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동춘추 - 리부트-113화 (113/217)

〈 113화 〉 대동력 9,994년 5월 34일 (2)

* * *

­ 오전 11시, 대월국 서래번 달성벌 동쪽 일대

율도군 2군단장 박윤수 중장은 군단 지휘부 무관들과 함께 포진지가 있는 언덕 위에 전군을 지휘하고 있었다.

언덕의 북쪽으로 우회해 달아나려던 천제국 붉은 갑주 기병들은 언덕 뒤에서 매복하고 있던 율도군 기병들에 의해 진로가 가로 막히면서 그 자리에 꼼짝없이 붙들리고 말았다.

어느 새 율도군 기병들이 천제국 기병들을 포위하고 그들 주변을 빠르게 선회하면서 화살을 날리고 있었다.

천제국 기병들이 우왕좌왕 하는 사이, 사방에서 무수한 화살들이 날아와 천제국 도깨비들을 하나씩 하나씩 쓰러트렸다.

자신들이 포위된 것을 보고 잔뜩 겁을 집어 먹은 천제국 기병 몇몇이 오던 길을 뒤돌아 달아나려 했다.

하지만 얼마 말을 달려 도망치지도 못하고, 율도군들이 쏘아대는 화살에 맞아 말에서 거꾸러지기 일쑤였다.

“전군 돌격! 이대로 멈춰 있으면 죽는다! 모두 나를 따라와!”

그 때, 전장을 쩌렁쩌렁 울리는 날카로운 여자 도깨비의 목소리가 박윤수 중장이 있는 언덕까지 들려왔다.

내려다보니, 아름다운 붉은 갑주에 말에게 까지 붉은 마갑을 씌운 장수 하나가 천제국 기병들의 선두로 나서서 활로를 뚫고 있었다.

“저 이인가? 천제국 기병들을 지휘한다는 백사라는 여무장이?”

박윤수 중장의 물음에, 곁에 있던 용마로 소장이 대답했다.

“그런 것 같습니다. 우리 율도에도 여군 지휘관은 거의 없다시피 한데, 천제국에는 기병 대장이란 중책을 여무장에게도 주는군요.”

“그만큼 대단한 실력을 지녔다는 뜻이겠지. 하지만, 저 이의 무운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박윤수 중장이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전령을 호출했다.

“5사단장에 가서 이제 다음 작전 단계를 수행하라 전하라.”

명을 받은 전령이 급히 말을 달려 언덕을 내려갔다.

영록도 군단지휘부와 함께 언덕 위에서 전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수천, 수만의 기병들이 너른 벌판에서 말을 달리며 싸우는 장관을 내 눈으로 직접 보게 되다니! 영화나 게임은 실제에 비할 바가 아니구나! 정말 멋있다...... 그런데......’

감탄하는 것도 잠시, 전장 여기저기서 펼쳐지는 끔찍한 광경에, 영록은 저도 모르게 소름이 돋아 왔다.

천제국 도깨비 기병이 화살에 맞아 말에서 굴러 떨어졌다. 그가 간신히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어디선가 나타난 검은 갑주를 입은 율도군 기병 무사가 비호같이 군도를 휘둘러 그의 목을 베어 버렸다. 도깨비의 머리가 투구 째 떨어져 나갔고, 검붉은 피가 사방에 흩뿌려졌다.

이미 갑주 여기저기에 서너 발의 화살을 맞은 천제국 기병이 숨을 헐떡이며 몸에 꼽힌 화살들을 뽑아내고 있었다. 그가 화살을 모두 뽑아내기도 전, 또 다른 화살이 날아와 그의 눈에 박혔다. 도깨비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말에서 굴러 떨어졌다.

백사를 따라 말을 달리는 기병들을 향해, 율도군 기병들이 수류탄을 던졌다. 지축을 울리는 폭발음과 함께 산산이 조각난 말의 머리와 다리들, 파편에 맞아 팔 다리가 떨어져 나간 천제국 기병들이 사방을 튀어 올랐다. 땅에 떨어진 몸 조각들은 이내 뒤따라오던 다른 기병들의 말발굽에 잔인하게 짓밟혔고, 자욱한 흙먼지와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영록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이것이...... 진짜 전쟁이었구나......’

영록은 지난 날 자신이 우성시에서 겪었던 것보다 더, 전쟁이란 것이 무섭고 잔인한 것이었다는 걸을 깨달았다.

