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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춘추 - 리부트-112화 (112/217)

〈 112화 〉 대동력 9,994년 5월 34일 (1)

* * *

­ 오전 10시, 대월국 서래번 달성벌 동쪽 일대

백사가 이끄는 천제국 기병들은 밤사이 천막도 치지 않고 야영을 해야 했다.

율도군 기병들이 밤새도록 그들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정탐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 놓고 쉴 수도 없었던 것이다.

아침 해가 떠오르자 백사는 다시 전군을 일으켜 이동을 준비시켰다.

이번에도 종대 대열을 이루고 일반적인 행군을 하는 것이 아닌, 어린진을 치고 사방을 경계하며 이동하려는 중이었다.

진을 이루고 이동하게 되면 일반적인 행군보다 속도도 느릴 뿐 아니라 군사들의 체력도 쉽게 바닥나게 된다.

그래도 이미 자신들이 적진 한 복판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안전한 이동을 위해선 이 방법 밖에 없었다.

백사는 선두에 500여기의 기병들을 앞서 보내 전방을 수색하며 적정을 탐지하도록 했다.

소수의 기병들만을 보내었다가 율도군들의 기습에 전멸당할 것을 우려했던 것이다.

보통 진법에 따라 진을 이룰 때에는 그 후미에 비전투원들과 보급품들을 나르는 치중대를 배치하곤 한다.

하지만 백사는 언제 어디서 율도군이 공격해 들어올지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비전투원들과 치중대를 진의 중앙에 위치시켜 보호하고, 후미에도 기병들을 세워 기습에 대비하고 있었다.

천제국군들은 서쪽 흥원으로 가는 큰길로 방향을 잡았다.

그 길 주변으로 군데군데 농장들과 작은 집들이 세워져 있었고, 그 앞에는 밀밭과 푸른 초원이 넓게 펼쳐진 달성벌이 위치해 있었다.

천제국군의 후미가 길가의 농장을 막 통과했을 때였다.

탕! 탕! 탕!

“으악!”

“어, 어디냐?”

갑작스런 총성과 함께 후미에 있던 기병들이 총에 맞아 쓰러졌다.

농장에 율도군들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저기다! 저기 농장이다!”

“잡아라! 가서 율도놈들을 잡아 죽여라!”

백사가 상황을 파악할 겨를도 없이, 후미에 있던 천제국 기병들이 흥분한 상태로 농장을 향해 돌격해 들어갔다.

농장에는 최소 수십 명의 율도군들이 매복해 있었다.

그들은 농장의 건물과 담벼락을 엄폐물로 삼아 그 뒤에 숨어 달려오는 천제국 기병들을 향해 총과 활을 쏘아 댔다.

탕! 탕! 탕!

율도군 무사들은 뇌홍식 강선소총 여러 정을 미리 장전시켜 놓고 옆에 두었다가 하나씩 들어 적에게 조준사격을 가하고 있었다.

그들이 사용하고 있는 총은 총구 안에 강선을 새겨 사거리와 명중률을 비약적으로 높인데다가, 일반적인 원형탄이 아닌 날카로운 모양의 원추형탄을 사용하고 있어 살상력 또한 다른 총보다 월등하게 뛰어났다.

일반적인 원형탄들이 철갑이나 판금으로 만들어진 갑주를 뚫지 못하는 경우가 간혹 있었던 반면, 뇌홍식 강선소총으로 발사되는 원추형탄은 유성금으로 만든 갑주를 제외한 모든 갑주를 손쉽게 관통시킬 수 있었다.

농장으로 달려오던 천제국 기병들이 율도군의 일제 사격에 우수수 낙마했다. 그들이 입고 있던 붉은 갑주들은 모두 총탄에 가볍게 꿰뚫렸고, 총탄에 뚫린 구멍으로 그들의 검붉은 피가 쏟아져 나왔다.

율도군 무사들은 쉬지 않고 옆에 놓인 준비된 총을 들고 쏘아댔다. 그들이 총을 쏘면 옆에 있던 지원병들이 그 총을 받아 재빨리 재장전을 해주고 있었다.

슉! 슉!

총을 든 무사들 옆에서는 활을 든 무사들이 재빠르게 활을 연사하고 있었다.

활은 총보다 관통력이 떨어졌기에 얼굴이나 갑주 사이 빈틈을 노려 정밀한 사격을 펼치는 이도 있었지만, 대부분 마갑을 입지 않은 말을 쏘아 말과 기병을 둘 다 거꾸러뜨리는 경우가 많았다.

농장의 지붕 위에서도 율도군 무사들이 총과 활을 쏘아대고 있었다. 수십여 기의 천제국 기병들이 농장 앞까지 와보지도 못하고 비명을 지르며 쓰러져 갔다.

탕! 탕! 타당! 탕!

