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1화 〉 대동력 9,994년 5월 35일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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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4시, 율도 황남도 상동시
공물론자 일당 두 명이,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도록 손에 든 총을 장옷으로 살짝 가리고 정국에게 다가 오고 있었다.
총구가 자신을 겨누고 있으므로, 정국은 일단 함부로 움직이지 않고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 때, 바람이 불며 일당들의 옷이 펄럭였다.
그리고 그들 손에 들려있는 소총의 형체가 뚜렷하게 드러났다.
‘음, 저건?’
정국의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그들이 들고 있는 소총 모두, 뒤에 있는 부싯돌멈치가 화약 접시에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빈총? 장전도 안 된 총으로 날 위협한 건가!’
대동에 있는 웬만한 총기류들을 모조리 섭렵해 본 정국이 이런 걸 놓칠 리 없었다.
정국이 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아, 아니!”
공물론자 일당은 정국의 갑작스런 반격에 놀라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그러다 앞서 있던 녀석이 총을 거꾸로 들고 정국을 향해 내리치는데,
휙!
정국이 재빨리 몸을 기울이며 총을 피한 후,
그의 턱에 왼손 돌려치기를 꽂아 넣었다.
퍽!
“흐윽!”
주먹에 맞은 놈은 턱이 휙, 돌아가고, 몸을 이리저리 비틀거렸다.
정국은 그가 손에 들고 있던 총을 빼앗아 잡고는, 그의 몸을 앞으로 밀어 차버렸다.
꽈당!
놈은 뒤에 있는 담벼락에 머리를 부딪치며 정신을 잃어버렸다.
“이노옴~!”
옆에 있는 그의 동료가 마찬가지로 총을 거꾸로 잡고 개머리판으로 그를 치려하고 있었다.
“훗, 어딜!”
정국은 뺏어 든 총을 머리 위로 들어 상대의 공격을 막아내고는,
그의 얼굴을 개머리판으로 찍어버렸다.
“크윽!”
공물론자의 얼굴에서 코피가 터져 나왔다.
정국은 멈추지 않고 총구로 그의 배를 세게 찌른 후,
총을 거꾸로 잡고 개머리판으로 그의 그 머리를 위에서 아래로 힘껏 내리쳤다.
빡!
정수리를 제대로 얹어 맞은 공물론자 놈은 그 자리에 혀를 빼물고 쓰러졌다.
“앗, 싸움이다, 싸움!”
“아니, 백주 대낮부터 웬 싸움이야? 낮술이라도 마셨나?”
“저거 총 아니야? 총 맞는 거 같은데?”
“총이다, 총! 어서 관아에 알려!”
싸움이 난 걸 보고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정국은 일단 공물론자의 장옷을 벗겨 총 한 정을 둘둘 말아 감싼 후, 그들 품에 있던 화약과 탄환, 부싯돌들을 챙겨 주머니 안에 넣었다.
그리고 사람들을 헤치고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오후 7시, 대월국 서래번 달성벌 북동쪽 작은 시골 마을
패잔병 사냥을 마치고 마을로 살아 돌아온 농민들은 우선 말 한 마리를 잡아 고기로 만들어 불에 굽고 국으로 끓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게 얼마만의 고기냐!”
“말고기는 태어나서 처음 먹어본다! 말고기는 무슨 맛일까?”
“말고기는 소고기보다 더 질기다던데? 근육도 많고 해서.”
“그래? 그럼 굽기 전에 잘게 다져서 불에 올려야겠네.”
한 무리의 농민들이 말고기를 준비하는 동안, 다른 몇몇은 백사를 마을 창고로 끌고 들어가 범하고 있었다.
꾀죄죄하게 생긴 농민이 백사의 벗은 몸을 어루만지며 황홀한 표정으로 몸을 흔들어대며 소리쳤다.
