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동춘추 - 리부트-124화 (124/217)

〈 124화 〉 대동력 9,994년 5월 36일 (3)

* * *

­ 오전 10시, 거록 서쪽, 누리마루 / 위나라 와의 접경 지대

누리마루 너머 거록 땅은 예로부터 대지의 바다라 불리던 곳으로, 대동에서 가장 고지대에 자리 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산등성이 하나 없이 초록빛의 초원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현실 세계에 있는 장소로 비유하자면 몽골 초원과 매우 비슷하다고도 볼 수 있는데, 연중 평균 기온은 낮고 강수량이 적은 평야지대라고 보면 될 것이다.

이곳은 아주 먼 옛날 첫 번째 마루한인 윤예진이 대동에 나타나기 전부터 두억시니들이 태어나고 살아오던 터전이었다.

대동의 기후 변화에 의해 먹잇감이 급격하게 줄어들자 수많은 두억시니들이 누리마루를 넘어 남하했고, 그곳에서 새로운 문명을 이룩했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수십여 개의 씨족들은 여전히 거록 땅에 남아 삶을 영위해 나갔다.

그러던 중, 천제 정선교와 두억시니들이 세운 대동 최강의 나라 천제국이 동쪽의 군사 국가 주신에게 참패를 당하고 천제가 사로잡히는 일이 벌어졌다.

수 천리 기름진 땅들을 떼어주고 엄청난 액수의 전쟁 보상금을 물어준 후에야 주신의 지하 감옥에서 풀려나온 천제는 패전의 책임을 당시 군사 지휘관을 맡고 있던 두억시니들에게 돌렸다.

숙청의 피바람이 불고,

수많은 두억시니들이 천제국을 떠나 자신의 고향 거록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문명에 길들여진 그들은 초원 생활에 쉬 적응하지 못했고,

심지어 거록에 남아 있던 두억시니들도 그들을 동족으로 따뜻하게 받아주기는 커녕 의심과 경계의 눈초리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두억시니들은 원래 사냥과 수렵을 주업으로 하는 종족이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사냥만으로는 식량을 구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체득한 후, 그들은 드넓은 초원에서 소, 말, 산양 등을 방목해 키우며 물과 목초지를 찾아 이동해가는 유목민으로 점점 변화해 나갔다.

천제국에서 빈털터리가 되어 거록으로 돌아온 두억시니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거록에 남아 있던 두억시니들처럼 유목을 통해 가축을 키워 식량으로 쓰기도 했지만,

더 나아가 가축의 가죽이나 털, 좋은 말 등을 다른 나라들에 팔아 이윤을 얻기도 했다.

이로인해 그들의 세력은 하루가 다르게 커나가게 되었고,

거록 땅에 남아 있던 두억시니들은 이들을 자신들의 땅을 침범해 빼앗고 마음대로 가축들을 키우는 버릇없는 이방인으로 보기 시작했다.

약탈과 살육,

씨족 간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들의 싸움은 최근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었는데,

천제국에 의해 진행되고 있는 북방 교역로 개척,

이는 돈과 금품으로 옛 원한을 청산하고 다시 조력자로 돌아선 거록으로 돌아온 두억시니 씨족들의 협조 하에 이루어지고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거록에 남아 있던 두억시니 씨족들 중에서는 천제국으로부터 도로가 지어질 땅을 내어주는 대가로 지원을 받는 건 고사하고, 아예 이번 일에 대해 아무런 통보도 받지 못한 곳도 많았다.

목초지를 찾아 이동하는 유목민의 특성상 이 곳이 내 영역이다, 하고 확실히 주장하기는 힘들 것이나,

분명히 지금 진행되고 있는 도로 연결 공사 지역 중 상당 부분이 거록에 남아 있던 두억시니 씨족들이 차지하고 있는 곳을 지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는 것이다.