이제 천제국 기병들은 흥원이 있는 서쪽이 아닌, 북쪽으로 방향을 돌려 빠져 나가려 하고 있었다.

율도군 기병들도 이들을 양쪽에서 포위한 채로 함께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이 때,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천제국 기병 하나가 율도군 기병들이 없는 틈을 발견하고 맹렬히 말을 달려 달아나는 모습이 영록의 눈에 들어왔다.

‘저 자가 과연 도망칠 수 있을까? 이 언덕 주변에도 우리 율도군들이 모두 매복해 있을 텐데?’

영록이 생각한 대로, 그는 멀리 달아나지 못하였다.

언덕에 숨어 있던 율도군 무사 하나가 활을 쏘아 그를 말에서 떨어뜨린 것이다.

말에서 떨어진 도깨비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주 덕에 화살을 맞고도 치명상은 모면한 모양이었다.

그가 다시 자신의 말에게로 뛰어가려 할 때, 언덕 주변에 매복하고 있던 지원병 서너 명이 그를 향해 고함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지원병들은 손에 들고 있던 월추를 휘둘러 그를 바닥에 쓰러뜨렸다. 그리고 그의 몸을 향해 마치 떡매를 치듯 무자비하게 월추를 내리 꽂았다. 말에서 떨어져 칼을 뽑아 싸울 기력조차 없었던 도깨비 기병은 그렇게 지원병들이 휘두르는 월추에 맞아 잔인하게 죽임을 당했다.

도깨비를 쓰러뜨린 지원병들은 전리품을 거둬들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죽은 도깨비의 무기와 말, 마구를 서로 나누어 들고 희희낙락한 표정으로 매복진지로 다시 뛰어 들어왔다.

‘전쟁 기계 같기만 했던 율도군들도, 모두 똑같은 사람들이었구나.’

영록은 이를 보고 한 숨을 내쉬었다.

그 때, 박윤수 중장이 영록에게 말을 몰아 다가왔다.

“마루한, 이제 함께 이동하시지요.”

“어디로 가는 건가요?”

“천제국 기병들이 묻힐 장소로 가려는 겁니다.”

박윤수 중장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 한 뒤, 앞서 언덕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영록도 성시우 대위와 군경 여단 무사들과 함께 군단 지휘부를 따라 언덕을 내려갔다.

율도군들은 아까처럼 철기병들을 앞세워 돌격해 들어오고 있지는 않고 있었지만, 천제국 기병들의 좌우에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계속 끈질기게 따라오고 있었다.

율도군 기병들의 화살은 끊임없이 날아오고 있었다.

화살이 날아올 때마다 어김없이 천제국 기병들, 혹은 그들의 군마가 화살에 맞아 쓰러졌다.

그럴 때마다 뒤 따라 말을 달리던 기병들이 이들과 부딪히며 연쇄충돌을 일으켰고, 대여섯 명의 기병들이 한꺼번에 땅바닥에 처박히고 있었다.

백사도 뒤따라오는 병력들이 시시각각 쓰러져 가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옆에서 말을 달리던 부관이 다급히 소리를 질렀다.

“이대로 가다가는 계속 피해만 늘어날 뿐입니다! 부대를 해체하고 퇴각해야 합니다!”

그의 말에, 백사가 차가운 표정으로 그를 쏘아 보며 말했다.

“부대를 해체하면...... 우리 모두 저들에게 사냥 당하게 된다!”

“그럼 어디로 가시려는 겁니까?”

“저 앞에 교차로...... 그 곳에서 부대를 둘로 나누어 적을 따돌린다!”

전날 지도를 통해 주변 지리를 숙지한 백사는 달성벌 북쪽에 다른 번으로 향하는 여러 갈래의 길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냈다.

그 곳에서 어떻게든 율도군들을 떨쳐내려는 계획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계획도 여지없이 간파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휘이이이이이익~!

하늘 위로 명적의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소리에 놀란 백사가 전방을 바라보았을 때,

“아, 천제 성하......!”

그녀는 저도 모르게 비명을 내지르고 말았다.

그녀가 가고 있던 교차로가 있는 곳으로부터, 검은 갑주로 완전 무장한 율도군 철기병들이 그들을 향해 돌격해 들어오고 있었다.

군단장의 명을 받고 미리 이곳에서 대기하고 있던 율도군 115 기병여단 병력들이었다.

정면에서 나타난 적으로 인해 천제국 기병들의 진격 속도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 때, 후미에서도 절규에 가까운 비명 소리들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적의 철기병이다!”

