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화 〉 대동력 9,994년 5월 30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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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5시, 율도 무수막 고원 남쪽 국경지대
포각수들이 토성 위로 기어 올라오자, 율도군들은 4명이 1조를 이루어 그들을 막아내기 시작했다. 맨 앞에 방패를 든 검병이 서고 그 뒤에는 2명의 장창병이, 마지막에 미늘창병이 마름모꼴의 대형을 이루고 적에 맞섰다.
“밀어내라! 놈들을 토성 밖으로 밀어내라!”
검병이 방패로 적의 공격을 막아내며 견제를 하면, 뒤에 있던 장창병이 달려들어 적의 갑옷 빈틈이나 얼굴 부위를 찌르거나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다. 두꺼운 갑주를 입어 창칼이 잘 들어가지 않는 상대는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미늘창병이 달려들어 도끼날로 적의 갑주를 찍어 부셔 버렸다.
사수들은 보병들의 뒤로 물러서서 그들의 어깨 너머로 활과 쇠뇌를 쏘고 있었다. 율도군 보병부대 중대 전술 훈련, 대대 전술 훈련의 기본은 보병과 사수들이 진을 이루고 협동하며 싸우는 법을 익히는 것이다. 그들은 피와 비명이 난무하는 전장의 공포 속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수히 반복된 훈련으로 숙달된 전투기술들을 마음껏 발휘하고 있었다.
토성 위로 올라온 파림의 포각수들은 넓은 날의 대도와 양쪽에 날이 달린 도끼를 휘두르며 율도군들을 압박했다. 자신들이 율도군을 뒤로 밀어내야 성벽을 기어 올라오는 다른 포각수들이 토성 위로 합류할 수 있기에, 그들은 사력을 다해 율도군을 향해 달려들었다.
“죽여라! 율도 놈들을 죽여라!”
웬만한 사람들보다 머리 하나가 더 달려 있는 듯 한 키에, 머리 양쪽에 거대한 뿔까지 나있는 포각수는 두억시니만큼 위압적인 외양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율도군들의 표정에는 추호의 흔들림도 없었다. 그들은 마치 전투 기계들처럼 적에 맞섰고, 단 한치도 뒤로 물러서지 않고 있었다.
포각수 하나가 장창병이 내지른 십자 모양의 장창을 손으로 잡아 도끼로 내리쳐 창자루를 부러뜨려버렸다. 그러자 뒤에 있던 장창병이 십자날로 적의 발목을 베어 넘어뜨렸다. 이어서 검병이 뛰어들어 팔 안쪽과 목 등 갑주로 보호되지 않는 부분을 검으로 마구 찔렀다. 포각수가 고함을 지르며 손에 든 도끼와 부러진 창날을 마구 휘두르며 검병을 공격했다. 검병이 방패를 들어 적의 공격을 막는 사이, 뒤에 있던 미늘창병이 포각수의 어깨를 찍어버렸다. 포각수가 쓰러지자 검병이 다시 그의 목을 베어 숨통을 끊어버렸다.
“모두 자리를 지켜라!”
대대 관측소에 있던 최기가 예비대를 이끌고 접전이 벌어지고 있는 토성 진지 우익에 도착했다. 그는 병사들의 앞으로 뛰어 나와 대도를 든 포각수를 향해 편곤을 휘둘렀다.
쉭!
편곤이 날아오자 포각수가 대도를 들어 막으려 했다.
편곤의 긴 곤봉 부위가 대도에 막혔다. 하지만 쇠사슬에 연결된 철편이 그대로 대도를 넘어 포각수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쿠억!”
포각수의 뿔이 부러지고, 정수리에 피가 터졌다.
최기는 쓰러지는 포각수를 곤봉 부위 끝으로 찍어 밀어버리고는, 성벽 바로 옆에 서 있던 다른 포각수의 얼굴을 향해 편곤을 휘둘렀다.
퍼억!
소머리처럼 생긴 포각수의 턱이 그대로 부서져 버렸다.
이어서 최기의 발차기가 날아들었다. 포각수는 긴 울음소리를 내며 성벽 아래로 떨어졌다.
“나를 따라 적을 성밑으로 밀어낸다! 모두 박살내라!”
“모두 박살내라!”
대대원들이 율도군의 전투구호를 목청 높여 외치며 앞으로 달려 나왔다. 대대장 최기의 분전에 병사들의 사기도 하늘을 찌를 듯이 오르고 있었다.
최기는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포각수의 도끼질을 가볍게 허리를 숙여 피하고는 그의 다리를 편곤 쇠사슬로 감아 넘어뜨렸다. 그리고 천천히 넘어진 상대에게 다가가 그의 머리에 편곤을 내리쳤다.
적은 벌써 수백의 전사자를 내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포각수들은 토성을 제대로 공략하지도 못하고 희생만 계속 늘어날 뿐이었다.
부우우우우우~!
어디선가 뿔나팔 소리가 들려왔다.
파림군의 퇴각 신호였다.
