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동춘추 - 리부트-131화 (131/217)

〈 131화 〉 대동력 9,994년 5월 39일 (1)

* * *

­ 오전 7시, 율도 홍진 대원수부 원정군 임시 숙영지

강운예가 이끄는 율도군의 행군은 매우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오늘 중으로 흥원 입성이 가능할 정도로 말이다.

대월국과의 국경을 코앞에 둔 홍진에 다다랐을 때쯤, 4군단 무사들이 두억시니들을 이용해 대월국왕과 왕자를 암살했다는 소식과 정선교가 이끄는 천제국의 친정군이 대월국 안으로 진입했다는 소식이 동시에 전해졌다.

강운예는 마음이 급해졌다.

조금이라도 빨리 박윤수 중장이 이끄는 군과 합류하기 위해서라면 군사들의 점심은 이동 중에 먹여야 할 것이다.

강운예 본인 역시 그럴 예정이었다. 그래서 출발 전 아침 식사만은 든든히 먹어두려는 참이었다.

홍진 관청의 대연회장에서 준비된 금일 아침 식사는 이번 원정에 참여하고 있는 군단장 및 사단장, 대원수부 예하 친위 부대 여단장들과 주요 참모 수십여명이 참석해 동석 식사로 이루어졌다.

이동간 식사는 모두 행군로에 위치한 지역 관청에서 준비한 음식들을 먹고 있는데, 오늘 홍진 관청에서 군사들을 위해 준비한 아침 식사는 잡곡밥과 해초에 조개를 넣고 끓인 맑은 국, 생선의 내장을 삭힌 젓갈, 생선 구이 등이 나왔다.

바다와 접해 있는 지역이라 그런지 식재료 대부분이 수산물이다.

대원수와 율도군 주요 고위 무관들이 참석한 아침 식사였지만 식단은 일반 군사들이 먹는것과 똑같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식사 후에 후식으로 먹을 과일과 차가 제공되었다는 정도.

“이제 곧 대월국 흥원에 도착하게 될 것이다. 오늘 군사들 저녁은 흥원에 준비된 주둔지에서 먹일 테니 행군이 늦어지지 않도록 각 제대 지휘관들은 부대관리에 각별히 신경 쓸 수 있도록.”

“네, 알겠습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1군단장 임강현과 그의 참모장이 강운예에게 다가와 조용한 목소리로 보고했다.

“어젯밤 흥원의 2군단장으로부터 급한 전갈이 도착했습니다.”

“정선교나 천제국에 대한 보고인가?”

“아닙니다, 작년 대월국 성산에서 있었던 마루한과 영애의 구출 작전 때 실종되었던 흑영단원 한 명이 흥원에 있는 2군단장의 주둔지로 탈출해 돌아왔다고 하는데...”

세 사람은 조용한 방으로 자리를 옮겨 이야기를 나누었다.

“...성산백이 반란군 수장 자리에서 쫓겨나고 그 군세가 떨어져 나왔다, 그리고 명천백이란 자가 반란군들의 새로운 수장이 되었는데... 그들 모두 우리 율도에 투항하고 싶어 한다?”

생각치도 못한 이야기에 강운예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어차피 반란군 놈들은 7왕자를 대월국왕 자리에 앉힌 후 차근차근 정리할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되면 우리야 큰 이득이지. 나중 처리해야 할 녀석이 성산백 하나만 남게 되는 거니까.”

“맞습니다. 게다가 이번 원정 때에도 전선이 이중으로 분산될 염려가 없어진 것 또한 호재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선교 녀석을 박살내는데 병력을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군. 아주 좋아. 참, 7왕자는 백화를 출발했다고 하는가?”

“네, 우리 수군의 전선을 타고 곧장 흥원으로 올 에정입니다.”

오랜만에 강운예의 입가에 미소가 머금어졌다.

“이 소식을 전해준 그 흑영단원, 흥원에 가면 꼭 만나보고 싶군. 자신을 희생해서 내 딸과 영록이를 구하는데 크게 일조했던 데다가 이런 좋은 소식까지 전해 왔으니 말이야.”

“그녀도 기하를 뵙길 고대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녀? 아, 그 때 실종된 흑영단원이 여자라고 했었지?”

