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화 〉 대동력 9,994년 5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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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시, 율도 강북도 일대
예린과 정국은 백화산 북쪽의 남한강 다리를 건너 홍진을 향해 올라 가고 있었다.
그곳 소하북항에서 일단 바다를 건너 태진으로 간 다음, 태진의 상선을 타고 대동 동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정국이 4군단 무사들에게 붙들릴 때 가지고 있던 무기를 모두 빼앗겼지만, 품에 있던 수표들은 모두 그대로 있었다. 저번에 가출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돈은 두둑히 챙겨 가지고 나온 모양이었다.
두 사람은 가장 먼저 마구 상점을 찾아 들어가 말 안장과 고삐, 등자 등을 샀다. 아무런 마구도 없이 말을 타는 게 퍽 불편했던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마구 없이 말을 타는 것은 카시트도, 핸들도, 브레이크도 없는 차를 모는 것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사람들도 마구 없이 말을 타고 다니는 두 사람을 계속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칼이나 활도 살까?”
정국이 말 입에 재갈을 물리고 고삐 길이를 조절하며 물었다.
예린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우리 대동 동부로 가서 집도 사고 거기서 쓸 물건들도 사려면, 지금부터 조금씩 아껴야 할 거 같애.”
예린의 대답에 정국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밤이 깊어지자 두 사람은 일단 객잔을 찾아 들어갔다. 객잔 점원이 웃는 얼굴로 그들을 맞이했다.
“오서 오십시오! 두 분이십니까? 방은 몇 개를 내어드릴까요?”
잠시 예린의 얼굴을 바라보던 정국이 부끄러운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냥, 방 하나 주시오.”
그 말에, 예린은 발그레해진 얼굴로 정국의 손을 꼭 잡았다.
예린이 화장실로 들어가 씻는 사이, 정국은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는지 침대에 누워 천장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화장실로 들어가며 입고 있던 옷을 모두 벗어 놓았다. 화장실 문 앞에는 예린이 4군단에서 실습하며 입던 검은색 전포와 아래 위 속옷들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문이 열리고 예린이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아직 물기가 덜 마른 몸을 커다란 수건으로 살짝 가린 채, 수줍게 웃으며 정국에게 다가왔다.
“뭐하고 있었어?”
예린이 침대 위로 올라와 그의 어깨에 기대고 누우며 물었다.
“대동 동부로 갔을 때 주신으로 가는 게 좋을지, 아랑으로 가는 게 좋을지, 가게 되면 무슨 일을 하고 살면 좋을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어.”
“그래서, 여보야 생각에 어디로 가면 좋을 거 같은데?”
“주신으로 가는 게 더 좋을 거 같아. 주신이 아랑보다 더 큰 나라니까 사람들도 많고 할 일도 많을 거야.”
“자기...... 이제 황자 신분으로 살 수 없는데, 그래도 괜찮아? 다른 사람 밑에서 일 하면서 살아도?”
예린이 근심 어린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정국은 몸을 돌려 그녀의 뺨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너 없이 황자 신분 누리면서 평생을 사는 것보다, 아무 것도 없는 빈털터리로 단 하루를 살아도 너와 함께 사는 게 나아.”
두 사람은 서로를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다.
예린이 몸에 두른 수건을 밑으로 내렸다. 하얀 피부에 탄력 있는 그녀의 젖가슴이 드러났다.
“아......”
어느새 예린의 숨소리가 거칠어져 있었다. 그녀는 얼굴에 홍조 띄고 정국의 옷을 하나씩 벗기기 시작했다.
갑자기 정국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의 얼굴을 본 예린이 조심스레 물었다.
“아직도 나랑 선 넘는 거 무서워? 우리 아빠 때문에......?”
지난 날 누리마루에서 대원수부 직속 군단들을 이끌고 대월국 국경까지 쳐들어온 강운예와 만났을 때, 정국은 강운예의 온 몸에서 뿜어 나오는 소름 돋는 투기에 질려 그동안 예린과 어떻게 누리마루까지 왔는지 단 하나의 거짓도 없이 사실대로 실토해 버렸다. 두 사람이 밤에 어떻게 했는지까지 모두 다 말이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강운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정국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지금도 그 때만 생각하면 다리가 후들거려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 정도였다.
“아니 그렇지 않아, 하지만......”
정국은 그의 바지를 내리던 예린의 손을 잡으며 잠시 망설였다.