뿔나팔 소리를 들은 포각수들이 토성 밑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율도군들은 달아나는 적을 향해 계속 활과 포를 쏘며 전과 확대를 노렸다.
최기가 토성 위에 마지막 남은 포각수를 쓰러뜨리고 고개를 들었을 때, 옆에 있는 1대대 토성 진지에서도 적병들이 철수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1대대 병력들도 적의 공격을 잘 막아낸 것 같았다.
“적이 퇴각한다! 모두 제자리로 복귀하라! 각 제대장들은 인원 파악 실시하고 전열을 재정비한다!”
최기는 편곤을 크게 한 번 휘둘러 무기에 묻은 피를 털어내고는, 성벽 앞에 서서 퇴각하는 적들을 끝까지 노려보았다.
오전 7시, 율도 무수막 고원 남쪽 국경지대
적이 언덕 아래로 내려갔지만 완전히 철수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여전히 국경 언저리에 진을 치고 있었다. 언제 다시 그들이 공격해 들어올지 모르는 일이었다.
아침 해가 떠오른 후에도 토성 위에는 병력들이 그대로 배치되어 전방을 경계하고 있었다. 아까 전의 전투로 십여 명의 전사자와 스무 명 가량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시신들과 부상병들을 대대 구호소로 이동시키는 가운데, 최기는 토성 진지 일대를 돌아보며 적의 다음 공격에 대비하고 있었다.
“병사들의 식사는 어떻게 할까요?”
그의 뒤를 따르던 군수 무관이 물었다.
“전투식량 준비해서 토성 위로 추진해 오도록. 모두 각자의 진지에서 전방 경계하면서 식사를 할 수 있게 한다.”
군수 무관과 담당 사관들이 명을 받아 토성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전투가 끝난 이후, 연대의 예비대들은 물론 무수막 인근에 주둔하고 있던 13군단 예하 병력들도 국경 가까이 도착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추가 병력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다는 소식에 병사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최기가 계속 진지들과 병사들의 상태를 둘러보던 중, 저 멀리 파림의 진영에서 한 무리의 병력들이 말을 타고 나와 마치 아군 쪽을 시찰하려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그가 옆에 있던 병사에게 말했다.
“대대 관측소에 가서 당장 망원경을 가져오라.”
병사는 부리나케 대대 관측소까지 뛰어갔다 왔다. 최기는 그가 전해준 망원경을 받아 전방에 있는 무리들을 관측했다.
망원경으로 보니 말을 타고 있는 스무 명 가량의 포각수들이 율도군의 토성 진지 이 곳 저 곳을 향해 지휘봉 같이 생긴 막대기로 가리키며 무어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둣한 모습이 보였다. 아마 다음 공격 때 어떤 방향으로 공격할지 의논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응, 저건?’
그 때 망원경에 이상한 것이 보였다.
머리에 큰 뿔이 달린 덩치 큰 포각수들 사이로 여리여리하게 생긴 세 사람이 함께 있었다. 멀리서도 창백할 정도로 새하얀 얼굴이 명확하게 보였다.
‘도깨비? 도깨비들이 왜 파림 놈들과 함께 있는 거지?’
물론 포각수들의 나라 파림이라고 해서 도깨비들이 살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하지만 최기는 파림의 군대를 위해 일하고 있는 도깨비들에 대한 이야기를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들은 반시간 가량 율도군의 토성들을 멀리서 살펴보고는 자신들의 진영으로 돌아갔다. 최기는 무언가 이상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오전 10시, 율도 청남도 다현시
진채연과 동행하고 있는 군경 여단 수사 무관이 정보 하나를 가지고 돌아왔다.
“오늘 새벽 이 인근에 있는 여관에서 십 수 명의 괴한들이 난동을 부리는 일이 있었답니다.”
진채연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황자를 찾고 있는 주나라 대사관 사람들이 벌인 일일 수도 있을 거요. 모두 그리로 가 봅시다.”
일행들은 곧장 말을 달려 사건이 있었던 여관으로 향했다.
이미 여관에는 다현시 관아에서 나온 관리들이 도착해 점원들과 숙박객들을 상대로 조사를 벌이고 있었다.
수사 무관이 관리들에게 태상국 강운예의 관인이 찍힌 공문을 보여주며 협조를 요청했다. 관리들은 지금까지 조사한 내용에 대해 모두 설명해 주었다.
관리들의 설명을 듣던 진채연이 물었다.
“그럼 괴한들의 정체는 아직 확인되지 않은 거요?”
“목격자들의 말에 의하면 모두 복면을 하고 있어 그들이 한자손인지 아리랑인지 도깨비인지 확실치 않다고 하더이다. 적어도 두두리나 두억시니, 자그니, 포각수들은 아니라고 했소.”
“그럼 그들이 그냥 여관을 들이치고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나가버렸단 말이오?”
