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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춘추 - 리부트-140화 (140/217)

〈 140화 〉 대동력 9,994년 5월 41일 (3)

* * *

­ 오후 7시, 대월국 호문번 서쪽 일대

본대로부터 좌측 전방 5리 (약 2km) 가량 떨어져 산병 역할을 하고 있는 천제국 부대는 도깨비들로 구성된 보병 연대였다.

이들은 행군로 좌측에 펼쳐진 평야 지대를 수색하며 전진하고 있었는데,

이 곳은 논과 밭, 경작지가 넓게 펼쳐져 있는 탁 트인 벌판이라 말을 탄 율도군 기병들이 나타나면 쉽게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율도 놈들을 발견하면 멀리 있든 가까이 있든 맞든 안 맞든 바로 총을 쏘라고 그랬지? 연대장이 왜 그런 명령을 내린 거지?”

수석식 총을 들고 있는 도깨비 병사가 총몸 위 화약 접시 안에 든 점화 화약을 가볍게 흔들며 의아하다는 듯이 말했다.

“왜긴 왜겠어? 본대에 적 출현을 알리려고 그러라는 거 아냐. 아, 너는 전쟁에 처음 나와 보는 거라 그런 거 잘 모르겠구나?”

“응, 총 쏘는 법도 이번에 군대 끌려와서 3일 배운 게 다 인데... 뭐 쏴 맞추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아무데나 쏴도 된다고 했으니 걱정할 건 없겠지?”

병사는 화약 접시의 덮개를 닿고는 부싯돌이 잘 아물려져 있는지 불안한 듯 손으로 흔들어 보았다.

“맞아. 우리 임무는 적이 나타나면 총을 쏴서 알리는 게 전부야. 부담 가질 필요 없어.”

“부담은 없는데, 그럼 적 발견하고 총을 쏜 다음에는 뭘 해야 하지? 연대장이 그것까지 말해주지는 않았잖아?”

“뭐... 우리 중대장이 하라는 데로 싸워야겠지?”

“이 벌판 위에서? 야, 연대장이 이번에 싸울 놈들은 모두 기병일거라고 했잖아? 우린 다 보병들인데 이런데서 기병들을 상대할 수 있겠어? 모두 개죽음 당하는 거 아냐?”

“등신아, 눈은 뒀다가 뭐하냐? 옆에가 다 논이고 밭이잖아? 벼랑 밀들이 저렇게 가득 자라 있는데, 말 탄 놈들이 저걸 다 해치고 우리 있는 데까지 달려올 수 있을 거 같아?”

마침 해도 뉘엿뉘엿 서쪽으로 넘어가고 저녁노을에 벌판의 논과 밭들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이제 잠시 후면 오늘 행군을 종료하고 숙영 준비를 하게 될 것이다.

병사들은 행군의 노곤함에 무기들 양 손에 들고 기지개를 켜며 크게 하품을 하기도 했다.

그 때,

바스락

바스락

넓게 펼쳐진 밀밭 사이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고 황금빛 밀들이 이리저리 움직이는가 싶더니,

슉!

슈슈슉!

날카로운 화살들이 천제국 병사들을 향해 날아들었다.

밀밭 사이에 매복해 있던 율도군들이 기습을 시작한 것이다.

“으악!”

흉부 정도에만 비늘 모양 찰갑이 붙어 있는 가벼운 가죽 갑옷을 입고 있던 도깨비 병사들의 몸은 너무나도 쉽게 화살에 꿰어졌다.

율도군들의 첫 번째 표적은 총을 든 병사들이었다.

해가 뉘엿뉘엿 지는 저녁 어스름에도 그들은 천제국 산병들 가운데에 있는 총병들만을 기가 막히게 식별해 한 명씩 한 명씩 정확하게 쏘아 맞추고 있었다.

“밀밭에 적! 밀밭에 적군이다!”

“율도군이다! 율도군들이 나타났다!”

“총을 쏴라! 어서 총을 쏴!”

“총! 총 가진 사람 더 없어?”

일순간에 수십여 명이 화살에 맞아 쓰러지자 천제국 병사들은 아우성을 치며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밀밭에서 검은색 갑주를 입은 율도군들이 하나 둘씩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어떻게 숨어 있었는지, 커다란 군마들도 함께 벌떡 벌떡 일어나고 있었다.

