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6화 〉 대동력 9,994년 5월 42일 (5)
* * *
오후 1시, 대월국 서래번 북쪽 일대
행군 중인 천제국군의 우측 전방에서 산병을 담당하고 있던 271연대는 도깨비와 두두리들이 섞여있는 부대였다.
덩치 큰 두두리들이 맨 앞에서 두 손으로 창을 꼬나 잡고 5열 횡대로 서서 진을 갖추고 있었고,
그 뒤로 활과 쇠뇌, 총을 든 도깨비들이 무리지어 화망을 구성한 채 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 명을 기다려라!”
“쫄지마라! 율도 놈들도 피와 살로 된 똑같은 사람이다! 창에 찔리고 화살에 맞으면 다 죽는단 말이다! 침착하게 대응만 잘 하면 된다!”
지휘관들이 칼을 휘두르며 독려해보았지만 겁을 잔뜩 집어 먹은 병사들의 표정은 쉽게 변하지 않았다.
두 두 두 두 두 두...!
대지를 울리는 무서운 말발굽 소리와 함께 칠흑같이 검은 갑주로 중무장한 율도군 철기병들이 해일처럼 밀려오고,
이를 지켜보고 있는 창을 든 두두리 병사들의 눈동자는 미친듯이 흔들리고 있었다.
부대 임무 자체가 행군하는 본대의 측면을 수색하며 위험을 알리는 역할이라, 지금 이곳에 있는 병사들 모두 가벼운 무장만을 하고 있었다.
방패를 가지고 있는 자도 없었고, 그들이 들고 있는 6자(약 2m) 남짓 되는 길이의 창도 대기병용으로 쓰기엔 턱없이 짧은 것이었다.
율도군들이 100보 가까이로 들어오자 천제국군 지휘관이 다급히 손을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사수, 준...”
지휘관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
뿌우우우우우우~!
달려오는 율도군 기병들 사이에서 뿔나팔 소리가 울려퍼졌다.
이것을 신호로,
측면으로 넓게 벌려서 말을 달려오던 경기병들이 일제히 활을 날리기 시작했다.
양쪽에서 대각선으로 날리는 교차사격이었다.
무수한 화살들이 검은 빗줄기가 되어 잠시 하늘을 뒤덮는가 싶더니,
슈슈슈슈슈슈슉!!!
소름 돋는 공기 찢는 소리와 함께 천제국군 머리 위로 매섭게 내리 꽂혔다.
“으, 으악!”
“끄아아아악!”
수백여 명의 병사들이 화살에 맞아 쓰러졌다.
창을 든 병사건 활이나 총을 든 병사건 화살에 맞지 않은 자들도 머리를 감싼 채 그 자리에 넘어지고 웅크리기 바빴다,
“창을 머리 위로 올려! 창을 흔들어 화살을 막아야 한다!”
뒤늦게 창을 들고 흔드는 이들이 있긴 했지만,이와 같은 방어법도 다수의 병력이 한데 모여 최소 12자(약 3.6m) 이상 되는 길이의 장창을 일제히 흔들어야 어느 정도 방어가 가능한 것이지 몇 명이 그런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창병들의 진은 와해되고 활과 쇠뇌, 총을 든 사수들도 일제 사격 시기를 놓쳐버린 채 우왕좌왕 하고 있는 동안,
율도군 기병들은 벌써 그들이 있는 곳 전방 50보 앞까지 들어와 있었다.
뿌우우, 뿌우우우우우우~!
두 번째 쁠나팔 소리가 들렸다.
간신히 화살을 피해 살아남은 병사들이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힌 표정으로 고개를 든 순간,
달리는 말 위에서 뇌홍식 강선소총을 어깨에 견착하고 조준사격 자세를 취하고 있는 율도군 기병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탕!
탕! 탕! 탕!
타당! 탕! 타당! 타다당! 탕! 탕!
앞서 달려 나오던 총기병들이 일제히 방아쇠를 당기고,
1열에 서 있던 두두리 병사들은 물론 그 뒷열에 있던 이들까지 탄환에 관통 당해 그대로 죽어 넘어지기 시작했다.
“모두 박살내라!”
“모두 박살내라!”
“와아아아아아아아!!!”
