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3화 〉 대동력 9,994년 5월 30일 (1)
* * *
오전 0시, 율도 청남도 다현시
이부자리를 펴고 눕자마자, 두 사람 모두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 서로를 끌어안고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정국의 손은 예린의 엉덩이를 쓰다듬고 있었고, 예린의 손은 정국의 음경을 부드럽게 매만지고 있었다.
“사랑해......”
예린의 혀가 농밀하게 그의 입술로 파고들었다. 그녀의 숨결은 무척 거칠어져 있었다.
그녀가 단단하게 솟은 정국의 음경을 손으로 붙들고는 몸을 일으켜 올라타려 했다.
그러자 정국이 그녀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예린아, 지금은......”
“그치만, 그치만......”
예린은 간절한 눈빛으로 정국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에, 정국은 이제 그녀를 허락할까, 생각했다.
그때였다.
쾅!
“문 안 열리는 데는 그냥 부수고 들어가!!!”
“꺄악!”
“누, 누구냐?! 뭐하는 새끼들이야?!”
갑자기 밖의 다른 방들이 있는 곳에서 요란한 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장지문 부서지는 소리, 사람들의 비명소리였다.
“밖에 뭐지?”
정국이 놀라 황급히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우리 찾으러 온 사람들일까? 우리나라, 아님 너희 나라에서?”
예린도 본능적으로 한손으로 가슴을 가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이부자리 옆에 벗어두었던 옷을 집어 들었다.
발걸음 소리들은 정국과 예린이 있는 방을 향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이 방도 아니야! 옆방으로! 옆방으로!”
손에 몽둥이를 든 김사미와 그의 동지들이 여관의 복도를 따라 우르르 몰려다니고 있었다.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여관으로 뛰어 들어온 이들 괴한들을 제지하려던 여관 점원들은 그들에게 얻어맞고 머리에서 피를 흘린 채 쓰려져 있었다.
그들은 방이란 방은 모두 열어보고 그 안에 있는 이들을 일일이 확인했다. 여관에 투숙하고 있던 이들은 대부분 여행객이거나 잠시 사랑을 나누러 들어온 연인들이었다. 얼떨결에 봉변을 당한 사람들의 비명과 고함소리가 여기저기서 계속 터지고 있었다.
마침내 그들이 정국과 예린이 있는 방 앞까지 몰려왔다. 그들은 장지문을 몽둥이로 부수고 안으로 들어갔다.
콰자작!
예린과 정국이 방문을 부수고 들어온 괴한들과 눈이 마주쳤다. 그들은 막 창문을 열고 3층 방에서 밑으로 내려가려는 중이었다.
“잡아!”
괴한들이 함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예린아, 먼저 내려가!”
정국이 예린을 보내고 맨손으로 그들과 맞섰다.
“어디서 온 놈들이길래 감히 내게 무기를 들이대는 것이냐?”
예린이 여관 밖으로 몸을 날리자, 정국이 뒤돌아서서 큰 목소리로 그들을 꾸짖으며 주먹을 쥐고 자세를 잡았다.
경무관에서 배운 종합 격투술의 준비 자세였다.
“야았!”
앞서 달려오던 자가 정국의 어깨에 몽둥이를 휘둘렀다.
순간, 정국의 상대의 정면을 향해 뛰어들어갔다.
퍼벅!
정국이 왼손으로 몽둥이를 들고 있는 상대의 팔을 막는 동시에, 그의 얼굴에 오른손 주먹을 꽂아 넣었다. 주먹에 맞은 괴한의 고개가 뒤로 크게 젖혀졌다.
이어서 정국의 오른발이 그를 향해 날아갔다. 앞축 찍어차기였다.
“어흑!”
괴한의 몸이 뒤로 붕, 떠서 날아났다. 뒤에 있던 다른 괴한들도 그의 몸과 부딪혀 바닥에 쓰러졌다.
다들 잠시 주춤하는 사이, 정국도 예린을 따라 창문 밖으로 뛰어 내렸다.
“놈들이 도망간다! 가서 잡아!”
김사미가 다급히 1층을 향해 뛰어 나가며 소리쳤다. 괴한들 모두 그를 따라 다시 밖을 향해 달려 나갔다.
몇몇 녀석들은 곧장 예린과 정국을 쫓아가기 위해 그들처럼 창문 밖으로 몸을 날렸다.
그들이 있던 방은 3층이었다.
“어이쿠!”
밑으로 뛰어내린 괴한들 모두 바닥에 착지하다가 발목이나 무릎을 크게 다친 듯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다들 예린이나 정국만큼 낙법을 열심히 수련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괴한들이 1층으로 모두 내려왔을 때, 이미 두 사람은 마구간에 있던 말을 타고 북쪽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이런 제길.....!”
김사미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 때 저 멀리서 사람들이 뛰어오는 소리, 다급한 고함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율도 관아의 순라꾼들인 것 같습니다.”