“네, 맞습니다.”

“대월국 도깨비놈들에게 붙들려 있는 동안 고초가 심했을텐데... 1군단장?”

“네, 1군단장!”

“대원수부 인사본부장에 연락해서 그 흑영단원에게 어떤 포상이나 훈장을 내리면 좋을지 잘 판단해 보라고 해.”

“네, 알겠습니다!”

임강현 옆자리에 앉아 조용히 대기하고 있던 1군단 참모장이 품에 들고 있던 문서 봉투에서 보고서 하나를 꺼내 들었다.

“지시하신 진나라 공물론자들의 내란에 대한 보고서입니다.”

강운예는 보고서를 받아 들고 천천히 읽어보았다.

“흠, 역시... 내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군. 그래도 농민들만의 혁명이라니... 이건 빨라도 너무 빠른 게 아닌가?”

현실 세계에서 현대 사회를 살다가 온 강운예로써는 산업 혁명과 상공업의 발달, 자본가 세력과 프롤레타리아 세력의 갈등이 나타나기도 전 공산주의 사상이 출현했다는 사실이 의아하게 느껴졌겠지만,

애초부터 윤예진이 부르짖었던 ‘대동 사상’이나 박환성이 말하던 ‘대동 사회주의 사상’ 모두 결국은 언제든지 공산주의를 태동시키고도 남을 만한 사상들이었다.

강운예의 생각과는 달리 산업 혁명이나 계급간의 갈등 심화가 없더라도 공물론자들은 언제고 나타날 이들이었다는 뜻이다.

윤예진이 이 땅에서 대동 사상을 부르짖은 이래 1만년 가까이 사회주의에 대한 고찰이 계속 되었을 텐데, 그동안 현실 세계의 공산주의와 같은 사상을 생각해본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다면 그것이 더 이상한 일 아니겠는가?

사회주의가 곧 공산주의는 아니고, 사회주의라고 해서 공산주의랑 똑같이 나쁘다 말할 수 있는 사상은 아니지만,

공산주의는 사회주의의 하위개념이고 언제든 극단적이고 폭력적으로 변질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공산주의의 최종 목표는 ‘생산 수단의 공유’ 와 ‘계급과 부의 소멸’,

즉, 사적 소유의 철폐가 핵심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현대 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다 알고 있듯이 공산주의는 인간의 본성을 외면했기에 결국 도태되고 말았다.

바로 ‘자유’ 와 ‘소유에 대한 욕구’에 대해서 말이다.

현실 세계에서도 그랬듯 이곳 대동에서도 공산주의, 그들이 말하는 공물론은 절대 오래 갈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여전히 문제는 남아 있었다.

현실 세계의 1당 독재, 1인 독재의 공산주의자들이 그랬듯 대동에서도 공물론에 입각한 강력한 독재자가 나타난다면,

정보와 지식의 습득과 전파가 곤란한 대동에서 공물론의 표면적 달콤함에 취한 사람들이 너도 나도 그들 세력에 동참하게 된다면,

대동땅에 소비에트 연방이나 중화인민공화국,

혹은 북한과 같은 나라가 출현하고 그로 인해 율도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미칠지 모를 일이었다.

율도는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계급 제도가 철폐되어 있어 공물론이 크게 흥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최근 심해지고 있는 빈부격차와 그로인해 사회에서 소외받고 있는 이들이 공물론자가 되어버린다면,

계몽 전쟁 이후 간신히 되찾은 율도의 평화가 내부 갈등으로 인해 흔들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참모장이 다음 보고서를 내밀며 말했다.

“흑영단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아직 국내에서는 공물론자들이나 그에 동조하는 이들의 움직임은 포착된 것이 없다고 합니다. 지난 번 주나라가 유학생 등 주요 자국민들을 본국으로 귀환시킨 이후부터는 주나라 사람들이 우리 율도로 들어오는 일도 거의 없다시피 한 상황이라 우려하실 만한 상황은...”

유학생, 이란 단어에 강운예의 눈이 번쩍 떠졌다.

“그건 그렇고, 우리 딸하고 그 샠... 아니, 황자 그놈 잡아 오라고 보낸 진 대위한테서는 아직 연락이 없나?”

