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4화 〉 대동력 9,994년 6월 1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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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0시, 율도 서부 육군 2군 206 경비 여단 / 10군단 예하 8보병 사단 관할 지역 일대
국경의 경계 상태를 엿보러 갔던 세 무사는 자정이 다 되어서야 돌아왔다.
그 사이 정국과 무녀 연하 등이 기다리던 식당은 영업시간이 끝나 문을 닫아야 했기에 모두들 식당 밖에 서서 무사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6월,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어 밤에도 날씨는 무척 따스한 편이었다.
“...뚫기 힘들 것 같습니다.”
무사들의 표정은 무척 침울했다.
“다른 곳으로 갔어야 했나?”
“다른 곳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국경 뿐 아이라 국경으로 가는 모든 길에 율도군들이 셀 수도 없이 많이 깔려 있었습니다.”
무녀 연하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우리는 돌아가지 못한다 하더라도, 황자 전하 혼자만이라도 국경을 넘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그녀의 말에 무사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우리가 목숨 바쳐 혈로를 뚫는다면야.”
“그럼 우리 그렇게 해보시지요. 그렇게라도 황자 전하를 고국으로 모실 수 있다면은요.”
오전 3시, 율도 서부 육군 2군 206 경비 여단 1대대 담당 국경지대
“다리를 노려 쏘아라! 저들 중 주나라 황자가 있을 수 있으니 죽이지 말고 생포하라!”
국경으로 향하는 길,
정국과 강용영 무사들은 최기 중령이 미리 길 위에 준비해 둔 마름쇠 등 대기병 장애물에 그대로 걸리고 말았다.
히히히히힝~!
말들이 비명을 지르며 고꾸라지고,
무사들은 다급히 칼을 빼 들고 사방을 경계한 채,
말에서 떨어져 땅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황자와 무녀를 부축해 일으키고 있었다.
슈슈슉!
어둠 속에서 화살들이 날아들었다.
챙!
선두에 선 무사가 환도로 화살을 쳐내고는 큰 목소리로 외쳤다.
“이곳은 내가 맡을 테니 어서 황자 전하를!”
무사가 율도군의 진지도 돌격하는 사이,
무녀 연하와 무사들이 정국을 부축해 국경 토성이 있는 곳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둥, 둥, 둥, 둥...!
뿌우우우우~! 뿌우우우우~!
토성 부근에서 북소리와 뿔나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국경으로 접근하는 이들을 발견했다는 신호였다.
“저기 율도군들이...!”
정국을 곁에서 부축하던 무사가 손가락으로 우측을 가리켰다.
그곳에서 수십 여명의 율도군들이 북과 뿔나팔소리를 듣고 막사에서 뛰쳐나오고 있었다.
밤중이었지만 멀리서도 그들의 어깨에 걸치고 있는 거대한 쌍수검들이 달빛별빛에 반사되어 번쩍이는 게 보였다.
“두 사람은 나 따라오고, 자네와 무녀님이 전하를 모셔 주시게!”
강용영 무사들의 지휘관 격인 자가 두 명의 무사들과 함께 쌍수검병들을 막기 위해 달려갔다.
쌍수검병은 1간(약 180cm) 길이의 거대한 양날검을 사용하는 병종으로, 근접전이 벌어지면 적군에 돌격해 진형을 부수고 흐트러뜨리는 역할을 할 뿐 아니라 두억시니, 두두리, 포각수 등 덩치가 큰 종족들과의 전투를 위해 양성된 군사들이었다.
그래서 쌍수검병 부대는 대부분은 경험 많은 고참병이나 사관들로 이루어진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이번에 부대가 교체되면서 최기 중령과 마찬가지로 44 교도사단에서 전입해온 군사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들은 혹독한 환경의 무수막 고원 국경지대에서 두억시니만큼 커다란 포각수를 상대로 숱한 전투 경험을 쌓은 이들이었다.
아무리 강용영 무사들이 주나라 황실의 최고 정예들이라지만 갑주도 없이 짧은 환도 한 자루 가지고 전투 경험 많은 수십 여명의 쌍수검병을 오랜 시간 막아내기는 힘들었다.
“황제 폐하 만세~!”
무사들이 환도를 높이 치켜들고 쌍수검병들을 향해 돌격하고,
검은 갑주를 입은 율도군들이 커다란 쌍수검을 무섭게 휘두르며 그들을 겹겹이 에워싸기 시작했다.
마지막 남은 무사와 무녀 연하가 황자를 데리고 토성 앞까지 도착했을 때까지 칼 부딪히는 난전소리가 이어지고 있었지만,
어두운 밤 그보다 더 검은갑주를 입은 율도군들이 둘러싸고 있어서 강용영 무사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있었다.
