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동춘추 - 리부트-166화 (166/217)

〈 166화 〉 대동력 9,994년 6월 5일 (4)

* * *

­ 오후 15시, 대월국 서래번 금양장 북쪽 목라촌

차양대가 설치된 곳으로 가마 하나가 다가오고 있었다.

여섯 명의 두억시니가 드는 가마였는데, 그 위에 천제 정선교가 타고 있었다.

원래 그가 타고 다니는 가마는 수십 명의 인원이 들어야 할 만큼 큰 것이었지만, 마을로 향하는 길이 상당히 좁은 관계로 하는 수 없이 작은 가마를 마련해 타고 오는 것이었다.

천제가 약속 시간에 맞춰오자 영록도 밖으로 나가기 위해 투구를 쓰고 턱끈을 고쳐맸다.

“제가 같이 나가겠습니다.”

성시우 대위가 자신의 권총을 확인하고 함께 나서려 했다.

“아니에요. 저 혼자 나갈게요.”

영록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강지헌이 마을 입구를 막고 있는 장애물들을 옆으로 치워주며 말했다.

“천제가 마루한께 허튼 짓을 하려 한다면, 그놈 양쪽 눈에 화살을 박아 넣어 버리겠습니다.”

“얘기하자고 부른 거니 별일 없을 거예요.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강지헌과 철기병 무사들은 거마창 등 장애물을 옆으로 벌려 영록이 지나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주었다.

천제가 차양대 아래 설치된 평상에 오르고, 그를 태운 가마와 가마꾼들이 모두 돌아갔다.

율도군들도 이를 확인하고는 약속대로 마을 안쪽으로 모두 돌아갔다.

그리고는 모두 진지 뒤에 몸을 숨긴 채 총과 활을 겨누고 천제를 계속 노려보았다.

검은 갑주에 커다란 챙이 달린 투구를 쓰고 있는 영록이 평상으로 다가갔다.

그 위에는 쫙 찢어진 눈에 옆으로 벌어진 당나귀 귀, 팔다리는 가는데 배만 볼록 나온 볼품없는 모습의 사내가 기분 나쁜 웃음을 지으며 앉아 있었다.

‘이 사람이 천제국의 천제인가...? 그냥 통아저씨처럼 생겼는데...?’

강운예 외에 다른 마루한을 만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대동에서 수백 년을 사는 동안 끊임없는 수련과 실전으로 단련되어 다부진 근육질의 몸을 유지하고 있는 강운예만 알고 지내다 보니 의례 다른 마루한들도 늙고 죽지 않으니만큼 다들 그처럼 잘 관리된 모습으로 살고 있겠지, 하고 막연히 생각해 왔었는데,

강운예 이전 오랫동안 대동의 패권을 차지한 적이 있다는 천제국의 마루한이 이런 비루한 모습이었다니, 그저 충격일 뿐이었다.

“네가 말로만 듣던 새로 나타난 마루한이냐? 이리 가까이 와서 앉아라.”

정선교가 손으로 자신의 맞은편에 놓인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영록은 신을 신은 채 평상으로 올라 그를 마주 보고 자리에 앉았다.

“얼굴이나 보자꾸나. 그 칙칙한 율도군 투구는 이제 좀 벗지 그래?”

안 그래도 벗을 생각이었다.

영록은 턱끈을 풀고 투구를 벗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으로 장식된 탁자 위에는 음식들이 담긴 고급 도자기들이 가득 놓여 있었다.

마치 야인시대나 각시탈 등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나 영화에서 본 적 있는, 경성 고급 기루의 술상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점심시간이니 식사나 같이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게 좋을 것 같더구나. 듣자 하니 강운예 그놈이 어린 널 전쟁터로 내보내서 그동안 고생 많이 했다면서? 좀 먹으며 기운부터 차리거라.”

정선교는 손으로 음식들을 가리키며 실실 웃었다.

영록은 옆에 있는 잔에 담긴 물만 마실 뿐, 음식에는 별 관심이 없는 듯 했다.

