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동춘추 - 리부트-169화 (169/217)

〈 169화 〉 대동력 9,994년 6월 5일 (7)

* * *

­ 오후 4시, 대월국 서래번 금양장 일대

천제국군도 조만간 율도군이 공격해올 거란 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가 지금이라는 건,

지금처럼 눈치채지도 못하는 사이 자신들 코앞까지 전진해 올 거라는 건 전혀 예상치 못했다.

천제국군을 포위한 율도군 부대는 남쪽과 북쪽으로 흩어져 있던 1군단과 3군단,

그리고 소부대 단위로 나누어져 기습 작전을 벌이던 2군단과 6군단까지,

총 5개 사단 5만여 명 규모의 기병들이었다. (일반적으로 율도군은 1개 군단에 1개 기동사단이 편제되어 있지만 오직 1군단만은 2개의 기동사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금양장 동쪽 본진에 있던 천제가 마루한을 생포하기 위해 자신의 친위대 및 1개 사단 규모의 병력을 데리고 북쪽으로 이동했다는 흑영단의 첩보가 올라오자마자,

강운예는 이들 부대에 드디어 작전 개시 명령을 내렸다.

서래번 남쪽과 북쪽에 숨어있던 1군단과 3군단은 기병의 빠른 기동력을 살려 불과 1시간 만에 금양장 일대로 접근, 군단 예하 기동 포병들이 야포를 설치할 언덕부터 점령했다.

펑! 펑! 콰광!

율도군이 천제국군의 측면을 보호하고 있는 보병 진지에 포격을 가하는 것으로 금양장 일대에서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천제가 본진을 떠나있는 사이 그를 대신해 군을 총괄하고 있던 대사마 주진경은 율도군의 포격에 맞아 하늘 위로 솟구치는 천제국군들의 시체 조각을 보고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기, 기병들을 준비시켜라! 북쪽 언덕의 포들부터 먼저 제압해야 한다!”

대사마의 명을 받은 2개 연대 규모의 천제국 기병들이 일제히 북쪽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목표는 율도군의 야포가 있는 포진지다! 포병들을 먼저 제거한 후 각 포의 격발 밧줄을 끊어 못 쓰게 만들어야 한다!”

율도군의 야포는 장전 후 포병들이 포신 뒤에 있는 격발 밧줄을 당겨 발포하는 형태의 무기였다.

붉은 갑주를 입은 천제국의 기병들이 마치 붉은 해일이 밀려오듯 율도군 야포들이 배치된 언덕 가까이 달려왔을 때,

“모두 박살내라!”

함성 소리와 함께 갑자기 언덕 뒤에서 검은 갑주를 입은 율도군 철기병들이 물밀듯이 쏟아져 나왔다.

당연히 포진 주변에 이를 지키기 위한 율도군이 기다리고 있으리란 건 천제국 기병들 모두 예상하던 일,

그들 모두 이를 악물며 무기를 뽑아 들었다.

“천제 성하 만세!”

“천제국이여, 영원하라! 와아아아아!”

언덕을 향해 뛰어 올라가는 붉은 갑주의 기병들과

언덕 위에서 달려 내려오는 검은 갑주의 기병들이

엄청난 충돌음을 내며 격렬하게 부딪혔다.

콰과광!

말에게까지 두꺼운 철갑을 입힌 엄청난 중장갑의 율도군 철기병들이 언덕 아래로 달리며 가속도까지 붙었으니,

기병들만 갑주를 입고 있는 천제국 기병들의 질량으로는 이를 막아내기 역부족이었다.

가장 먼저 율도군들과 부딪힌 천제국 기병들은 율도군 철기병들이 들고 있는 16자 (약 5m) 길이의 장창에 말과 함께 꼬치처럼 꿰어졌고,

뒤따라 언덕을 올라오던 수십여 명의 기병들도 중장갑을 두른 율도군의 군마와 충돌하며 말과 함께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가 언덕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언덕 위에서 굴러떨어지는 무사들과 말들로 인해, 천제국 기병들은 같은 편끼리 부딪히고 넘어지며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게 되었다.