사격을 마친 총기병들 사이로 장창을 꼬나잡은 철기병들이 무서운 함성을 내지르며 달려나왔다.
화살비가 떨어지고 총탄 세례까지 퍼부어진 후라 제대로 창을 들고 맞서는 천제국군은 더이상 찾아 볼 수 없었다.
율도군 철기병들이 해변의 모래사장을 덮치는 거친 검은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쾅!!
콰직!!
“으아아아아악!”
철기병들의 단 한 번의 돌격으로, 창병들로 구성된 방어진은 완전히 분쇄되어 버렸다.
장창에 꿰인 자, 군도에 몸이 두 동강난 자, 편곤에 맞아 투구 째 머리가 깨어진 자,
철갑으로 중무장한 군마들에게 들이받혀 저만치 날아가 버리거나 말발굽에 짓밟혀 죽은 자.
보통 한자손이나 아리랑보다 덩치가 큰 두두리들이었지만 거대한 군마를 탄 율도군 기병 앞에서는 너무나 왜소해 보이기만 했다.
철기병들이 창병 진영을 깨뜨리고 쓰러진 잔적들을 소탕하려 할 때,
전장에 징소리가 크게 메아리쳤다.
“전 철기병 부대 반전! 공격을 멈추고 모두나를 따라와!”
갑자기 임강현 중장이 회군 신호를 보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학살을 시작하려는데 회군이라니.
철기병 무사들 모두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말머리를 돌렸다.
철기병들이 임강현 중장을 따라 동쪽으로 물러나는 사이,
적의 측면으로 돌아간 경기병들이 날랜 움직임으로 말을 달리며 활과 총을 든 천제국 도깨비들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활이나 총을 든 이들 중 근접전 무기를 가지고 있는 이들은 드물었다. 기껏해봐야 짧은 단도나 나무 몽둥이를 준비해 온 이들이 조금 있을 뿐.
율도군과는 달리 천제국군들 태반이 이번 전쟁을 위해 급히 징집된 인원들인지라 무장이 제대로 되어 있을리 만무했다.
최후의 수단으로 활과 총을 몽둥이 삼아 휘둘러 보기도 했지만 그걸로 잘 훈련되고 잘 벼려진 창과 군도 등으로 무장한 율도군 기병을 상대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아직 전장식 소총이 대부분인 대동에서는 과거 근대 유럽과 같이 총에 대검을 꽂아 백병전 때 사용하는 전술을 선호하지 않았다.
총이나 화약이 워낙 고가인지라, 총을 백병전 때 사용하는 걸 낭비라고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천제국군들이 제대로 된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율도군들에게 무참히 도륙당하던 중,
또다시 징소리가 들려왔다.
경기병들도 모두 공격을 멈추고 회군하라는 신호였다.
“쳇, 진짜 재미 좀 보려는데 왜 공격을 멈추라는 거야?”
“놈들 지원군이라도 오고 있는 건가? 신임 군단장이 뭔가 생각이 있나 보지.”
무사들은 적들을 더 베지 못한 것이 아쉬운 듯 살아 남은 천제국군들을 무섭게 쏘아보고는 말머리를 돌려 동쪽으로 향했다.
율도군들이 돌아가는 걸 본 천제국군들은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았다.
“아아, 천제 성하...!”
“와~! 진짜 죽는 줄 알았네~! 오늘이 내 제삿날인 줄 알고 바지에 지릴 뻔 했는데~!”
살아남은 천제국군들이 희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멀어져가는 율도군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
펑...!
펑...! 펑...!
갑자기 후방에서 포격 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우리 군이 쏜 건가?”
“우리가 공격 당하는 걸 알고 그 천제 모시기인가 하는 이번에 새로 만들었다는 그 포를 쏜 모양인데?”
“염병~! 쏠라면 다 뒈지기 전에 진작 쏠 일이지! 왜 이제서야 쏘고 지랄이야!”
“놈들이 저거 쏘는 줄 알고 미리 달아난 건가? 엄청 멀리 있다고 들었는데 포 쏘는 소리가 여기까지 다 들리네?”
“포 쏘는 소리만 들리는 게 아닌거 같은데? 뭔가 날아오는 소리도 같이 들... 응?!?!”