“그래, 작년에 겨울 쯤에 대동에 왔다지? 네 이름이 지영... 뭐라고 했지?”

“지영록.”

영록은 비루해 보이는 천제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차갑게 대꾸했다.

“아, 그래! 지영록! 지씨 성이면 흔치 않은 성씨로군. 양반가 출신은 더더욱 아닌 거 같고.”

정선교는 잔에 담긴 술을 한 모금 마시고는 기분 나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어려 보이는구나. 대동으로 오기 전 몇 살이었나?”

“17살.”

“열일곱... 정말 좋은 나이군. 그 나이에 대동으로 넘어온 마루한이 있었던가...? 주나라에 있던 마루한 중에도 그 또래에 넘어온 이는 없었던 것 같은데...”

천제는 실실 웃으며 그의 표정을 계속 살폈다.

“혹시 강운예가 내 얘기를 해 준 적이 있더냐?”

“누구? 당신 이야기? 그냥 조금 들은 적이 있을 뿐이죠.”

“그놈이 뭐라 하더냐?”

“이구 전투에서 관장님한테 박살이 났었다고. 그때 죽인 당신 부하들만 100만인가 200만인가 정도 된다고. 그때 당신을 포로로 잡아서 지하 감옥에 몇 개월 가둬놨다가 땅이랑 전쟁 보상금 받고는 노새에 태워 돌려보냈다고. 내가 들은 당신 이야기는 그 정도예요.”

정선교가 손에 든 잔을 탁, 내려놓았다.

그의 얼굴은 붉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이 놈이... 어린 놈이 감히 내게 당신, 이라고 부르는 게냐?”

“나나 당신이나 이곳 대동에서는 똑같은 마루한이지 않나요? 관장님을 이놈, 저놈하고 부르는 사람을 내가 존중해야 할 이유는 없을 것 같은데? 내가 당신이라 부르는 게 싫으면, 지금부터 정선교씨라고 부를까요?”

정선교는 붉으락푸르락 거리는 얼굴로 영록을 노려보았다.

“강운예 그놈한테 건방진 것까지 따라 배웠나 보군! 하지만 네가 얼마나 더 오만방자하게 굴지 두고 보도록 하지! 원래 조선놈들은 맞아야 정신을 차리는 족속들이니까!”

“난 조선 사람이 아니라 대한민국 사람입니다! 그리고 듣자 하니 당신도 조선 사람이었다면서요? 아, 일본 앞잡이 노릇을 오래 하다 보니 자신의 고국을 일본으로 알고 있는 겁니까?”

“대한민국?! 강운예 그놈도 조선을 대한민국이라고 한 적이 있었지! 조선 따위 나라가 감히 나라 이름 앞에 큰 대자를 써? 나라 이름 앞에 큰 대자를 쓸 수 있는 나라는 오직 대일본제국 한 곳뿐이야!”

“대동에서 오래 살다 보니 대한민국이 얼마나 변했는지 모르는군요? 대한민국이 일본에 독립한 건 알고 있습니까?”

“강운예 그놈이 말해준 적 있지! 하지만 조선이 독립해봤자 영원히 일본의 발바닥 아래에 있을 텐데? 군사력으로든 기술력으로든 문화의 힘으로든, 조선은 절대 일본을 넘을 수 없어!”

그 말에 영록은 깔깔 웃기 시작했다.

“당신은 여기 사느라 보지 못했으니 당연히 모를 수 밖에 없겠죠. 하지만 대한민국은 이미 모든 면에서 일본을 앞질렀습니다. 문화의 힘이요? K­pop 이라고 들어봤어요? 여기 대동에만 있어서 알지 못하겠지만 지금 전세계 사람들은 한국 문화에 열광하고 있어요. 음악, 영화, 예술 모든 면에서요! 기술력이요? 핸드폰이나 TV, 전자제품은 물론 자동차, 조선까지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더 많이 수출하고 세계에서도 인정받은 건 꽤 오래전 일이거든요? 아, 당신은 핸드폰이나 TV가 뭔지도 모르죠? 그럼 당신이 이해할 수 있는 거, 군사력도 이미 한국이 일본을 넘어섰어요! 내가 대동으로 오기 전에 한국과 일본이 전쟁을 시작했거든요? 그 전쟁 어떻게 된지 아세요? 한국이 미사일하고 공군력으로 일본을 초전부터 완전히 부숴버리고 일본 본토까지 상륙했었다구요! 아마 지금쯤이면 탱크를 앞세운 한국 육군이 일본 전역을 초토화시켜 놨을 걸요?”

