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동춘추 - 리부트-96화 (96/217)

〈 96화 〉 대동력 9,994년 5월 25일 (7)

* * *

­ 오후 7시, 대월국 흥원번 북쪽 지역 일대

이미 서너 차례나 율도군 기병들이 들이닥쳤다. 고향을 향해 도주하던 통요번군들은 모두 율도군들에게 붙잡히거나 살해당한 후였다. 율도군은 붙잡은 포로들과 그들이 가지고 있던 약탈품들을 챙겨 흥원성으로 보내고 있었다.

그 와중 통요번주 조암천만이 간신히 살아남아 율도군을 피해 달아나는 중이었다.

이제 서서히 땅거미가 지려하고 있었다. 조암천은 투구와 갑주를 모두 벗어 버리고 장자검 한 자루만 가지고 통요번이 있는 북쪽을 향해 산길을 따라 도주하고 있었다.

‘이 산만 넘으면 흥원 북쪽 끝이 나온다. 설마 율도놈들이 이 너머에까지 와있지는 않겠지.’

그는 손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북쪽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완만한 고갯길을 넘어왔을 때, 조암천은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 했다.

한 무리의 율도군들이 흥원으로 들어오는 길에 진지를 구축하고 있었던 것이다.

‘말도 안 돼! 율도놈들이 이 흥원 땅을 하루 만에 모두 점령했다는 거야, 뭐야? 도대체 얼마나 빠르기에?’

조암천은 길옆 수풀 사이에 숨어 주변을 살펴보았다. 율도군들은 대략 100명 정도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대부분 작업에 열중해 있는 터라, 잘 만하면 저들에게 들키지 않고 우회해서 흥원을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살금살금 수풀을 해치며 고개 아래로 내려갔다.

그가 율도군들이 있는 곳으로부터 100보 가량 떨어진 곳을 지나고 있을 때였다.

“거기 누구냐?”

날카로운 목소리와 함께 율도군 보병 두 명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주변에서 경계 근무를 서고 있던 병사들이었다.

“빌어먹을!”

조암천은 이를 악물며 장자검을 뽑아 들었다. 보병들도 그를 향해 무기를 겨누며 동료들이 있는 곳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여기 수상한 자가 있다!”

저 멀리서 진지 작업 중이던 병사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경계를 서던 병사들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작업 도구들을 내려놓고 각자 무기를 챙겨들고 있었다.

조암천은 마음이 급해졌다.

‘빨리 저것들을 쓰러뜨리고 여기서 도망쳐야해!’

그가 장자검을 휘두르며 병사들에게 덤벼들었다.

병사 중 한 명은 십자 형태의 날이 붙은 장창을 들고 있었고, 한 명은 오각형 방패와 칼자루 끝에 고리가 달린 검을 들고 있었다.

조암천은 기다란 창을 든 장창병보다는 검과 방패를 들고 있는 검병이 상대하기 쉬울 거라 생각했다. 게다가 일개 병사 따위가 어려서부터 대월국 내에서 이름 높은 검술 사범들을 초빙해 무예를 배워온 자신을 이겨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비켜라, 율도 조무래기들아!”

조암천의 장자검이 검병을 향해 날아들었다.

탱!

그의 장자검이 검병의 방패와 부딪혔다. 일개 병사 따위라 생각했던 검병은 너무나 손쉽게 조암천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푸슉!

순간, 조암천은 배 왼쪽에 불로 데인 듯 한 고통을 느꼈다. 검병이 방패로 그의 공격을 막아내는 동시에 그의 복부를 검으로 찌른 것이다.

“어흑!”

갑주를 벗어버린 것을 후회해도 이미 늦은 상태였다. 조암천은 손으로 환부를 누르며 뒷걸음질 쳤다. 상처는 깊지 않았지만 금세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얏!”

옆에 있던 병사가 그를 향해 장창을 내리쳤다.

딱!

창날 아래 창자루 부위가 조암천의 머리를 강하게 때렸다. 조암천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검병이 다가와 그의 손에 있던 장자검을 뺏어 들고 발로 그의 등을 눌러 밟았다.

