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7화 〉 대동력 9,994년 5월 35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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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7시, 대월국 서래번 달성벌 동북쪽 일대
밤늦게까지 백사를 묶어놓고 윤간하던 천제국 귀족 놈들은 다시 날이 밝자 호문번이 있는 동쪽으로 이동할 채비를 하고 있었다.
“아, 간만에 회포를 풀었더니만, 풀밭에 머리를 베고 누워도 피로가 싹 풀리는 기분이었네 그려. 클클클클.”
어느 귀족 놈이 자신의 사타구니를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웃어댔다.
백사는 여전히 발가벗겨진 채로 나무에 매달려 있었다.
그녀의 입에는 여전히 재갈이 물려 있었고,
그녀의 몸은 마치 버려진 쓰레기처럼 땅바닥에 엎드려져 있었다.
그녀의 하얀 머릿결과 등 위에는 놈들의 정액들이 마구 엉겨 붙어 있었고,
다리 사이는 물론 풀밭 위에도 이제 허옇게 굳어져버린 전날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백사는 가느다랗게 눈을 뜨고 있었다.
하지만 온 몸에 힘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듯, 그저 숨만 쉬며 무력하게 쓰러져 있었다.
그 때, 중년의 도깨비가 염대철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이제 대장을...... 보내 줄 것이오?”
그녀를 죽이자는 말이었다.
그는 어제 다른 귀족들과는 달리 백사에게 손도 대지 않았었다.
“그런데...... 지금 바로 죽이기는 아깝지 않소? 호문까지의 길도 멀고 가는 동안 모두 적적함을 달랠 길도 마땅치 않은 데 말이오. 대장의 방댕이가 사람 미치게 만드는 재주가 너무 신묘해서 좀 더 데리고 있어도 괜찮을 것 같소만?”
염대철이 입술을 실룩이며 말했다.
옆에 있던 다른 귀족들도 한 마디씩 거들었다.
“어디 방댕이만 사람을 미치게 만들던가? 이 젖가슴은 어떻고?”
그러면 그는 땅바닥에 엎드려 있는 백사의 몸을 돌려 젖가슴을 손에 쥐고 흔들어 보였다.
“이 까만 젖꼭지, 애한테만 물렀으면 이렇게 까지 길게 튀어나왔을 거 같지 않은데 말이야.”
“대장도 무예를 배웠으니 그 넘치는 힘을 어디에 풀었겠는가? 매일 밤 남편하고 풀어댈 때, 그 작자가 열심히 빨아 주었나보지. 큭큭큭큭큭.”
“이 정도로 젖꼭지가 튀어나오려면 한두 놈이 빨아서 될 일은 아닐 것 같은데? 혹시 두억시니들하고 놀아난 거 아닌가 몰라?”
“두억시니가 빨아서 저렇게 된 거라면 말이 되겠지. 크크크크크~”
“서른 살도 안된 젊은 나이에 기병 대장 꿰차려면 어디 한두 놈한테 잘 보여야 할 일도 아니었을 테고, 윗대가리로 있는 두억시니 놈들에게 돌아가며 다리 벌려준 거 아니겠는가?”
“무예도 하고 말도 많이 타서 몸도 제법 탄탄하고 몸매도 아주 죽여주고...... 두억시니 놈들이 딱 좋아하는 유형이지. 아무튼 좀 더 데리고 가면서 다 같이 재미보다 죽여도 괜찮을 것 같소만.”
중년 도깨비가 다급히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그러다 정말 대장의 몸에 애라도 들어서면 어떻게 할 것이요? 아무리 시신이라도 애가 들어선 여자의 몸은 쉽게 알아볼 수 있는 법이오. 나중에 가족들에게 시신을 돌려주다가 도리어 경을 치게 될지도 모르는데, 뭐 하러 화근을 남기자는 것이오?”
염대철이 그를 싸늘하게 바라보며 대답했다.
“어제 이미 말해주었지 않소. 율도 놈들이 대장을 죽이기 전에 윤간한 것 같다고 둘러대자고.”
그는 중년 도깨비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정말 안 되겠다 싶으면 대장의 머리만 베어 가족들에게 가져다주면 되니까 이제 아무 걱정하지 마시오. 달랑 머리만 갖다 주면, 대장이 우리의 씨를 받았는지 아닌지 어찌 안단 말이오?”
