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6화 〉 대동력 9,994년 6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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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9시, 대월국 수도 은허 남쪽 악뢰관 일대
요새 첨탑에 걸려있던 성산백의 깃발이 갈가리 찢겨진 채 내려지고,
그 자리에 장자검과 낭야봉을 든 두 마리의 호랑이가 그려진 대월국 왕가의 깃발이 게양되었다.
깃발을 올리고 있는 이들은 놀랍게도 대월국 왕가를 향해 반란을 일으켰던 번의 군사들,
명천백 피호석의 번군들이었다.
명천백을 위시로 한 지난날의 반란군들은 치열한 공성전 끝에 악뢰관을 함락시켰다.
율도군이 후방에서 포격 지원을 해주기는 했지만 반란군은 성을 공략하는 과정에서 병력의 1/3 이상이 죽거나 다치는 희생을 치러야 했다.
성산번군의 피해는 궤멸적이었다. 그들은 절반 이상의 병력을 잃었고, 나머지 절반은 버티지 못하고 반란군에 백기를 들고 항복했다.
하지만 악뢰관에 입성했을 때 성산백 심운보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놈이 이미 죽어 다른 시신들 사이에 껴있을지도 모른다. 반드시 놈의 시신을 찾아라!”
피호석이 번군들을 시켜 시신들을 일일이 뒤져보았지만 끝내 그를 찾아내지 못했다.
반란군들이 전투를 마치고 재정비를 하는 사이,
뒤에서 지원만 하던 율도군 제 2군단이 그들을 지나 악뢰관 북쪽에 진을 쳤다.
혹시라도 명천백의 반란군들이 또 한 번 마음을 바꾸어 수도 은허를 위협하지 못하도록 아예 길목을 막아버린 것이다.
피호석은 율도군들이 자신의 북쪽에 진을 친 이유에 대해 어렴풋이 이해했지만,
혹시 강운예가 협정을 어기고 자신들을 공격하면 어쩌나 불안했든지 중무장한 맹약 무사들을 대동하고 2군단 지휘부를 찾아왔다.
“약속대로 성산백의 군대를 전멸시켰소. 이제 그럼 언제 새로 받게 될 땅으로 들어가면 되오?”
박윤수 중장은 서두르지 말라는 듯, 여유로운 모습으로 그에게 차를 권하며 말했다.
“대원수 기하께서 귀하들에게 내어주기로 한 땅 중에 이번 반란에 참여하지 않은 국왕파 번주들이나 귀족들이 소유하고 있는 곳이 있을 것입니다. 또 반란에 참여한 번주들 중에서도 그곳에 자신의 영지가 있는 분들이 있을 거구요. 그렇지 않습니까?”
“대여섯 명쯤, 원래부터 그곳에 자리 잡고 있던 번주들이 있는 걸로 알고 있소.”
“지금 대원수 기하께서는 7왕자와 함께 전쟁 후 번주, 귀족들에게 영토를 어떻게 재분배해서 나누어 줄지 논의 중이시라 합니다. 그래서 귀하들이 들어갈 땅을 소유하고 있던 번주와 귀족들이 다른 곳으로 이전할 때까지 잠시 다른 곳에 머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다른 곳이라면 어디를 말하는 것이오?”
“성산백의 땅, 성산 말입니다.”
박윤수 중장은 천천히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그곳에서 다른 번주들과 모여 이제 받게 될 땅을 어떻게 분배하면 좋을지 논의하면서 기다리시지요. 그 땅들을 어떻게 나눌지에 대해서는 대원수 기하께서 귀하께 전권을 위임한다 하셨으니 말입니다.”
그의 말에 피호석은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그럼 우리더러 마음대로 그 땅을 알아서 배분해 가지란 말씀이오?”
“네, 결과가 도출되면 우리에게 알려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피호석은 밝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그럼 우리는 바로 성산으로 떠나겠소!”
“그렇게 하시지요. 단, 은허로 향하는 북쪽 길 말고, 서쪽 길을 통해 군을 이동시키길 바랍니다. 귀하의 군대가 움직이면 은허에 있는 사람들이 무척 불안해할 테니 말입니다.”
“그리하리다. 그럼 무운을 비오. 태상국께도 감사하다는 말 꼭 전해 주시오!”
피호석은 밝게 웃으며 군막을 나갔다.
그가 나가자 뒷자리에 앉아 있던 용마로 소장이 다가오며 말했다.
“아주 신이 난 모습이군요.”
“그럴 수밖에. 목숨도 구했지 새 땅도 생겼지, 게다가 대월국에서 독립까지 하게 되었으니.”
박윤수 중장이 그에게도 차 한 잔을 건네주었다.
“어제 금양장에 있는 아군 진영으로 전쟁 보상금이 도착했다고 합니다. 지금쯤이면 천제국군들도 본국으로 출발하고 있겠군요?”
