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화 〉 대동력 9,994년 5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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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8시, 율도 백화 대원수부 평연당
천제국의 정선교가 대월국으로 보낼 10만의 병력을 편성하고 있고, 반란군과 싸우고 있던 7방면대 11군단 병력들도 방향을 틀어 흥원이 있는 서쪽으로 진군하기 시작했다는 첩보는 곧장 율도까지 전해졌다.
대원수부 정보본부장 이기백 중장은 흑영단이 보내온 정보들을 종합하고 분석한 결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천제국의 최초 계획은 우리가 주 나라, 파림과의 국경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사이 재빨리 대월국의 서쪽과 남쪽지역 번들을 접수하고 우리의 육상 무역로를 끊으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먼저 흥원을 확보해 버리면서 그들의 계획은 모두 수포로 돌아가게 되었지요. 천제 정선교가 직접 10만이란 대군을 이끌고 친정하려 한다는 건, 그만큼 이번 일에 사활을 걸고 있다는 뜻일 겁니다. 육상 무역에서의 국익은 물론 주 나라, 파림과 맺은 모종의 계약을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먼저 들어온 부대까지 합치면 이제 천제국의 병력은 율도 원정군의 2배에 달하게 되었다. 게다가 그 주력은 두억시니들이니, 흥원으로 들어간 2개 군단만으로는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결국 강운예가 나서기로 결정했다.
“그 놈이 그렇게 원한다면, 내가 직접 박살 내주지.”
그는 대원수부 직속의 1군단, 3군단에 출정 준비 명령을 하달하는 한편, 초원길을 관할하고 있는 5군단에서도 20기동사단, 134기병여단, 136포병여단 등을 원정에 차출했다.
서쪽과 남쪽의 국경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도 간과할 수 없었다. 오늘 오후, 남쪽 파림의 병력들이 무수막으로 병력을 전개하기 시작했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결국 총참모장의 건의에 의해 전군에 전투 준비 태세 명령과 동원령이 선포되었다. 이제 율도의 모든 부대가 완전 무장한 상태로 전투 대기 상태에 돌입하고, 중부 3군에 있는 12개 동원사단들은 민간인 예비 병력들을 소집하기 시작할 것이다.
전쟁이 확전 됨에 따라 대원수부의 모든 업무들도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강운예는 잠시 시간을 내어 다시 평연당으로 향했다.
이소영에게 자신의 참전 소식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다소니는 3층 거실의 안락의자에 앉아 있었다. 조금 전까지 울고 있었는지, 그녀의 눈가에 아직 눈물이 맺혀 있었다.
작은 딸 예은이 그녀와 함께 있었다. 예은은 어머니의 앞에 무릎 꿇고 앉아 그녀의 손을 잡고 위로하는 중이었다.
“아빠?”
강운예를 본 예은이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는 딸은 다정스레 안아주고는,
“엄마와 할 얘기가 있으니 잠시 네 방에 가 있으렴.”
하고 딸을 내려 보냈다.
예은이 내려간 후, 강운예는 다소니의 옆자리에 앉아 그녀의 어깨를 안아주었다. 이소영은 다시 울먹이며 그의 어깨에 얼굴을 기댔다.
“진대위로부터 무슨 소식 없었나요?”
“아직. 영매 부리는 전령을 둘이나 함께 보냈으니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이 올 거야. 그런데......”
강운예는 그녀의 손을 잡으며 어두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전쟁이 더 커지게 되었어. 나도 곧 대월국으로 출전해야 돼. 당신과의 약속 지키지 못해서 미안해......”
그의 말에, 이소영은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녀는 다인의 목을 끌어안고 한참을 목놓아 울었다.
“미안해. 당신 곁에 있어주겠다는 약속도, 예린을 찾으러 직접 나서겠다는 약속도 못 지키게 되서.”
다소니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달래보았지만, 그녀의 눈물은 그치지 않았다.
한참을 울던 이소영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이번엔 제가 직접 예린이를 찾으러 갈게요. 당신은 이 나라를 돌보는 것이 먼저니까, 나한테 무사들 몇 명을 내주세요. 그들과 함께 제가 예린이를 찾아서 올께요.”
“당신이 없는 사이 예은이는 어떻게 하라고? 진대위가 곧 좋은 소식 보내올 테니 조금만 더 기다리도록 하지.”