천제는 도로가 완성된 후 천제국과 주나라에서 각각 병력을 파견하고 자신들과 손을 잡은 두억시니 씨족들도 동원해 교역로를 지키면 되는 일이라 간단하게 생각했지만,

앞으로 이로 인해 일어날 문제들은 결코 간단한 것들이 아니었다.

초원의 언덕 너머로 수백여 명의 한자손 장정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 대부분 검은색 전립을 쓴 주나라 군사들이었다.

도로 연결 공사에 너무 분주한 나머지 몇몇 경계를 서는 이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갑주도 벗고 무기도 바닥에 내려놓은 채로 전립을 목 뒤로 걸쳐 넣고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는데,

어찌나 정신없이 일하는지 저 멀리 언덕 너머에서 누군가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조차 까마득히 모르는 듯 했다.

“지금이라도 들이닥치면 저들은 모두 우리의 고기가 될 것이다.”

가죽으로 만든 옷으로 대충 아랫도리만 가리고 가슴 중앙에 커다란 놋쇠로 만든 갑주 비슷한 것을 달고 있는 잿빛 피부의 두억시니가 사나운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렁 거렸다.

그뿐 만이 아니었다.

그의 곁에서 언덕 뒤에 몸을 숨긴 채로 주나라 군사들을 노려보고 있는 십 수 명의 두억시니들 역시 도끼, 철퇴 등 손에 든 무기를 꽉 붙들고 언제든 뛰쳐나갈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조금만 기다려라. 곧 너희들이 원하는 걸 모두 얻게 해 줄 테니.”

그들과는 달리 위아래 모두 좀 더 격식 있게 옷을 차려 입고 있는 두억시니가 달래는 듯 한 말투로 말했다.

함께 있는 이들과 최대한 비슷하게 보이기 위해 머리도 풀어헤치고 옷에도 흙먼지를 묻히고는 있었지만, 누가 봐도 거록에 사는 야만스러운 종족이 아닌 문명의 혜택을 받고 자랐음이 틀림없어 보이는 자였다.

“난 너희 율도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 무엇을 더 기다려야 한단 말인가? 싸우고, 모두 죽이고, 그러면 끝나는 거다. 여기 있는 우리 전사들만으로도 저런 오합지졸 한자손 놈들을 모두 고깃덩어리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 그리고 당신이 말한 대로 저들이 만들고 있는 도로 역시 하룻밤 만에 갈아엎을 수도 있다. 기다리는 일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는다.”

율도 사람,

이 말대로 그는 율도에서 온 사람이었다.

정확하게는 율도에서 보낸 흑영단원.

이전에 율도 도깨비가 영록에게 언급한 바 있듯이, 흑영단 내에는 도깨비 뿐 아니라 두억시니도 있었던 것이다.

흑영단 두억시니가 함께 있는 이들은 거록에 남아 있던 두억시니들 중 가장 큰 세력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붉은 도끼’ 씨족.

율도는 벌써 천제국, 주나라 등과 손잡지 않은 거록의 씨족들을 포섭해 놓고 있었던 것이다.

“당신 씨족들의 용맹함은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 당신이 말한 대로 그대들의 도끼가 휘둘러지기 시작한다면 저 한줌도 안 되는 한자손 놈들은 모조리 고깃덩어리가 될 것이고, 저들이 만들던 도로도 다시 돌과 흙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흑영단 두억시니가 씨족장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우리 율도 태상국께서는 더 큰 싸움, 더 큰 승리를 원하신다 하셨다. 한자손 놈들, 천제국의 망할 도깨비 놈들이 더 모일 때를 기다려라. 그럼 너희에게도 더 큰 싸움, 더 큰 승리, 더 많은 고기와 더 많은 금은보화가 있을 것이다.”

씨족장은 그의 말에 송곳니를 감추며 끌끌 웃었다.

“그래, 기다리겠다. 하지만 너무 우리를 지치게 하지 마라.”

“여부가 있나.”

흑영단 두억시니는 허리에 찬 가방에서 망원경을 꺼내 도로 공사가 진행되는 곳을 살펴보았다.