정선교는 참지 못하겠다는 듯 주먹으로 탁자를 쾅, 내리쳤다.

“거짓말 작작해라! 대일본제국이 조선 따위 작은 나라에 진다니 말이 되는 소리인가?! 대일본제국은 내가 세운 천제국만큼이나 강한 나라였다! 전 세계 최강의 국가였단 말이다!”

“전 세계 최강의 국가요? 관장님이 일본이 2차 세계 대전 때 미국한테 원자폭탄 두 방 맞고 백기 들고 항복했다는 말 안 해주셨나요? 그 이후 50년 넘게 군대도 가질 수 없는 반쪽짜리 나라가 되었다는 말도 못 들었구요?”

정선교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어린놈이 어른을 놀려도 유분수가 있지! 좋게 대해주려 했는데 안 되겠구나!”

그는 저 멀리 보이는 금양장 동쪽의 언덕을 가리켰다.

“저기에 천제국이 이번에 새로 만든 천제벽력포라는 무기가 배치되어 있다! 네놈과 율도군들이 숨어있는 여기 목라촌도 그 사거리 안에 있지! 천제벽력포의 위력에 대해서 알고 있나? 단 한 발의 포탄이면 여기 마을들은 물론 주변에 있는 논들도 모두 사라지게 될 것이다!”

정선교는 마치 두억시니처럼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살고 싶나? 그럼 나와 함께 천제국으로 가자. 네게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네가 알고 있는, 네가 살던 시대의 기술과 지식들을 내게 가르쳐 주면 된다. 네가 날 따라나선다면 저 마을에 있는 율도군들은 모두 무사히 그들 진영으로 돌려보낼 것이다. 그렇지 않는다면... 네놈들을 기다리는 건 죽음 뿐이다.”

그 말에 영록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

“그 전에, 묻고 싶은 게 있어요.”

“무엇이 궁금하냐?”

“당신은 대월국왕을 돕기 위해 출병했다죠? 그런데 왜, 환강산성을 부숴버리고 대월국왕을 죽인 거죠?”

질문의 의외였던 듯, 정선교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대월국 놈들이 성 안에 있던 우리 군사들을 먼저 공격했으니까.”

“대월국 사람들이 천제국 군사들을 먼저 공격했었다구요?”

“그래, 우리 군사들이 대월국왕을 죽였다며 그랬다더군. 우리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야.”

“잠깐...! 그럼 천제국이 대월국왕을 죽인 게 아니란 말인가요?”

“대월국왕은 내가 도착하기 전 이미 죽었던 모양이다. 전쟁에서 크게 다쳤었다는데, 부상이 도져서 죽었는지 아니면 암살당했는지 모르겠지만... 아! 강운예 그놈이 죽였을지도 모르지! 그놈은 계몽전쟁 이후로 계속 대월국왕을 죽이려 했었거든? 놈이 이런 기회를 놓칠 리 없지! 게다가,”

정선교가 야비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놈은 대월국의 7왕자까지 볼모로 잡고 있었지 않았나? 국왕과 왕자들이 모두 죽는다면 다음 왕위는 7왕자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을 테니... 그렇게 왕과 왕자들을 모두 죽이고 7왕자를 꼭두각시 왕으로 세워 대월국을 율도의 식민지나 위성국가로 만들 생각이었겠지, 그놈은! 이미 대동 동부의 사비나 열하군도에 있는 도국 몇 개를 그런 식으로 식민지로 삼은 적이 있는 놈이니까!”