“전하, 이제 여기만 넘으면 고국입니다! 조금만 기다리소서!”
정국은 아까 말에서 떨어지며 다리를 절고 있었다.
무녀 연하 역시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간신히 토성 위로 오르고 있었다.
토성 위에 도착하자 그들 앞에 철초망으로 된 철책이 기다리고 있었다.
무사가 허릿춤에서 쇠톱을 꺼내 열심히 철조망을 자르기 시작하고, 무녀 연하도 그를 도와 철조망을 뜯어내며 사람이 빠져나갈 크기의 구멍을 내고 있을 때,
팍!
갑자기 무사의 가슴 한가운데에서 날카로운 창날이 튀어나왔다.
율도군이 던진 창이 그의 등을 뚫고 가슴으로 나온 것이다.
“커헉!”
무사는 고통에 신음하며 손에 들고 있던 쇠톱을 땅에 떨어뜨렸다.
놀란 연하가 고개를 들어보니 율도군 보병 수십 명이 좌우에서 자신들을 포위하고 달려오고 있었다.
“무, 무녀님. 어서 전하를...!”
무사는 죽어가면서도 두 사람이 빠져나갈 수 있도록 잘린 철조망을 몸으로 눌렀다.
무녀 연하는 울먹이는 표정으로 정국을 부축해 철조망 사이 구멍으로 들어갔다.
“놈들이 달아난다! 어서 쫓아라!”
멀리서 율도군들이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철조망을 빠져나오니 반대편 토성은 절벽에 가까운 가파른 경사로 되어 있었다.
이 토성을 내려가 조금만 더 가면 진짜 주나라 땅이 나온다.
“황자님, 죄송합니다!”
무녀 연하는 정국을 끌어안은 채 절벽 아래로 몸을 굴렸다.
다행히 토성 일대는 흙과 풀만이 무성한 지역이라 몸으로 데굴데굴 굴러내려 가도 크게 다칠 염려는 없었다.
토성 아래까지 다 내려오자 무녀 연하는 어지러움을 간신히 참으며 정국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황자 전하, 이제 조금만 버티셔요! 정말 고국이 바로 코 앞에...!”
그녀가 황자의 손을 잡아 일으키며 몸을 일으켰을 때,
“하악!”
자신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으며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밤중이라 잘 보이지 않았지만, 이미 그들 앞에 검은 갑주를 입은 율도군들이 창과 칼을 겨누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정국과 무녀 연하가 당황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얼어붙어 버렸을 때,
율도군 사이에서 무관으로 보이는 자가 앞으로 걸어 나오며 말했다.
“그러고보니 우린 구면이군요, 황자님. 그간 잘 지내셨소?”
아픈 다리 때문에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있던 정국이 무관을 올려다보았다.
처음에는 챙이 넓은 투구 때문에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아 잘 몰랐는데,
찬찬히 들여다보니 그가 작년 누리마루에서 만났던 율도군 무관 최기였다는 걸 기억해냈다.
“아, 당신은?”
“다행히 절 기억하시는군요.”
“예린이와 영록이를 구하기 위해 힘을 합쳐 같이 싸운 사람인데, 내 어찌 몰라보겠소?”
“그렇다니 영광입니다. 하지만.”
최기가 손짓을 하자 포승줄을 든 군사들이 두 사람에게로 다가왔다.
“지금은 임무를 수행해야 하니 부득이하게 두 분을 다시 우리 국경지대 안으로 모셔야겠습니다. 황자님의 신분은 알고 있으나 도주의 우려가 있어 부득이 포박하게 되는 점, 너그러이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럼.”
율도군들은 무녀 연하의 팔을 뒤로해서 포박하고, 황자는 손을 앞으로 해서 가볍게 묶은 후 그가 다리를 다친 것을 보고는 들것에 실었다.
두 사람이 다시 토성 위로 끌려왔을 때, 그 아래 율도군들이 시체들과 부상자들을 옮기고 있었다.
강용영 무사 다섯 명은 모두 율도군의 칼에 맞아 절명해 있었고, 율도군도 십여 명이 죽고, 또 그만큼의 수가 부상 당해 치료받고 있었다.
모든 무사들이 희생되었음에도 탈출에 실패하자, 무녀 연하는 토성 아래로 끌려 내려오며 서러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오전 12시, 대월국 서래번 금양장 동쪽 40리 부근 유송천 일대
금양장을 향해 가는 길, 전방의 정찰대로부터 유송천의 모든 다리가 끊겨 있고 하천 뒤에 율도군의 포대와 진지들이 있다는 보고가 본대에까지 전해졌다.