“이 년, 키도 크고 피부도 보들보들하니 일반 평민은 아닌 거 같고, 어디 번에 귀족 아닌가 몰라?”
“귀족이어도 상관없어! 어차피 천제국 놈들이 잡고 있던 귀족이라면 반란군쪽 사람일 거 아냐?”
“그럼 천제국 타깨비 놈들이 왜 반란군 귀족 여자를 끌고 다녔던 거지?”
“천제국이 우리나라 들어온 게 국왕이 반란군 놈들 무찔러 달라고 해서 들어온 거라며? 그래서 그놈들이 여기로 오기 전에 어디서 반란군 하나 조지고 귀족 여자도 뺐고 그랬었나 보지!”
“귀족들은 전쟁할 때 여자도 데리고 다니나?”
“그것들도 사람인데 전쟁 중이라고 안 꼴리겠나? 밤 되면 누구나 다 거기가 발딱 서고 꼴리는 게 사람인데, 귀족은 뭐 고고해가지고 서니 밤이 되도 안 서겠냔 말이야? 히히히히히.”
“맞아, 밤만 되면 고추 세우고 어디 쑤실만한 년 없나 찾으러 다니는 게 귀족들이 하는 짓이지. 여기 서래번에도 그런 귀족 놈들 엄청 많았잖아? 이번 전쟁 중에 엄청 죽었겠지만.”
농민들은 순서를 정해 그녀를 돌아가며 범할 모양이었다.
그들은 그녀의 두 손을 밧줄로 묶어 창고 안에 있는 기둥에 매달아 놓았다.
그리고 다리도 묶으려다가 그녀가 다리를 다친 것을 알고 그냥 그대로 두었다.
농민들이 돌아가며 그녀의 몸 위로 올라타는 동안, 순서를 기다리고 있던 이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근데, 자네 그거 들어봤나? 서쪽의 한자손들 통해서 퍼져 가고 있는 공물론이라는 거 말야.”
“아, 난 까막눈이라 정치니 사상이니 그런 건 아무것도 몰라.”
“흐이그, 무식하기는! 그래도 그 공물론이라는 거, 바른 말 많이 하는 사상이라던데? 세상은 원래부터 주인이 없었으니까, 우리 모두 평등하던 그 때 그 모습을 되찾아야 한다고 말이야.”
“평등? 그건 율도 강운예가 하던 말 아니야?”
“율도 태상국이 하는 거하고도 비슷하긴 한데, 공물론은 아예 마루한도 없고, 왕도 없고, 나라도 없고, 농민들 위에서 우리를 다스리는 계급도 모두 없고, 모두가 다 평등한 세상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하더라고. 이거 맞는 말 아니야?”
“맞는 말 같긴한데...... 마루한도 없고 왕도 없고, 나라도 없고 우릴 다스릴 번주 같은 귀족들도 없으면 누가 우리를 다스린단 말인가?”
“누가 다스리긴, 우리 스스로가 서로 도와 가며 함께 살아가는 거지.”
“에이, 그게 될 법한 소리인가?”
“왜? 율도도 신분, 계급, 노예, 이런 거 모두 없이도 잘 굴러가고 있잖나?”
“그래도 율도는 나라를 제대로 다스리는 마루한, 태상국 강운예가 있잖아? 옛날 강운예가 자신이 율도 다스리는 거 안 한다고 손 땠다가 오랜 기간 전쟁 겪고 난리 났던 것도 안 배웠나? 위에서 제대로 다스릴 사람이 없으면 어느 나라나 다 그렇게 난리가 나는 법이야!”
“강운예처럼 제대로 된 지도자라면 모를까, 대부분의 마루한들이나 왕, 귀족 놈들 모두 있으나 마나한 존재인데다가 우리의 고혈만 빨아 먹는 것들 아닌가? 그런 놈들이 모두 없어져도 세상은 잘만 돌아 갈 거야!”