‘...기분 좋으라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주나라 한자손들 중엔 총을 가진 놈도 있고 비록 대부분이 작업 중이라 하지만 병력도 여기 있는 십 수 명 가지고는 대적하기 힘들만큼 많다... 이 거록 두억시니 씨족장은 심각하게 멍청하기는 하지만 아직 쓸모가 많은 놈이다. 여기서 멋대로 날뛰다가 죽기라도 하면 곤란하지.’

그는 도로의 폭은 어느 정도인지, 주나라의 국경으로부터 어디까지 도로 연결 작업이 진행되었는지, 지금 작업 속도라면 앞으로 완공까지 어느 정도 기일이 소요될지 주욱 계산해 작은 수첩에 적기 시작했다.

‘도로 만드는 솜씨가 형편없군. 율도 같았으면 같은 기간 내에 3 ~ 4배의 공정을 보였을 거다. 하긴, 기술자들이 아니라 군사들을 데리고 작업을 하려니 속도가 늦어질 수밖에.’

도로 공사라고 해서 현대식 도로를 생각해서는 안 된다.

제대로 된 현대적인 중장비 하나도 없이 오로지 인력만을 이용해서 잡초뿐인 땅을 평평하게 다지고 콘크리트나 아스팔트도 아닌 돌과 흙으로 포장된 도로를 내는 작업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경험도 기술도 부족한 이들을 데리고 하는 작업이라면 공정이 더뎌지는 일은 당연한 일이다.

‘숙련된 기술자들을 대거 동원해 데리고 왔다면 필시 우리가 눈치 챘을 거라 생각하고 내린 결정이었을 게다. 하지만, 애초부터 율도의 눈과 귀를 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것부터가 무모한 일인 것을.’

마침 저 멀리 주나라 국경 쪽에서 말이 끄는 마차 수십여 대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망원경으로 자세히 살펴보니 마차 안에는 각종 자재들이 실려 있는데, 대부분이 도로를 내는데 쓰이는 평평한 돌들인 듯 싶었다.

“멍청한 한자손놈들, 저 무거운 돌들을 제 나라에서부터 가지고 오는 건가?”

씨족장이 비웃는 표정을 지으며 끌끌 거렸다.

“여기 거록 초원에는 도로를 놓을 만한 돌이 없다. 그러니 저들이 저런 수고를 하는 수밖에.”

“아니, 저 멀리 돌산의 바위를 깨서 날라 오면 되지 않나?”

씨족장은 저 멀리 아스라이 보이는 북녘의 어느 산을 가리키며 말했다.

“도로를 만드는 돌도 아무 돌이나 다 쓰이는 게 아니다. 저 돌산의 돌, 화산재로 만들어진 돌이라 도로 놓는데 쓰면 쉽게 부서진다.”

“이런 망할, 돌이면 다 같은 돌이지 뭐가 그리 까다롭나? 그리고 도로라는 게 뭐라고 저걸 만드느라 저 고생인가? 초원은 원래 말 타고 달리라고 있는 거다. 초원에 도로로 길을 낸다고? 거록의 천지 사방이 다 초원이고 길인데 뭔 쓸데없는 짓인가? 멍청한 놈들...!”

흑영단 두억시니는 씨족장을 이해시키기를 포기한 듯,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망원경만 계속 들여다보기로 했다.

­ 오후 3시, 율도 백화 대원수부

강운예가 자신의 친위 여단 및 군단들을 휘몰아 대월국을 향해 북진하고 있는 사이, 총참모장 한신이 백화 대원수부에 남아 태상국을 대신해 전군을 통솔하고 있는 중이었다.

총참모장의 집무실은 대원수가 사용하고 있는 5층 바로 아래 4층에 위치해 있었다.

당분간 그가 이곳에서 율도의 대원수이자 태상국 강운예를 대신해 군에 대한 모든 일들을 처리하게 될 것이다.