그의 말에 모든 귀족 도깨비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사악하게 웃어 보였다.
귀족들은 백사를 나무에서 풀러 손을 등 뒤로 묶었다. 무릎과 발목에도 밧줄을 묶었다.
그들은 그녀를 말 안장 위에 짐짝처럼 실은 후, 그녀의 몸 위에 담요 하나를 넓게 펼쳐 눈에 띄지 않게 가려버렸다.
“자, 그럼 어서 떠납시다. 날이 밝았으니 율도 놈들이 또 추격해 올지도 모르는 일이오.”
염대철과 귀족들이 다시 동쪽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어젯밤 죽은 부관과 귀족들의 시체는 땅에 묻지도 않고 그대로 내버려 둔채 말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말 안장 위를 덮고 있는 담요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백사의 몸을 음흉하게 더듬어 댔다.
오전 9시, 율도 백화 북쪽 1군단 사령부 주둔지
강운예는 아침 일찍 대원수부를 떠나 이번 원정의 주력부대라 할 수 있는 1군단 사령부에 도착해 있었다.
이제 그도 은빛 보석으로 세공된 검은색 유성금 갑주를 착용하고 있었다.
지난번 예린과 영록을 구하러 성산번에 들어갈 때와 마찬가지로, 그는 갑주 위에 황금빛 사자 가죽으로 된 방풍의를 두르고 있었고,
왼쪽 어깨에는 황금빛 갈기가 가득한 거대한 수사자의 얼굴 가죽이 위엄 있게 달려 있었다.
그의 곁에는 흔히 ‘적영단’ 이라 불리는 붉은 방풍의를 두른 대원수 친위 정예 철기병단 무사들과,
전장에서 그의 명령을 전하는 임무를 맡은 대원수 친위 기마 전령단, ‘청영단’ 무사들이 함께 하고 있었다.
청영단은 평시 파란색 전포를 입고 다녔지만 이제 다른 무사들과 동일한 검은색 전포로 갈아입고 있었다.
만일 전령이 눈에 띄게 다른 복장을 하고 있다면 적의 저격에 당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 외에도 군인이 아닌 특별한 인물이 함께 하고 있었는데, 바로 ‘군기소’, 백화산에 있는 군사기술연구소 소속의 이교연 박사가 이번 원정에 동행하고 있었다.
강운예, 최용준, 사승범과 함께 현실 세계로 넘어갔던 바로 그 이 박사, 이교연이었다.
그는 이번 원정에서 대월국, 천제국의 군사 기술 수준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관련 자료들을 모아가기 위해 강운예를 따라 나선 것이다.
이교연을 필두로 십여 명의 군기소 연구진들도 그를 따라 이번 원정에 참여하고 있었다.
1군단 사령부 연병장에는 완전 무장한 상태로 원정을 떠날 준비를 마친 1군단 4만 여명의 병력들이 질서 정연하게 도열해 태상국이자 전군 대원수 강운예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1군단 병력들 외에도,
101 대원수 친위 기마 엽병 여단
102 대원수 친위 기병 정찰 여단
103 대원수 친위 돌격 철기병 여단
104 대원수 친위 총기병 여단
105 영부인 친위 정예 기마 군경 여단
106 공병 여단
107 대원수 친위 비화포 여단
108 대원수 친위 포병 여단
강운예가 대동에서 ‘황금사자단’을 만들었을 때부터 그와 함께 싸워 온 오랜 전통을 지닌 유명 여단들도 모두 도착해, 그와 함께 전장으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자리가 한정되어 다른 군단의 병력들까지 모두 한 자리에 모이기는 힘들었다.
1군단과 함께 이번 원정에 참여하는 3군단은 1군단이 이동을 시작하면 그들을 뒤따라 대월국으로 이동할 계획이었다. 초원길의 5군단에서 지원되는 병력들은 먼저 흥원으로 집결해 강운예가 오기를 기다릴 예정이었다.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무사들의 준비상태를 확인한 강운예는 만족한 듯 고개를 한번 끄덕여 보였다.
그리고 모든 무사들이 들을 수 있도록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쳤다.
“전군, 나와 함께 출진한다!”
