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6화 〉 유민의 지난 이야기 2027년 9월 5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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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욱, 박광 등 조폭들이 일월촌에 숨어 있는 사이,
2차 한국 전쟁의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던 북한 개마고원에는 종전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었다.
북한군 진지를 향해 연일 불을 내뿜던 한국군의 포격은 이미 멈춘 지 오래였다.
인민무력상 류광택 차수를 따르던 쿠데타 무리들은 무기를 버리고 한국군이나 김성운 세력에 속속 투항해 오고 있었고,
한국과 북한 양측 정부 사절들이 분주히 남과 북을 오가며 종전을 위한 정상회담을 준비하고 있었다.
우선 정상회담의 날짜는 오는 9월 14일로 협의가 되었다.
9월 10일 열리는 한국의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새 대통령이 선출되는 대로 회담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제 다시 평화가 찾아올 것 같아 보였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민주시민당 김창수가 지가 대통령 되려고 북한이랑 짜고 이정만 대통령 암살한 거라고!”
“합참이 발표한 자료도 모두 야당이 조작한 거래요! 언론들도 야당하고 짜고 이정만 대통령이 북한 한테 돈 주고 전쟁 일으킨 거라고 거짓뉴스 퍼뜨린 거구요!”
자유공화당을 지지하는 세력들은 대통령 암살 사건을 특검을 통해 수사해야 한다고, 이번 기회에 개마고원까지 모두 밀어버리고 북한 공산당을 뿌리뽑을 수 있도록 전쟁을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서울 광화문에서, 그리고 전국 각지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시위는 이곳 우성시에서도 크게 일어나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 빨치산과 외국인 노동자 폭도들에 의해 점령당한 채 별의별 고초를 다 겪은 우성시민들은,
“전쟁을 멈추지 마라! 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 전쟁인데 왜 지금 멈추려는 거야?!”
“빨갱이 새끼들, 이 땅에서 아주 싸그리 씨를 말려야 해!”
“우리 아버지가 빨치산들한테, 외노자 폭도들에게 끌려가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어요! 그것도 시청 앞에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맞아 죽으셨다구요! 그런데 어떻게 그런 사람들과 종전을 하고 화해를 할 수 있죠? 우리가 용서를 못하겠는데 왜 정부가 나서서 용서하겠다는 거냐구요?!”
라며 격렬히 시위를 벌였다.
덕분에 우성시의 계엄군들은 연일 시내 도로를 메우고 시위를 벌이는 시민들을 통제하느라 바쁘게 되었고,
새로 발령받아 도착한 우성 경찰서 경찰들도 모두 이곳에 투입되었다.
도망친 마두원과 애국청년 십자군, 이란 허명으로 가장한 조폭들 검거 작전은 뒤로 미뤄둘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오전 1시, 경기도 우성시 일월촌
마두원으로부터 돈이 들어오자 조폭들도 조금 여유가 생긴 표정이었다.
그들은 낮이 되면 일월촌을 돌아다니며 석유 등 쓸만한 물건들을 찾아다니고, 해가 지면 모두 아지트로 돌아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거나 화투패를 돌리며 노닥거렸다.
가져온 노트북을 핸드폰 데이터로 연결해 인터넷을 쓰기도 했는데 속도가 너무 느려 간단히 웹서핑 정도만 할 수 있을 뿐 게임 같은 건 불가능했다.
“아, 배그만 할 수 있었어도 졸라 좋았을 텐데...”
“야, 배그는 폰으로 할 수 있잖아?”
“폰으로 하는 거랑 컴퓨터로 하는 건 손맛이 완전 다르지~! 아, 이놈의 동네는 어떻게 된 게 인터넷 끌어다 쓰던 집이 한 집도 없냐?”
“무허가 판자촌에 인터넷 선이 들어올 수나 있었겠냐? 겜은 그냥 폰으로 하는 거에 만족해~ 겜 없어도 우리한테 좋은 즐길거리가 남아 있잖냐? 크크크~”
“좋은 즐길거리? 즐길거리 뭐?”
“뭐긴 뭐겠어? 우리 예쁜 유민이랑 아줌마, 전국에 있는 업소 암만 돌아 다녀봐도 절대 찾아볼 수 없는 졸라 예쁜 슬랜더 글래머랑 육덕 글래머 둘이나 있는데 심심할 틈이 어디 있다고 게임을 찾냐? 너 지금까지 저런 년들 한번이라도 따먹어 본 적이나 있냐? 없으면서 새끼가 복에 겨운 소리를 하고 있어, 큭큭큭큭큭~!”
그들은 밤에는 물론 낮에도 시간 나는 대로 유민과 운용 엄마를 끌어 안고 몸을 섞고 있었다.