전군이 전시체제에 들어가 있는 중이기에 이곳 대원수부에 있는 모든 군사들도 전포에 갑주는 물론 창, 칼, 총, 활 등 개인 무기까지 모두 지니고 다니고 있었다.

경계는 그 어느 때보다 더욱 삼엄해졌고, 시민들도 그 일대를 지나는 일을 삼갈 정도였다.

집무실에 있는 한신 역시 투구만 책상 위에 벗어놓고 있을 뿐, 갑주를 착용하고 완전 무장 상태로 자리에 앉아 업무를 보는 중이었다.

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그의 부관이 서신을 들고 들어왔다.

“흑영단에서 보내온 것입니다.”

영매을 통해 먼 곳에서부터 전해지는 흑영단의 보고는 가장 먼저 백화 대원수부로 오게 되어 있었다.

강운예가 부재중이므로 이를 가장 먼저 확인하게 되는 이는 총참모장 한신,

그는 부관을 밖으로 내보내고 봉투에 든 흑영단의 서신을 꺼내 읽어보았다.

[거록에 진주하고 있는 주의 제후국 위의 군사들의 도로 연결 작업 경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된 후 국경으로부터 불과 80여리 밖에 도로가 놓이지 않은 상황이며... 이와 같은 진척도라면 천제국의 국경까지 도로가 이어지기까지는 최소 7 ~ 8년의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 현재 작업이 이루어지는 곳 주변에서 도로 작업에 능숙한 기술자나 이를 전문적으로 관리 감독하는 이들은 아직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한신은 서신의 내용을 종이에 써서 기록해 놓은 후 서신을 다시 봉투에 담아 봉하려 했다.

대월국을 향해 행군해가는 강운예에게 보내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봉투를 만져보니 안에 또 하나의 서신이 있는 게 아닌가?

‘하마터면 흑영단의 서신을 제대로 확인도 안하고 기하께 올릴 뻔 했군. 나도 이제 늙은 건가...?’

한신은 이맛살을 찌푸리며 안에 든 또 다른 서신을 꺼내보았다.

‘주의 제후국 진에 파견되어 있는 흑영단원이 보낸 첩보로군. 진에서 내란을 일으킨 공물론자들에 대한 보고인 듯 한데...’

한신은 노안으로 어두워진 눈을 잔뜩 찌푸리고 서신을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읽어 보았다.

거듭해서 수차례 읽어보았지만 끝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공물론자라는 놈들, 달콤한 사탕발림 같은 말을 하는 것 같긴 한데... 이게 과연 실현 가능성이 있단 말인가?’

그는 도무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흔든 뒤 서신들을 모아 다시 봉투 안에 넣었다.

‘북방의 일은 기하께서 미리 일러두신 대로 처리하면 될 것이고... 이 공물론자들에 대한 일은 기하께서 확인하시고 하명하시는 대로 처리하도록 해야겠군.’

한신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업부 책상 앞에 놓인 탁자 앞으로 나아갔다.

그 탁자 위에는 대회의실에 있는 것과 비슷한 전술지도가 펼쳐져 있었는데, 거록과 누리마루를 중심으로 상세한 지형지물들이 표시되어 있었다.

이 위에는 주나라의 군사들을 상징하는 조각들과 그들이 만들고 있는 도로가 모형으로 올려져 있었는데,

그 주변에 무섭게 생긴 다섯 개의 조각들이 주나라 군사들을 포위하고 있는 형상으로 놓여 있었다.

바로 거록 두억시니들의 조각이었다.

­ 오후 8시, 율도 청북도 일대 원정군 대원수 지휘부 임시 숙영지

원정군에 있는 군사와 말 모두를 야간에 푹 재워서 그런지 행군의 속도는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강운예는 원정군들이 잘 먹고 편히 쉴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해 준 청북도의 지방 관리들과 예비군들을 직접 만나 노고를 치하한 후에야 그의 거처로 돌아왔다.