“물러서지 마라! 적의 포진을 향해 계속 돌격하라!”

지휘관이 칼을 휘두르며 부하들을 독려해 보았지만, 언덕 중간에서 돈좌 된 기병들이 다시 탄력을 얻어 위로 올라가는 건 무리였다.

1차 돌격으로 천제국 기병들의 전진을 막아낸 율도군 철기병들은 더 이상 천제국 기병들을 밀어붙이지 않고 말머리를 돌려 언덕 위로 돌아갔다.

그리고 언덕 위에서 양쪽에 바퀴가 달린 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율도군의 3치 평사포였다.

“발사!”

쾅! 콰광! 쾅! 콰과광!

십여 문의 평사포가 일제히 불을 뿜고,

언덕 중간에서 혼란에 빠져 있던 천제국 기병들과 말들이 피와 살점을 흩뿌리며 갈가리 찢겨져 날아가기 시작했다.

주먹보다 조금 작은 쇠구슬이 뭉쳐있는 포도탄이었다.

푸르른 밀밭과 초원이 내려다 보이던 평화로운 모습의 언덕 일대는 너덜너덜하게 찢겨진 도깨비들과 말들의 시체들로 순식간에 지옥처럼 변해버렸다.

용맹하게 칼을 휘두르며 앞장서서 부하들을 이끌던 천제국 기병 지휘관도 머리와 한쪽 팔이 포도탄에 맞아 뜯겨져 나간 채로 죽어 있었다. 마찬가지로 머리가 날아간 그의 말이 죽은 지휘관의 몸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온몸에 죽은 이들의 피와 살점을 뒤집어쓴 채 살아남은 기병들은 고막을 찢을 듯한 포성과 눈 깜짝할 사이 걸레 조각처럼 찢겨져 죽은 동료들의 모습에 정신을 못 차리는 표정이었다.

바로 그때,

“모두 박살내라!”

언덕 위에서 또다시 우레와 같은 함성 소리와 함께,

율도군 철기병들이 언덕 아래로 달려 나오기 시작했다.

완전히 전의를 잃었는지. 천제국 기병들은 자신들 앞으로 달려오는 죽음의 신처럼 생긴 검은 갑주의 철기병들을 그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북쪽으로 보낸 기병들이 율도군 철기병에 의해 일방적으로 학살당하고 있는 동안,

남쪽 측면을 보호하고 있는 진지에서도 교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화살을 낭비하지 마라! 50보 안으로 들어온 놈들에게만 쇠뇌를 쏴야 한다!”

천제국 보병들은 땅을 파내 만든 참호에 숨어 머리만 밖으로 쏙 내밀고, 진지 멀리서 말을 타고 달리는 율도군 기병들을 쇠뇌로 겨냥하려 애쓰고 있었다.

남쪽을 공격하고 있는 율도군들은 주로 가벼운 무장을 한 경기병들이었다.

그들 모두 활을 가지고 있었는데, 천제국군 진지 100보 밖에서 말을 달리며 눈에 들어오는 적들을 향해 화살을 날리고 있었다.

그들은 남쪽에 숨어있던 3군단 기병들로, 북쪽에 있는 1군단처럼 포진을 점령하고 있긴 하지만 치열한 포격을 날리고 있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경기병들로 하여금 천제국군들을 천천히 옥죄일 요량인 듯 했다.

율도군 경기병들은 마치 사냥을 하는 것 같기도, 혹은 그냥 훈련을 하는 것 같기도 한 모습이었다.

총과 쇠뇌를 쏘아대는 천제국군들이 전혀 두렵지 않은 듯, 적의 진지를 횡으로 가로 지으며 고함을 지르기도 했다.

그러다 진지 밖으로 머리를 드러낸 적이 보이기만 하면,

달리는 말 위에서 단 한 대의 화살로 그의 얼굴을 정확히 꿰뚫어 버리고는 총과 쇠뇌 사거리 밖으로 달아나기 일쑤였다.

