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동춘추 - 리부트-159화 (159/217)

〈 159화 〉 대동력 9,994년 6월 3일 (2)

* * *

­ 오후 13시, 대월국 서래번 북쪽 일대

두억시니의 발자국은 다른 종족들에 비해 엄청나게 컸기 때문에 밤에도 이를 찾아 추격하기는 힘든 일이 아니었다.

반 시간 가까이 말을 달렸을 때,

저 멀리서 불빛이 아른아른 보이기 시작했다.

“강 중사, 저 앞에...!”

동료 무사가 불빛이 보이는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두 사람은 조용히 말에서 내려 그곳으로 발소리를 죽이며 다가갔다.

"으아아악~! 끄아아아아악~!"

갑자기 찢어지는 비명소리가 밤하늘에 메아리쳤다.

두 사람은 수풀 사이에 몸을 숨기고 소리가 나는 곳을 훔쳐보았다.

그들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있는 두억시니 하나가 갑주와 무기들을 커다란 광주리에 담고 있었다.

다른 종족들의 갑주와 무기들은 커다란 몸집의 두억시니들에게 어린아이 장난감처럼 너무 작기만 했다. 그들은 그것들을 팔아서 돈으로 바꾸거나 녹여서 다른 무기를 만들도록 고철로 활용하곤 했다. 저렇게 모아두는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저들이 장식을 목적으로 한 전리품으로 간직하는 경우는 유성금으로 된 무기처럼 값비싼 것이거나 힘겨운 싸움 끝에 목숨을 빼앗은 용맹스러운 전사의 물건이 아니라면 흔치 않은 일이었다.

광주리 안에 든 갑주 가슴 부분에 고래 문양이 새겨진 것으로 보아 함께 하던 대월국 무사들의 것이 분명해 보였다.

장자검 등 눈에 익은 도깨비들의 무기도 찾아볼 수 있었다.

그 너머부터 끔찍한 광경이 펼쳐졌다.

두억시니들이 사로잡은 도깨비 무사들을 토막 내고 있던 것이다.

놈들은 커다란 칼이나 도끼, 톱과 같은 걸로 도깨비들의 뼈와 살을 썰고 자르고 있었다.

이미 전투 중 죽은 자들이 대부분이었으나, 큰 부상을 당한 채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자들도 있었다.

비명소리는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상태에서 두억시니들에게 사지가 짓눌린 채로 팔다리가 잘려 나가는 어느 도깨비 무사가 지르는 것이었다.

“끄아아아아악~! 끄아아아아아아아악~!”

“이 도깨비 새끼, 거 더럽게 시끄럽네. 그냥 모가지부터 쳐버릴까?”

“네가 잡은 거니 네 마음대로 해라. 아무튼 저 약해 빠진 도깨비 새끼 때문에 시끄러워 죽겠으니 어서 빨리 처리하라고.”

두억시니들은 피를 철철 흘리며 죽어가는 도깨비를 손가락질하며 조롱했다.

두 무사는 이를 악물고 주변을 계속 돌아보았다.

두억시니들이 모여 있는 곳에는 커다란 장작불 예닐곱 개가 불타고 있었다.

이제 여름이 시작되었기에 밤에 추위를 피하려 불을 피운 것은 아니었다.

사로잡은 도깨비들의 인육을 불에 구워 먹으려는 것이었다.

“저 금수만도 못한 새끼들...”

강지헌과 무사는 분노에 치를 떨었다.

장작불 근처에 모여 있는 두억시니들의 숫자만 헤아려도 수십,

어둠 속에서 왔다 갔다 하는 녀석들까지 치면 족히 백여 명은 넘을 듯 보였다.

두 사람만으로는 어찌해볼 수 없는 숫자였다.

게다가 자세히 보니, 두억시니들과 함께 있는 도깨비들도 있었다.

물론 천제국군 내에도 도깨비들이 많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들 곁에 있는 도깨비들은 천제국군의 복장을 하고 있지 않았다.