“이 친구, 벌써 공물론인가 뭔가에 푹 빠졌나 보네그려? 그런데 난 자네가 말하는 공물론하고, 강운예가 말한 대동 자유민주주의 사상하고 뭐가 어떻게 같고 뭐가 어떻게 다른 건지 당최 이해할 수가 없군. 모든 사람이 평등하되 위에 강운예 같이 다스리는 마루한이 있으면 대동 자유민주주의 사상이고,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위에 다스리는 사람도 없으면 그게 공물론이란 말인가?”
“원래 대동 자유민주주의 사상도 마루한이나 왕을 인정하지 않는다네. 그래서 강운예가 사람들더러 자신을 마루한이라고 부르지도 말고 왕이라 부르지도 말라고 하는 게 아닌가? 그리고 태상국이란 지위를 만들어서 율도를 다스리고 있는 거고. 아참, 실제로 율도의 나라 살림을 보는 이는 투표로 뽑힌 통령이고, 태상국은 평소 군대를 통솔하면서 이들 정치인들이 잘하나 잘못하나 감시하는 일을 한다고 하더군. 왕처럼 제 마음대로 하지 않으면서도 말이야, 왕 이상으로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위치 같은 거지.”
“그 말이 참 아리송하니 뭔 말인지 이해가 잘 안 가는구만 그래. 어쨌든 그럼 강운예의 대동 자유민주주의 사상과 공물론이 거의 같다는 얘기 아닌가?”
“공물론은 거기서 더 나아갔지.”
“어떻게 말인가?”
“땅도 모두 거둬들여서 모두에게 똑같이 나눠주고, 돈도 모두 거둬들여서 모두에게 똑같이 나눠주고, 일 자리나 돈을 벌 수 있는 수단까지 모두 다 모두에게 똑같이 나눠 준다고 하더군!”
“예끼, 이 사람! 내가 아무리 못 배운 촌부라도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는 처음 들어보네! 그런 되도 않을 소리를 뭐 하러 믿는단 말인가? 뭐, 땅과 돈을 모두 거둬들여 다시 모두에게 똑같이 나눠줘? 그럼, 원래 땅과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자, 가져가십시오~ 이러고 그냥 가만히 있겠나? 게다가 땅과 돈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부자고 귀족들일텐데, 그런 사람들이 미쳤다고 그걸 내놓겠냐는 말이야!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암!”
“그래도 그렇게 된다면 좋은 거 아닌가?”
“물론...... 그렇게 될 일은 없겠지만 그리 되면 정말 좋긴 하겠지. 그래도 뭔가 될 말을 해야지, 되지도 않을 소리를 뭐 그렇게......”
“그래서 한자손들은 이를 위해 혁명을 할 거라더군.”
“혁명? 그건 또 뭔가?”
“뭐긴 뭐야, 난을 일으켜서 나라를 뒤집고 자기들 세상을 열겠다는 거지!”
“그건 반란이잖아? 반란이야 주나라나 우리 대월국이나 수시로 있었던 일인데, 뭐.”
“한자손들이 하는 건 달라. 지금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전쟁이나 지금까지 벌어진 다른 반란들은 모두 귀족들이 자기가 왕이 되려고 전쟁을 일으킨 거라면, 지금 한자손들은 우리와 같은 농민들이 다 같이 힘을 모아 제후들과 황제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려 하고 있다더군. 그래서 반란이 아니라 혁명이라고 하는 거고.”
“아니 근데, 자네는 그런 걸 어찌 그리 잘 안단 말인가?”
“건너 마을에 사는 우씨가 말해줬지. 그 친구 덕분에 나도 새로운 세상에 많이 눈을 뜰 수 있었다네.”
“우씨라면 주나라에 일하러 다녀왔다는 그 친구 아닌가?”
이러는 사이, 벌써 그들이 백사를 범할 순서가 되었다.
그들은 하던 이야기를 멈추고 히히덕거리며 백사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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