율도군 기병들은 천제국군 진지를 포위한 채로 멀리서 화살을 날릴 뿐 진지로 돌격해 들어와 근접전을 벌일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래도 천제국군들은 언제 자신의 이마에 화살이 날아와 박힐지 모른다는 공포감에 진지 밖으로 머리를 들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 오후 4시, 대월국 서래번 금양장 동쪽 언덕 일대

율도군과의 전투가 시작되었다는 소식은 후방에서 천제벽력포를 지키고 있는 두억시니들에게도 전해졌다.

“놈들이 왔다는데 우리는 언제까지 포나 지키고 있어야 한단 말이냐?”

“이렇게 뒤에만 처박아 두다니! 이건 우리와 같은 전사들에 대한 모욕이다!”

두억시니 대부분 전투에 참여하지 못해 안달이 난 모습이었다.

이러는 와중,

동쪽에서부터 수레를 끌고 오는 무리가 천제벽력포가 있는 언덕으로 접근해 오고 있었다.

“본국에서 보낸 보급대인가?”

“포병 녀석들이 포탄이랑 화약 부족하다며 징징거리더니 바로 보내준 모양이다!”

“젠장! 포탄이랑 화약이 부족하면 우리를 내보내 싸우게 하면 되잖아! 대체 언제 우리를 전장에 내보내 줄 거냔 말이다!”

보급 수레는 곧장 천제벽력포가 있는 스무 곳의 언덕으로 흩어져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수레를 끌고 가는 이들은 물론,

수레 주변에서 이들을 호위하고 있는 천제국군들의 모습이 뭔가 이상해 보였다.

“어디서 온 부대이길레 한자손들이 저렇게 많이 있지?”

지금 천제국을 이루고 있는 종족들 중 가장 수가 많은 건 역시 도깨비다.

그 뒤로 두억시니, 두두리 순이고,

다모랑, 자그니, 한자손, 아리랑, 미호랑 등도 있긴 하지만 그 수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이는 군대도 마찬가지로, (체구가 작은 자그니들이 정찰 임무의 부대에 함께 모여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도깨비나 두억시니, 두두리 외의 종족들이 한 부대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일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수레를 끌고 온 보급대는 두억시니들이 지키는 곳을 지나 천제벽력포가 배치된 언덕으로 천천히 올라갔다.

그러다 갑자기 언덕의 2/3 지점 쯤 되는 곳에 다다랐을 때,

보급대가 수레를 멈추고 수레 위에 있던 포탄들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포대가 있는 정상에서 보급대가 오기를 기다리던 포병지휘관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들이 있는 곳으로 내려왔다.

“무슨 일이오? 왜 여기서 포탄을 하차하는 것이오? 수레에 무슨 문제라도 생겼소?”

그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수레를 호위하고 있던 군사들에게 다가왔을 때,

한자손으로 보이는 군사 하나가 그에게 가까이 다가오며 말했다.

“무슨 문제가 생긴 건... 수레가 아니라 바로 너네야.”

어느 틈에 그의 손에는 예리한 단도가 들려있었고,

포병 지휘관은 순식간에 단도에 목이 베어 그 자리에 쓰러졌다.

두억시니들이 지키고 있는 언덕 아래와는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었기에, 그들이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보일 리 없었다.

보급대로 위장한 이들은 강운예의 친위 여단들과 함께 천제국군의 후방으로 침투한 4군단 무사들이었다.

친위 기마 엽병 여단이 탈취한 천제벽력포의 포탄과 화약을 받아 이를 옮기는 보급대인 척 해서 이곳까지 들어 온 것이다.

“여기 10명은 날 따라 포대를 점령하고, 나머지는 흑영단이 가르쳐 준 대로 포탄 안에 도화선 연결하고 있어!”

4군단 무사들이 천제국군에게서 노획한 군도를 들고 천제벽력포가 있는 언덕 위로 뛰어 올라갔다.

마침 언덕 위에 있던 수십여 명의 천제국군 포병들은 금양장 일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투를 내려다보느라 지금 누가 다가오고 있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4군단 무사들은 은밀히 그들 뒤로 다가가 하나씩 하나씩 목을 베기 시작했다.

