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동춘추 - 리부트-119화 (119/217)

〈 119화 〉 대동력 9,994년 5월 35일 (3)

* * *

­ 오전 13시, 율도 황남도 상동시

이화수는 관아에서 사람이 올 때까지 어떻게든 시간을 벌고자 했다.

그는 다시 응접실로 들어가 정국에게 물었다.

“혹시 두 분, 아침 식사는 드셨는지요?”

빈털터리 상태인지라, 두 사람 다 아무것도 먹지 못해 배가 몹시 고프던 참이었다.

정국은 체면이고 뭐고 사실대로 말해버렸다.

“오늘은 일이 있어 아침을 거르고 나왔다네. 그래서 조금 시장하긴 하군.”

“그러셨군요! 그럼 뭐라도 드시면서 기다리시겠습니까? 이제 곧 월말이라 결제해야 할 금액들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어서, 수표를 끊어다 드리기 까지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사옵니다. 황자님을 마냥 기다리게 만드는 게 너무 죄스러우니 이곳에서 무어라도 드시면서 기다리시는 게 어떠실는지요?”

“괜찮네, 자네가 해야 할 업무도 있을 텐데, 천천히 가져다주어도 상관없다네. 그리고 식사는...... 넉넉히 부탁 좀 함세.”

“그럼 식사는 어떤 걸로 준비해드릴까요?”

“그냥, 배달 빨리 되는 거로 아무거나 자네가 알아서 준비해 주겠나?

“네, 그럼 바로 대령하겠나이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이화수가 나가자, 예린이 정국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말했다.

“고기 있는 걸로 달라고 하지~!”

“그런 건 말 안 해도 기본으로 챙겨 오겠지. 설마 황자한테 싸구려 음식이나 채소 같은 거나 시켜서 가져 오겠어?”

배가 고프던 차에 식사까지 준비해주겠다 하니, 두 사람은 이화수의 진의를 눈치 채지도 못하고 마냥 좋아라고 있었다.

예린과 정국이 이화수의 상단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을 즈음,

김사미와 일당들이 이 곳 상동시까지 용케도 그들 뒤를 쫓아와 있었다.

그들은 지나가는 사람들이나 거리 상가에 있는 사람들에게 두 사람의 얼굴과 입고 있는 옷의 형태 등이 그려진 용모파기를 보여주며 이런 사람들을 본 적 없는지 묻고 있었다.

그 중 누군가가 그런 사람들이 이화수의 상단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는 말을 해주었고,

김사미와 일당들은 지체하지 않고 그곳으로 달려갔다.

“실례하겠소. 혹시 이런 사람들이 이곳으로 들어왔소?”

김사미가 상단 안으로 들어가 직원들에게 용모파기를 보여주며 물었다.

“아, 관아에서 나오신 분들이십니까? 황자님과 같이 오신 손님은 지금 단주님과 함께 계십니다. 그런데 관아로 보낸 저희 직원은 같이 오시지 않았습니까?”

직원들은 그들이 자신들이 부른 관아의 관리들이라 착각하고 있었다.

‘이들 모두 그가 황자라는 걸 알고 있어? 게다가 율도 관아에도 이를 알렸다는 얘기 아닌가? 그럼 곧 관리들이 이리로 올 것인데......’

김사미가 마른 침을 삼키며 말했다.

“황자님이 계신 곳이 어디요? 안내해 주시겠소?”

“이리 오시지요.”

김사미와 일당들은 직원의 안내를 따라 상단의 내부로 들어가려는 차였다.

“황자님과 영애께서는 어디 계시오!”

갑자기 상단 입구가 소란스러워지며, 스무 명 가량의 관리들이 관아로 갔던 직원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들은 관아의 종사관과 나장들로, 현실 세계 경찰의 기동대 형사들과 같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 모두 허리춤에 철편과 육모 방망이를 차고 있었다.

“아니 관아에서 또......? 그럼 이분들은......?”

김사미와 일당들을 안내하려던 직원이 의심 가득한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관아에서 나온 종사관 한 명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저들도 황자와 영애를 모시러 온 이들이오?”

“네, 지금 막 그분들에게 안내하려던 중이었습니다.”

종사관이 미간을 찌푸리며 김사미와 일당들을 노려보았다.

“우리는 상동 관아에서 나온 나장들이오만, 그대들은 어디서 오신 뉘시오?”

김사미는 곧바로 둘러낼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들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자 종사관과 나장들 모두 그들이 수상하다는 낌새를 눈치 채고는, 허리에서 철편과 육모 방망이를 꺼내 들었다.

“너희들은 대체 누구냐? 모두 그 자리에 무릎 꿇고 손 머리 위로 올려!”

나장들이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서는 찰나,

“젠장, 너희들이나 함부로 까불지 마라!”

김사미가 품에 숨기고 있던 수석식 소총을 꺼내들었다.

다른 일당들도 품안에 있던 총과 몽둥이를 꺼내들었다.

상대가 총을 들고 있는 것을 본 종사관과 나장들은 걸음을 멈추고 그들과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다.

“이놈들...... 군사도 아닌 것들이 어찌 백주 대낮에 율도에서 총을 지니고 다닌단 말이냐? 보아하니 총도 군에서 쓰는 것도 아니고 뒷구멍으로 밀매되는 것들인 거 같은데, 대체 너희는 뭐하는 놈들이냐?”

종사관이 이를 바득바득 갈며 물었다.

“알 것 없다. 황자와 영애는 우리가 먼저 데리고 갈 것이다. 우리도 괜히 총 쏴서 살생 저지를 마음 없으니, 살고 싶으면 거기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말거라.”