율도군의 군마들은 매복시 자리에 납작 엎드리는 훈련을 받는다. 그래서 이와 같은 상황에서 자신의 주인과 함께 밀밭에 자세를 낮추고 함께 적을 기다릴 수 있었던 것이다.

모습을 드러낸 율도군 기병들이 재빨리 말 위에 올랐다.

그리고는 활 대신 칼과 편곤, 철퇴 등 근접무기를 꺼내 들었다.

“모두 박살내라!”

“모두 박살내라!”

수십 명의 율도군 기병들이 함성 소리와 함께 황금빛 밀들을 헤치며 천제국 병사들을 향해 돌격했다.

“으으, 어, 어떡..”

밀밭 가까이에 있던 도깨비 병사가 손에 들고 있는 창을 간신히 꼬나 잡고 자신이 있는 곳으로 무섭게 말을 치달려오는 율도군 기병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벌벌 떨고 있는 것도 잠시,

기병이 손에 든 편곤을 어깨 위로 들어올렸다.

“으, 으아아아아악~!”

겁에 질린 병사가 두 눈을 질끈 감고 창을 머리 위로 아무렇게나 치켜 올렸다.

그 순간,

기병의 손에 들른 편곤이 허공 위에서 춤을 추듯 원을 그리는가 싶더니,

창을 기가 막히게 피해 도깨비 병사의 머리로 날아들었다.

긴 곤봉 끝에 쇠사슬로 연결된 타격봉이 달린 형태의 무기인 편곤.

율도군의 편곤은 타격시 파괴력을 더 크게 하기 위해 2자 (약 60cm) 길이의 두꺼운 쇠뭉치로 된 타격봉이 달려 있었다.

무섭게 가속이 붙은 편곤이 병사의 투구를 가격하고,

따악!

소름끼치는 쇠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도깨비 병사의 목이 그대로 옆으로 꺾여졌다.

천제국 일반 병사들이 쓰는 투구는 머리를 감싸주는 부유대와 지지대 등이 제대로 갖춰진 물건이 아니었다.

투구를 때린 편곤의 타격력은 머리로 고스란히 전달되었고,

도깨비 병사는 두 눈이 까뒤집어진 채로 외마디 비명과 함께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총 있는 사람, 총 있는 사람 어디 없나? 일단 빨리 총부터 쏘라고! 아무데나 대고 총부터 쏘란 말이다!”

산병 역할을 하기 위해 제대로 된 진을 구성하지 않고 산개해서 수색을 실시하며 이동하던 도깨비 병사들은 불과 수십여 명의 율도군 기병들에게 마구 도륙 당하고 있었다.

이들 대부분이 기본적인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 게 너무 티가 났다.

화살에 맞아 죽지 않은 총병들 중 놀라 달아나거나 총을 땅에 떨어뜨린 자들이 부지기수였던 것이다.

율도군이 사용하는 뇌홍식 총기와 달리 부싯돌이 달린 수석식 소총의 경우 총구 내부에 화약과 탄을 집어넣는 것 외에도 부싯돌이 부딪히는 부분 아래 화약 접시에도 점화 화약을 담아 줘야 한다.

화약 접시에도 덮개가 있어 이를 덮어주면 점화 화약이 새는 일은 없지만, 만약 총을 땅에 떨어뜨리거니 강한 외부 충격을 받으면 덮개가 열리면서 점화 화약이 쏟아지는 일이 잦았다.

점화화약이 없으면 총구 안에 화약과 탄이 있어도 총은 격발은 되지 않는다.

놀라 총을 땅에 떨어뜨린 병사들이 다시 총을 집어 들고 방아쇠를 당겨보았지만,

딸깍

딸깍 딸깍

부싯돌이 화약접시를 때리는 소리만 날 뿐 총이 발사될 리 없었다.

“으아아... 으아아아아...!”

총병들이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며 황급히 허리에 차고 있던 화약병을 꺼내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화약 접시에 점화 화약을 채우려고 해보았지만,

“어딜!”

금세 눈치 채고 말을 달려온 율도군 기병들이 휘두르는 군도에 그대로 몸이 두 동강 나버리기 일쑤였다.