이를 전해 들은 정선교는 이례적으로 자신이 직접 전방 상황을 눈으로 봐야겠다며 친위대장 규영와 대사마 주진경, 육군 대신 창정구 등을 데리고 나섰다.
물론 다른 사람들은 말이나 전차(말을 탈 수 없을 정도로 큰 두억시니들은 주로 말이나 코뿔소가 끄는 전차를 타고 다닌다.) 타고 가고, 천제는 거대한 가마를 편히 앉아 이동했다.
유송천 건너 율도군의 포가 불과 몇 문밖에 없는 걸 확인한 정선교는 작은 눈을 더 가늘게 뜨며 말했다.
“강운예 이 놈...! 또 무슨 계략을 꾸미려고...?!”
정선교가 손으로 율도군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너희들이 보기에 우리가 이 냇가를 건너지 못하게 하려고 율도놈들이 저기서 진지를 파고 기다리고 있는 거라 생각하는가?”
창정구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러기에는 방어 병력들을 너무 적게 배치해 놓은 것 같습니다. 포도 모두... 여섯 문정도 밖에 없고 말입니다.”
“그렇지? 아무리 봐도 정상적인 방어진지가 아니지? 그런데 왜 저놈들이 다리를 끊고 저기서 뭐 하는...”
순간, 정선교의 머리에 퍼뜩 무언가가 떠올랐다.
“잠깐... 과거에도 강운예가 이런 적이 있었던 거 같은데... 혹시 금양장 일대에 율도놈들, 진지 모두 다 만들었다고 하던가?”
주진경이 대답했다.
“정보원들의 보고에 따르면 아직도 땅을 파고 참호를 만드는 소리가 계속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들은 정선교가 무릎을 탁 쳤다.
“역시나! 강운예 이놈이 아직 진지를 덜 만들어서 일부러 시간을 끌려고 그러는 거였구나! 이렇게 해서 우리를 여기에 잡아 두던가 아니면 다른 길로 돌아가게 해서 시간을 벌려는 거였어!”
정선교가 육군 대신을 돌아보며 물었다.
“저 냇가에 다리를 설치하는데 얼마나 걸리지?”
“경계병력과 예비대를 제외하고 공병들과 남은 모든 병력들을 가교 설치하는 데 투입한다면, 내일 점심이면 이 하천을 건널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정선교도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지금 당장 시작하라고 해. 단숨에 저 냇가를 넘어가야 하니까!”
“네, 성하!”
율군 대신이 본대로 급히 돌아가는 사이, 천제가 주진경을 가까이 부르며 말했다.
“천제벽력포들은 지금도 모두 포진에서 대기 중이지?”
“네, 그렇습니다. 성하.”
“그럼 모든 천제벽력포들도 지금 바로 포진지에서 빼서 본대로 이동시키라고 오라고 해.”
“천제벽력포를 좀 더 일찍 옮기려 하심입니까?”
“그렇지. 네가 말한 그곳, 천제벽력포들이 금양장 일대를 사거리 안에 둘 수 있는 곳이 바로 저기 저 곳들이지?”
정선교가 율도군 포대 뒤로 보이는 야트막한 야산을 가리키며 말했다.
“맞습니다, 성하.”
“이번 전투의 성패는 우리가 저곳에 천제벽력포를 설치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 가교가 설치되는 데로 저 앞의 율도군부터 모두 쓸어버리고, 기병들을 보내 저 야산들을 점령해 포진 잡을 곳부터 선점하도록 해라. 두억시니들은 계속 천제벽력포 지키는 데 집중하라고 하고.”
“우리가 가교를 설치하는 동안 율도군들의 기습이 계속 이어질 수도 있으니, 경계 병력을 보다 늘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아, 그리고! 최대한 신속하게 도하를 해야 하니 후방의 부대들도 모두 본대가 있는 곳을 합류하라고 전해.”
“하오나 성하, 그리하게 되면 후방의 경계가 소홀해질 수도 있습니다.”
주진경이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말했지만, 천제는 아무 일 없을 거라는 듯 손을 휘휘 내저을 뿐이었다.
“어차피 율도놈들은 어제처럼 멀리서 총이나 활만 쏘면서 겁만 주고 달아나기만 할 것이다. 갑자기 몰려와 덮칠 염려는 별로 없을 것이니 내 말대로 진행시켜.”
“네, 성하...”
주진경은 씁쓸하게 입맛을 다시며 본대가 있는 곳으로 말머리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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