“만약 아이가 들어서게 되면 대동 동부까지 가는 동안 네가 많이 힘들까봐, 그게 걱정이라서 그래.”
예린은 못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럼, 전에 누리마루 갈때처럼...... 심하게 선 넘지 말고 딱 그 선까지만 갈까......?”
결국 정국도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래......”
예린이 부끄러운 듯이 웃으며 다시 정국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아무것도 입지 않고 침대 위에 누워 서로를 끌어안았다.
예린은 정국의 음경을 손으로 잡고 가볍게 흔들며, 그와 입을 맞춘 채 혀를 섞었다.
정국의 손이 예린의 젖가슴을 가볍게 움켜잡았다.
“음, 으응......”
예린의 입에서 교태 어린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그녀의 다리가 그의 허벅지를 감쌌다. 그녀의 음문에서 흘러나온 진한 액체가 그의 다리를 적시고 있었다.
예린이 몸을 일으켜 침대 아래로 기어갔다. 그리고 정국의 다리 사이에 무릎 꿇고 엎드리고는, 허리를 숙여 그의 음경을 입으로 물었다. 정국이 놀란 표정으로 상체를 일으켰다. 그리고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밀어내려 했다.
“예린아, 그, 그건!”
“여기까지만...... 심하게 선 넘지 말고 딱 여기까지만......”
예린은 정국의 팔을 잡은 채, 음경을 입에 물고 머리를 앞뒤로 흔들기 시작했다.
“자기, 나중에 혹시 우리 아빠한테 잡힐까봐 무서워서 그래?”
“잡히지 않게 조심하고 살아가겠지만, 정말 태상국께 잡히면 어떻게 될까 걱정이 되기는 하지......”
정국은 손으로 예린의 등과 몸 여기저기를 쓰다듬었다. 백옥같이 부드러운 그녀의 피부를 매만질수록, 그의 것이 더 딱딱하게 서는 기분이었다.
오전 2시, 율도 백화 대원수부 평연당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그 둘을 잡아다가 아주 그냥......!!!”
강운예는 예린이 또 가출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를 어떻게 해야 하냐며 오열하는 다소니를 달래느라 한창 애를 먹고 있었다.
원래 강운예는 전쟁 시작하고 당분간은 평연당으로 귀가하지 않고 대원수부에서 숙식하며 군무를 돌볼 예정이었지만, 자신의 부인에게 예린의 일을 알려주기 위해 어쩔 수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백영단 진대위에게 병력 주고 잡아오라고 했으니까 조만간 무슨 소식이 있을 거야. 만약 그들이 못 찾으면 내가 직접 찾아 나설 테니, 당신 너무 걱정하지마.”
다인의 위로에도 영부인 이소영의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어떻게 걱정을 안 할 수가 있어요, 어떻게~! 이번이 처음 가출한 것도 아니고 둘이 또 같이 도망을 갔다는데 어떻게 걱정을 안 할 수가 있냐구요~!”
이소영은 남편의 품에 안겨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내가 약속할께. 그 두 녀석, 금방 다시 붙잡아올게. 그 녀석들, 예린이는 붙잡아와서 두번 다시 가출할 생각 못하게 내가 정말 눈물 쏙 빠지도록 혼 내줄거고, 황자 그 개새끼...... 아니, 황자 그 녀석은......”
갑자기 그의 눈에서 번쩍, 하고 불꽃이 튀는 것 같았다.
“그 녀석은...... 어떻게 처리할지 진지하게 고민해서 다시 얘기해줄께.”
그의 입에서 뿌득, 하고 이 갈리는 소리가 들렸다.
“정말이지, 예린이 얘는 대체 누굴 닮아 이러는건지 정말 모르겠어요! 무슨 가출을 1년에 한 번씩, 이게 무슨 연중 행사도 아니고~!”
“미안해, 아무래도 예린이 걔가 날 닮아서 그런건가봐. 미안해, 내가 정말 미안해......”
강운예는 아내를 꼭 끌어안고 등을 토닥여 주었다.
오전 8시, 대월국 흥원번 동쪽 경계 일대
아침해가 대지를 밝게 비추기 시작할 무렵, 흥원번 무사단의 갑주를 입은 도깨비 무사 하나가 흥원을 향해 말을 달려오고 있었다.
흥원공 진대승으로부터 영지 내 상황을 확인해 보라는 지시를 받은 자였다.