암살자나 첩자들이 주로 입는 여행자들이 주로 입는 장옷 같은 옷을 입고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그들이 입고 있는 옷은 모두 대월국 사람들이 주로 입는 것들이었다.

“천제국의 앞잡이가 된 대월국 놈들인가?”

“전쟁 중에 그런 놈들이 어디 한 둘이겠어? 게다가 천제국 놈들 들어오기 전에 국왕파하고 반란군하고 내란까지 있었으니 이제 이 나라는 글렀다고 생각한 자들이 널리고 널렸겠지.”

도깨비들은 두억시니들과 사이좋게 술과 음식을 나누고 있었다.

두억시니 하나가 도깨비들에게 불에 구운 고기 같은 걸 가지고 와 권했다.

그러자 도깨비들은 정색하며 이를 거절했다. 그러자 두억시니들은 몹시 재미있다는 것처럼 와하하하, 하고 웃기 시작했다.

그들이 권한 건 방금 잡은 흥원 도깨비 무사의 인육이었던 것이다.

바로 그때,

“꺄아아아악~!”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여자의 찢어지는 목소리가 들렸다.

“설마...?”

두 사람은 자세를 한 층 더 낮추고 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았다.

그들로부터 27간 (약 5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또 하나의 장작불,

그곳에 대여섯 명의 두억시니들이 둥그렇게 모여 앉아 있었다.

그리고,

거대한 체구의 두억시니들 사이에서, 너무나도 가녀린 여자 도깨비 하나가 양팔을 붙들린 채 장난감처럼 희롱당하고 있었다.

“공녀다. 전투 중 죽지 않은 모양이야.”

강지헌의 말에 무사가 눈살을 찌푸리며 대꾸했다.

“차라리 전투 중 죽는 것이 더 나았을 거야.”

멀리서 보기에 공녀의 사지는 비교적 멀쩡했다.

장작불 곁에 그녀가 입었던 갑주가 나뒹굴고 있었다. 심하게 우그러지고 찌그러진 것으로 보아 전투 망치 같은 것으로 맞은 후 두억시니들의 억센 손에 마구잡이로 벗겨진 모양이었다.

부우욱, 찌이이이익!

천이 우악스럽게 찢기는 소리가 들리고, 그녀의 몸을 가리고 있던 전포가 걸레처럼 찢겨져 나갔다.

그녀의 새하얀 몸은 어느새 전라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공녀는 아무런 저항도 못 하고 있었다.

자기 팔뚝보다 서너 배는 더 두꺼운 팔근육을 가진 두억시니들에게 양팔을 붙잡혀 있었던 데다가,

자세히 보면 그녀의 배와 명치 부근에 검붉은 멍 자국 같은 것도 보였다.

아마 전투 망치 같은 것에 맞았을 때 다행히 갑주 덕에 절명하지는 않았지만 심한 내상을 입었음이 틀림없었다.

“이 년은 며칠 더 데리고 다니면서 노리개로 쓰자!”

“마루한을 잡기 위해서 짐을 최대한 줄이고 가볍게 다녀야 한다! 그냥 여기서 몇 번 하고 말아!”

“어차피 오늘 잡은 다른 도깨비들 모두 고기로 만들어 가지고 다닐 거잖아? 이년도 어차피 나중 되면 다 고기로 만들어 버리거나 전리품으로 남기면 되니까 그냥 더 데리고 다니자고!”

두억시니들은 누가 먼저 그녀를 범할지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밤중이라 두억시니들의 목소리는 두 율도군 무사가 있는 곳까지 선명하게 들리고 있었다.

“강 중사, 자네도 들었나?”

“응, 저들이 바로 마루한을 잡으러 쫓아오는 놈들이었군. 지난번 언덕길까지 따라왔던 두억시니들도 바로 저놈들이었을 거야.”

“역시 부군단장님 말씀이 옳았어... 어서 부군단장님 있는 곳으로 돌아가 보고해야 해!”