“여관 방 장지문들을 모두 부숴버리긴 했지만 훔쳐간 물건이 있거나 끌고 간 사람은 없다고 하더이다. 아, 그런데,”
관리가 여관 입구에 앉아 머리에 붕대를 감싸고 지혈을 하고 있는 점원 하나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 사람이 그러는데, 어제 이 여관에 묵은 숙박객들 중에서 밤늦게 말을 타고 들어온 젊은 남녀 한 쌍이 있었다고 하오. 그런데 아침에 확인해보니 그 두 사람만 없어졌다 하더이다. 타고 온 말도 없었고. 괴한들이 난동을 부리던 중 사라진 게 아닌가 생각 되오만.”
그의 말에, 진채연이 일행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 두 사람이 맞는 것 같소.”
곁에 서 있던 승범이 말했다.
“한밤중에 여관 찾아 들어가는 젊은 남녀가 어디 한둘이겠소? 난리 통에 겁먹고 도망갔을 수도 있지, 공연히 속단하는 거 아니냔 말이오?”
진채연이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말을 타고 다닐 정도의 남녀라면 금전적으로 여유로울 터. 그런 이들이 고급스러운 객잔이 아니라 허름한 여관을 찾아 들어온 것은 이 지방 사람들이 아니라는 뜻이오. 충분히 황자와 영애, 두 사람일 가능성이 높소.”
곁에 있던 군경 여단 수사 무관들도 동의했다.
“진대위의 말이 맞소. 일단 추적을 계속 해야 합니다.”
승범이 물었다.
“그럼 이제 또 어디로 갈 것이오?”
“지금까지 두 사람이 계속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걸 알았으니, 지금도 일단 북쪽으로 이동해 찾아봅시다.”
진채연은 곧장 일행들과 함께 말에 올라 다시 북쪽으로 길을 잡고 달려갈 준비를 했다.
승범과 함께 있던 용준이 물었다.
“그런데 아까 그 여관에서 난동을 부린 이들은 누구일 것 같소? 주나라 대사관에서 나온 사람들이 그랬다기엔 뭔가 석연치 않은데.”
“맞아, 체면을 제 목숨처럼 중시하는 주나라 양반들이 황자 찾겠다고 남의 나라에서 저런 진상짓을 벌일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야.”
승범도 맞장구를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사관에서 고용한 사람들일 수도 있고, 또 다른 세력이 황자와 예린을 노리고 있는 것일 수도 있고...... 가능성이 적은 이야기겠지만, 부디 그런 일은 없기만을 바라고 있소. 그럼 출발 합시다.”
진채연은 말에 박차를 가하며 일행들과 함께 북쪽을 향해 달려 나갔다.
오후 2시, 대월국 흥원번 흥원성 일대
흥원성 옆에 율도군의 병영을 짓는 공사는 상상 이상의 공정률을 보이며 빠르게 진척되고 있었다. 공병대 지휘관들은 빠르면 이달 말 즈음이면 율도군들이 모두 벽돌로 지은 병영으로 이주해 들어올 수 있을 거라 예상하고 있었다. 흥원성 주변에 군용 천막을 치고 지내고 있는 병사들에게 희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어제 흥원성 일대로 1개 사단 병력이 더 도착해 천막을 치고 숙영을 하고 있었다. 태진과의 국경 지대로 나가 있던 6군단 예하 9기동사단이 2군단으로 지원 배속된 것이다.
9기동사단의 숙영지 옆에는 2군단 예하 5기동사단의 군용천막들이 늘어서 있었다. 115기병여단의 숙영지도 있었다.
박윤수 중장은 원정군의 기병들을 총동원해, 흥원으로 진군하고 있는 천제국군을 요격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흥원성 첫 번째 성벽 안쪽에 설치된 2군단 임시지휘소에서, 박윤수 중장은 각 부대 지휘관들을 불러 모아 작전을 지시하고 있었다.
“......출발은 내일 밤 10시다. 그 전에 기병들에게 충분한 휴식을 부여할 수 있도록.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군단 참모장이 현 위치에 남아 흥원의 치안 유지와 반란군 잔당 소탕 임무를 계속 수행할 것이다. 그럼 이상, 해산.”
지휘관들이 지휘소를 나가고 있을 때, 때마침 영록이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중년의 지휘관들을 어린 마루한을 향해 깍듯이 거수경례를 하고는 각자 자신의 부대로 돌아갔다.
“안녕하십니까, 마루한. 점심 식사는 잘 하셨습니까?”
박윤수 중장 역시 영록에게 거수경례를 하며 인사했다.
“네, 덕분에요. 실은 드릴 말씀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영록이 그의 경례를 받고는 앞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네, 말씀하시지요.”
“지난 번 제가 예의 없이 포로 처형을 요청했던 것,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그 때 너무 감정에 치우쳐서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죄송합니다.”
영록은 박윤수 중장에서 허리를 숙였다. 박윤수 중장도 그에게 허리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이미 지나간 일입니다. 전 괜찮으니 너무 괘념치 마십시오.”
“그리고, 부탁할 것이 있습니다.”
부탁이라는 말에, 박윤수 중장의 표정이 약간 굳어졌다.
“어떤 부탁이신지요?”
“군단장님이 기동사단들을 이끌고 출전할 때, 저도 함께 데려가 주십시오.”
영록은 당당한 표정으로 군단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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