“이 놈, 반란군 잔당인거 같아! 포승줄 하나 가지고 와!”

통요번의 번주 조암천이 일개 병사들에게 제대로 저항도 못하고 붙들리는 순간이었다.

­ 오후 8시, 대월국 흥원번 북쪽 지역 일대

조암천을 잡은 율도군들은 검에 찔린 부위에 응급처치를 해주고 간단한 심문을 벌였다. 조암천은 이름과 신분, 소속을 묻는 질문에 ‘통요번의 번군 아무개’ 라며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거짓말은 통하지 않았다.

“대월국 귀족 새끼들은 왼손에 자기 지위를 나타내는 반지를 끼고 다닌다던데, 네 놈의 반지가 바로 그것 아니냐? 너, 번군이 아니라 귀족이지? 맞지?”

율도군 지휘자가 왼손 중지에 끼워진 노란색 보석이 박힌 반지를 가리키며 윽박질렀다. 조암천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율도군은 그를 포박해 흥원성에 포로들을 모아 놓은 곳으로 끌고 가기로 했다. 보병 십여 명이 조암천을 둘러싸고 그를 호송했다.

그들이 10리쯤 갔을 때였다. 앞에서 한 무리의 기병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이를 본 율도군들은 바짝 긴장하고 전투태세를 취하려 했다. 앞서 보이는 기병들이 대월국의 갑주를 입고 있는 도깨비들이었던 것이다.

보병들 중 사수 두 명이 앞으로 나와 다가오는 기병들을 향해 활을 겨누었다.

이를 본 도깨비 기병들이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그들 사이에서 검은 갑주의 기병들이 앞으로 나섰다. 율도군의 경기병들이었다.

“무기를 내리시오! 5기동사단 경기병들과 이곳 흥원의 무사들이오!”

이에 율도 보병들도 무기를 내리고 전투태세를 풀었다.

기병들의 선두에서 말을 달리던 이는 흥원 공녀 진미령이었다. 그녀가 율도 보병들에게 말을 몰아 다가왔다.

“포로를 데려가는 중이오? 포로는 한 명?”

그녀가 보병들을 지나 포승줄에 묶여있는 조암천에게 다가왔다.

조암천은 갑주에 새겨진 고래 문장을 보고 그녀가 흥원 공녀 진미령이라는 걸 단박에 알아보았다. 그녀가 가까이 다가오자 조암천은 고개를 푹 숙이고 얼굴을 감추려 했다.

포로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진미령이 뒤에 있던 무사에게 손짓을 했다.

“저자의 고개를 들어보라.”

공녀의 명을 받은 흥원의 무사가 말에서 내려 조암천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거칠게 그의 머리를 잡아당겨 진미령 앞에 들이밀었다.

“헉!”

조암천은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진미령은 입술을 질끈 깨물며 그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뱀 같은 새끼, 살아서 도망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느냐?”

흥원 무사들은 율도 보병들에게 조암천의 신변을 넘겨 달라 요청했다. 그를 호송하던 율도 보병 지휘자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거절했지만, 흥원 무사들과 함께 온 율도군 경기병들의 설명으로 결국 조암천의 신변은 결국 진미령의 손안에 들어가게 되었다.

진미령은 흥원 무사들과 함께 조암천을 어느 으슥한 산골짜기로 끌고 갔다. 그곳은 산짐승들이 자주 출몰하는 곳으로 흥원 사람들도 들어가기를 꺼려하는 곳이었다.

조암천은 진미령에게 붙잡혔으니 이제 더 이상 살아날 방법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죽기 직전까지 허세를 떨며, 조소하는 말투로 쉼 없이 떠들어댔다.

“네 아비 소식은 들었느냐? 국왕군이 용림에서 아주 개박살이 나고 환강산성으로 도망쳐 들어갔다던데? 국왕군 중 절반 이상이 죽고 다쳤다던데, 네 아비도 죽은 거 아니냐? 큭크크크크.”

조암천은 밧줄에 이끌려 끌려가면서도 계속 주둥이를 나불거렸다.