그가 흥원의 경계 가까이 왔을 때, 이상한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흥원으로 들어오는 진입로 일대에 요새화 된 진지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분명 그가 고향을 떠나올 적에는 저 자리에 없던 것들이었다.
‘설마, 반란군 놈들이 만든 것인가?’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진지를 살펴보았다.
진지는 흙마대를 만들어진 두터운 벽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 앞에는 정교한 윤형철조망들을 삼각형 형태로 쌓아 올린 장애물지대가 둘러져 있었다. 진지 위에는 총과 활, 쇠뇌를 든 병사들이 배치되어 있었고, 심지어 대포도 2문이나 설치되어 있었다.
진지 위의 병사들은 모두 검은색 갑주와 전포를 입고 있었다. 가지고 있는 무기들도 대월국 도깨비들의 것이 아니었다.
‘반란군이 아니다. 저 복장은 율도군의 것이다!’
그가 말 위에서 망설이고 있을 때, 한 병사들이 도깨비 무사를 발견했다. 진지 위의 병사들이 일제히 그를 향해 무기를 겨누었다.
“누구냐? 움직이면 쏜다!”
진지 위에서 율도군 무관 한 명이 일어서서 큰 목소리로 외쳤다. 도깨비 무사는 싸우거나 도망칠 의사가 없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손을 머리 위로 들고 말에서 내리며 대답했다.
“나는 흥원공의 맹약 무사요. 흥원공의 명을 받아 번으로 들어가려는 길이오. 당신들은 대체 뉘시오?”
이에, 진지 위의 무관이 병사들에게 무기를 내려 놓으라 명했다. 그리고 다섯명의 무사들을 대동하고 진지 밖으로 나와 그에게 다가왔다.
“우리는 율도군 6보병사단 병력들이오. 흥원을 점령했던 통요번 반란군 놈들을 내쫓고 이 곳의 치안을 안정시키는 중이오.”
그 말에 도깨비 무사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그럼 당신들이 통요번 놈들을 모두 몰아냈단 말이오?”
“아직 소수의 잔당들이 남아 있어 다른 부대가 그들을 쫓고 있기는 하오만, 모두 조만간 소탕될 것이오.”
“그런데 어찌하여 율도군이...... 이곳에서 반란군을 내쫓아준 것이오? 게다가 왜 여기에 이런 진지까지 만든 것이고......?”
도깨비 무사가 의심 가득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나는 일개 중대장이라 자세한 사항은 잘 모르오. 이 곳의 공녀가 우리 나라와 협정을 맺었다는 것 외에는, 나도 들은 것이 없소.”
“협정? 우리 공녀께서 율도와, 아니, 귀국과 협정을 맺었다는 말이오? 무슨 협정 말이오.”
“말했다시피, 나도 자세한 사항에 대해 들은 바 없소.”
도깨비 무사는 답답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 하나만 더 물읍시다. 흥원공 각하의 가족분들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 있소? 그분들 모두 안전하게 잘 계시오?”
“반란군에 잡혀 있던 공녀의 어머니와 동생들 모두 우리 군에 의해 안전하게 구출되었다 들었소.”
“참말이오? 그럼 그분들 모두 무사하신게요?”
“그럴게요. 지금 그들 모두 흥원성에서 우리 군에 의해 안전하게 보호되고 있소. 묻고 싶은 건 더 없소?”
무관의 마지막 말에 살기가 진하게 묻어 있었다.
“그럼 안심하고, 저 세상으로 잘 가시게.”
번쩍, 하는 섬광과 함께 도깨비 무사의 목을 향해 한 줄기 빛이 날아들었다.
율도군 무관이 단 한 번의 발도술로 그의 목을 날려버린 것이다.
도깨비 무사는 자신이 죽는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한 듯, 무슨 말을 더 하려는 찰나에 목이 베어졌다. 땅바닥에 떨어진 도깨비 무사의 머리는 여전히 무언가 말하는 것처럼 입술을 움찔거리고 있었다.
“이 곳 주민들이 알지 못하게, 빨리 치워서 묻어 버려라.”
무관은 군도를 휘둘러 칼에 묻은 피를 혈진하고는, 무사가 타고 온 말을 잡아 끌고 진지로 돌아갔다. 그와 같이 나왔던 다른 무사들이 진지를 향해 손짓하자 삽과 곡괭이를 든 병사 십여 명이 진지 밖으로 달려왔다. 그들은 도깨비 무사의 시신을 길 옆 숲속으로 옮긴 뒤 재빨리 매장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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