살아남은 천제국군들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 보았을 때,
거대한 원형 물체가 자신들의 머리 위로 곧바로 떨어지고 있는 게 보였다.
“지금 우리 군이 쏜 포탄이 우리 있는데로 날아오는 거냐...?”
천여명의 천제국 병사들 모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멍하니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쾅!!! 콰아아아아앙!!!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발밑의 땅까지 부르르르 흔들렸다.
이미 율도군 모두 폭발 위험 반경 밖으로 안전하게 빠져 나왔지만, 공중으로 튀어오른 돌과 파편 등이 어디로 어떻게 떨어질지 모르므로 여전히 동쪽을 향해 말을 달리는 중이었다.
거대한 검은 구름이 하늘 위로 치솟아 올랐을 무렵,
이를 본 임강현 중장이 급히 손을 들었다.
“전군 정지! 잠시 이곳에서 숨을 고르고 다시 공격 준비를 한다! 말에게 물을 먹여라!”
군단장의 명에 따라 무사들은 각기 제대별로 모여 말에 물을 먹였다.
말도 사람도 모두 한바탕 휘몰아치고 온 탓에 다들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군단장님! 여기 오래 있으면 좋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곳도 적의 신무기 사거리 안 입니다.”
군단 작전 참모가 다가와 급히 소리쳤다.
임강현 중장은 자신의 허릿춤에 있던 가죽 수통을 꺼내 벌컥벌컥 물을 들이키고는 덤덤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알고 있어! 놈들 보라고 일부러 이리로 온 거야!”
“네? 일부러, 라고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건 그렇고, 자네 포에 대해 잘 알고 있지?”
“네, 포병 병과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론적인 건 알고 있습니다.”
“적의 신무기 제원에 대해서도 들었지? 놈들이 아까 초탄 쐈잖아? 그럼 지금 우리 있는 곳으로 포구 돌려서 후속탄 쏘려면 앞으로 얼마나 더 시간이 걸릴 거 같아?”
“아마... 천제국의 신무기가 엄청난 크기의 거포이고 장약도 엄청나게 들어가는 만큼 포신이 식는 시간이 다른 포에 비해 몇 배 더 필요하긴 하겠지만... 길어도 앞으로 몇 분 후면 재장전 마치고 다음 탄을 날릴 수 있을 겁니다.”
그 말을 들은 임강현 중장이 기병 무사들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전군, 지금 당장 이동 준비! 아까 거기로 다시 돌아 가서 남은 놈들을 모조리 쓸어버린다!!!”
임강현 중장은 수통의 물을 다시 한 모금 삼킨 후 말에 박차를 가하며 기병들의 선두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군단 참모들 모두 잔뜩 질린 표정으로 군단장을 따라 앞으로 나가고,
명을 받은 기병들은 다시 인원과 무기, 장비, 말의 상태를 확인한 후 아까 천제국들이 있던 곳으로 돌아갈 준비를 서둘렀다.
펑...! 펑...! 펑...!
율도군들이 다시 천제국군 271연대가 있던 곳을 향해 말을 달리기 시작한 지 얼마 후,
거짓말 같이 저멀리 동쪽에서 천제벽력포의 포성이 들려왔다.
적이 사거리 안으로 들어오면 곧장 천제벽력포를 쏘라는 정선교의 명령에, 4문의 포대가 곧장 포구를 돌려 시야에 들어온 적을 향해 포탄을 날린 것이다.
하지만 포탄을 날리는 것과 거의 동시에 율도군 기병들 모두 쏜살같이 착탄 지점을 벗어나 버렸고,
쾅, 쾅, 콰아아앙!!!
거대한 폭연을 뒤로 하고 들판을 가로지르며 말을 달려 나갔다.
천제국군은 고작 10여발이 넘는 포탄을 쏘았을 뿐이지만,
다른 포와 비교해 1발당 10여배의 위력에 10여배 이상 가는 재정이 들어가는 물건을 허비하고도,
단 한 명의 적에게도 피해를 주지 못한 것이다.