“어젯밤 중에 성 안에 있던 네 어미와 동생들이 모두 없어졌더구나. 그것도 네가 한 짓이지? 그래, 가족 상봉은 잘 했느냐? 몇 달 만에 완전히 달라진 네 가족들 보고 눈물 질질 짜며 울고불고 그랬겠지? 계집들이 다 그렇지 뭐, 크크크크.”

진미령은 아무런 말도 없이 선두에 서서 말을 몰 뿐이었다.

“네 어미는 패주의 아내 주제에 건방지기 짝이 없더구나. 남편 잃어 외로운 년을 가엽게 여겨 내 무사들과 번군들이 따스하게 품어주겠다는데도 감히 손찌검을 하며 저항하기에 그년 양 팔을 베어버렸지. 그랬더니 달아나려 하더구나. 그래서 다시 붙잡아 와서 두 다리마저 작두로 잘라버렸어, 크크크.”

그가 계속 기분 나쁘게 웃으며 말했다.

“팔다리를 다 잘라버리니까 욕과 저주를 퍼부어 대더구나. 어찌나 쉬지 않고 떠들어대던지...... 내 하도 시끄러워 그 혀를 뽑아버렸지. 그랬더니 눈으로 죽일 듯이 나를 노려보았다. 쳐다보는 게 하도 마음에 들지 않아 두 눈까지 뽑아버렸어. 그렇게 보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는 돼지처럼 바닥을 기어 다니게 만들고 번군들이 짐짝처럼 들고 다니며 마음껏 가지고 놀게 만드니 그제서야 고분고분해지더구나. 아, 고분고분해진 게 아니라 아무것도 못하게 되었다고 해야 하나? 크하하하하.”

진미령은 두 눈을 질끈 감고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네 여동생들의 가슴은 여물지 않아 볼품없더구나. 그나마 큰 애는 애를 배고 나서야 젖통이 커진 것이 그제서야 조금 여자다워 보이더라. 그래도 네 남동생은 내 마음에 쏙 들었지. 그 녀석을 침대에 엎드리게 하고 엉덩이를 벌리게 할 때 질질 우는 것이 얼마나 사랑스럽던지. 넌 네 남동생이 얼마나 좆을 잘 빠는지 모르지? 크크크”

그녀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지 말에서 뛰어내렸다. 다른 무사들도 그녀를 따라 말에서 내렸다.

“더 멀리 갈 필요 없다. 여기서 해치우자.”

진미령은 안장에 걸어 놓았던 가죽에 철갑을 덧댄 전투용 장갑을 손에 끼며 말했다.

무사 둘이 다가와 조암천을 양쪽에서 붙들었다.

“네 입으로 네 죄를 모두 고백했구나. 그럼 지금부터 심판을 시작하지.”

전투용 장갑을 낀 진미령이 조암천에게 다가왔다. 그녀의 푸른 눈동자에서 엄청난 살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심판? 네가 무엇인데 날 심판하겠단 말이냐?”

“너같이 뱀 같은 새끼에게 가족을 유린당한 사람. 널 심판할 자격은 충분하다.”

그녀는 몸을 풀 듯 양 팔을 가볍게 돌리며 말했다.

“애초에 우리는 너나 너희 통요번과 원수진 일이 없었다. 그런데, 왜 내 가족들에게, 왜 우리 흥원번 백성들을 모질게 대한거지? 어디 스스로 변론해 보아라.”

조암천이 기분 나쁘게 이죽거리며 대꾸했다.

“전쟁 중이잖아? 우린 너희 번을 점령했고 나는 너희 가족을 잡았다. 내 것이 된 것을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우리 도깨비들 아닌가? 원래 도깨비들이 하던 대로 했을 뿐인데, 내가 뭘 잘못했다는 듯이 말하는 거냐?”

“원래 도깨비들이 하던 대로...... 그래, 지금 난 흥원을 되찾았고, 너를 잡았지. 그럼 우리 도깨비들이 하던 대로, 널 내 마음대로 하겠다."

조암천이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유녀같은 계집. 어떻게 율도군을 끌어들였지? 율도놈들한테 다리라도 벌려줬나? 몇 명한테 대줬나? 열 명? 아니, 백 명? 천 명한테 네 몸을 팔았냐?”