권총을 든 천제국 기병들도 농장을 향해 응사 했다.

하지만 그들의 권총탄은 돌로 만들어진 농장의 담벼락조차 관통시키지 못했다.

가까스로 농장의 앞까지 도달한 천제국 기병들이 말을 탄 채로 담벼락을 뛰어 넘어 들어오려 했다.

“어딜!”

담벼락 뒤에서 기다리고 있던 율도군 무사들이 그들을 향해 장창을 찌르고 편곤을 휘둘렀다.

“커억!”

장창에 몸이 꿰이고 편곤에 후두려 맞은 천제국 기병들이 그대로 말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그러면 뒤에서 기다리고 있던 율도군 지원병들이 달려들어 단도로 도깨비들의 목을 베거나 월추 (도끼와 망치가 합쳐진 형태의 무기)를 휘둘러 갑주와 투구를 깨트려 죽였다.

생각지도 못한 매복 공격에 천제국군의 진이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진을 다시 갖추어라!”

백사가 서둘러 명을 내렸지만, 그녀의 명이 후미에 있던 지휘관들에게 전달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려야만 했다.

대부분의 천제국 기병들은 달성벌의 너른 벌판 위에 진형을 갖추고 오랜 시간을 가만히 서서 대기하고 있어야만 했다.

그렇게 얼마쯤의 시간의 지났을 때,

휘이이이이이이익~!

휘이이이이이이익~!

하늘에서 천제국 기병들의 머리 위 무엇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율도군 포병이 쏘아대는 야포의 포탄이었다.

쾅! 쾅! 콰광! 쾅! 쾅!

천제국군 진영에 떨어진 십 수 개의 포탄들이 검은 폭연을 일으키며 폭발했다.

폭음에 놀란 말들이 길길이 날뛰었고, 포탄 파편에 맞고 폭발의 화염에 휩싸인 기병들의 몸은 산산이 조각나고 있었다.

저 멀리 농장에 매복하고 있던 율도군들이 커다란 깃발을 양 손에 쉬고 수기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아군 포병들에게 착탄 결과와 적 피해 상황에 대해 알려주는 것이었다.

천제국군들과 1,000간 (약 2km) 떨어진 언덕 위에 율도군의 포진지가 있었다. 2군단 예하 114포병여단 야포 부대였다. 그들은 밤 새 이 언덕위에 포진지를 만들어 야포를 방열해 놓고 적을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다.

망원경을 통해 아군의 수기 신호를 확인한 포병 지휘관이 포병들에게 명을 내렸다.

“전 포 초탄 명중! 전 포, 동일 제원으로 효력사 급사 시작하라!”

율도군의 야포들이 바로 불을 뿜기 시작했다.

평사포와는 달리 곡사의 궤도를 그리며 날아가는 율도군의 야포들.

그 포탄들이 또다시 천제국 기병들에게로 불벼락이 되어 쏟아져 내렸다.

쾅! 쾅! 쾅! 콰광!

포탄이 떨어진 자리는 커다란 검은 구덩이로 변해 버렸고,

그 주변은 갈기갈기 찢긴 기병들과 말의 시신들로 아수라장으로 변해있었다.

단 두 번의 포격으로, 수백의 기병들이 비명횡사 당했다.

계속 이대로 가만있다가는 율도군 포병들의 밥이 될 뿐이었다.

“전군 기동! 날 따라 정면으로 이탈한다!”

백사가 선두로 나와 전군을 이끌고 말을 달리기 시작했다.

천제국 기병들은 정신을 수습하고 그녀의 뒤를 쫓아 내달리기 시작했다.

저 멀리 율도군 포진지가 있는 언덕 위에서 새하얀 화약 구름들이 피어나는 것이 보였다.

포탄이 날아오고 있다는 뜻이었다.

쾅! 쾅!

천제국 기병들이 빠르게 달리기 시작하면서, 율도군의 포들도 그들을 정확히 맞추지 못하고 있었다. 포탄이 그들 주변으로 비껴 떨어지고, 검은 폭발의 연기가 기병들을 뒤덮었다.

백사는 이번에도 포병들을 직접 공격하지 않고 그냥 지나쳐 가려 했다.

어차피 그들의 목적은 동금의 본대와 합류하는 것이지, 율도군과 정면 대결을 벌이는 게 아니었으니.

하지만 얼마 못가, 그녀는 이제 더 이상 도망만 다닐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포진지가 있는 언덕 뒤에서, 칠흑같이 검은 갑주를 입은 율도군 기병들이 무수히 쏟아져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백사는 이를 악물었다.

전 군이 말을 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진을 갖추겠다고 정지시키게 되면 금세 적의 기병들에게 둘러싸이고 포위될 판이었다.

‘......율도놈들! 함정을 제대로 파놓고 기다리고 있었구나!’