“큭!”

“흐윽!”

“아, 아니, 왜 같은 편을~?! 으, 으악!”

포병들은 왜 같은 천제국군 갑주를 입은 이들이 자신들을 공격하는지 영문도 모른 채, 모두 단칼에 목이 베여 죽었다.

순식간에 언덕 위의 포병들을 제거한 후, 4군단 무사들은 다시 수레가 있는 곳으로 내려왔다.

그 사이 수레가 있는 곳에 남아 있던 이들은 자신들이 힘겹게 끌고 온 엄청난 크기의 천제벽력포탄의 뇌관에 도화선을 설치해 언덕 밑으로 굴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거 터지면 우리도 다 같이 죽는 거 아닙니까?”

“흑영단이 언덕 위에 있으면 폭발 반경에 벗어날 수 있다고 했으니까 믿어보자고.”

“만약 아니면, 흑영단 놈들 아주 작살을 내버려야겠습니다.”

“그 친구들이 거짓말할 이유는 없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라. 도화선은 우리가 언덕 위로 몸을 피했을 때쯤 터질 수 있게 넉넉히 달아 놓았지?”

“네, 이제 불 붙여서 밑으로 굴리기만 하면 됩니다.”

7, 8명의 4군단 무사들이 달라붙어 천제벽력포탄을 언덕 아래에 있는 두억시니들에게 굴리기 좋은 위치로 옮겼다.

이 언덕 뿐 아니라 천제벽력포가 있는 모든 언덕에서 이와 같은 일이 진행되고 있었다.

천제국군의 모든 포진지를 은밀히 점령한 4군단 무사들은 자신들이 있는 언덕 아래로 3개에서 4개 정도의 천제벽력포탄에 도화선을 연결해 밑으로 굴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단 한 개의 포탄만으로도 주변을 완전히 초토화할 수 있는 엄청난 위력일 텐데 3, 4개의 포탄이 동시에 터진다면,

언덕 아래에 있는 두억시니들이 어찌 될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준비되었으면 불 붙이고, 자 이제 모두 힘껏 밀어!”

무사들은 도화선에 불을 붙이고는 다시 포탄을 감싸고 있는 쇠로 만든 겉표면 안으로 조심스럽게 밀어 넣었다.

그리고 다 함께 힘을 합쳐 언덕 아래로 포탄을 굴렸다.

구르르르릉~!

천제벽력포탄의 엄청난 크기와 무게로 인해, 마치 산사태로 언덕이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사방에 진동하기 시작했다.

“지금 뭔가 굴러오는 소리가 나는 거 같은데...? 엇?!”

언덕 아래를 삼엄하게 지키고 있던 두억시니들은 자신들이 있는 곳으로 굴러오는 거대한 크기의 포탄을 보고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보급대 놈들 정신 못 차리나? 포탄이 왜 여기까지 굴러와?”

언덕을 굴러 내려온 포탄 하나가 두억시니들이 모여 있는 곳 앞에서 멈춰 섰고,

몇 사람이 호기심에 포탄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위에 사람 보내라. 이거 떨어뜨린 놈이 와서 다시 들고 가라고. 킥킥!”

그들이 별일 아닌 듯 농담을 주고받고 있을 때,

포탄을 둘러보고 있던 두억시니의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치이이이이익...!

무언가 타 들어가고 있는 듯한 불길한 소리,

소리를 들은 두억시니가 황급히 외쳤다.

“이거 뭔가 이상해! 여기 이 안에...!”

그가 말을 다 끝마치기도 전,

꽈아아아아아앙~!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천제벽력포탄이 폭발했다.

이 곳 뿐 아니라,

천제벽력포가 설치된 언덕 아래에서 서너 발 이상의 포탄이 동시에 폭발하고 있었다.

엄청난 폭음과 하늘을 뒤덮는 검음 폭발의 연기와 함께,

천제벽력포를 지키고 있던 두억시니 대부분이 폭발의 화염과 함께 완전히 녹아 없어져 버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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