이소영은 다시 울음을 터뜨리며 다인의 품에 안겼다. 눈물 흘리는 다소니를 안으며, 강운예의 마음도 찢어지고 있었다.
오후 14시, 율도 청남도 다현시
이제 주 나라 백성들의 봉기는 모든 제후국에서 우후죽순 일어나고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지에서 일어나는 봉기의 성격은 모두 상이했다.
율도에서 파악하고 있는 것처럼 주 나라에서 활동하고 있는 율도 상인들이나 율도를 방문한 적 있는 주 나라 사람들을 통해 전파된 ‘대동 자유민주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아 신분 / 계급 철폐, 의무 교육 실시, 세제 개혁 등을 부르짖는 이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몇 배에 달하는 사람들은 이보다 훨씬 더 급진적인 사상에 이끌려 봉기에 나서고 있었다.
‘이성’이란 자가 내놓은 ‘공물론’이라는 사상이었다.
공물론은 수천년 전 미한 윤예진이
● 대동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모두의 공유물이다.
● 대동 사람들은 모두 전체의 이익을 위해 노동하며 노동의 산물은 모든 사람이 공동으로 향유한다.
● 일 할 수 있는 자에게 일을 주고. 일 할 능력이 없는 노인이나 어린이는 사회가 부양한다.
● 통치자는 어질고 지혜로운 사람을 선택하여 신의와 화목을 구현하도록 한다.
와 같은 대원칙을 두고 천명한 ‘대동사상’을 바탕으로 이성이 재구성한 사상이었다.
이성은 윤예진의 대동사상에 수백 년전 박환성이 부르짖었던 ‘대동사회주의사상’의 주요이론들을 수렴해 ‘공물론’으로 완성시켰다.
그는 자신의 사상을 통해 신분 / 계급의 철폐는 물론 마루한의 존재에 대한 부정, 제후국에서 이어지고 있는 세습 통치 철폐, 토지와 경제 시설의 공유, 사유재산 소멸, 재화의 균등 분배를 주장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이들은 이성이 말하고 있는 것과 비슷한 사상을 가진 이들이 현실 세계에도 있었음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마르크스, 레닌, 스탈린과 같은 사람들 말이다.
이성의 주장하는 공물론은 현실 세계의 공산주의와 매우 흡사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율도의 흑영단이나 각국의 정보대에서도 이성의 존재와 그를 따르는 무수한 추종자들, 그들로 인해 일어나고 있는 각종 사건들에 대해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성이 말하는 공물론이 어떤 것인지, 그의 주장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학문적으로 분석하고 이해하고 있는 이들은 전무했다. 공산주의나 다름없는 공물론이 얼마나 위험한 사상인지 알지 못한 채, 그저 자유민주주의나 사회주의의 아류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공산당선언’에서 표현한 것처럼 이성의 공물론이 마치 유령과 같이 대동 서부를 배회하기 시작했을 때, 주 나라의 모든 세력, 황제와 제후들, 부호들과 대지주들, 관리들과 관군들은 이 유령을 반역, 혹세무민을 조장하는 세력으로 점 찍고 탄압에 들어갔다.
수많은 공물론자들과 그의 추종자들이 투옥되어 고문당하고 처형당했다. 어떤 제후국에서는 한 마을에서 주민 절반이 관아로 잡혀 가기도 했다.
그런데, 이러는 중에도 주 나라의 지도층은 공물론의 실체에 대해 큰 관심을 두지 않고 배척하기만 했다. 그저 율도의 대동 자유민주의사상이거나 과거 잠시 유행했던 박환성의 대동 사회주의와 다를 바 없는 개소리라 치부하기 일쑤였다. 그들 모두 아직도 성리학을 통해서도 이 대동에 지상낙원을 이룰 수 있다는 망상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공물론의 실체에 관심을 갖지 않는 와중에도 유령은 날이 갈수록 커져 갔다.
결국 유령은 형체를 갖추게 되었고, 농기구와 공구들을 내려놓고 무기를 손에 들고 본격적인 투쟁에 나섰다.
공물론 혁명을 위한 구체적인 시도들이 시작된 것이다.