임강현 중장이 이끄는 율도군 1사단 기병들이 다시 천제국군 271 연대가 있던 곳으로 돌아왔을 때,
포탄이 떨어진 자리에 생긴 거대한 구덩이 주변으로, 검게 타버린 시체 조각들과 폭발 소리에 귀가 먹은 듯 바닥을 기어다니며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는 생존자들이 뒤엉킨 아비규환의 지옥이 그들 앞에 펼쳐졌다.
“살아 있는 놈들만 처리하고 재빨리 돌아갈 것이다! 언제 놈들의 포탄이 날아올지 모르니 전리품은 챙기지 마라!”
임강현 중장의 명에 따라 기병 무사들은 아직 살아있는 천제국군들을 창으로 찌르고 활로 쏘아 죽이며 서둘러 전장을 정리했다.
그렇게 더 이상 살아 숨쉬는 적병이 보이지 않게 되자,
임강현 중장은 회군의 징을 치기 시작했다.
돌아가는 길에 참모 하나가 웃으며 말했다.
“군단장님! 아까 수천명 정도 죽일 수 있는게 아니면 전투가 아니라 단순한 군사 작전이라고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그런데 아까 보니 우리가 죽인 적의 수가 적어도 1개 연대 규모, 2, 3천명은 되어 보이던데요?”
그 말에 임강현 중장도 멋쩍은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럼 뭐 그냥 전투라고 치지 뭐! 이번 일 작전 일지에 단순 군사 작전이라 적지 말고 전투, 라고 적으라고 해! 누가 뭐라고 하면 그냥 죽이다 보니까 어쩌다 많이 죽인 거라고, 지들 신무기에 맞아 죽은 천제국 놈들도 많다고 그렇게 쓰라고 하고!”
임강현 중장이 이끄는 기병들은 나머지 군과 합류하기 위해 다시 북쪽으로 말을 달렸다.
오후 3시, 대월국 서래번 금양장
친위군단 기병부대 대부분이 남북으로 흩어져 동진하는 관계로 강운예가 직접 이끄는 부대는
1군단 예하 105 군경 여단과 106 공병 여단, 107 비화포 여단, 108 포병 여단, 적영단과 청영단,
3군단 예하 4보병 사단과 110 포병 여단, 112 공병 여단 정도였다.
강운예는 먼저 4보병 사단과 각 군단 공병 여단 병력들을 동원해 결정적 전투가 벌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금양장 일대에 참호를 구축하도록 했다.
마치 이곳이 천제국군을 저지하기 위한 최후 방어선처럼 보이게 하려는 것이다.
금양장은 대월국에 몇 안 되는 상업도시 중 하나였다. 이곳 역시 율도에서 태진과 천제국 등 대동 동부로 이어지는 초원길이 지나는 곳으로 원래 지명은 금양이었으나 5일에 한 번씩 장이 서는 시장이 생기면서 금양장이라 불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대월국이 내전에 휩싸이고 율도와 천제국 양국의 군대까지 들어오면서 이곳 금양장을 주기적으로 찾던 상인들 모두 발길을 끊은 상태였다.
그나마 주변 상인들과 인근 주민들이 생계를 위해 장을 찾기는 했지만 과거처럼 시끌벅적하게 사람들이 붐비는 풍경은 아니었다.
강운예는 전속 부관, 그리고 적영단 무사들과 함께 이곳 금양장을 둘러보던 중이었다.
손님 하나 없는 점포와 휑하니 먼지만 굴러다니는 장터 거리에 남아 있는 상인들은 화려한 검은빛 갑주에 숫사자의 황금빛 머리 가죽을 어깨에 두르고 있는 강운예와 붉은 방풍의를 걸치고 있는 적영단 무사들을 호기심과 두려움 가득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모두들 그들을 보고 율도군의 고위 무관이라고만 생각하지, 설마 말로만 듣던 바로 그 율도의 태상국 강운예라는 걸 눈치채지 못한 모습이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지금 전쟁 중이라는 걸 알 텐데도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군. 하나뿐인 삶의 터전이라 버리고 떠나기 쉽지 않은 모양이야...”
강운예는 길바닥 위에 나물과 채소 등이 담긴 바구니를 늘어놓고 힘없이 쭈그려 앉아 있는 도깨비 노파를 보고는 씁쓸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러던 중 만두 가게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대동의 만두는 주나라의 황제 황치우와 그와 함께 대동으로 건너온 마루한들에 의해 전래되었다고 전해진다.