그녀들은 아지트에서 매 끼니 밥을 짓고 조폭들이 밥을 다 먹으면 설거지를 하고,
오전에는 빨래를 하고 오후에는 청소를 하고
그렇게 그들의 노예처럼 생활하고 있었다.
조폭들은 그녀들이 잠시라도 쉬려고 하면,
“야, 방 다 닦았어? 그럼 또 나랑 한 판 해야지? 히히히~!”
“우리 유민이, 설거지 다 했으면 우리 오빠랑 연애나 하러 갈까?”
그녀들을 끌고 방으로 들어가곤 했다.
아지트는 애초부터 누군가의 구역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았다.
평상시 쉬고 싶은 사람들은 그냥 거실 소파에 앉아 있곤 했고,
선욱, 전도한 등 조직에서 짬이 되는 사람들이 섹스를 할 때는 침대가 있는 큰 방에서,
짬이 안되는 사람들은 건너방에서 이불을 펴고 섹스를 하곤 했다.
여자들이 조폭들과 잠시라도 떨어져 있을 때 머무를 수 있는 곳은 주방 싱크대 앞 좁은 공간 뿐이었다.
그렇게 그날도 조폭들은 밤늦게까지 여자들과 섹스를 나누고 아무데나 퍼질러 잠이 들었다.
박광 한 사람을 빼고 말이다.
그는 아지트 밖에서 심각한 얼굴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아까 마두원에게서 전화가 온 후부터 그의 표정은 다른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워져 있었다.
전화 내용은 이러했다.
[아무래도 우리 잠수 오래 타야 할 거 같다.]
[형님, 무슨 일이라도 또 생긴 겁니까?]
[무슨 일은 임마. 너 거기서 인터넷 뉴스 같은 것도 안 보냐? 다음 대통령 선거 말이야. 민주시민당 김창수 지지율이 완전 압도적인 게 대통령 따놓은 당상이더만.]
[자유공화당 후보로 누가 나와도 지금은 어려울 것 같다고 생각은 했었습니다.]
[씨벌, 김창수가 대통령 되고 전쟁 끝나고 그러면 우리 좆 되는 건 시간 문제일 거 같은데... 광아, 아무래도 나 한국땅 떠야 할 것 같다.]
[형님, 그럼 외국으로 나가시려는 겁니까? 다시 일본으로 가실 생각이십니까?]
[일본도 생각하고 있고, 필리핀 쪽도 괜찮을 것 같긴 해. 거기 가면 우리나라 짭새들이 나 잡으러 오지도 못할 테니 말이야. 또 거기 가면 한국으로 들어가는 마약 관리하는 것도 좀 더 편하게 할 수 있을 거 같고.]
[아무래도 라오스 애들한테 마약 받는 거 중간 과정 없이 직접 받을 수 있게 되니 필리핀도 괜찮을 거 같습니다.]
[그래, 그리고 얼마 전에 죽은 내 친구 아들내미 맡겨놓은 데도 필리핀에 있거든? 아무래도 일본보다는 필리핀으로 가는 게 괜찮지 않나, 그렇게 생각 중이야.]
[필리핀 가시려면 천상 비행기로 가셔야 하는데, 공항 나가시는 거 너무 위험하지는 않겠습니까?]
[우리나라 공항 통해서는 못 가지. 아무래도 중국으로 밀항해서 거기서 비행기 타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형님, 그럼 언제 움직이실지 말씀만 해주십시오. 항상 대기하고 있다가 선욱 조카 데리고 형님 계신 곳으로 바로 달...]
[아니, 그럴 필요 없다.]
[네?!?!]
[내가 한국을 비운 사이에 우리 식구들 관리할 사람은 하나 남아 있어야지. 민주시민당이 천년만년 정권 잡고 이 나라 쥐락펴락하지는 못할 것이고, 곧 자유공화당이 정권 되찾아오는 날이 다시 돌아오지 않겠냐? 난 그때까지만 타향살이 하다 돌아올 테니 광이 네가 선욱이랑 남은 우리 식구들 잘 간수하고 있어.]
[하, 하지만 형님! 선욱 조카 만이라도 데리고 가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걔 학교 몇 년 꿇어서 그렇지 어차피 걔도 지금 어엿한 성인이야. 이제 성인이면 성인답게 아비의 그늘에서 벗어날 준비도 해야지. 거기서 광이 네가 선욱이 잘 가르쳐주고 있어. 말썽 피우지 못하게 감시도 잘 하고 있고.]
[혀, 형님...]
[광아, 그럼 난 너만 믿는다.]
졸지에 두목의 아들은 물론 두목 대신 조직 운영까지 떠안게 되었으니,
부담이 이만저만 아닐 수 없었다.
‘혹시 형님이 날 이용하시려는 건 아닐까? 만약 이런 상황에서 군바리나 경찰에게 잡히면 내가 형님 대신 모든 걸 뒤집어 쓸 수밖에 없게 되는데...? 아니, 그럼 자신의 아들까지 나한테 맡기지는 않았을 거란 말이지...? 아, 그냥 형님이 나를 너무 믿고 계셔서 이러시는 건가...?’