순서를 정한 두억시니들이 공녀를 범하기 시작했다.

놈들은 그녀의 두 팔을 위로 올려 쇠사슬 같은 걸로 묶은 후 바닥에 눕혔다.

그렇게 한 놈이 위에서 그녀의 팔을 붙잡아 누르고,

가장 먼저 그녀를 범하게 된 두억시니가 킬킬, 웃음소리를 내며 아랫도리를 내렸다.

놈이 발가벗겨진 진미령의 다리를 양쪽으로 벌렸다.

어려서부터 말을 타고 무예를 익힌 덕에 그녀의 다리는 다른 여자 도깨비들에 비해 길고 탄탄하긴 했지만, 크고 우람한 두억시니 앞에선 한없이 가녀리게 보이기만 했다.

놈이 그녀의 다리 사이에 몸을 밀착했다.

워낙 큰 몸이 밀고 들어오는지라 그녀의 하얀 다리는 거의 일자가 되다시피 벌려졌고,

두억시니가 쿵쿵 소리가 날 정도로 엉덩이를 위아래로 흔드는 동안 밑에 완전히 깔려버린 그녀의 몸은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다.

“아악! 악! 아, 아악!”

두억시니의 커다란 것이 몸 안으로 쑤시고 들어온 탓에, 그녀는 연신 울음 섞인 고통의 소리를 내지르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두억시니들은 어서 빨리하고 나오라며, 그것밖에 못 하냐며 야유를 퍼붓고 있었다.

두 사람은 더 이상 지켜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들이 조용히 자리를 뜨려고 할 때,

철그럭, 철그럭

쇠로 된 갑주를 벗기는 소리가 들렸다.

강지헌이 돌아보니 저 멀리서 두 명의 두억시니들이 한자손 무사의 몸에서 검은 갑주를 벗겨내고 있었다.

그들과 함께 흥원공녀 일행과 남기로 했던 율도군 무사였다.

수많은 두억시니들과 격전을 치른 탓인지, 그의 투구와 갑주는 심하게 손상되어 있었다.

갑주를 벗겨내자 베어졌는지 부러졌는지 모르는 오른팔이 힘없이 너덜거리고 있었고,

검은색 전포에 절어있던 핏물들이 땅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으, 으윽...”

큰 부상을 입었지만 무사의 숨은 아직 붙어 있는 듯 했다.

이를 본 강지헌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아직 살아 있었어...!”

그가 전통에서 활과 통아, 편전을 꺼내 들었다.

“강 중사, 지금 뭐하려고? 우리 둘 만으로 저 친구를 구할 수 없다는 거 잘 알잖아?!”

무사가 다급히 그를 만류하며 말했다.

강지헌은 침통한 표정으로 편전을 통아에 넣으며 말했다.

“구할 수는 없어도... 두억시니들에게 산채로 잡아먹히는 걸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어...!”

“그럼 대체 어쩌려고...?”

강지헌은 수풀 사이에 몸을 숨긴 채 통아를 활에 올리고 찬찬히 활시위를 당겼다.

두억시니들은 율도군 무사를 넓쩍한 바위가 있는 곳으로 끌고 가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흥원번 도깨비 무사들을 썰고 베던 자리가 있던 곳이었다.

강지헌은 두억시니에게 뒷덜미를 잡힌 채 땅바닥에 질질 끌려가는 율도군 무사를 바라보았다.

“미한하다... 용서해라...!”

그가 깍지를 낀 오른손 엄지를 풀고,

퍽!

통아에 든 작은 편전이 밤공기를 찢으며 번개처럼 날아가 무사의 목을 꿰뚫었다.

하지만 무사를 끌고 가는 두억시니는 공녀를 범하는 두억시니들이 내는 시끄러운 괴성 때문에 무사의 목에 편전이 박혔다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강지헌은 그가 완전히 숨을 거두었다는 것을 확인하고, 동료 무사와 함께 말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