검은 갑주의 율도군 기병들이 이리 뛰고 저리 달리며 천제국 보병들을 마구 짓밟아 가고 있을 때,

탕..!

탕...!

타당...!

어디선가 총소리가 들려왔다.

후속하던 부대에서 아군이 율도군 기병들의 기습에 속절없이 무너지는 것을 목격하고 허공에 총을 쏘았던 것이다.

총소리가 하늘에 메아리칠 무렵,

피로 붉게 물든 밀밭 주변으로 붉은 저녁노을이 진 후 검은 어둠이 밀려오고,

붉은 노을빛에 젖은 밀밭 너머로 어둠처럼 검은 빛의 갑주를 입은 또 다른 수백의 율도군 기병들이 마치 먹잇감을 발견한 늑대들처럼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총소리와 함께 천제국의 각 부대에서 말을 탄 천제국 전령들이 어지러이 달리기 시작했다.

천제가 있는 본대로, 병력 지원을 해 줄 수 있는 인접 부대로,

그리고 천제벽력포가 배치된 후방으로.

행군로 좌전방에서 율도군 기병들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포병들은 천제벽력포의 포구를 그들이 있는 방향으로 돌리고 발포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사이 추가로 나타난 수백의 율도군 기병들이 밀밭을 건너 천제국 병사들을 마구 살육하고 다시 말머리를 돌려 달아나려 하고 있었다.

이미 수백이 넘는 적병을 쓰러뜨리고 적진을 혼란스럽게 했으니, 이제 다음 공격은 다른 부대에 맡기고 철수하려는 것이었다.

언덕 위 포진지에서 망원경으로 통해 검은 갑주를 입은 율도군 기병들이 유유히 북쪽을 향해 사라지는 것을 관측하고 있던 천제국 포병 지휘관에게 천제의 전령이 도착했다.

“...천제 성하의 명을 전합니다! 지금 당장 모든 천제벽력포를 율도군이 있는 곳을 향해 발포하라 하십니다!”

포병 지휘관은 지금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은 아닌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전령에게 되물었다.

“그게 정녕 천제 성하의 명이 맞는가? 지금 율도군을 향해 발포하면 저곳에 있는 아군들까지 모두 폭발 반경 안에 들어가게 된단 말이다!”

그의 말대로 율도군 기병들이 있는 곳에는 수백의 천제국 병사들이 남아 있었다.

부상자는 물론 혹시 율도군들이 기수를 돌려 다시 달려들지 않을까 무기를 들고 대치하고 있는 병력들까지.

만약 저 곳으로 20여문의 천제벽력포의 포탄이 떨어지게 된다면, 수백여 명의 율도군은 물론 그와 비슷한 수의 천제국 병사들까지도 모두 폭발에 휘말리게 될 것이 자명했다.

또,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인접부대들에게까지 폭발에 의한 파편들이 날아들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천제 성하의 명을 따르지 않는다면 난...’

당연히 명줄을 부지하기 힘들어질게 뻔했다.

그렇다면 더 생각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전 포 발사 준비! 깃발을 흔들어 각 포진에 발포 준비 명령을 하달하라! 목표는 사거리 내의 율도군 기병!”

양손에 깃발을 든 포병들이 일사분란하게 깃발을 흔들어 포병 지휘관의 명을 전하고,

이윽고 각 포진지에서 발포 준비가 완료되었다는 신호가 도착했다.

“전 포... 발포!”

꽝!

꽈광!

꽝, 꽈과광~!

대동 천지를 뒤흔드는 포격의 굉음과 함께 커다란 원형 포탄들이 붉은 저녁 하늘을 가르며 날아가고,

이윽고,

고막이 찢어지는 듯한 폭발음과 함께, 행군을 중단하고 사방을 경계하던 천제국 병사들은 두 발을 딛고 있는 대동 땅이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폭발의 충격으로 인해 천제가 있는 수레의 가옥마저도 흔들릴 정도였다.

밀과 벼가 황금빛으로 풍성하게 익어가던 호문번의 벌판은 삽시간에 시커먼 폭발의 연기에 휩싸여 있었고,

철수하던 율도군 기병들의 모습도,

그곳에 남아 있던 천제국 병사들의 모습도,

더는 찾아볼 수 없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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