영록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당신은... 왜 대월국왕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정확히 알아보지 않고 환강산성을 공격했던 거죠? 대월국을 도울 생각은 처음부터 아예 없었던 건가요?”

정선교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도와? 나는 반란군을 물리쳐주는 대가로 흥원 등 대월국의 영토를 할양받기로 했었다. 그런데 강운예 그놈이 먼저 군대를 보내 흥원을 점령하는 바람에 내가 직접 군을 끌고 오게 되었던 거다. 다른 곳은 몰라도 내가 하려는 일에 흥원은 꼭 필요한 곳이었거든. 그런데 흥원이 이미 율도군의 손에 떨어진 마당에 우리를 지원해줘야 할 대월국 놈들이 역으로 우리에게 창칼을 들이미는데 내가 화가 안 날 수가 있겠나?! 이 천제께서 몸소 천 리 길을 지나 대월국 같은 하찮은 나라까지 행차하셨는데 말이야!”

그는 열을 식히려는 듯 술을 한 모금 마시고는 말을 이었다.

“그건 대월국 도깨비들의 무례에 대한 천제가 내리는 징벌이었다. 덕분에 천제벽력포의 위력을 확실히 시험해 볼 수 있었지.”

이야기를 듣고 있던 영록이 굳은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신도 마찬가지... 이제 쓸데 없는 이야기는 그만 하도록 하죠!”

그가 허리춤에 있던 권총을 뽑아 들었다.

순간,

멀리 떨어져 있던 천제국군들이 크게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들도 망원경으로 천제와 마루한이 대화 나누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가,

마루한이 갑자기 권총을 뽑아 천제를 겨누는 걸 본 것이다.

붉은 갑주의 기병들이 소총을 들고 차양대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사수 준비!”

마을 안에 있던 율도군들도 영록의 돌발 행동에 놀라 진지 위로 몸을 일으키고 달려오는 천제국 기병들을 향해 총과 활을 겨누었다.

강지헌도 애깃살을 넣은 통아를 활시위에 걸고 천제의 얼굴을 조준했다.

영록은 권총을 두 손으로 파지하고 정선교의 얼굴을 정면으로 노려보았다.

“아까 나한테 살고 싶으면 당신을 따라오라고 했죠? 그 말, 반대로 내가 하도록 하죠. 살고 싶으면 당신네 군사들을 모두 뒤로 물리고 포위를 푸세요! 안 그러면 대동에서 몇천 년을 살아온 당신의 목숨도 오늘이 마지막입니다!”

총구가 눈앞에 있는데도 정선교는 조금도 두려워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네가 날 쏠 수 있을 거 같나? 총으로 사람 쏴서 죽여 본 적은 있고?”

“한국에서도, 그리고 대동에서도 몇 번 해봤지. 한국에서 내 총에 맞아 죽은 놈도 당신과 비슷한 말을 했었어. 그 총 쏠 수나 있냐고, 쏠 수 있으면 쏴보라고.”

“흥, 제법 용감한 척 하는구나. 하지만 네가 날 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계산은 해 보고 이러는 건가?”

“...”

“난 절대 네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네놈이 날 쏴 죽이면? 너와 네 군사들은 오늘 천제국군에 의해 처참하게 도륙 당하겠지.”

“...”

“나는 대동에서 몇천 년간 지겨울 정도로 살아서 세상 사는 거에 더는 미련 없다. 그런데 너, 지영록. 넌 네가 있던 세상으로 돌아가는 게 소원이라면서?”

“그걸 어떻게...?”

“성산에 강운예의 여식과 함께 잡혀 있을 때 그리 말했다면서? 강운예에게 무예를 배워 네가 살던 세상으로 꼭 돌아가야 한다고. 가서 친구를 구해야 한다고. 맞지?”

정선교는 입술을 씰룩이며 비열하게 웃어 보였다.

