저런 새끼한테 넘어갈 년이 아닌데...?’

그가 떨리는 손으로 다급히 핸드폰 글자판을 두드렸다.

[걔한테 뭔 짓이라도 했냐?]

[뭔 짓은, 그냥 그년이 내 자지맛에 반해서 따라온 거지 ㅋㅋㅋ]

성모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그년 사진 있냐? 그년이랑 하는 사진 있으면 보여줘 봐.]

[응, 잠깐만.]

곧바로 톡방에 사진 한 장이 올라왔다.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 발가벗겨진 유민이 러브호텔 같은 데나 있을 만한 동그란 침대 위에서

일본 야쿠자들이 한다는 울긋불긋한 이레즈미 문신이 몸에 가득한 덩치 큰 사내에게 다리를 벌리고 안겨 있는 사진이었다.

이미 몇 차례 절정에 다다랐는지, 그녀는 동공이 풀린 눈에 혀까지 밖으로 내민 형편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와 동거하며 섹스를 나눌 때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표정이었다.

사진을 확대해서 보던 성모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유민이 년이랑 같이 있는 거 너 아니잖아?]

[ㅋㅋㅋ 응, 나랑 같이 있는 삼촌. 광이 삼촌이라고 우리 아빠가 제일 좋아하는 삼촌이야.]

성모는 유민을 범하고 있는 남자의 얼굴을 확대해 보았다.

확실히 낯이 익은 얼굴이었다.

‘이 사람은 전에 공항에서...?’

마두원이 성모를 공항까지 배웅해주던 날,

그때 마두원의 곁에서 함께 짐을 들어주고 출국 수속을 도와주던 사람이 바로 박광이었다.

선욱의 톡은 계속 이어졌다.

[이 삼촌, 처음에는 거유민 년이나 아줌마한테 아무런 관심도 없는 척 하더니]

[며칠 전부터 발정났는지 맨날 유민이 그년 보지 박살 날 정도로 박아주고 있다. ㅋㅋㅋ]

[전에 갑자기 유민이 그년 옷 입혀서 밖으로 데리고 나가길래 혹시 일월촌 밖으로 내보내려고 그러는 건가 걱정했었는데,]

[돌아올 땐 그년 빨가벗기고 개처럼 네발로 기게 하고는 머리채 잡고 끌고 돌아오더라 ㅋㅋㅋ]

[밖에서 졸라 박아줬는지 그년 얼마 동안 걸음도 제대로 못 걸었어. ㅋㅋㅋ]

[근데 이 삼촌 물건이 쫌 크긴 크거든? 다마도 다른 삼촌들꺼보다 훨씬 크고 굵은 걸로다 박아서 유민이 그년 삼촌이랑 할 때마다 아주 개처럼 소리지르고 아주 좋아 죽을라고 한다, 죽을라고 해. 씨발뇬 ㅋㅋㅋ]

톡을 읽던 성모는 저도 모르게 치가 떨렸다.

분명 미련 없이 버리고 온 거라고 생각했는데,

소중한 걸 빼앗긴 것 같은 절망감과,

알 수 없는 분노가 마구 치밀어 올랐다.

[그럼 거기서 그년 장로님 부하들이랑 같이 돌림빵하고 있는 거냐?]

[응, 이년들 덕분에 어디 밖에 안 나가도 될 만큼 재미있게 잘 지내고 있지. ㅋㅋㅋ]

[언제까지 거기 있을 건데?]

[아빠가 여기 일을 광이 삼촌한테 다 맡겼데. 삼촌이 계속 짭새들한테 안 잡힌 다른 삼촌들하고 연락하면서 여기 나와서 어디로 갈지 계획 중이야.]

[그럼 너네 아빠는? 장로님은 뭐 하시고?]

[우리 꼰대는 접대부 출신 애인 끼고 지금 어디서 뭐하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얼마 전까지 공주에 짱박혀 있다는 소리는 들었는데, 지금은 또 어디 토꼈는지 모르지.]