황치우는 물론 그와 함께 온 마루한들 모두 현실 세계에 있을 때 조선의 평안도 이북 지방에 주로 살았다고 하는데, 그래서 만두, 냉면 등 한반도 북쪽에서 유행하던 음식들이 고스란히 전해졌다고 한다.
다만 드넓은 대동 땅에 새로운 음식문화가 퍼져 나가면서 만두 역시 지역에 따라 그 맛과 형태가 조금씩 다르게 발전했는데,
대동 남부에 자리잡아 다른 곳보다 날씨가 덥고 습한 율도 같은 경우 현실 세계 중국의 춘권이나 베트남의 짜조와 비슷한 튀긴 형태의 만두가 많은 반면,
대월국의 만두는 성인 남자의 손바닥만큼 크고 둥그런 왕만두 형태를 주로 하고 있었다.
마침 가게 안에서 주인으로 보이는 중년의 남자 도깨비가 펄펄 끓는 뜨거운 솥안에 만두가 든 나무찜통을 넣고 있었다.
만두를 찌고 있긴 하지만 이게 과연 오늘 안에 팔릴 수 있을까,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말이다.
이를 보던 강운예가 곁에 서 있던 전속부관에게 물었다.
“지금 참호 작업하고 있는 병력이 얼마나 되지?”
“4보병 사단과 2개 공병 여단 병력이니, 약 15,000 정도 됩니다.”
“15,000명...”
강운예가 고개를 끄덕이며 만두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이보시오, 주인장.”
“네, 어서... 옵쇼...”
남자 도깨비는 솥뚜껑을 닫다 말고 가게 안으로 들어온 율도군들을 잔뜩 경계하며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혹시라도 약탈하러 온 건 아닌가 불안해 하는 모습이었다.
“왕만두를 좀 많이 사려고 하는데, 혹시 하루에 몇개나 만들 수 있소?”
“몇 개나 사시려구요? 장터 찾는 손님 발길은 끊긴지 오래지만 만두 재료는 계속 공급 받고 있어서 몇 개를 주문하시든 얼마든지 만들어 드릴 수 있긴 한데... 많이 필요하시다면 저희 가족 친지 다 불러서 만두 만들면 하루에 몇 천개... 아니, 몇 만개도 쪄낼 수 있습죠!”
만두를 사겠다는 말에 도깨비가 반색을 하며 말했다.
“아, 그래요? 그럼 만두 가격은 얼마나 합니까? 혹시 율도 금화나 율도의 어음도 받으시오?”
“아이고, 요즘 같은 세상에 율도 금화나 어음이면 안 통하는데가 없죠! 당연히 다 받습니다요~!”
“잘 되었군요. 그럼...”
전속부관이 품에 있던 어음 용지를 꺼내서 건네주고,
강운예가 여기에 금액을 적고 수결(싸인) 하고는 도깨비에게 내밀었다.
“왕만두 3만개, 시장 뒤에 있는 율도군 진지로 가져다 주시오. 꼭 오늘 중으로 다 갖다줄 필요는 없고, 오늘 내일 안에 되는 대로 약속된 숫자만 맞춰서 가져다 주시면 됩니다. 남는 금액은 그냥 가지셔도 되고.”
3만개라는 말과 어음에 적인 금액을 보고 주인장은 놀라 입이 떡 벌어졌다.
“아, 아아...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으리! 이놈의 전쟁 때문에 며칠 간 만두 하나 팔지 못해 앞날이 막막하던 차였는데 이렇게나 많이 주문을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으리~! 제가 저의 가족 친지 다 불러서 정성을 다해 만들어 바치겠습니다~!”
“네, 군사들 먹일 거니까 잘 부탁합니다. 그럼...”
강운예와 무사들이 가게를 나서려 할 때, 가게 주인이 헐레벌떡 뛰어 나왔다.
그의 품안에는 찜통에서 막 꺼낸 듯 김이 모락 모락 나는 갓 쪄낸 왕만두 수십여 개가 가득 담긴 바구니가 들려 있었다.