“대원수 기하 앞에서는 5년 치 세액이 뭐니 하면서 우는소리를 했어도 역시 제국이라 금고에 가진 돈은 있었던 모양이야.”
“그래도 그 정도 금액이면 이제 천제국의 금고는 당분간 텅텅 비게 되겠지요?”
“아무렴. 앞으로 전쟁은 커녕 긴축 재정을 할 수밖에 없겠지. 아무리 예산 때문에 급하다 한들 아무 때나 세금을 거둬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럼 이제 우리도 집으로 돌아갈 일만 남았군요.”
그 말에 박윤수 중장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집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자네 가족들을 대월국으로 데리고 와야 할 것 같은데?”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전시 상황이 모두 정리되면 군단 하나가 더 창설될 예정이네. 이번에 반란군들에게 주어질 땅들을 보호할 목적으로 만들어지는 군대지. 그리고 대원수 기하께서 새 군단의 군단장 자리에 자네를 선임하실 예정이라 하셨네.”
용마로 소장은 믿어지지 않는 듯 두 눈을 껌뻑였다.
박윤수 중장은 그의 얼빠진 모습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뭘 그리 놀라나? 이제 자네도 곧 중장 진급도 하고 군단장도 해봐야 할 것 아닌가?”
“아...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라...”
“아무튼 미리 축하하네. 아, 그리고 나중에 마루한을 찾아뵙고 꼭 감사하다고 말씀드리는 게 좋을 거야. 새 군단장 자리에 자네를 추천한 게 마루한이셨으니까.”
지난날 목라촌에서 이곽에게 죽을 위기에 빠졌을 때 자신을 구하러 달려왔던, 함께 하는 동안 한 사람의 어엿한 청년으로 성장해가던 영록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아, 마루한께서...!”
“자, 그럼 가서 가족들에게 미리 편지라도 써 놓게. 가족들이 먼길 이사하려면 미리부터 준비해야 할 테니 말이야.”
두 사람은 찻잔을 기울이며 기분 좋게 웃음을 지었다.
오전 13시, 대월국 서래번 동쪽 일대
투구나 갑주도 없이 전포만 입고 있는 천제국 군사들이 등짐을 짊어지고 터벅터벅 길을 걷고 있었다.
그들의 행렬은 금양장에서부터 수십, 수백 리에 걸쳐 이어지고 있었다.
전쟁 보상금이 도착하자 율도군들은 천제국군을 모두 풀어주었다.
단, 무기는 물론 말, 수레까지 모두 압수되었기에 그들 모두 본국까지 걸어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대사마 주진경 등 전쟁에 따라온 고위 관료들은 물론 지체 높은 무관들도 모두 군사들 사이에서 힘없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고,
그나마 천제 정선교만이 여섯 명이 드는 가마에 앉아 가는 중이었다.
전쟁 중 천제가 기거하며 생활했던 그의 거대한 수레도 율도군이 가져가 버렸다.
백화나 수도 진양으로 가져가 이번 전쟁의 승리를 기념할 전리품으로 쓰려는 것이다.
가마 위에 힘없이 쭈그려 앉아 있는 천제의 뒤로 그의 수발을 들기 위해 따라왔던 황궁의 시종들이 줄줄이 쫓아오고 있었는데,
수레의 가옥 안에서 천제와 더불어 헐벗은 채로 뒹굴었던 수십여 명의 절세미인들은 이제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만이 남아 가마를 뒤따르고 있었다.
전쟁보상금이 도착할 때까지 천제국군들은 금양장에 남아있는 병량만으로 버텨야만 했다.
하지만 추가 보급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천제국군의 병량은 1주일 만에 바닥나게 되었고,
그 후부터는 율도군은 인도적인 차원에서 나누어준 최소한의 곡식만으로 버텨야 했다.
식량난은 천제와 그 주변 사람들도 피해 갈 수 없는 문제였다.
결국 굶주림에 지친 궁녀들은 먹을 것을 얻기 위해, 또 천제의 곁을 떠나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수레에서 도망쳐 율도군 진지를 찾아갔다.
그곳에서 그녀들은 고위 무관들에게 자신의 몸을 내어주었다.
전장에 나온 무사들이 이런 절세미인들을 보고 욕구가 동하지 않을 리 없었다. 그들은 그녀들을 품고, 전쟁이 끝나고 율도로 데려가 주겠다고 약속했다. 심지어 본국에 아내가 있는 이들조차 말이다.
수십여 명의 무관들이 천제의 궁녀를 첩으로 받아들였다는 이야기는 강운예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전쟁터에서 전리품과 여자를 챙기는 것을 보고 나무랄 수 없지만, 아무래도 주의가 필요할 것 같군.”