[니들은 거기서 뭐 먹고 사냐? 거기 거지 동네라서 편의점 같은 거도 없을 거고 먹을 거 같은 것도 있지는 않을거 같은데?]

[야, 우리 아빠가 먹고 살라고 돈은 부쳐주지. 덕분에 배달은 못 시켜 먹어도 먹을 거 밖에서 사다가 만들어 먹고 산다. 밥은 아줌마랑 거유민이가 해서 갖다 바치고 있고. 거유민 그년, 여기서 빨가벗고 밥하고 청소하고 설거지하고 우리 좆도 빨아주고 노예짓 다 한다. ㅋㅋㅋ]

밥까지 해준다고?

같이 동거할 때 유민은 성모에게 밥 한 끼 해준 적 없었다.

어려서부터 밥 같은 건 해본 적이 없던 애라 둘이 있을 땐 그냥 편의점에서 간편식 같은 거 사다 먹거나 배달 음식으로 식사를 해결했었다.

그런데 지금 선욱과 거기 있는 조폭들에게 밥을 해다 바치고 있다고?

거기에 청소도 하고 설거지도 다 하고 있다고?

성모는 질투심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참, 그리고 아빠가 너한테 생활비 보내는 거 잊지 않고 있으니 걱정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하고 있으래.]

[응, 그래.]

[어때? 필리핀 거기는 살 만하냐? 죽이는 년들도 많이 있고?]

[죽이는 년들은 씨발, 면상 보면 그냥 죽이고 싶게 생긴 년들 밖에 없다. 맨날 비만 졸라 내리고 덥고 습기 차서 끈적끈적거리고 모기 새끼들도 한국보다 졸라 많고, 씨발 그냥 다 졸라 좆 같은 나라야.]

[ㅋㅋㅋㅋㅋㅋㅋ 내가 너 한국으로 금방 돌아오고 싶을 거라고 했잖냐.]

[그래, 벌써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 참, 유민이 그년 사진이랑 동영상 있으면 더 보내줘.]

[왜, 그거 보면서 딸딸이라도 치게?]

[여기서 안구정화라도 하려고 그런다.]

[ㅋㅋㅋ 그래, 보내줄게. 사진이나 동영상 찍을 때마다 계속 보내줄게. 거유민 같이 깔쌈한 년 줬으니 그 정도 애프터 서비스는 기본이지.]

[그래, 고맙다. 새끼야.]

대화가 끝난 후,

꽝!

성모는 침대 옆 벽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왜 자꾸 이러는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지만,

심장이 뛰고 몸에 열이 나는 게 멈추지 않았다.

‘씨발, 선욱이 이 새끼가... 유민이, 유민이 그 년을...!’

꽝! 꽝! 꽝! 꽝!

주먹이 벌겋게 퉁퉁 붓고 피가 흐를 때까지 벽에 대고 주먹질을 계속해댔다.

­ 오후 6시, 경기도 우성시 일월촌

“악! 아악~! 학, 하악~!”

큰방에서 유민의 찢어지는 비명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거실에서 화투패를 돌리던 조폭들이 끌끌 혀를 차며 수군댔다.

“광이 형님, 오늘만 유민이랑 세 번째 하시는 거지?”

“응, 세 번 맞을걸? 그 덕분에 난 며칠 동안 우리 사랑스런 유민이랑 연애도 못하고 있는데, 쩝.”

“난 그동안 광이 형님이 계집들한테 관심 없으신 줄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네. 그냥 그동안 참고 계셨던 모양이야.”

“그러게. 지금을 위해 정력을 아껴오셨던 건가, 우리 딸래미를 아주 그냥 매일 매일 홍콩이 아니라 저세상으로 보내려는 거 마냥 씹질을 막 하시는데, 형님이 한번 올라타고 나오시면 걔 완전 뻗어서 일어나지도 못하더라구. 킥킥.”

“야, 근데 너 그거 봤어?”

“뭐?”