그 한마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도열해 있던 모든 율도군들이 함성을 내질렀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대원수님을 따르라!!!”
“대원수님의 명을 받들라!!!”
전시에 군인들은 강운예를 부를 때 더 이상 태상국이라 부르지 않고 군사적 칭호인 대원수라 부르게 되어 있었다.
전통적으로 강운예가 직접 군을 이끌고 행군할 때에는 최선두에 102 대원수 친위 기병 정찰 여단 무사들이 앞장서게 된다. 이번 행군에도 그들이 가장 먼저 대열의 선두로 나오며 원정의 시작을 알렸다.
그와 함께 강운예가 자리 하는 본대의 앞은 103 대원수 친위 돌격 철기병 여단 무사들이,
그리고 본대의 우측 측면은 101 대원수 친위 기마 엽병 여단 무사들이,
본대의 죄측 측면은 105 영부인 친위 정예 기마 군경 여단 무사들이,
마지막으로 본대의 후방은 104 대원수 친위 총기병 여단 무사들이 강운예가 있는 곳을 둘러싸고 호위하며 이동하게 된다.
본대의 후미로 106 공병 여단, 107 대원수 친위 비화포 여단, 108 대원수 친위 포병 여단이 뒤따를 예정이었다.
친위여단들 가운데에서도, 강운예는 적영단의 호위를 받으며 말을 타고 이동하는 중이었다.
이번 전쟁에는 어딜 가든 항시 대동하는 적영단 무사들, 최용준과 사승범이 함께 하지 않고 있었다.
백영단 진채연과 함께 딸 예린을 찾는데 같이 보냈기 때문이다.
보고에 따르면 진채연과 일행들은 예린의 뒤를 쫓아 열심히 이동하고 있는 듯 보였다.
예린과 정국이 그들보다 더 빨리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듯 보이는 게 더 문제이긴 했지만.
‘이 놈의 자식들이 지금 북쪽으로 올라가서 저번에 갔던 누리마루로 숨어들어가려는 걸까? 아니면 북쪽에 있는 소하북항으로 가서 바다를 건너려는? 어떻게든 나라 밖으로는 한 발짝도 못나가게 만들었으니, 이놈의 자식들 진짜 붙잡히기만 하면 아주 그냥......!’
갑자기 딸 생각에 열이 올랐는지 투구 아래 얼굴이 다 시뻘게졌다.
곁에서 함께 하는 적영단장이 그가 뜨거운 햇살에 얼굴이 달아 오른줄 알고, 다른 무사를 시켜 커다란 양산을 가져와 햇빛을 가려 주려 했다.
“괜찮네, 햇빛은 투구로도 충분히 가려지지 치우게.”
강운예는 양산을 든 적영단장의 손을 물리며 말했다.
그의 뒤로 세 대의 마차가 뒤따르고 있었다.
원정길에 강운예가 쓸 천막과 물자들을 실은 마차와,
한유리가 타고 있는 마차였다.
한유리는 강운예가 시킨 대로 검은색의 검소한 옷으로 갈아입고 마차를 타고 있을 때에도 검은색 너울을 써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옛 정에 데리고 오긴 했지만, 어미가 자리를 비운 동안 예나가 별 일 없이 잘 지낼는지 걱정이군.“
예나는 어머니 한유리와 단 둘이 평연당에서 멀리 떨어진 일반 주택가에서 살고 있었다.
물론 집에 강운예가 일하는 사람도 보내주고, 그들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한 백영단 무사들도 파견해 놓고 있었지만, 예나가 한동안 어미 없이 혼자 지내게 되는 것이 염려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예나를 평연당에 맡기면 자신이 이번 원정에 한유리를 데리고 갔다는 걸 영부인 이소영이 알게 될 거고......
그럼 다인(남편)으로서 뒷감당하기 너무 힘들어질 게 뻔했다.
결국, 강운예는 평연당 집사를 불러 영부인 몰래 예나의 집에 일하는 이들을 좀 더 보내주고, 수시로 가서 예나를 돌봐주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만일, 지금 4군단이 비밀리에 진행 중인 그 작전의 성과에 따라 예나도 그와 함께 대월국으로 부르게 될 수도 있지 않겠나?’
강운예는 행군하는 와중에도 앞 일에 대해 이리저리 계산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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