“강운예 그놈이 누리마루에서 원래 살던 세상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았고 한 번 다녀오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나도 들었지. 그 길이 어디인지는 놈과 누리마루 경월당 놈들이 철저히 함구하고 있어 아직 알아내지는 못했지만... 아무튼 너도 언젠가 그 길을 통해 네가 살던 조선 땅으로 돌아가겠지. 그러려면, 오늘 여기서 죽으면 안 되지 않겠나? 가서 네 친구를 구해야 한다며? 그런데 네가 구하려는 친구가 남자냐, 아니면 여자냐, 응?”

정선교는 계속 총구 앞에서 실실 웃으며 영록의 표정을 읽었다.

“당황하는 거 보니 여자인 모양이구나? 끌끌끌~! 하긴, 사내자식이 남자 친구를 구하려고 이러지는 않겠지. 당연히 여자 친구를 구하려는 거겠지! 그 여자 친구가 네 애인이냐? 네게 상당히 소중한 사람이니 영원히 살면서 신으로 대접받을 수 있는 이곳 대동을 놔두고 다시 조선으로 돌아가려는 거겠지. 그런데 뭐, 네 애인이 누구한테 팔려가기라도 한 것이냐? 하기야, 내가 조선에 있을 때에도 일본 남자들한테 끌려가는 조선 여자들이 참 많았었지. 끌끌끌~!”

방아쇠울에 걸린 영록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 얘긴 도대체 어떻게 들었지?”

“세상 소식을 보고 듣는 눈과 귀가 어디 강운예 그놈에게만 있는 줄 알았더냐? 나도 그놈만큼이나 세상 일들을 다 보고 듣고 알 수가 있느니라. 이 몸은 천제가 아니더냐? 아무튼, 지금 그 총으로 날 죽일 수 있겠지만, 너 역시 바로 죽을 거 같은데? 신중히 생각해서 어떻게 할지 결정해 봐.”

어느새 붉은 갑주의 천제국 기병들이 차양대 20보까지 다가와 영록에게 소총을 겨누고 있었다.

마을에 있는 율도군들도 언제든 총과 활을 발사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영록이 두 손으로 권총을 쥐고 망설이고 있을 때,

정선교가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네가 죽으면 네 여자 친구는 누가 구해주지...?”

그 말에 영록의 손에 든 권총이 밑으로 내려갔다.

마루한이 총을 내리자 천제국 기병들도 일제히 소총을 내렸다.

영록은 정선교를 무섭게 쏘아보며 말했다.

“...내가 당신에게 투항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야.”

“투항하지 않겠다 해도, 난 반드시 널 생포해 데려갈 것이다.”

“할 수 있으면 해 보시던지.”

“저 작은 마을에서 버틸 수 있다면 버텨봐라. 너와 함께 있는 군사들을 모두 죽이고 널 반드시 천제국으로 데리고 가겠다.”

“...”

“참, 널 쫓던 두억시니들이 네가 전리품을 하나 훔쳐 갔다던데? 네가 두억시니들한테서 빼앗아 온 공녀, 저 마을에 같이 있지? 그 녀석들이 그년을 몹시 그리워하더구나. 그년의 살결을 다시 맛보고 싶다고 말이야. 듣자 하니 귀한 집안에서 곱게 자란 도깨비라 얼굴이나 몸매가 상당히 반반하다던데? 가지고 놀 만큼 가지고 논 후에 온몸의 가죽을 벗겨서 박제로 남겨 놓고 싶을 정도로 말이야. 끌끌끌~!”

진미령의 이야기에 영록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런데 너 공녀 이야기에 표정이 변하는 거 보니... 네가 구하려는 네 애인 말이야... 지금 공녀랑 비슷한 처지인 거 아니냐?”

영록은 더는 듣지 못하고 평상을 내려와 마을로 돌아갔다.

마루한이 돌아오려 하자 율도군들이 장애물 있는 데까지 달려와 그를 보호해 함께 들어갔다.

정선교는 공격하지 말라는 듯 천제국군들에게 손을 들어 보이고는, 썩은 웃음을 지으며 자신을 태우러 온 가마를 타고 다시 군사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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