대원수는 지휘관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렇게 당부했다고 한다.
신분상 천제의 궁녀들이었던 여자들이니만큼 그녀들이 간자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무관들에게 접근한 것일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뜻이다.
강운예는 천제의 궁녀를 받아들인 무관들은 이를 사실대로 지휘부에 보고할 것과, 반드시 해당 여인들의 신원 확인을 위해 흑영단의 조사를 받을 수 있도록 협조할 것을 명령했다.
모든 무관들은 대원수의 명을 군말 없이 따랐다.
정선교는 밤마다 궁녀들이 율도군 진영으로 도망가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잡지 않았다.
도망가는 이들을 억지로 잡으려 하는 게,
그게 더 자기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전쟁에서 지고, 자신이 품던 여인이 다른 남자에게 도망가는 것만큼 남자로서 자존심 상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천제가 탄 가마 주변으로 대오를 갖추지 않은 무수한 천제국 군사들이 땅바닥만 보고 길을 걷고 있었다.
대부분 군사들의 손에는 큼지막한 주먹밥이 하나씩 들려 있었다.
금양장을 떠나갈 때 율도군이 가면서 먹으라며 한 사람에게 하나씩 나누어준 주먹밥이었다.
뭐 대단한 게 들어간 건 아니고 여름철 더운 날씨에 쉬지 말라고 간장으로 간을 해서 뭉친 평범한 주먹밥이었다.
주먹밥에서 나는 시큼한 냄새가 천제의 가마까지 풍겨왔다.
다른 때라면 천한 놈들이나 먹는 조잡한 음식 냄새라며 노발대발했을지도 모르지만,
정선교는 그 냄새에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그도 며칠간 제대로 된 밥을 먹지 못했던 것이다.
항복이 결정된 후, 그는 쓰린 속을 달래기 위해 수레 안에서 술만 퍼마셨다.
가지고 온 술이 다 떨어지고 주변에 있던 궁녀들도 대부분 자신의 곁을 떠났다는 걸 알았을 때,
그때는 천제를 위해 준비해온 식량과 부식들마저 모두 동이 난 상태였다.
보급이 끊긴 탓도 있었지만 굶주린 군사들이 대놓고 천제가 먹을 식재료들을 훔쳐 가기도 했던 것이다.
‘이구 전투 이후로 다시는 이런 수모를 겪지 않겠다 맹세했는데, 내가 어쩌다가 다시 이런 꼴이 되었단 말인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탄식해보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여름의 뜨거운 햇살이 들판으로 내리쬐는 가운데,
수만여 명의 패잔병들이 자신의 고국 천제국을 향해 지친 몸을 비틀거리며 하염없이 걷고 있었다.
오후 5시, 대월국 대방번 중부 일대
전투에서 패한 뒤, 심운보는 목건주, 구천락 등 몇몇 수하들과 함께 말을 타고 악뢰관을 빠져나왔다.
목숨을 걸고 밤새 말을 달리다 보니 그들의 말들 모두 기력이 쇠해 쓰러져 버리고,
이제는 걸어서 성산까지 가야 할 판이었다.
“물... 어디 우물이나 개울가라도 없는가...?”
깊은 숲속 한 가운데에 이르렀을 때, 심운보가 심한 갈증을 느끼고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목건주가 주군을 돌보는 사이 구천락과 수하들이 물을 찾아 주변을 돌아다녔다.
숲속을 뒤지며 다니던 중,
갑자기 가까운 곳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설마, 놈들이 벌써 여기까지 쫓아온 건가?”
구천락과 수하들이 긴장한 표정으로 허리춤에서 장자검을 뽑아 들었다.
잠시 후,
수풀 속에서 덩치 큰 두억시니 하나가 튀어나왔다.
그의 입가에 아직도 도깨비의 피가 흐르는 걸로 보아 굶주림에 지나가는 사람들을 공격해 마구 잡아먹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오늘은 아주 운이 좋은 날이로구나! 쿠와아악~!”
두억시니가 손에 든 날카로운 톱니가 여럿 달린 대도를 휘두르며 덤벼들었다.
덩치에 비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끄아악~!”
“아아아악!”
눈 깜짝할 사이에 수하들 모두 두억시니가 휘두른 대도에 반으로 썰려 나가고,
이제 구천락만이 남게 되었다.
‘대월국 한복판에 두억시니라니? 그런데 저 자는...?’
구천락은 장자검으로 두억시니를 겨눈 채 그의 모습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찢어지고 많이 헤졌지만 두억시니가 입고 있는 것은 천제국 고위 무관들이 입는 전포가 분명했다.
그리고 그의 목에 걸린 금으로 만든 두꺼운 목걸이,
이는 분명 천제국에서 높은 신분의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천제국 패잔병인가? 그런데 어떻게 여기까지...?’