“율도군 철기병들이 쫓아왔다!”

이미 양 옆으로 적의 기병들이 둘러싸고 있는 가운데, 이제 앞뒤로도 철기병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백사는 그제서야 자신들이 사면으로 완전 포위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말도 안 돼! 어떻게 우리가 갈 곳에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느냔 말이다!’

그 때, 갑자기 지난 날 그녀의 아버지가 백사에게 해주었던 말들이 떠올랐다.

백사의 아버지 역시 천제국으로 넘어온 도깨비였다. 그는 천제 정선교로부터 기병을 지휘하는 실력을 인정받아 귀족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고, 외동딸이었던 그녀 역시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 받아 천제국 기병을 이끄는 장수가 되었던 것이다.

천제국에는 아직도 율도의 국무관, 경무관 같은 국가가 운영하는 군사 학교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녀의 아버지로부터 무예에서부터 병법까지 군사 지식에 대한 모든 것을 배우며 지금 이 자리까지 올라왔다.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에게 천제국의 철천지원수, 율도군에 대해 가르칠 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율도 태상국 강운예는 적영단이라는 부대를 운용하고 있다. 다른 이들은 이 적영단을 강운예의 친위대, 호위대쯤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그들은 겨우 그 정도 역할을 하는 부대가 아니라고 하더구나.]

[그럼 어떤 부대인데요, 아버지?]

[적영단은 빼어난 무예실력과 군사적 재능을 지닌 젊은 무사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장에서 강운예의 최측근에서 함께 싸우는 부대가 맞다고는 하지만, 그보다는 강운예가 뛰어난 군사 지휘관을 육성하기 위해 자질이 있는 무사들을 자신의 옆에 두고 직접 키우고 가르치는 곳이라 보는 게 더 합당할 것 같구나.]

[강운예가 직접 지휘관들을 키우는 거라구요?]

[아무리 적이지만 강운예의 군사적 능력은 인정해줘야겠지. 그런 강운예 옆에서 함께 생활하다 보면 그가 군사를 어떻게 움직이는지, 전장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결정을 내리는지 보고 배우면서 저절로 군사 지휘관으로서의 역량을 키울 수 있게 될 게다. 게다가 함께 무예도 수련하고 전술 전략에 대한 토의도 수시로 하고 있다 하니, 다른 이들보다 훨씬 빼어난 군사적 안목과 식견을 갖추게 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겠지.]

[그럼 전장에 나가서 율도군을 만나게 되면, 적영단 출신 장수를 조심해야겠군요.]

[모든 율도군을 조심해야겠지만 적영단 출신이라 한다면 더더욱 그래야겠지.]

잠시 잊고 있었던 아버지의 말씀이 이제 와서야 떠올랐던 것이다.

얼마 전, 천제국으로부터 날아온 영매에 의해 전해진 첩보 문서에도 분명 적장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율도군 원정군 총지휘관

동부 육군 1군 예하 2군단장 박윤수 중장

......

특이사항 : 중위 때부터 소령 때까지 5년간 적영단에서 근무

그때는 간과하고 지나쳤던 내용이었다.

‘내가 상대하고 있는 자가 바로 적영단 출신 강운예의 제자......? 그래서 지금까지 나와 우리 군을 어린 아이 다루듯이 가지고 놀았다는......?’

갑자기 그녀는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꼈다.

어느 덧 전방에서 달려오고 있는 율도군들이 총의 사거리까지 다가와 있었다.

“모두 박살내라!”

율도군의 우레와 같은 전투 함성과 함께, 맨 앞에서 달려오던 총기병들의 사격이 시작되었다.

탕! 탕! 탕! 타당! 탕! 탕! 탕! 타다당! 탕! 탕!

순식간에 수십 명의 천제국 기병들이 말과 함께 거꾸러졌다.

그 중에는 선두에서 말을 달리던 백사도 포함되어 있었다.

율도군이 쏜 뇌홍식 강선소총의 원추형탄이, 그녀의 말에 씌운 두터운 붉은색 마갑을 꿰뚫고 머리에 박혀 버렸다.

총에 맞은 말이 자지러지듯 쓰러지고, 백사도 말과 함께 땅바닥에 처박혔다.

“허윽!”

큰 충격에, 비명이 절로 터져 나왔다.

백사가 간신히 몸을 일으켰을 때, 16자 장창을 든 철기병들이 그녀의 앞으로 달려 들어오고 있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