“귀신이 된 후에 저승사자에게 물어 보거라.”

진미령이 주먹을 꽉 쥐었다.

그녀는 철갑을 두른 전투용 장갑을 끼고 조암천의 얼굴을 패기 시작했다.

옆에 있는 무사들이 진미령이 주먹을 휘두르는 동안 조암천이 피하거나 쓰러지지 못하게 꽉 붙들고 있었다.

그녀가 때리다 지쳐 거친 숨을 몰아쉴 때 쯤, 조암천의 얼굴은 완전 피떡이 되어 있었다. 입을 벌릴 때마다 부러진 치아들이 입 밖으로 뱉어져 나왔다.

“헉, 헉, 크크큭. 계집한테 맞으니 괜히 흥분되네. 야, 더 때려봐. 네년 주먹이 너무 솜털같이 가벼워서, 내가 저승사자 만나기는 힘들 것 같은데? 크크큭.”

조암천은 피투성이가 된 입으로 끝까지 허세를 부렸다.

진미령은 아직 분이 사그라지지 않는 듯 씩씩 거리면서 손에 낀 전투용 장갑을 벗어 던졌다.

“저 새끼 바지 내려.”

공녀의 명령에 무사들이 조암천의 바지를 밑으로 내렸다.

“천박한 계집 같으니, 그렇게 내 물건이 보고 싶었느냐? 내 물건이 한 물건 하기는 하지만, 네 남동생 후장이면 몰라도 네년 냄새나는 보지에 박아줄 생각은 없어! 너, 네 남동생 후장이 얼마나 쫄깃한지 모르지? 네 남동생 후장에 박아주는 게, 네 여동생들 헐렁거리는 보지에 박을 때마다 훨씬 즐거웠다구, 크하하하하하~!”

진미령이 허리춤에서 단도를 꺼내들며 소리쳤다.

“저 새끼 꽉 붙잡아!”

그녀는 한 손으로 조암천의 성기를 붙들더니, 불알 째 칼로 썰기 시작했다.

한 번에 싹둑 베는 게 아니라, 마치 고기를 썰 듯 스윽, 스윽, 여러 번 칼질을 하고 있었다.

“으, 으아아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악~!”

조암천이 비명을 지르며 고통에 몸부림쳐 봤지만 소용없었다. 옆에 있던 다른 무사들까지 달려와서, 이제 여섯 명의 무사들이 그의 팔다리를 붙들고 꼼짝 못하게 하고 있었다.

“이 새끼 아가리 벌려.”

다른 무사 하나가 더 달려와 강제로 조암천의 입을 벌렸다. 진미령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잘려진 성기를 그의 입안에 쑤셔 넣었다.

“네가 좋아하는 네 자지, 실컷 맛보면서 죽어라.”

무사들이 입안에 들어간 성기를 뱉어내지 못 하게 천으로 입을 막아버렸다.

진미령이 손에 묻은 피를 닦아내는 동안, 무사들은 조암천을 나무에 머리가 땅바닥을 향하게 거꾸로 묶어 놓았다.

“다 되었으면 가자.”

진미령은 무사들을 데리고 조암천이 묶여있는 나무가 잘 보이는 언덕 위로 올라갔다.

조암천은 자신의 성기를 입에 문 채, 그렇게 피를 흘리며 서서히 고통스럽게 죽어가고 있었다.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 무렵, 이 산골짜기에 사는 산표범들이 피 냄새를 맡고 몰러왔다.

십여 마리의 산표범들은 나무에 거꾸로 매달린 채 피를 질질 흘리고 있는 조암천을 향해, 군침을 질질 흘리며 다가왔다.

산표범들의 소름돋는 울음소리, 와그작, 와그작, 뼈와 살을 물어뜯고 씹는 소리가 진미령과 흥원 무사들이 있는 언덕까지 들려오고 있었다.

진미령은 산표범들이 모두 사라질 때까지, 놈들이 조암천을 먹어치우는 소리를 끝까지 듣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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