총을 든 대여섯 명의 공물론자 일당들이 나장들을 위협하는 사이, 김사미가 나머지 일당들을 데리고 상단 내부로 들어가려 하고 있었다.

그 때 철편을 손에 들고 있던 나장 하나가 일당 중 한 사람의 빈틈을 노려 그에게 철편을 휘둘렀다.

퍽!

“끄아악!”

나장의 철편이 일당의 팔에 떨어지고, 놈이 들고 있던 소총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니, 저 놈이!”

옆에 있던 이가 총구를 돌리려는 찰나,

다른 나장 하나가 번개같이 철편을 아래에서 위로 휘둘러 소총을 쳐버렸다.

탕!

총이 격발되고, 이를 신호로 나장들이 함성을 지르며 공물론자 일당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들 대부분 군에서 무사로 오랜 기간 복무하고 전역 후 나장 일을 하고 있는 이들이었다.

모두들 근접전이라면 도가 튼 자들이었다.

총격에 부상자도 발생했지만, 나장들은 총을 든 대여섯 명의 공물론자 놈들을 순식간에 제압해 버렸다.

“너희들은 이놈들을 모두 포박하고, 나머지는 날 따라와라!”

종사관이 앞장서서 상단 내부로 진격하려 했다.

탕!

상단 안쪽에서 탄환이 날아와 종사관의 어깨를 꿰뚫었다.

“으윽!”

종사관이 쓰러지고, 다른 나장들도 모두 자세를 낮추었다. 군 출신들답게 기민한 움직임이었다.

공물론자들이 통로 반대쪽에 숨어 다가오는 나장들에게 총을 쏘고 있었다.

앞에 있던 나장 하나가 총에 맞아 쓰러진 종사관을 벽 뒤에 안전한 곳으로 잡아끌어 왔다.

그리고 옷을 찢어 상처에 대고 누르며 지혈을 했다.

“나는 괜찮으니 어서 놈들을 쫓아가시게.”

그를 지혈하던 나장이 그의 손을 잡아주고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활과 화살을 들고 온 나장이 통로 반대편에 있는 공물론자 일당에게 화살을 날리기 시작했다. 총 한 발 발사되는 동안 화살은 10여대 넘게 쏠 수 있었기에, 총을 들고 있던 공물론자들은 날아오는 화살을 피해 고개를 숙이고 숨어있을 수 밖에 없었다.

십여 명의 나장들이 상단 밖으로 달려 나갔다. 담장을 넘어 다른 길로 상단 내부로 들어가려는 것이었다.

총소리는 응접실 안까지 선명하게 들렸다.

응접실 안에서 이화수가 가져온 음식들을 먹으며 배를 채우고 있던 예린과 정국도 총소리를 듣고 화들짝 놀랐다.

“이게 무슨 소리지? 어디서 갑자기 총소리가 들렸는데?”

총소리, 란 말에 정국은 지난 번 김사미의 일당들이 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을 떠올렸다.

“예린아. 총이면, 그 놈들이 벌써 여기까지 온 것 같은데?”

“뭐? 청북도에서 만난 그 놈들이 여기까지 따라왔다고? 말도 안 돼!”

“율도에서는 군인 말고 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을 리 없잖아? 군인들이 대낮에 이 대로변에 있는 상단에서 총을 쏠 리 없을 것이고, 그럼 지금 그놈들 밖에 더 있겠어?!”

그 때, 밖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나는 이화수의 목소리,

다른 하나도 낯이 익은 목소리였다.

“황자와 영애, 지금 어디에 있나?!”

“대, 댁들은 대체 누구요?”

“알 필요 없고, 죽고 싶지 않으면 황자와 영애가 지금 어디 있는지나 빨리 말하라고!”

“아악! 사, 살려주시오~!”

분명 청북도 공물론자들의 집합소에서 들었던 김사미의 목소리였다.

“예린아, 어서!”

정국이 예린의 손을 잡아끌며 다급히 몸을 일으켰다.

쾅!

응접실 문이 부서지듯 열리고, 총과 몽둥이를 든 김사미와 일당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이것들이...... 어디로 사라진 게야?!”

응접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창문만 휑하니 열려 있을 뿐.

김사미가 달려가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예린과 정국이 창문 밖 정원을 지나 상단 담을 뛰어 넘어 밖으로 달아나고 있었다.

“저 놈들이 밖으로 달아난다! 쫓아라!”

예린과 정국이 담을 넘어 도망가는 것을 보고 김사미도 창문을 뛰어 넘어 건물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놈들이 저기 있다, 잡아라!”

밖에서 건물을 돌아온 관아의 나장들이 김사미가 있는 건물 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이런 빌어먹을!”

김사미는 욕설을 퍼부으며 총을 들어 달려오는 나장을 겨누었다.

탕!

나장들은 그가 창문 밖으로 총을 겨누는 것을 재빨리 건물 기둥 사이로 몸을 피한 후였다.

그가 쏜 탄환은 나무 기둥에 박혀 버렸다.

전장식 총의 특성상 다시 총을 쏘려면 재장전까지 오래 걸린다.

그걸 알고 있는 나장들이 다시 철편을 머리 위로 들고 김사미가 있는 곳으로 함성을 지르며 달려들고 있었다.

김사미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모두들, 일단 이곳을 빠져 나간다!”

“나장들에게 잡힌 이들은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들 일은 나중에 생각하자!”

김사미는 창문을 걸어 잠그고, 일당들을 데리고 상단을 빠져 나가려 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