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7화 〉 대동력 9,994년 6월 2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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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6시, 대월국 서래번 북쪽 일대
용마로 소장은 며칠 전부터 천제국의 두억시니 부대가 집요하게 자신들을 뒤따라오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마루한께서 걱정하신 바가 맞는 것 같습니다...”
무사들에게 대원수의 본대가 있는 금양장 쪽으로 회군할 준비를 하라는 지시를 내린 후, 영록과 단둘이 있는 가운데 조용히 회군하는 사정을 설명했다.
“역시 그 두억시니들은 저를 잡으려고 나온 자들이었나요?”
“그런 것 같습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우리를 추격해 올 이유가 없을 테니 말입니다.”
“그럼 강운예 관장님 있는 곳으로 돌아가게 되는 건가요?”
“일단 마루한의 안전을 위해 대원수 기하께서 계신 곳으로 회군할 예정입니다. 그렇게 마루한을 모셔드린 후, 저희는 다시 작전 지역으로 복귀하려 합니다.”
영록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회군 준비가 끝날 무렵,
흥원공녀 진미령이 용마로 소장에게 다가왔다.
“마루한을 모시고 금양장 있는 곳으로 회군할 거라면서요?”
“그렇습니다. 공녀께서도 이제 그만 흥원으로 돌아가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진미령은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직 나와 내 무사들은 원하는 만큼의 복수를 다 하지 못했소. 우리는 전장에 남겠소.”
“공녀, 하지만...”
“내 뜻은 변하지 않을 것이니 설득하려 할 필요 없소. 그럼, 그동안 신세 많았소.”
진미령은 가볍게 목례를 한 후 흥원번 무사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 떠날 준비를 시작했다.
흥원공녀 호위 임무를 맡았던 115 기병 여단 소속 무관이 다가와 물었다.
“부군단장님, 저희도 따라가야 합니까?”
그들도 지금까지 흥원공녀를 수행하느라 야전에 너무 오래 나와 있었다. 주둔지로 복귀하고자 하는 마음이 클 수밖에 없었다.
“최소한의 감시 인원만 남겨 따라가게 하고, 귀관들은 흥원으로 복귀했다가 다음 지시를 기다리도록 하라.”
“네, 부군단장님!”
무관은 자신의 중대 무사들을 모아 놓고 누가 남을지를 물었다.
강지헌과 두 명의 무사들이 이 임무에 지원했다. 무사들은 그들에게 자신들의 전투 식량과 화살 등 장비 등을 나눠주고 흥원으로 돌아갈 준비를 서둘렀다.
흥원공녀가 자신들을 따라가지 않고 전장에 남는다 하고, 또 강지헌도 따라 가게 되었다는 말을 들은 영록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공녀님, 꼭 가셔야 하나요?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요?”
걱정스러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만류하는 마루한을 보고, 진미령은 두 손을 모으고 허리를 조아리며 공손히 대답했다.
“부모의 원수에게 반드시 복수해야 하는 것은 대월국 도깨비들에게 아주 당연한 예입니다. 저는 아직 제 부친의 원수를 제대로 갚지 못했습니다. 천제의 목을 베지는 못하더라도, 그에 준하는 자의 목을 취하지 않고서는 절대 흥원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부디 마루한께서는 돌아가시는 길이 안전하기를, 저 멀리 계신 미한께 기도드리겠습니다.”
흥원공녀와의 인사를 마친 후, 영록은 대월국 무사들과 함께 떠날 준비를 하고 있던 강지헌에게 다가갔다.
“아, 마루한...!”
말에 타려던 강지헌이 그를 보고 급히 말에서 내려 고개를 조아렸다.
“중사님도 공녀님과 함께 가시기로 했나요?”
“네, 이번 원정 끝날 때까지 맡은 바 제 소임을 다 하고자 합니다.”
“저와 같이 돌아가서 함께 강운예 관장님을 뵈었으면 참 좋았을텐데요...”
강운예란 말에 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저번에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저는 그분께 부끄러운 후손일 뿐입니다.”
“절대 그렇지 않아요. 오히려 중사님을 보시고 기뻐하실지도 모를걸요?”
“...”
“그럼 돌아오시는 날 같이 강운예 관장님을 뵈러 가기로 해요. 관장님께는 제가 미리 말씀드려 놓을게요.”
“마루한...”
“그리고 다시 만나면 제게 활 쏘는 법을 가르쳐 주세요. 저도 중사님처럼 활을 잘 쏘고 싶어요!”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마루한. 감사합니다...”
그렇게 작별의 인사를 나눈 후,
영록과 용마로 소장의 무사들은 서쪽으로,
진미령과 강지헌의 일행은 동쪽으로 각각 말머리를 돌렸다.
그들 사이로 저녁노을이 진한 붉은 색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오후 7시, 율도 백화 대원수부
오늘도 율도군 총참모장 한신은 늦게까지 대원수부에 남아 강운예를 대신해 업무를 보는 중이었다.
‘파림이 우리 행정부로 외교 서한을 보냈군... 지난 일은 그저 국경 지역 군지휘관의 오판으로 일어난 일이었고 해당 지휘관은 숙청당했다고...? 하하, 포각수들이 이런 변명을 할 줄 몰랐는걸?’
이미 천제국으로부터 화약과 무기를 공급받지 않아 파림이 더 이상 공격을 하지 못한 거라는 걸 알고 있는 율도였다.
그런데도 국경 지역 군지휘관의 오판이라 둘러대다니. 율도로부터 보복당할까봐 두렵긴 두려웠던 모양이다.