백사가 허리에 찬 외날도를 뽑아들며 소리쳤다.

“전군 돌격! 적진을 돌파한다!”

그녀가 선두에서 앞장 서 달려 나가며 군을 독려했다.

하지만 율도군들이 자신들을 향해 달려오는 것을 본 천제국 도깨비들의 표정은 모두 극심한 공포로 어두워져 있었다.

율도군 기병들의 선두에서 총을 든 총기병들이 달려 나왔다.

탕! 탕! 탕! 탕!

율도군 총기병들의 일제 사격에 천제국군 선두에 있던 창기병들이 무너져 내렸다.

율도군 총기병들에 이어 산탄총병들까지 그들을 향해 사격을 하고 뒤로 빠졌다.

수십 여기의 천제국 창기병들이 총에 맞아 쓰러졌다. 말에서 굴러 떨어진 도깨비들의 시신은, 뒤 따라오던 같은 편 기병들의 말발굽에 무참하게 짓밟혀야 했다.

총기병들이 사격을 가하고 모두 뒤로 빠지자, 머리서부터 발끝까지, 그리고 말까지 검은 철갑으로 중무장한 탱크와도 같은 율도군 철기병들이 장창을 들고 일렬 횡대로 넓게 진을 펼친 재 천제국 기병들을 향해 돌진해 왔다.

“모두 박살내라!”

“모두 박살내라!”

아침 햇살에 비친 율도군 철기병들의 16자 (약 5m) 길이 장창들이 소름 돋게 빛나고 있었다.

양군의 창기병들이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정면으로 부딪혔다!

퍼억!

콰앙!

콰지직!

“으, 으악!”

창이 적의 몸을 찌르고,

무기와 방패가 부딪혀 깨어졌다.

말에서 떨어진 자들이 피를 흘리며 고통어린 절규를 내지르고 있었고,

창이 부러진 무사들이 칼과 부무장을 꺼내 휘두르며 적과 난전을 벌였다.

양군 기병들의 충돌로 천제국군의 이동이 정지되었다.

첫 번째 돌격을 감행한 율도군 철기병들은 적의 진격이 멈춘 것을 확인하고는 급히 기수를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들이 뒤로 빠지는 것과 동시에, 두 번째 철기병들이 일렬횡대로 진을 펼치고 천제국군을 향해 돌격해 들어오고 있었다.

이미 제 자리에 멈춰 서버린 천제국 기병들은 더 이상 돌파력을 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모두 창을 들어! 뒤에 총기병들 전진!”

백사가 다급히 군을 지휘해 보았지만 허사였다.

율도군의 돌격에 앞선에 있던 창기병들이 와르르 무너지고 어지러이 엉켜 버리는 바람에, 뒤에 있던 총기병들이 총을 쏘기 위해 앞으로 나오기 힘든 상황이었다.

천제국 기병들이 우왕좌왕 하는 사이, 율도군 철기병들의 두 번째 돌격이 이어져 들어 왔다.

“모두 박살내라!”

율도군 철기병들은 마치 훈련 때 나무에 매달린 허수아비를 찌르는 것 마냥 그 자리에 가만 멈춰 있는 천제국 기병들은 장창으로 손쉽게 찔러 쓰러뜨렸다.

퍼벅!

콰직!

“으악”

갑주는 칼처럼 베는 공격을 막아내기는 용이했지만, 창이나 화살, 총탄처럼 찔러 들어오는 공격에는 다소 취약했다. 특히 사람과 갑주의 무게에 말의 무게와 속도까지 더 해져 창으로 찌르는 경우는, 유성금으로 만든 것이나 웬만큼 단단한 갑주가 아니고서야 버틸 재간이 없었다.

붉은 갑주의 천제국 기병들 사이로, 검은 갑주의 율도군 철기병들이 마치 파도가 들이치듯 휩쓸고 다니기 시작했다.

전방의 창기병들이 무너지고, 후방에 있던 총기병들이 부랴부랴 율도군 철기병들을 향해 달려왔다.

하지만 이미 적진을 휩쓸어버린 율도군 철기병들은 군도 등 부무장을 꺼내들고 주변의 적들을 헤치며 유유히 자신들의 진영으로 철수하고 있었다.

율도군 철기병의 두 번의 돌격으로 천제국 기병들의 이동은 돈좌되어 버렸고, 최초 어린진을 이루고 있던 대열은 완전히 흐트러진 상태였다.

그 때, 천제국군들의 머리 위로 화살들이 날아왔다.

화살들은 철기병이 달려왔던 정면이 아닌, 좌익과 우익, 심지어 후미에서도 날아오고 있었다.

어느틈엔가, 율도군 기병들이 그들을 완전히 포위하고 화살을 날리고 있었던 것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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