의문을 품을 새도 없이 두억시니가 구천락을 향해 달려들었다.
두억시니가 휘두르는 대도는 그가 막기엔 너무 크고 강맹했다.
그때,
스릉!
갑자기 뒤에서 날아온 철쇄가 두억시니의 목을 휘감았다.
비명소리를 듣고 달려온 곤마였다.
“대장! 어서 숨통을 끊으십시오!”
곤마가 하나 뿐인 손으로 두억시니의 목을 조르는 철쇄를 죽을 힘을 다해 힘껏 잡아당기며 소리쳤다.
곤마의 뒤로 심운보도 목건주의 부축을 받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이 좆도 작은 도깨비 새끼들아~!”
두억시니가 대도를 놓고 목에 감긴 철쇄를 두 손으로 움켜잡더니,
민첩하게 몸을 한 바퀴 뒤로 돌렸다.
그와 함께 철쇄를 당기던 곤마의 몸이 마치 어린아이처럼 허공으로 저 멀리 날아갔다.
“으윽!”
한참을 날아간 곤마는 커다란 나무에 머리를 부딪히고 땅으로 떨어졌다.
그가 부딪힌 나무 기둥을 타고 핏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이를 본 구천락과 목건주가 장자검을 들고 두억시니를 마구 찌르기 시작했다.
“죽어! 죽어!”
두억시니의 몸에서 피가 솟구쳐 올랐다.
십여 군데를 찔렸음에도, 두억시니는 여전히 격렬히 저항하고 있었다.
“죽어 고기가 되는 건 바로 네놈들이다!”
두억시니가 등 뒤에 있던 목건주의 머리를 한 손으로 움켜잡았다.
“으, 으으아아악~!”
머리를 잡힌 목건주가 발버둥 쳤다.
순간,
빠각!
그의 머리를 잡고 있던 두억시니의 손가락 사이로 핏물이 터져 나왔다.
그대로 그의 머리를 으깨버린 것이다.
두억시니는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머리가 으스러진 목건주의 몸뚱이를 들어 구천락을 내리쳤다.
“으윽!”
시신에 깔린 구천락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두억시니는 온몸에 피를 흘리면서 킬킬 웃고 있었다.
“끅끅끅끅~! 내 좆보다 작은 도깨비 새끼 따위가 감히 내게 덤벼? 내가 누구인지나 알고 덤비는 거냐? 난 천제국 제7방면대 11군단장 동금이다! 이제 곧 천제 성하께서 오시면 너희 대월국 도깨비 새끼들은 모두 싸그리 우리의 고깃덩어리가 될 것이다~! 끅끅끅끅~!”
동금은 마치 미친 것처럼 웃으며 땅에 있던 대도를 다시 집어 들었다.
그리고 뒤에 서 있던 심운보에게 다가갔다.
“으윽, 오지마... 오지마...!”
심운보는 두 손으로 장자검을 꼭 쥐고 갈증에 쉬어버린 목소리로 간신히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어느새 동금의 대도가 그의 어깨 위로 치켜 올려져 있었다.
쓰윽!
“크아아아아악~!”
쇳소리 섞인 비명과 함께 심운보의 몸이 두 동강 났다.
동금은 토막 난 심운보의 시신을 들어 흘러나오는 피로 목을 적셨다.
“끅끅끅끅... 이걸로 천제 성하께서 오실 때까지 버틸 수 있는 식량을 벌었군! 이거 고맙... 컥!”
말을 다 마치기도 전,
동금의 양쪽 무릎이 힘없이 꺾여졌다.
목건주의 시신에 부딪혀 쓰러져있던 구천락이 다시 일어나 그의 목덜미에 장자검을 꽂아 넣은 것이다.
“죽어! 이 괴물 같은 새끼! 죽어! 어서 죽어!”
구천락은 그의 목에 박은 장자검을 좌우로 마구 비틀었다.
목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가 구천락의 온몸을 적시고,
격렬하게 몸을 흔들며 저항하던 동금도 결국 땅바닥에 쓰러져 숨을 거두고 말았다.
“헉... 헉...”
구천락은 쓰러진 두억시니와 그 주위로 널부러진 목건주와 곤마, 다른 도깨비들의 시신들,
그리고 반토막 난 심운보의 시신을 차례로 돌아보았다.
“아, 각하...”
그는 허탈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한동안 그 자리에서 통곡하던 구천락은 정신을 차리고 땅을 파기 시작했다.
그는 심운보와 목건주, 곤마 등의 시신을 땅에 고이 묻어 준 후, 제 주인의 장자검을 챙겨 다시 일어났다.
“이 검, 반드시 도련님께 전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구천락은 손으로 눈물을 훔치고는 성산이 있는 북서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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