“지난번 보고 드린 대로 두 사람이 나타난 상동시 일대의 모든 길을 봉쇄하고 검문검색을 실시하고 있는 중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영애와 황자라도 쉽게 빠져나갈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주나라 상단에서 우리 관원들에게 총을 쏜 놈들에 대해서는?”

“이는 상동 관아에서 직접 수사 중에 있는데, 율도에서 쓰이지 않은 수석식 총을 들고 있었다는 걸로 봐서는 다른 나라에서 가지고 온 것으로 추측된다고 합니다.”

“밀수를 했다는 건가?”

“네, 우리 율도에서는 총을 구하기도 힘들거니와, 구하게 된다면 그와 같은 구식총 말고 다른 신식총을 구할 텐데 굳이 수석식 총을 사용했다는 걸 보면 틀림없을 듯 합니다.”

“율도에서 무기 밀수 밀매 하다가는 어찌 되는지 모르는 놈들인가? 게다가 그 놈들이 우리 딸과 황자를 쫓아왔다고...?”

손으로 턱을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기는 강운예,

그러던 중 우연히 먼저 받은 진나라 공물론자들에 대한 보고서 중 다음과 같은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현재 주나라의 원군 5만명이 도착한 이상 내란 진압은 시간문제... 더 이상 난을 이어가기 힘들어진 공물론자들은 또다른 돌파구를 찾을 가능성이 높음... 진나라의 왕족, 또는 주나라의 황족을 잡아 그들의 요구 사항을 관철시킬 수 있게끔 인질로 활용할 계획도 있는 것으로 추정...]

‘설마... 이 놈들이...?’

강운예의 눈썹이 무섭게 꿈틀거렸다.

­ 오전 9시, 대월국 호문번 환강산성 일대

천제국의 다모랑 무장을 잡으러 나왔던 대월국 도깨비들의 무참히 으깨어진 시체들은 기다란 창에 꿰어져 성문 앞에 내걸렸다.

이곽은 잔혹하지만 무지하지 않았다. 그가 이끌고 있는 3천의 두억시니들은 강하고 용맹했지만 포나 공성병기는 고사하고 성벽을 오를 사다리조차 없는 상황에서 공성전을 펼칠만큼 무모하지도 않았다.

그는 쇠뇌와 총의 사거리 밖에 서서 성루를 향해 큰 목소리로 외쳤다.

“성 안에 잡혀 있는 우리 전사들을 내보내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 모두 이처럼 창에 꿰어질 것이다!”

한동안 성안에서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그러던 중,

툭,

무언가 성문 아래로 떨어졌다.

자세히 보니 얼굴에 여러 대의 화살이 박힌 두억시니의 베어진 머리였다.

“너희 놈들이 우리 왕과 왕자를 시해하였다! 천제국은 이제 더 이상 우리의 동맹이 아니다!”

“모자란 도깨비 새끼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해 싸우러 여기까지 왔다는 걸 잊었느냐?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천제 성하께서 너희 나라를 반란군으로부터 되찾아 주시기 위해 친히 군을 이끌고 오시는 중이다! 그런데도 우리가 더 이상 동맹이 아니라고? 그럼 우리와 전쟁이라도 하겠다는 것인가?!”

“승하하신 국왕 전하 전하와 왕자 전하를 위해! 너희 더러운 천제국 놈들은 이제 우리의 적이다!”

“병신 같은 도깨비 새끼들!”

이곽은 길길이 날뛰며 갖은 욕설을 퍼부어대고는 자신의 전사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성으로 향하는 모든 길을 차단하고 기다린다.”

그의 전사들이 몸이 근질거린다는 듯 무기를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도깨비들이 성 밖으로 기어 나올 때를 기다리는 것이오?”

“아니, 저 겁쟁이들은 우리가 무서워 절대 밖으로 나오지 못할 것이다.”

“그럼 어찌 하시겠다는 거요?”

이곽이 손으로 천제국이 있는 동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제 곧 천제 성하께서 도착하신다. 그럼 우리의 새 화포도 함께 도착한다. 그것으로 저 성을 깨고, 그 때 안으로 들어가 남은 놈들을 모두 도살한다!”

이곽은 커다란 고리눈으로 환강산성을 무섭게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