혼란스러운 마음에 줄담배를 태우던 박광은,
반쯤 타버린 담배꽁초를 발로 비벼 끄고 다시 아지트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갔을 때,
화장실 불이 켜져 있고 수돗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유민이 그년인가 보군.’
이제 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운용 엄마는 유부녀고 이미 조폭들과 몸을 섞으며 친숙해진 탓인지 그렇지 않았는데,
아직 소녀티를 벗지 못한 유민은 화장실에서 볼일을 볼 때마다 밖에 사람들이 들을까봐 수돗물을 틀어놓고 볼일을 보곤 했다.
잠시 후 물 내려가는 소리와 함께 미닫이 문이 열리고,
예상대로 알몸상태의 유민이 밖으로 나왔다.
“앗...!”
유민은 박광이 거실에 서 있는 걸 보고 놀라 다급히 손으로 가슴과 다리 사이를 가렸다.
“허 참, 맨날 보는 몸, 뭐가 부끄럽다고 가리긴 가리냐?”
박광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거실 소파에 털석 주저 앉았다.
거실에는 세 명의 조폭들이 아무렇게나 쓰러져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안 자냐?”
박광이 물었다.
유민이 화들짝 놀라 대답했다.
“아뇨, 곧 자려고... 잠깐 화장실 나왔던 거예요.”
그녀는 어쩔 줄 몰라하며 화장실 앞에 계속 오돌오돌 몸을 떨며 서 있었다.
“잔다며? 왜 안 들어가?”
박광이 다시 묻자 유민은 침을 꼴깍 삼키고는 그에게 몇 발자국 가까이 다가왔다.
“저... 말씀드려도 될까요?”
“뭘?”
“저... 이제 그거 시작하려고 하는데요...”
“그거? 그거가 뭔데?”
유민은 부끄러운 듯 계속 말을 해야되나 말아야되나 망설이는 표정이었다.
“저, 그게... 여자들 한 달에 한 번 하는 그거...”
그제야 박광은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아, 생리? 그냥 알아들을 수 있게 생리라고 말하면 되지, 뭔 말을 그리 빙빙 돌려서 하냐?”
그녀는 붉어진 얼굴로 말을 이었다.
“죄, 죄송해요... 저... 이제 그거... 아, 아니, 생리 곧 시작할 거 같아서 그런데... 죄송하지만 생리대 사주실 수 있을까요?”
그녀도 박광이 여기 있는 조폭들 중 우두리머리라는 건 눈치채고 있었다.
마두원이 보내준 돈도 모두 그의 결정에 따라 사용된다는 것도 모두 곁에서 들어 알고 있었다.
“생리대? 아, 그래. 내일 사다줄게.”
“감사합니다. 저 그리고...”
“뭐, 또 필요한 거 있어?”
“저... 죄송하지만 저 팬티도 같이 사주실 수 있을까요?”
“왜, 안에서 팬티 입고 있게?”
“아, 아뇨, 그게... 새, 생리대를 하려면 팬티를 입고 있어야 해서...”
“야, 뭐, 보지 안으로 넣어서 쓰는 것도 있다는데, 그거 써도 되는 거 아냐?”
“저, 그런 거는 한번도 안 써봐서... 저 그리고 양 많으면 넘칠 때도 있어서...”
박광은 짜증난다는 표정으로 손을 휘휘 저었다.
“알았어! 내일 생리대랑 빤스 사다 줄게! 됐지?”
유민은 손을 앞으로 모으고 공손히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
“그런데 또 뭐?!”
그의 버럭에 유민이 놀라 어깨를 움츠렸다.
“저... 마지막으로 하나만... 정말 마지막으로 하나만 여쩌봐도 될까요?”
“뭔데? 뭐가 또 궁금한데?”
“저, 성모... 유성모라고 선욱 오빠 친구가 있는데요... 애국청년 십자군에서 지대장도 하고, 국회의원 마두원 아저씨하고도 되게 가까운 사이인데... 혹시 지금 어디 있는지 아세요...?”
박광도 성모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 형님 목사 친구분 아들내미? 지금 필리핀에 있어. 왜?”
“아... 정말 필리핀에 있어요...?”
“응, 거기서 목사 안수받아서 나중에 돌아올거라고 하긴 했는데, 뭐 지금 상황이 이래 가지고 돌아올 수 있을래나 모르겠다. 근데 걔는 왜?”
유민은 선욱이 한 말이 사실임을 확인하고는,
두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아, 아니에요... 감사합니다...”
그녀는 손으로 눈물을 닦으며 힘없이 큰 방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때,
“야, 이리와봐.”
박광이 유민을 불러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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