“우선 은신처로 돌아가자. 그리고 바로 말을 타고 두 사람 뒤를 쫓을 것이다.”
김사미와 그의 동지들은 손에 든 몽둥이를 바닥에 집어 던지고는 어디론가 달아나기 시작했다. 창문에서 뛰어 내리다 다친 이들도 동지들의 부축을 받아 절뚝거리며 뒤를 따라 도망쳤다.
두 사람은 단숨에 다현시의 외곽지역까지 말을 달렸다.
예린이 말 위에서 정국에게 말했다.
“아까 그 사람들 봤어? 어디서 온 사람들이야? 율도? 주나라?”
정국이 고개를 흔들었다.
“모두 복면을 써서 정확히는 모르겠어. 그런데 이상해. 우리가 아무리 큰일을 저지르긴 했지만, 그렇다고 우리 찾으러 온 사람이 몽둥이 휘두를 이유는 없잖아? 그냥 못 도망가게 둘러싸고 함께 가시지요, 이래도 될 것을.”
“맞아. 게다가 우리 찾는 사람이 복면으로 얼굴을 가릴 필요도 없을 텐데. 혹시 우리하고 상관없는 일인데 뭔가 착각해서 벌어진 일 아닐까?”
“예를 들면 어떤 일?”
“예를 들어? 암흑가 암투가 벌어지는데 우리가 그거하고 관련된 사람인 줄 알고 착각했던 거 아닐까?”
“암흑가......? 예린아, 너 요새 무슨 범죄소설 같은 거 읽니?”
“어...... 비슷한 이야기 읽긴 했지. 헤헤.”
“아무튼 오늘밤 잠자기는 다 틀린 것 같아. 우선 될 수 있는 데로 여기서 멀리 벗어나자.”
“그래!”
두 사람은 웃으며 북쪽을 향해 계속 말을 달렸다.
오전 4시, 율도 무수막 고원 남쪽 국경지대
산 정상의 관측소 옆에 있는 봉화대의 불이 3개에서 4개로 늘어나고 있었다.
밤사이 전방으로 전개했던 파림의 병력들이 마침내 국경을 넘었다는 신호였다.
이곳 무수막 국경의 토성에 배치된 44교도사단 2연대 3대대 병력을 지휘하고 있는 이는 최기 소령이었다.
누리마루에서 마루한 영록의 호위에 실패하고 대월국에 납치되도록 한 것에 대한 문책을 받고, 지난해부터 이곳 44교도사단으로 강제전출당해 와있었던 것이다.
44교도사단은 흔히 ‘속죄부대’라 불리고 있었다. 군법 위반 등 여러 이유로 처벌을 당한 군인들이 강제로 보내지는 곳으로, 사람이 살기 힘든 황량한 모래사막뿐인 이곳 무수막 고원에서 정해진 형기 동안 복무를 하며 죗값을 치렀다.
성실하게 근무하거나 전공을 세운 자는 감형을 받고 이곳을 벗어나 다른 부대로 다시 전출될 수도 있었다. 매년 전체 병력의 1/5 정도가 그렇게 감형을 받아 다른 부대로 나가곤 했다.
이로 인해 44교도사단에서 복무하는 대부분 군인들은 최대한 성실히 근무하는 모습을 보이려 노력하고 있었다. 기회만 되면 전공을 세우려는 욕심을 가진 자들 역시 그 어디보다 많았다.
최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이곳 무수막에 도착한 날부터 하루라도 빨리 공을 세워 지난 날 누리마루에서의 과오를 씻고자하는 의욕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던 중, 남쪽 국경 넘어에 있던 포각수의 나라 파림이 율도를 상대로 군사 행동을 시작한 것이다.
“연대에서 보낸 첩보에 따르면 대대 정면으로 오고 있는 적의 수는 약 2천여 명, 우리의 5배라고 합니다.”
보고하는 작전 무관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율도군의 토성 방어진지 내 대대 관측소에서도 저 멀리 파림 병력들이 들고 있는 횃불들이 눈에 들어왔다.
현재 대대원은 모두 380여명, 토성 방어에 맞게 모두 보병들과 사수들로 편성되어 있었다.
‘그래도, 총이 있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최기는 화력이 부족한 점을 못내 아쉬워하고 있었다.
다행히 사단 포병연대에서 나온 3치 평사포 1개 포대 6문이 그의 3대대에 지원 배속 나와 있었다. 이들은 이미 토성 위에 포를 설치하고 언제든 발포를 방포할 수 있도록 준비를 마친 상황이었다.
그 때, 아직 새벽어둠 사이로 일렁이던 파림 군사들의 횃불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최기의 대대 앞에 있는 적병들 뿐이 아니었다. 옆에 있는 1대대, 타 연대의 부대 앞에 있는 적병들이 들고 있던 횃불들도 모두 꺼지고 있었다.