다음 보고서에는 북부 거록 초원에서 위나라 군사들이 두억시니들에게 궤멸적인 피해를 입고 본국으로 돌아갔고, 그들이 놓던 도로들도 모두 파괴되었다는 소식이 들어있었다.
‘당분간 주나라가 거록으로 들어갈 엄두는 못내겠지. 진나라의 반란 문제도 그렇고, 황자 때문에 당장 우리 국경으로 군대까지 보냈으니.’
최기의 예상대로 동주와 206 경비 여단이 마주보고 있는 국경지대에 모여 있는 주나라 군은 더 이상 진군해 들어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도 조금만 더 오면 율도와의 전면전을 벌이게 될지도 모른다는 걸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그냥 무력 시위겠지. 그러다 얼마 안 있어 우리 행정부로 자기네 황자를 돌려 달라 외교 사절을 보낼 것이고.’
이미 파림이 율도에게 외교 서한을 보냈다는 건 주나라 황실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쪽에 있는 병력들을 언제든 서쪽 주나라와의 국경에 투입할 수 있는 일.
지금 서부 국경지대를 지키고 있는 2군 병력 만으로도 주나라 군세를 압도하고도 남는데 남부의 4군인나 예비군 부대인 중부의 3군 병력까지 모여지게 된다면 주나라는 국가 존망이 걸린 전쟁을 치르게 될 수도 있었다.
아무리 강운예가 최정예 주력 부대들을 모두 이끌고 대월국 영토 내에서 천제국군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이라 해도,
지금 율도군에 남아 있는 전력 또한 주나라가 감히 넘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잠시 바람을 쐬기 위해 창문을 열었을 때,
대원수부 뒤편에 있는 평연당에서 백영단 무사들이 호위하는 크고 화려한 마차가 나가는 게 눈에 들어왔다.
한신은 즉시 부관을 호출했다.
“지금 평연당에서 누가 대원수부 밖으로 나가시는 거 같은데, 누가 나가는 건지 확인해 보게.”
명을 받고 밖으로 뛰어 나갔던 부관이 잠시 후 돌아와 보고 했다.
“영부인께서 나가신 거라고 합니다.”
“영부인께서? 아니 이 저녁 시간에 왜?”
“큰 영애가 지금 백화로 돌아오는 중인데, 영부인께서 직접 나가 데리고 오시려는 거라 합니다.”
“큰 영애가 백화에 도착하려면 며칠 더 있어야 할 텐데...?”
아마 영애가 또 도망갈까봐 걱정되어 직접 나선 것 같다는 생각에, 한신은 혀를 끌끌 찼다.
오후 11시, 대월국 서래번 금양장 동쪽 10리 부근 야산 천제국군 숙영지
금양장과 율도군 진지가 내려다 볼 수 있는 야산 스무 곳에 천제벽력포들이 배치되고 있었다.
각 포진지 주변에서는 거대한 체구의 두억시니 전사들이 물 샐 틈 없는 경계를 취하고 있었고,
야산 아래로는 천제국군의 숙영지가 편성되고 있었다.
금양장을 사이로 율도군과 대치하게 된 만큼, 숙영지의 모습은 거의 진지에 가깝게 구축되고 있었다.
철조망은 물론 참호에 기병들을 저지하는 흙벽까지 쌓아 올리는 등,
오늘도 행군에 지친 병사들은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작업에 투입되고 있었다.
병사들이 작업에 몰두하던 그 시간,
대사마 주진경은 자신의 막사에서 포병 지휘관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럼, 바람의 영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인가?”
포병 지휘관들의 말을 듣던 주진경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네, 분명 지도상으로는 적의 진지가 천제벽력포 사거리 안에 있는 것으로 나오지만, 아까 저희가 직접 실측을 한 결과로는 양측의 거리가 최대 사거리에 딱 걸치는지라...”
“그럼 적 진지 아래쪽이라도 피해를 줄 수 있나?”
“진지 최하단은 폭발 범위 안에 들어가긴 하지만, 너무 거리가 멀기에 그것 또한 쏴 봐야 알 것 같습니다.”
주진경은 난감한 표정으로 지도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대동에는 아직도 근현대적인 측량법이 없었다. 그래서 군사지도라 할지라도 이와 같은 오차가 발생하곤 하는 것이다.
“포진을 지금보다 앞으로 추진할 수 있나? 그러면 적 진지 전체를 사거리 안에 둘 수 있지않아?”
“그렇게 하자면 야산이 아니라 평지로 내려와 포를 설치해야 합니다. 그래도 관측을 하기 위한 병력을 야산 위에 남겨둬야 하는데, 명중 여부 등을 확인하고 이에 대해 소통하려면 수기 등을 이용하는 방법 밖에는 없게 됩니다.”
지금처럼 경사가 있는 야산에 천제벽력포를 두고 그 주변에 힘세고 덩치 큰 두억시니들로 지키게 하면 제 아무리 날고 기는 율도군 기병들일지라도 쉽게 접근하기 힘들 테지만,
천제벽력포를 야산이 아니라 평지에 설치하게 된다면,
기병이 주력인 율도군들에게 쉽게 공략당할 수 있다.
‘창정구 육군 대신 말이 맞았어. 역시 전쟁은 포만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었는데... 우리가 너무 천제벽력포의 위력을 과신하고 다른 것들을 등한시하고 있었던 모양이군.’
주진경은 이걸 천제에게 어떻게 보고해야 하나, 하는 걱정에 앞이 암담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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