이성의 추종자들 중 가장 과격하다고 소문난 ‘조제수’라는 자가 주 나라의 북쪽 바다 건너 섬에 위치한 제후국 진나라를 무력으로 전복시키고 공물론에 입각한 민중들의 국가를 건설할 계획을 세웠다. 그는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주 나라 황제 황치우를 위협할 여러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는데, 그 중에는 황실 사람들을 납치해 인질로 삼으려는 계획도 포함되어 있었다.
조제수 휘하의 무리들이 각지로 흩어져서 주 나라 황실 사람들 중 납치할 만한 자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율도에서 주 나라로 돌아가던 황자 정국이 갑자기 행렬을 뛰쳐나와 달아났다는 소식이 율도에서 활동하고 있는 조제수의 동지 ‘김사미’의 귀에 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김사미는 율도 내 모든 조직원들을 풀어 황자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율도 태상국의 영애 예린과 함께 있는 정국을 발견하게 되었다.
“조금 있으면 자정이다. 여기서 더 가면 잘 곳도 없을 것 같은데, 오늘은 여기서 쉴 만한 곳을 찾아보자.”
정국이 손목 시계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금으로 된 화려한 장식들이 조각된 그의 시계는 언뜻 현실 세계의 파텍필립 그랜드마스터 차임과 흡사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의 말에 예린도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래, 우리...... 이제 자러 가자.”
그녀의 얼굴이 발그랗게 상기되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객잔은 보이지 않았다. 다현시의 번화가에서 너무 벗어난 곳까지 와버린 탓이었다.
둘은 결국 적당한 여관을 찾기로 했다.
마구간을 갖춘 여관은 흔치 않았다. 결국 한참을 돌아다닌 후에야 마구간이 딸린 여관을 찾아 들어갈 수 있었다.
“에엥~? 이게 뭐야~?”
여관이란 곳을 처음 와 본 예린은 그 초라함에 크게 실망하고 말았다.
객잔에 비해 한참 작은 방에는 침대도 없었다. 그냥 바닥에 깔려 있는 몇 장의 이불을 깔고 덮고 자라는 것이다.
옷이나 짐을 보관할 수 있는 장농이나 탁자, 의자 같은 가구들도 없었다. 심지어 방에 화장실이나 씻을 수 있는 시설도 없었다. 모두 여관 2층에 있는 공용시설을 이용하게끔 되어 있었다.
이번에 4군단으로 실습 갔을 때 이와 비슷한 환경에서 생활해보긴 했지만, 예린은 이런 것들이 영 탐탁치 않은 듯 했다.
“와...... 이런 데를 돈을 내고 들어와야 한다고?”
정국은 위에 옷을 벗으며 그녀를 타일렀다.
“우리 이제 황자, 영애 신분 모두 내려놓고 살기로 했잖아? 그럼 보통 사람들이 사용하는 이런 시설에도 익숙해져야지. 많이 피곤한데 얼른 자자. 내일도 아침 일찍 출발해야지.”
정국이 옷을 벗는 모습에, 예린은 만면에 미소를 띄며 그의 품에 안겼다.
“응, 자기~ 우리 이제 자자~”
예린도 입고 있던 옷을 급히 벗어 던지기 시작했다.
정국과 예린이 여관으로 들어가고 얼마 후, 십수 명의 남자들이 이 여관 주위로 몰려왔다.
어제 삼성에서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 김사미와 그의 동지들이었다.
그들은 사람들의 눈에 띄는 흑립과 대동 서부의 복식 대신, 모두 일반 노동자들이 입는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대신 목에는 하나같이 두건을 두르고 있었는데, 여차하면 이걸 쓰고 얼굴을 가리려는 모양이었다.
“두 사람 다 무예 실력이 출중하다하니 다들 각별히 조심하라. 다치게 하는 건 상관없지만 둘 다 사로잡아야 하니 죽이지 않도록 유의하고.”
김사미는 남자들에게 이렇게 지시를 내리고 얼굴을 두건으로 가렸다. 그의 동지들도 모두 눈 아래까지 두건을 잡아올렸다.
그들 중 몇 사람이 등에 짊어지고 있던 보따리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보따리에는 나무로 된 몽둥이들이 가득 들어있었다.
“들어가자!”
김사미가 몽둥이를 꺼내 들었다. 다른 이들도 모두 손에 몽둥이를 들고 그를 따라 여관으로 뛰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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