“나으리, 이건 제 성의입니다. 함께 오신 분들과 나눠 드시지요!”
“허허, 뭐 이런건 필요 없는데... 아무튼 주시는 거니 감사히 먹겠습니다.”
“네, 살펴 가십시오, 나으리~! 저희가 후딱 만두 쪄서 율도군 있는 곳으로 가져다 드리겠습니다요!”
옆에 있던 적영단 무사가 왕만두가 든 바구니를 대신 받아 들고,
강운예는 그 중 하나를 집어들었다.
이제 막 쪄낸 거라 엄청 뜨끈뜨끈한게 바로 입에 넣었다가는 입천장까지 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손에 왕만두를 들은 채로 천천히 시장 거리를 계속 걸었다.
그 때,
뒤에서 요란한 말발굽 소리와 함께 다섯명의 율도군 기병들이 달려왔다.
강운예의 직속 전령들, 청영단 무사들이었다.
“대원수 기하께 보고드립니다!”
무사들이 말에서 내려 그에게 군례를 올리며 말했다.
“서래번 북쪽으로 향했던 1군단 병력들이 몇 시간 전 1개 연대 규모의 천제국군과 조우, 모두 전멸시켰다고 합니다.”
“응? 전멸? 굳이 싸우며 갈 필요 없다고 일렀거늘...”
예상치 못한 일에 강운예도 황당해 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1군단에서 보내온 보고서를 받아 주욱 읽어보고는 이내 표정이 밝아졌다.
“하하, 어떻게 임충이나 그 후손되는 임강현이나, 하는 짓이 이리도 똑같을 수 있나?”
곁에 서 있던 전속부관이 말했다.
“1군단장이 또다시 독단적으로 행동해 기하의 명을 어긴 게 아닙니까?”
강운예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적의 시선을 잡아두라는 명을 확실히 수행한 거니 상관없어. 게다가 적의 신무기, 사거리에 따른 탄착지점까지의 포탄 도달 시간도 알아냈고. 그리고 또.”
그가 아스라히 보이는 북쪽의 산악지대를 가리키며 말했다.
“1군단장이 천제국 놈들의 시선을 완전히 잡아둔 덕에 지금 저기를 돌아 적의 후방으로 돌아가고 있을 내 친위 여단들의 이동 상황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게 만들었잖아? 그러니 오히려 칭찬을 해 주어야겠지.”
강운예가 1군단에서 보내온 보고서를 모두 읽자, 청영단 무사가 다음 보고서를 꺼내 올렸다.
“흠... 대월국 7왕자가 이미 흥원으로 들어왔고 예나도 곧 도착할 거라고...? 그럼 이 두 사람에 대해서도 경호 의전을 붙여줘야겠지?”
강운예가 부관을 돌아보며 말했다.
“일단 두 사람이 도착하면 6사단 군경대에서 먼저 경호를 맡고 있으라 하고, 이곳에 있는 친위 군경 여단 인원 중 일부를 차출해 흥원 주둔지로 보내 두 사람에 대한 경호 임무를 인수받을 수 있게 하도록.”
“네, 그리 전하겠습니다. 기하.”
“그리고, 은허를 포위하고 있는 반란군들 동향에 대한 추가 보고는 없었나?”
“흑영단에서 곧 보고를 올릴 예정이라고 합니다.”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7왕자를 은허로 입성시켜야 하니 준비되는 대로 바로 보고하라고 해.”
“네, 기하.”
강운예가 들고 있던 보고서들을 모두 전속부관에게 맡기고 손에 들고 있던 왕만두를 한 입 베어물으려고 할 때,
청영단 무사가 급히 입을 열었다.
“하옵고, 기하. 따로 보고서는 준비되지 않았으나 본국에 있는 5군단 사령부에서 보낸 전갈이 하나 남아 있습니다.”
“5군단? 초원길에 무슨 일이라도 있다는 건가?”
“그런 건 아니옵고... 오늘 새벽 큰 영애께서 5군단 예하 직할대로 걸어 들어오셔서 지금 해당 부대에서 신변을 보호 중이라고 합니다.”
“뭐?!?! 우리 예린이를 찾았어?!?!”
강운예가 붉게 상기된 얼굴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