오늘 그의 거처는 청북도의 공관이었다.

“오셨어요? 많이 시장하시죠?”

그가 안으로 들어오자 한유리가 그의 투구를 받아들며 활짝 웃는 얼굴로 그를 맞이했다.

“저녁 식사 하셔야죠? 갑주 벗겨 드릴게요.”

그녀가 능숙한 솜씨로 갑주를 벗기는 중,

“그런데 자네...”

강운예가 무슨 말을 하려는 찰나,

똑똑,

밖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전속부관이었다.

“백화에서 보낸 흑영단의 보고입니다.”

흑영단의 보고란 말에 강운예가 한유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잠시 나가 있어 주겠나?”

한유리는 아직 갑주를 벗기는 일을 다 하지 못해 못내 아쉬워하는 표정이었지만, 그의 말에 토를 달수는 없었다.

“알겠습니다. 밖에 있을 테니 언제든지 부르셔요.”

그녀는 공손하게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는 전속부관의 안내를 받아 밖으로 나갔다.

강운예는 그녀가 나간 것을 확인한 후, 안에 든 서신들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거록에서 진행되고 있는 주나라의 도로 연결 작업 경과에 대한 보고와 추후 대처 방안에 대한 한신의 보고를 고개를 끄덕이며 읽고 있었는데,

다음 진나라에 파견된 흑영단원이 보낸 공물론자들에 대한 보고를 읽기 시작하자,

갑자기 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지기 시작했다.

‘아니 그럼 이 공물론자라고 불리는 놈들... 이건 그냥 공산주의자들 아닌가!’

애초에 대동에 공산주의라는 말은 없었지만,

현실 세계에서 20세기, 21세기 한국을 살다가 온 강운예가 공산주의의 개념을 모를 리 없었다.

‘윤예진의 대동사상이나 박환성의 사회주의사상이 이미 이곳에도 있었다고는 하지만... 어떻게 대동에 공산주의가 출현할 수 있단 말인가? 산업화나 자본주의 사상이 있지도 않은 상태에서 공산주의를 부르짖으며 폭력에 기반을 둔 혁명을 일으키는 놈들이라고...? 아아... 애초에 사회주의 사상은 환경에 상관없이 공산주의로 변질 될 수 있었단 말인가...?’

강운예 역시 주나라에서 암약하기 시작한 공물론자들에 대해 보고를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그들의 사상이 공산주의와 다를 바 없는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한 것이었다.

갑자기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그가 위험을 무릅쓰고 현실 세계에 돌아갔다 온 것.

그것은 대동에도 산업화를 통한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내기 위해 그에 필요한 자원들 ­ 총이나 무연화약 등을 가져오는 것도 중요했지만, 무엇보다 석유 등 산업화를 가속화 시킬 연료 자원의 표본을 구해오는 게 가장 큰 목적이었다. ­ 을 구해오기 위함이었다.

그가 가지고 온 석유 등 자원 표본을 국문관, 국학관 등에 보내 연구토록 하고 그와 같이 연료로서의 효율을 낼 수 있는 존재가 대동에도 있는지 찾아내도록 하는 중인데,

만일 정말 석유, 석탄처럼 산업화의 동력이 될 수 있는 자원을 찾아내고 원하던 대로 율도와 대동에 급속적인 발달이 이루어진다면,

당연히 자본주의가 가속화되면서 이미 현실 세계의 근현대 즈음에 있었던 여러 병폐들이 재현될 것이라 예상 하고 있었다만...

그러기도 전에 가장 크게 우려하고 있던 공산주의가 이미 이곳 대동에 출현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빨갱이들 상대하는 건 정보사 때 이후로 끝난 줄 알았는데... 이젠 대동에서도 빨갱이들을 보게 되는 건가?’

그는 한유리가 벗겨주다 만 갑주의 끈을 풀어 짜증스럽다는 듯이 바닥에 내팽겨쳐 버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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