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명화시(조명탄 기능을 하는 화살)를 올려라!”
최기가 관측소 진지 밖으로 몸을 내밀고 큰 목소리로 명을 내렸다.
토성 진지 여기저기에서 하늘 위로 5개의 화살이 날아올랐다.
잠시 후, 하늘 위에서 주황빛 섬광이 새벽하늘 위에서 밝게 빛나며 무수막의 모래 언덕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1대대가 있는 토성에서 발사된 명화시들도 빛을 발하고 있었다.
명화시가 떨어지는 언덕 아래에서, 머리에 거대한 뿔이 달린 황소처럼 생긴 포각수들이 율도군의 토성을 향해 달려오는 것이 보이고 있었다.
“적이 평사포 사거리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곁에 있는 작전 무관이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포격, 시작하라!”
최기의 명령이 떨어지고, 방포를 명하는 북소리가 고요하던 새벽 하늘 아래 울려 퍼졌다.
둥! 둥! 둥!
쾅! 쾅! 쾅!
북소리가 울리기 무섭게, 토성 위에서 명령만을 기다리던 포들이 불을 뿜어대기 시작했다.
명화시의 불빛 아래, 율도군 평사포에서 쏜 둥그런 원형포탄이 모래 언덕 아래 포각수 병사들을 날아갔다.
포탄이 땅에 부딪혀 튕길 때마다 모래 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났다. 모래 먼지가 걷힐 때 쯤, 포탄이 날아간 자리 위로 포각수의 시신들도 일렬로 나란히 누워 있었다.
토성 위에 위치한 모든 포진지에서 포격이 진행되었다.
율도군의 포격을 퍼붓는 사이, 산 정상의 봉화대에서 불이 하나가 더 올라 다섯 개의 봉화대가 모두 불을 밝혀졌다.
적과 교전이 벌어지고, 실제 전쟁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였다.
“크와아아아악!”
이제 포각수들이 내지르는 함성이 토산 위에까지 들려오고 있었다.
“전 포 포도탄 준비! 사수들은 모두 대기! 적이 더 가까이 올 때까지 기다린다!”
최기의 명에 따라 포병들이 원형포탄 대신 포도탄을 포구로 집어넣기 시작했다. 포도탄은 가죽 주머니 안에 원형포탄보다 작고 산탄보다는 큰 구슬탄을 모아둔 것이었다.
포병들의 포도탄 장전이 끝나고, 대대 사수들도 화살을 시위에 걸고 사격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포각수 병사들이 토성 50보 앞에 도달했다.
그곳에는 윤형철조망들이 여기저기 길게 늘여져 설치되어 있었다. 밤사이 최기의 대대원들이 적들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몰래 토성 밖으로 나가 지지목도 박지 않고 윤형철조망들로 토성 앞을 막아 놓고 돌아왔던 것이다.
“끄아아악~!”
“철조망이다! 앞에 철조망이 있다!”
어둠 속에서 미처 윤형철조망을 발견하지 못한 포각수들이 그대로 몸이 걸리고 말았다. 함성 소리는 비명으로 바뀌고, 토성으로 몰려오던 포각수들의 전진이 돈좌되었다.
“전 포, 전 사수 사격!”
쾅! 쾅! 쾅! 콰광! 쾅!
6문의 포에서 일제히 포도탄이 발사되었다. 포탄이 날아간 곳마다 윤형철조망에 걸려 오도 가도 못하고 있던 포각수 병사들이 수십 명 단위로 한꺼번에 쓸려나갔다.
포들이 재장전하는 사이 대대 관측소에 있던 사수들은 다시 하늘 위로 명화시를 쏘아 올렸다. 명화시의 조명 불빛에 윤형철조망 지대에 걸린 적의 형체가 뚜렷하게 드러났고, 토성 위의 사수들은 한 발 한 발 정확하게 적의 가슴에 화살을 박아 넣었다.
“우측 장애물지대가 뚫렸습니다!”
작전 무관의 말에 최기가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우익의 토성 진지 전방에 있던 적병들이 윤형철조망을 극복하고 앞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한 곳이 뚫리자 다른 적병들도 모두 그곳을 통해 몰려들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우익의 토성 진지 아래에 수백의 포각수들이 모여들어 성벽 위로 기어오르고 있었다.
우익의 토성 위에 있던 포병들이 급히 포진지에서 포를 빼어 토성 아래로 철수하기 시작했다. 장창병, 미늘창병들은 성벽을 기어오르는 적병들을 무기로 찍어 떨어뜨리고, 사수들은 쉬지 않고 활시위를 당기고 있었다.
“예비대인 3중대는 나를 따라 우익으로 이동한다! 작전 무관이 관측소를 맡을 수 있도록!”
최기가 옆에 내려놓았던 편곤을 손에 들고 관측소 진지에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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