“광이 형님 전에 딸래미 옷 입혀서 밖으로 데리고 나갔었잖아? 다시 돌아올 때는 도로 옷 벗겨서 개처럼 끌고 왔을 때 말이야.”

“아, 그때~! 그때부터 형님이 유민이 저년 거의 혼자서 독차지하고 계시잖아?”

“아무튼 그때 돌아오고 나서부터, 유민이 저년 엉덩이에 담배빵 나 있는 거 너 봤냐?”

“담배빵? 그년 엉덩이에 담배빵이 나 있었다고?”

“아직 멍자국이 남아 있어서 눈에 확 띄지는 않는데 내가 원래 여자 엉덩이를 졸라 좋아하잖냐? 유민이처럼 죽이는 라인의 골반하고 엉덩이는 내 항상 유심히 보곤 하는데, 그년 그때 돌아왔을 때 엉덩이에 담뱃불로 지진 상처가 딱 나 있더라고.”

“어? 난 제대로 못 봤는데? 그럼 그때 광이 형님이 데리고 나갔을 때 담배빵 지지신 건가?”

“그러셨을지도. 근데 그년, 확실히는 잘 모르겠는데 그때 볼도 살짝 빨갛게 달아오르고 그랬던 게 형님이 손 좀 대셨던 거 같던데?”

“그럼 밖에 데리고 나가서 유민이 년 졸라 패고 돌아오신 건가? 원래 그 형님, 큰형님이 시키는 험한 일 전담하는 분이라 듣긴 했는데... 근데 왜? 유민이 년이 뭐 잘못한 거라도 있었나?”

“모르지. 우리 모르게 도망이라도 치려고 했는지. 그러다 형님한테 딱 걸려서 그런 건지.”

“근데 그날 바로 그년 빤스도 사다 주고 생리대도 사다 주고 그랬잖아?”

“그건 뭐 필요하니까 사다 준 걸 수도 있고... 암튼 그때 이후로 광이 형님이 유민이 년 보는 눈빛이 뭔가 달라지셨어.”

“형님이 맨날 유민이만 끼고 계신 탓에 우린 아줌마랑만 연애할 수밖에 없지만... 아줌마 겁나 큰 빨통이랑 궁뎅이도 먹어 줄만 하니까 다행이지. 킥킥킥~!”

조폭들이 담배를 피우며 화투를 치고 있을 때,

큰 방에 들어갔던 박광이 씩씩거리며 밖으로 나왔다.

그는 얼굴은 물론 문신이 새겨진 몸뚱이 모두 시뻘게진 채로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냉장고에서 캔맥주 하나를 꺼내 와 거실 소파에 털썩 주저 앉았다.

보통 유민이나 운용 엄마와 섹스를 나누고 나면 기분 좋은 표정으로 킬킬거리며 나오기 마련인데,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박광은 화가 잔뜩 난 얼굴로 캔맥주를 벌컥벌컥 마셔대고 있었다.

“야, 인자 여섯시면 저녁 먹을 때 됐자녀? 안에 아줌마하고 딸내미 깨워서 저녁밥 준비하라고 혀~”

옆에 소파에 앉아 있던 전도한이 박광의 눈치를 보며 조폭들에게 말했다.

“네, 형님.”

조폭들 중 막내에서 두 번째 상식이 자리에서 일어나 운용 엄마가 있는 건넌방으로,

막내 준석이 유민이 있는 큰방으로 향했다.

준석이 큰 방으로 들어갔을 때,

“하아... 하아...”

유민은 둥그런 침대 위에 천박하게 다리를 벌린 채 거친 숨을 몰아쉬며 엎드려 있었다.

머리는 수세미처럼 마구 엉켜 있었고,

얼굴과 목 주변에 새빨간 손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야, 너 괜찮냐?”

준석이 안쓰러운 표정으로 그녀의 어깨를 흔들며 물었다.

“음... 으음...”

유민은 아무 대답 없이,

이를 악물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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